책의 저자를 만날 때면 그가 누군지 어떻게 사는지 또는 살았는지 찾아보곤 합니다. 가끔씩 죽음과 연관 지어 마지막으로 쓴 저자의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작가가 남긴 마지막 글을 대할 때면 숙연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이 책도 저자가 죽음 직전에 나온 출간한 책입니다. 읽은 내용들 중 제가 꼽은 페이지를 요약해 봅니다.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주주를 한 사 람이라도 만난 적이 있나? 설사 만났다 해도, 내가 왜 그 사람들의 재산을 최대한으로 불리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지?'
머릿속은 그 주에 처리할 업무를 생각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제 역량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일도 있었습니다. 경영진 회의에서 마드리드 외곽의 탄산 공장 증설 안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야 했고, 스웨덴 본사에 분기 보고서도 제출해야 했지요. 아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요일 오후였지만, 마음속에는 다가올 업무 때문에 불안이 가득해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다들 알 겁니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는 모든 생각이 시커먼 필터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떠올리든 불안과 걱정, 허탈감과 무력감으 로 이어집니다. 그때 제 마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 누워서 암울한 생각만 계속하고 있어 봤자 나한테 좋을게 하나도 없잖아.'
문득 그때 읽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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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을 했다거나 특별한 정신 상태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났지요. 그것만으로 놀라운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온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더는 그 속에 매몰되진 않게 된 것입니다. 마치 한 발짝 물러나 제 마음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 같았지요. 그러자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가 곧 생각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생각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무비판적으로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수행하지 않은 정신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요. 우리의 정체성과 생각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느끼는 것 말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권장하려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긍정적 사고가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일시적인 눈속임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그럼 아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면 어떨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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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반신은 일종의 물병과 같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몸 안에 물이 차오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숨을 내쉴 때는 수위가 내려가서 병이 비워집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물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차오릅니다. 호흡이 엉덩이에서 또는 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다음 물이 배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차오르는 기운을 느껴 보는 겁니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이 파도에 자신을 잠시 내맡겨봅시다. 자세가 썩 편하지 않다면, 자기 몸에게 다정하고 부드럽게 물어보길 바랍니다. '어떻게 호흡하는 게 제일 좋니? 가슴을 조금 더 펴면 공기를 들이마시기가 더 편하니? 어깨를 살짝 내리면 어떨까?' 이 정도면 됐다고 느껴지는, 몸속 깊이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당장은 이렇게 호흡만 하면 됩니다. 다른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 휴가를 떠난 셈입니다. 전두엽의 스위치도 꺼버렸습니다. 이 순간,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순간, 짜내야 할 기획안도, 제시해야 할 의견도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사항도 전혀 없어요.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은 오로지 호흡뿐입니다. 원하는 시간 동안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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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하자면 태국 사람들은 제가 자란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 다. 세상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환영한다고 진심으로 확신하는 서양인은 별로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요. 태국 사람들은 어떤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될까, 나를 싫어하거나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자신을 환영해 주리라고 확신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요. “어이, 내가 왔어! 반가운 일이지! 내가 끼니까 더 즐겁잖아. 다들 내가 와서 기쁘겠지. 당연한 소리지만 다들 나를 좋아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다소 과장해서 묘사하긴 했지만 저는 태국인에게서 그와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 다. 그런 스스럼없는 태도가 부럽고 좋았지요.
명상이 주는 혜택에 터무니없이 큰 기대를 안고서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치앙마이 Chiang Mai 공항 외곽의 작고 번잡한 마을에 있는 사원이었지요. 벼룩투성이 개들이 사방에서 컹컹 짖으며 음식물 찌꺼기를 받아먹으려고 얼 쩡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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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가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이 금세 고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은 그럴 수 있지만, 정말 잠깐뿐입니다. 죽은 사람의 마음만이 계속해서 고요할 수 있지요.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두뇌를 쓰기 마련인데, 본래 어떤 안을 구상하고 그 안을 다른 안과 비교해서 새로운 안을 재구성한 뒤 그것에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두뇌의 일이니까요.
