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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독서정리

서른 번째 책 : 사소한 일 - Adania Shibli

by 마파람94 2025. 6. 12.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 가자지구, 이스라엘과 이란 뭐 이런 곳에 복잡한 정세가 떠오릅니다.

이 책에서는 과거 분쟁 지역에서 일어난 안타까움 그리고 현재 지금도 진행 중인 불행한 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결말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쇼킹 한 장면으로 책을 마칩니다.

작가는 오롯이 독자인 저에게 분쟁 지역의 현실적 느낌과 현재를 상기시켜줍니다.

1부: 냉정한 3인칭 시점, 폭력을 리포트하듯 기록.
2부: 1인칭 내러티브로, 공간·감정·일상의 디테일이 긴장감을 높임

 

Photo: Lina Hindrum Cappelen Damm 출처 : https://www.kb.dk/en/events/international-authors-stage-adania-shibli-ps-conversation-lene-johansen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단지 내게 삶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으며,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이다. 끔찍한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우리 집 커다란 창가의 탁자에 앉아 있는 일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기사를 읽게 됐는데 난 거기 실린 사건의 날짜와 관련된 사소한 한 가지 사실에 특별한 주목을 하게 되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으로부터 정확히 사반세기 후 같은 날 아침에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 물론 이걸 순전한 나르시시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 주의를 끌고 내 관심을 지속시킨 부분은 비극적이라 묘사될 만한 그 사건의 주요 내용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유의 나르시시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자아의 독특함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삶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경향이니까. 우리가 삶을 사랑하고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난 개인으로서의 내 삶도 일반적인 삶도 사랑하지도 않으며 현재로선 내가 기울 이는 어떤 노력도 오로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은 내 경우에 딱 들어맞는 진단은 아닌...

2부 87


그 기사에 다루어진 사건으로 말하자면, 내 흥미를 돋운 사소한 부분이 그 사건이 일어난 날짜였다는 건 아마도 그 사건의 주요 부분이 점령의 함성과 지속적인 살해가 지배적인 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비교했을때 정말로 딱히 특별할 게 없었던 탓일 것 같다. 옆 건물에 대한 폭격은 일례에 불과하다. 강간조차도. 그건 전시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강간이든 살해든, 아니면 둘 다든. 그래서 난 그런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 기사에 나오는, 다수의 사람의 살해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들 중 오직 한 명의 살해에 관련된 지엽적인 사실만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어떤 의미로는, 집단 강간의 최종 행동으로 일어난 그 살해의 특이점은 그것이 특히 사반세기 이후 내가 태어난 날 아침에 일어났다는 사실 외엔 없다. 따라서 그 두 일 사이의 연결 가능성, 혹은 숨겨진 연결고리의 존재를 배제할 순 없다. 예를 들어, 잔디 한 포기를 뿌리째 뽑은 뒤 사람들이 그걸 완전히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확히 똑같은 종의 잔디가 사반세기 후에 같은 자리에서 자란다면 우리는 그 잔디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90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것이 내 의무라 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내 더듬거리는 말솜씨 때문에라도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요컨대 내가 그 소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으며, 그녀는 아무 인물도 아니고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를 안 기울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지금 세상의 비참함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과거로 돌아가서 더 많은 비참함을 들춰낼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사건 전체를 잊는게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둠이 집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되돌아와 나를 괴롭히고, 동이 틀 때까지 내게서 잠을 빼앗는다. 난 동틀 무렵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재빨리 커피를 마시고 집에 있던 지도를 모두 움켜쥐고 집을 나선다. 뒷마당 끝에서 소형 흰색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 창문이 햇 빛에 흠뻑 젖어 있다. 차 문을 열고 타자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운 따스함이 나를 감싸며 잠 못 이루며 공 포에 떨던 나를 위무한다. 난 시동을 걸고 입구로 가서 적절한 순간에 거리로 돌아 들어가려고 차를 멈추는데, 우회전 신호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에 스며든다. 그래, 우회전이다.