우리 머릿속에서 전혀 검열되지 않은 채 불쑥불쑥 떠 오르는 생각을 직면하면 당황해서 겁을 먹거나 실망하기 쉽습니다. 남들이 우리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요. 아마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할 테지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다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 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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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속한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마주치는 메시지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됩니다. 생각 또한 그 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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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제 안에서 '이건 내 삶이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던 목소리가 잠잠해진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특히 사업 영역에선 지적 능력이 사실상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선 제가 오랫동안 의심해 왔던 가설 하나를 설득력 있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즉, 인간의 가치와 재주는 높은 지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우리 머릿속에 한계가 없는 지성이 존재하며, 우리는 거기 더 깊이 의지할수록 더욱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있는 현명한 목소리,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한 목소리는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세상과 제 생각이 일치했습니다.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지요. 현재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진실을 말하기. 서로 돕기. 쉼 없이 떠오르는 생각보다 침묵을 신뢰하기. 마침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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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이미 긴 시간 동안 제 안에 있었지만 다른 소음에 눌려 미처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다들 알다시피 오랜 시간과 열정을 바쳤던 일에 의문을 품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생활 방식이든 누가 봐도 멋지고 좋아 보이는 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내면에 귀를 기 울이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생각이 좀 더 자유롭게 흐르 게 하자, 진심이 운신할 여지가 생겼던 겁니다. 내면의 더 현명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하니, 드디어 결심을 단행할 만큼의 확신이 찾아온 것이지요. 저는 이런 식으로 혹은 저런 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이성적으로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최종 결론에 이르지도 않았지요. 저 자신의 좀 더 큰 부분에 접 근한 바로 그 정적의 순간 갑자기 분명해졌을 뿐입니다.
현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예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성적인 마음은 하인이다. 반면에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다. 우리가 창조한 사회는 하인을 섬기느라 선물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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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제가 혼자 있게 되리라는, 마침내 진짜로 혼자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었지요.
제 자신이 주말도 없이 24시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공동체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데는 몇 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중엔 살면서 만나볼 그 누구보다 별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방을 같이 쓸 사람을 스스로 선택할 수도 없었지요. 그나마 한 달에 한 번씩은 방이나 오두막을 바꿔 사용했습니다. '소유물'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도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았던 탓도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사원을 훌쩍 떠나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은 절대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보아 하니 이런 사회성 훈련은 수행의 작은 부분이 아니라 그 핵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것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지요.
이렇게 많은 낯선 사람들과 종일 생활한다는 것은 처 음에는 큰 괴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걸핏하면 다른 승려들과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난 수자도 만큼 총명하지 않아. 난 니야나라토만큼 너그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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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바뀐 사람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 합니다. 거의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집요함으로 그 방식을 고집하지요. 마치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굳건하게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폭발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럼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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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넣으면 중앙에 뚫린 구멍으로 적당한 길이만큼 뽑아 쓸 수 있는 통이었지요. 화장실용 휴지를 통에 담으니 식탁에 놓고 냅킨처럼 써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몇몇 아시아 국가, 그중에서도 일본 사람들은 키치적인 Kitsch 취향을 때로 즐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원통형 플라스틱 용기도 딱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밝은 노란색과 선명한 분홍색으로 헬로키티를 그려 놓은 용기를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좀처럼 자극거리가 없다 보니, 휴지를 담는 통조차 제 관심을 잡아끌었던 것이지요. 혹시 뭐라고 쓰여 있지는 않나 자세히 보려고 통을 집어 들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 렸을 때, 그러니까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아침 식탁에서 우유갑 뒷면의 글까지 모조리 읽던 때와 같은 행동이었죠. 과연 소득이 있었습니다. 용기 밑면에 영어로 몇 마디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글 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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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만 매달리는 토끼 같은 사람과 대화할 때면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은 바로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제 말에 좀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제 말이 끝나자마자 뭐라고 대답할지 궁리하느라 바빠 정작 내용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든 보고서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평가하고 검토하고는 그들의 세계관에 들어맞는 생각이나 관점만을 인정해 주지요. 그런 관계에서는 전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달 리 말해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따분하기 그지없 지요.
반대로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을 땐 얼마나 좋은지요. 잠시라도 제 입장에서 생각하고 뒤를 받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와 같은 경청은 그 자체로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요. '와, 나 좀 봐. 그동안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믿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말하고 설명하고 공유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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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두 팔에서 천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팔은 이제 조금씩 떨리고 있었죠. 발아래로는 500 미터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남자는 더 버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겁이 덜컥 난 남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확신 없이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저기요, 하느님! 내 말 들리세요? 당신이 진짜로 존 재한다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잠시 뒤, 하늘에서 깊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를 불렀느냐. 널 도와줄 수 있다만, 반드시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하느님이 답했지요.