2부 97

지난 몇 년간 최단 경로의 일부인 그 길에 대해 누 가 언급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가령 그 길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든가, 거리 행상에게서 채소 한 상자를 샀다든가 하는. 우연히 언급을 안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아무도 더 이상 그 길을 다닐 수 없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그러니까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내 계획을 계속 실행에 옮기려면 이스라엘인들이 해안 지역으로 갈 때 타는 긴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나는 시동을 걸고 천천히, 침착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길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몇 미터 앞에는 한때 베이투니 아를 지나 라말라로 데려다주었던 길이 있고, 그 길은 내가 야파나 가자로 가기 위해 몇십 번이나 탔던 길이다. 이제 그 길은 막혀 있다. 아예 길 자체를 폐쇄했고 오른쪽으로 팔 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판들이 서 있는데, 장벽을 세우는데 쓰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것이다. 칼란디야 검문소 주변에서 본 것과 똑같은데, 여기서는 성곽 같은 모습을 이루고 있다. '오퍼 감옥'이라는 표지판이 길에 서 있다. 이 감옥에 대해 최근에 많이 듣긴 했지만 실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봄 일련의 침략 기간에 지어진 것이라 비교적 새것이다. 그해에 십육 세에서 오십 세까지의 사람은 누구나 광장으로 모아다가 이리로 데려왔다.

106

먼지의 부재로 인해 난 마침내 내가 낯익은 것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난 근심이나 공포감에 완전히 사로잡히기 전에 침대로 되돌 아가 곧 잠에 빠져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땀 냄새는 조금 빠져나갔지만 휘발유 냄새는 남아 있다. 나는 차로 가서 탄 뒤 문을 쾅 닫고 시동을 건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에게 인사하지 않고 떠난다. 범죄의 현장으로 향한다. 거기 말고 다른 갈 데가 생각나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어제 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지도가 아니라 굴곡 진 언덕과, 망고와 아보카도와 바나나 밭에 의지해 간다. 도착해 보니 어제 본 모습 그대로다. 아직 동이 트는 중이고 떠오르는 햇살이 엷은 구름층에 가려져 있어 좀 덜덥 긴 하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을 향해 가자, 다시 '탱크가 아니라 인간이 승리하리라'라는 구절이 나를 맞이한다. 나는 계단을 올라간다. 지붕 위에 서니, 라파가 지평선을 그리며 다시 나타난다. 어젯밤의 폭격이 만든 연기가 고요히 올라 창백한 아침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따라서 그 뒤 도 시의 대부분을 감추고 있는 회색 장벽과 그다지 잘 구별되지 않는다.

2부 143

통과에 앞서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가, 아무런 겁도 없이 끈질 기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껌팔이 소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어른과 아이의 역할이 전도된 세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통제 구역을 여행하는 일은 나아가, 풍경조차 신뢰할 수 없는 여정으로, 점령 이전의 마을과 사람이 완전히 소거된 채 담과 감옥, 넓고 직선적인 길 등이 그것을 대치하고 있는 기만적인 풍경을 마주치는 일이다. 이전의 삶과 풍경은 이제 낡은 지도와 거기 기록된 이름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부의 결말 아닌 결말-1부에서의 비극적 사건이 폭력이 전일화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과민한 개인의 경험으로 재연된ㅡ은 1949년 상황의 폭력성이 오늘날에도 전혀 가시지 않았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소극으로”라는 유명한 말처럼, 그 비극적 사건은 비극이라기보다 어이없는 소극처럼 느껴지며,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소녀의 강간살해 사건이 25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날 일어났다는 우연에 대한 그 여성의 집착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정신분석 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억압된 것의 귀환'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164

인간이라면 압도적이고 일상적인 폭력 상황에서 매 순간 그 폭력성을 느끼며 생존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작고 사소한 단서를 통해서라도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그 여성은 폭격으로 세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은 일에는 무신경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기 책상에 내려앉게 된 모래먼지에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단지 검문할 뿐인 경비대원에게 총구를 치워달라는 불필요한 말을 해서 모든 승객의 위험을 자초하고, 오래전 한 소녀가 살해당한 날과 자신의 생일이 같다는 우연적 사실에 집착하는 것이다. 작품은 이 같은 '억압된 것의 귀환'을 1부와 2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는 이미지-개 짖는 소리, 휘발유 냄새처럼 주체적 의지로 통제하기 힘든 것들─를 통해서도 솜씨 있게 전달한다. 1부에서 소녀의 목소리는 침묵 속에 남아 있지만 소녀가 폭력에 희생되는 순간마다 그를 따라온 개의 울부짖음으로 대치되어 소대장의 짜증을 북돋운다. 2부의 여성은 편안한 일상에 적응한 듯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여로에서도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고, 위험한 여정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1부의 개가 2부에 다시 나타나 소대장의 폭력적 행위를 증언하며 그 여성을 잠 못 이루게 하고 과거 범죄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휘발유 냄새의 경우, 1부에서는 소독을 위해 사용한 휘발유의 역한 냄새가 소대장의 행위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보여주며, 2부에서는 그것이 주유 중에 쏟은 휘발유의 냄새로 다시 나타나 그 여성에게 그 위험한 과업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역자 후기 165