"손을 놓아라.”
남자는 몇 초 동안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어... 거기 누구 다른 분은 없나요?"
저는 이 남자에게서 저 자신을 봅니다. 저 역시 확신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딱 저렇게 행동하거든요. '절대 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게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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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숲 속 사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마법과 신비주의를 멀리하니까요. 제가 속한 종파는 그런 것들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잔 자야사로 스님은 유창한 태국어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 든 진심으로 세 번만 돼 된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 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 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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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또다시 주먹을 너무 세게 쥐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마땅히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 안다 고 상상한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모습이 제 생각과 맞지 않자 울컥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런 기분을 잘 안다면, 다음과 같은 손동작을 연습해 보길 바랍니다. 먼저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힘을 빼고 활짝 폅니다. 이 동작을 사전 암시처럼 자주 해보길 바랍니다. 저는 강연이나 명상 도중에 이 동작을 자주 합니다. 제가 전달하려는 핵심을 직관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우리가 유난히 집착하는 것을 내 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줍니다. 물건이나 감정, 신념 등 대상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도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다시 손바닥을 활짝 펴보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상 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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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오면서 실제로 벌어진 일의 극히 일부분만 기억합니다. 게다가 그 기억은 격한 감정에 따라 형성되고 결정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감정적으로 두드러졌던 일, 특히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일을 기억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선조는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아닙니다. 흔히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황에서 선별한 단편적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 조각들은 우리가 투영하는 미래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됩니다. 그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고 추측일 뿐이지요.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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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은 영국 북쪽 지역에서 생산하는 특정 파이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파이를 말하자,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커플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 다. 그들은 캐나다에서 왔는데, 자신들이 묵고 있는 호텔의 사환이 비수기 동안 우리 사원 근처에서 지내고 있어 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 라고 말한 뒤 역시나 슈퍼마켓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5분 뒤 우리는 음식이 가득 담긴 봉지를 네 개나 들고 그곳에 서 있게 되었지요. 우리는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염불을 왼 뒤 서둘러 공동묘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잔디밭에 앉아 조용히 공양했지요. 공양을 마친 뒤에도 잠시 그대로 앉아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문득 예전에 태국의 스승님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항상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제가 욕구를 채우려는 집착을 버릴 때마다 그 욕구가 더 쉽게 충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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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삶이 펼쳐지는 데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요? 간단합니다. 미래의 계획과 통제와 조직에 덜 신경 쓰고 현재에 더 충실하면 됩니다. 완전한 몰입에 빠졌을 때의 기분을 아실 겁니다. 기민하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 지요. 알아차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순간에 몰입할 줄 아는 사람은 닥치지도 않은 온갖 일에 대응할 방법을 궁리하면서,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를 상황을 미리 숙고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갈지를 끊임없이 걱정하지도 않지요.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히 대응합니다. 더 현명한 방법이지요.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당면한 상황을 의식하려면 불 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상당히 벅찬 일입니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 든 알고 싶어 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충동이지요. 앞 날을 알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서 행동 또한 경직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면서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척합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과 예상에 집착하고 필사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고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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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삶을 미리 계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 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계획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모두 진한 잉크 대신 흐릿한 연필로 일정표와 계획표를 쓴다고 상상해 봅시다. 앞으로 벌어질 거라고 우리가 기록하거나 생각한 일이 실제론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어떤 삶이 시작될까요?
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 기를 내는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삶을 뜻대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자연의 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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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명상을 가르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천천히 저만의 지도 법을 찾아 나갔습니다.