이스라엘 지도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군사훈련 지역이나 사격장 등만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녀가 갔던 모래로 된 오솔길을 향해 길을 건넌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사구들이 나오니까 그 뒤에 뭐 라도 있기를 바라며 몇 발자국 걸어간다. 그런 다음 이 길을 차로 갈 수도 있을까 궁리하기 시작한다. 조심만 한다면 가능하다. 그래서 난 다시 길을 되짚어 큰길로 간 다음 차를 타고 그 오솔길로 간다. 사구들 사이를 따라가니 이내 내가 한 번도 못 본 광경이 나타난다. 누런 언덕들 사이로 가자니까 갑자기 그 한가운데 가시아카시아와 테레 빈 나무들과 참새그령이 도사린 곳이 나타난다. 여기 샘물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곳이 군사지역임을 알리는 표지 판, B구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그 표지판이 보이기는 하지 만난 그 방향으로 가는 내 발길을 억제하지 못한다. 나무 앞에 거의 다 갔을 때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나무들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활활 타는 듯한 고요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어서, 나는 모래밭을 울리는 내 발소리 때문에 불안해진다. 그래서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조심조심 걷는다. 내 발이 닿는 곳에만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모래밭 위에 떨어져 있는 물체가 시선에 잡 힌다. 가까이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눈을 가까이 댄다.

2부 153

총 알 케이스다. 손을 내밀어 집어 든다. 눈 가까이 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몇 미터 떨어진 곳 아카시아 나무들 사이에서 미동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낙타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동작을 완전히 멈춘다. 이 낙타들은 사격장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오른쪽에 서 있던 두 마리가 나를 등지고 가까운 나무 무더기를 향하기 시작한다. 모래밭에 틈 같은게 나 있는데, 그걸 가볍게 뛰어넘은 뒤 나무들 뒤로 숨는다. 이어 남아 있던 네 마리도 침착한 태도로 그 녀석들의 발소리를 흡수하는 모래밭 위를 가로지른다. 그 녀석들도 같은 나무 무리 뒤로 사라진다. 나는 오른손에 총알 케이스를 쥔 채 몸을 일으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낙타들을 뒤로하고 차를 향해 돌아 선다. 그러자 광활한 풍경 한가운데에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보인다. 순간적으로 열기의 파도가 나를 덮치며, 내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당장 침착함을 되찾아야 한다. 긴장해서 좋을 건 없다. 그런데 내 손에 총알 케이스가 있구나. 내가 손가락을 펼치자 그게 가만히 모래 위로 떨어진다. 계속 침착하고 평온한 태도로, 그들에게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차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154

하지만 병사들 중 하나가 나를 향해 고함을 치며 그 자리에 서라고 말하고, 다른 병사들은 나를 향해 총을 겨눈다. 당장 내 맥박 소리가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하며 전신으로 마비가 번져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다. 그들은 군사지역에 들어온 하얀색 소형차를 발견하고, 의심을 품고 나타난 게 틀림없다. 이 하얀색 소형차를 빌린 사람은 누구며 등등,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이미 경찰에게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차는 A구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렌터카 회사 것으로, 그것을 빌린 사람은 A구역의 남자이지 지금 이 순간 무기의 과녁이 되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침착하자. 과민반응을 하지 말자. 평소처럼. 내 껌. 어디 있지? 침착해야 돼. 난 껌 한 통을 찾기 위해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갑자기 타는 듯한 뭔가가 날카롭게 내 손을 꿰뚫고, 이어 내 가슴을 꿰뚫는다. 그리고 아득히 총성이 이어진다.

2부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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