이곳의 주지인 아잔 케마시리Ajahn Kemasiri 스님은 축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게는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 재이셨지요. 스님은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야심한 밤을 틈타 동독을 탈출했습니다. 젊었을 땐 제과점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저와 만났을 즈음엔 이미 오랫동안 헌신적인 승려로 살고 계셨지요. 제 고향 친구 칼 헨리크가 스 위스 사원에 방문했을 때 아잔 케마시리 스님을 보더니 독일 영화 <특전 유보트>에 나오는 잠수함의 함장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종일관 강인한 모습이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여섯 나라를 돌며 명상 수련회를 이끌었습니다. 아잔 헤마시리 스님은 제 명상 수련회가 얼마나 불교적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련회 참가자들 에게서 제가 <트루먼 쇼>와 <매트릭스> 같은 영화나 『곰돌이 푸』와 『무민 가족』 같은 동화를 자주 언급한다는 이 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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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 칼 헨리크는 그 사실을 알고 신나서, 바로 여 러 가수의 노래를 묶은 모음집을 보내줬습니다. 이름하 여 '승려가 들을 만한 최고의 노래 100곡'이었습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지요.
스위스에서 매주 하루는 등산할 수 있었습니다.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는 늘 사원의 도반들보다 두 배나 멀리 걸었고 두 배나 높이 올랐습니다.
어느 날 저는 부츠를 신고서 수려한 장관을 자랑하는 봉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꼭대기에선 스위스의 수도 베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지요.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지만 봄이라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눈앞에 웅장한 풍경이 펼쳐진 가운데, 저는 자리에 앉아 챙겨 온 소박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지요.
햇볕이 뜨거웠습니다. 겉옷을 벗고, 잠시 뒤에 하나 더 벗었습니다. 원래 일광욕을 좋아했던지라 결국 옷을 다 벗어던졌습니다. 그런 다음 엠피스리 플레이어의 헤 드폰을 쓰고서 '승려가 들을 만한 최고의 노래 100곡'을 골라서 틀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샤키라 Shakira의 <힙스 돈 라이Hips Don't Lie〉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베른 알프스에서 가장 뻣뻣한 엉덩이가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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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머니의 말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당시 승려로서 제 삶은 지극히 안온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리고 제 역할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당시의 제 일상은 마치 자동조종장치를 켠 비행기와 같았습니다.
승려를 그만두기로 한 결정과는 무관했지만 당시 저 는 몸이 아팠습니다. 특발성혈소판감소자반증ITP, Idiopathic Thrombocytopenic Purpura이라 불리는 특이한 자가 면역 질환에 걸린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행했던 두 차례의 명상 수련회 사이 며칠이 비었고, 저는 그 틈을 타 콰줄루나탈주 KwaZulu-Natal의 어느 산에 등산을 갔습니다. 그때 뭔가에 다리를 물렸는데 몇 시간 뒤에 크게 아 프기 시작했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제 몸은 혈액을 응고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2주 뒤, 영국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당신의 몸은 시한폭탄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ITP는 혈소판이 조기에 파괴되어 심각한 출혈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증상이 있어서 중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스위스로 돌아온 뒤 여러 차례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제 비장脾臟을 제거하자고 권했지만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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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구는 제가 25년 전에 처음 들었던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태국에서 별이 총총한 어느 날 밤, 아잔 자야사로 스님이 13세기 중동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한 임금이 전설에 남을 만큼 지혜롭게 왕국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백성 중에 한 남자가 임금의 현명한 통치 이면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남자는 몇 주 동안 헤매다 마침내 왕궁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임금을 알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남자는 임금 앞에 엎드려 물었지요. "존경하는 임금님, 우리나라를 이토록 정의롭고 복되고 훌륭한 방식으로 다스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임금은 황금 반지를 꺼내 방문객에게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반지 안쪽에 그 비밀이 숨어 있노라.” 남자는 반지를 받아서 불빛에 대고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게 일시적이지요. 참나 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217
그보다 더 회의적이었습니다. 틸데의 속마음 말풍선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 왜 아니겠어. 17년 동안 공짜로 숙식을 해결했으니 믿음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겠지.' 물론 틸데가 실제로 한 말은 훨씬 더 고상했습니다. "하지만 비욘, 믿음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식탁에 올 릴 음식도 마련해야 해요."
저는 이런 반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믿음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늘 비슷한 의문을 품었으니 까요. 그래서 간밤에 뜬눈으로 지새우며 뭐라고 대답할지 열심히 궁리해 두었습니다. “그야 물론이죠, 틸데. 당신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믿음이 늘 해답이나 해결 책이 될 수는 없죠. 어떤 상황은 반드시 통제해야 하니까 요. 우리가 이슬람교라고 부르는 지혜의 보고로 잠시 눈을 돌려볼까요. 이슬람교에는 금언이 참 많은데, 특히 무 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 Hadith엔 이런 문구가 있어요.
신을 믿되 타고 갈 낙타는 묶어두라."
재미있긴 하지만 그냥 웃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저는 이 지혜로운 금언을 좋아해서 늘 마음에 품고 다닙니다.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면,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빠지기 쉽습니 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가령 소득신고를 할 땐 절대로 세상을 그냥 믿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류를 모조리 꼼꼼히 챙기는 게 좋을 겁니다. 자녀에게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행사에 시간 맞춰 가려면 미리 계획을 세워 두어야 하지요.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대 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은 더 믿음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믿음은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제 인생에서 나아갈 길을 찾고자 애쓸 때, 믿음과 순간의 지성은 제가 따르는 쌍둥이 나침반이지요. 제가 저 자신을 믿고 또 삶을 믿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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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의제에서 동력을 얻는 사람들입니다. 훌륭하기 이를 데 없지만 누구나 다 그러지는 않아도 됩니다. 자신이 당면한 현실에서 행동하기로 선택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언행을 유념하면서 자잘한 변화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 또한 세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나에게 가장 편하고 쉬운 행동의 범주에서 벗어나 조금 더 인내하고 용서하고 관대하고 정직하며 도움을 베풀 때, 그 작은 순간들의 선택들이 모여 인생이 되고 세상을 이 릅니다.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 도전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갈림길이 기다립니다. 자기한 테 편한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상대에게 너그럽고 훌륭하고 포용적이고 배려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세상에 편한 길은 없습니다. 반듯하고 평탄해 보이는 길에도 그것만의 함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포용력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길을 걸을 것인지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출발점은 같을지 모르지만 두 길의 끝은 대단히 다른 목적지로 이어집니다.
274
저는 그 증거를 곧 잘 목격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共鳴 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문득 해변을 산책하던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떠 오르는군요. 밤새 몰아치던 폭풍우가 물러난 아침, 파도에 휩쓸려 온 불가사리가 해변에 수도 없이 널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불가사리를 하나 집어 들어 바다로 던졌습니다. 또 하나를 주워 그것도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 모 습을 보던 한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꼬마야, 지금 뭐 하니?"
“불가사리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얘야, 이 해변엔 수십만은 못 되더라도 수만 마리나 되는 불가사리가 널려 있단다. 네가 몇 마리 구해 준다고 별 차이가 있겠니?"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가사리를 또 집어서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러고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재한테는 큰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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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준비가 된 친구, 끈끈한 유대로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친구. 듣고 싶지 않을 때조차 귀를 기울여야 할 말을 들려주는 친구.
누라가 머리를 말리는 장면에서, 거울에 붙은 포스트잇 메모지가 하나 보입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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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칠 때 저는 단지 그 순간을 그대로 알아차리려 할 뿐입니다. 괴롭고 부정적인 감정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최대한 내려놓습니다. 대신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 애씁니다. 『무민 가족』에 나오는 무민파파처럼 일렁이는 바다를 보면서 이렇게 외치지요. “얘들아,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있어. 얼른 배 타러 나가자!"
제가 들을 수 있는 더 현명한 목소리가 있음을, 삶을 통제하려 애쓰는 대신 삶과 함께 춤출 수 있음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주먹을 불끈 쥐기보단 손을 활짝 펴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지혜를 구하려면 17년 동안 승려로 살아야 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 진 않습니다. 누구든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데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힌두교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지요. '신은 당신이 절대 찾지 않을 만한 장소에 가장 귀한 보물을 숨겨두었다. 바로 당신의 주머니다.'
태국 사원에 머물 때 이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좌선을 마친 뒤 아잔 자야 사로 스님이 즉석 설법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일주일에 한두 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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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엔 BBC 기자가 태국 국왕을 인터뷰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영국인 기자는 국왕에게 서양 기독교의 원죄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국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불교도로서 우리는 원래의 죄original sin가 아닌 원래의 순수original purity를 믿습니다."
명상 방석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전율에 휩싸였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가, 제가 부족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꾸만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정말로 틀렸다면 어떨까요?
그 반대로 수많은 영적, 종교적 전통에서 늘 주장했던 것이 옳다면 어떨까요? 실은 인간의 절대 부서지지 않는 부분, 인간의 어떤 핵은 온전하고 순수한 것이라면요? 그것들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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