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에 접한 소설 해변의 카프카는 마냥 재미 있다기 보다 뭐랄까 소설속에 여기저기에 삶의 아이러니 함이 녹아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생소하게 생각 할 수 있도록 책속에 여러가지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영화속 미장센에 숨겨진 진실 같은 요소 같은 것이 글 속에 박제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의 주요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고양이와 자동차가 등장합니다.- 하루키의 글에서 자주 표현하는 단골 소재라는 생각입니다. 일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다른 소설인 '기사단장 죽이기'의 등장 인물 중 멘시키라는 캐릭터가 소유하고 있는 차 중에 은색 재규어-이제는 단종된 클래식 고급차-와 같은 차들이 묘사되었는데,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주요 등장인물과 관련된 자동차가 등장 합니다. 교양미 넘치는 여자 도서관장의 차는 회색의 폭스바겐이고, 그 도서관의 직원은 로드스타 입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샴 고양이 미미가 사는 곳 주인의 차로 BMW 530 모델이 등장합니다. 무라카미의 소설이나 수필 등의 글을 보면 고양이, 자동차와 같은 것이 끊임 없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소소한 관찰의 결과 입니다.
그래서 뭐?!
그렇다는 겁니다. ^^
영역한 《아라비안나이트》중에서 한 권을 골라 열람실로 간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문을 연지 얼마 안 되는 도서관 열람실에는 나밖에 없다. 그 아담한 방을 나는 완전히 독차지할 수 있다. 잡지의 사진에서 본 그대로다. 천장이 높고 넓고 여유가 있으며, 게다가 온화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활짝 열어젖힌 창으로 이따금 산들바람이 들어온다. 흰 커튼이 소리도 없이 흔들린다. 바람에서는 역시 바다 냄새가 난다. 소파는 나무랄 데가 없다. 방의 한쪽 구석에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어, 마치 누군가 친한 사람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이 작은 방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로 이런, 세계의 움푹 파인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건 가공의 비밀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장소가 정말로 이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니, 바로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자, 그것은 다정스런 구름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 멋진 감각이다. 나는 크림색 커버가 씌워진 소파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는다. 일어나서 업라이트 피아노 앞으로 가 뚜껑을 열고, 약간 누렇게 변색된 건반 위에 열 손가락을 살그머니 놓아본다. 피아노 뚜껑을 닫고 포도 무늬가 있는 낡은 카펫 위를 걸어본다. 창문을 열고 닫기 위한 낡은 손잡이를 돌려본다. 대형 스탠드의 불을 켰다가 끈다. 벽에 걸린 그림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앉아 책을 계속 읽기 시작한다.
78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
“모릅니다”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가 오늘날 같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또는 남자와 여자가, 그 밖에도 여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등이 맞붙어 있어서 마주 보지는 못하고, 서로 등짝이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은 오늘날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게 만들어졌었다는 거지. 그래도 모두 만족하고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거야. 그런데 하느님이 칼을 써서 그 모든 사람들을 반쪽씩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어. 모든 사람을 두 조각 내 버렸다는거지. 그 결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칼에 맞아 생긴 일직선으로 된 흔적이 등짝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요행히 제대로 자기 짝을 찾게 되면 해피엔딩의 사랑이 되지만, 영영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싶어 결합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지. 그 결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있게 되어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으로 붙어 있던 반쪽을 찾아 우왕좌왕하면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대.”
“왜 하느님은 그런 짓을 한 거죠?"
"인간을 두 쪽으로 쪼개는 것? 글쎄,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하느님이 하는 일은 대체로 잘 알 수가 없지. 화를 잘 내고, 뭐랄까 너무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있고 말이지, 짐작으로는 아마 어떤 벌 같은 걸 받은 게 아니었을까?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처럼 말이야.”
“원죄” 하고 나는 말한다.
“그렇지, 원죄”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리고 긴 연필을 가운뎃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균형을 잡으려는 듯이 천천히 흔든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건 인간이 혼자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거야.”
나는 열람실로 돌아와 〈어릿광대 아브 알 핫산의 이야기>를 계속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좀처럼 책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다. 남남과 남녀와 여여?
80
나는 회전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책상 위에 조용히 두 손을 올 려놓는다.
“어때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나는 얼굴이 조금 빨개지며 고개를 젓는다. 사에키 상은 웃으면서 옆방의 부부한테 되돌아간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다보고 있다. 그 신체의 움직임과 다리의 움직임을. 모든 동작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고 우아해 보인다.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녀는 그 뒷모습을 통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마주 보고는 전달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방 안을 둘러본다. 벽에는 이 지방의 해안을 그린 듯한 유화가 걸려 있다. 스타일은 낡았지만 색채감이 신선한 그림이다. 책상 위에는 커다란 재떨이와 초록색 갓을 씌운 전기 스탠드가 놓여 있다. 스위치를 누르자 반짝 불이 켜진다. 정면의 벽에는 고풍스러운 검은색 시계가 걸려 있다. 골동품 같지만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정확하다. 마룻바닥은 군데군데 둥글게 마모되어 있어서 걸으면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견학이 끝나자 오사카에서 온 부부는 사에키 상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부부가 함께 관서 지방의 단가 서클에 들어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그 부인은 아무리 봐도 노래를 지어 낼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부인은 그렇다 치고 남편은 도대체 어떤 노래를 짓는 것일까? 그들 부부가 서로 맞장구나 치고 끙끙거리는 것만으로는 노래를 지을 수 없을 텐데─. 시나 노래 같은 걸 지으려면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울림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87
비가 내리면 저 계단을 내려간 곳에 있는 신사神社에 있을 걸세."
“네, 감사합니다. 나카타도 오쓰카 상과 얘기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고양이 상과 얘기를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아무 고양이 상하고나 이런 식으로 술술 얘기가 통하는 건 아니지요. 더러는 제가 말을 걸면, 몹시 경계하며 잠자코 어딘가로 가버리는 고양이 상도 계십니다. 저는 그저 인사를 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인간도 여러 부류가 있는 것처럼, 고양이도...... 여러 부류가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나카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인간이 있고, 여러 부류의 고양이 상이 있습니다.”
오쓰카 상은 등줄기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빈 터에 오후의 황금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가 올 것 같은 희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쓰카 상은 그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자네는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서 머리가 약간 나빠졌다, 고 분명 그렇게 말했지?"
“네, 맞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나카타는 아홉 살 때 사고를 당했습니다."
“어떤 사고였는데?"
“그게 아무리 해도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들은 얘기에 따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 같은 것에 걸려서 삼주일 동안 나카타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줄곧 병원 입원실에서 링거라는 걸 맞으면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의식이 돌아 왔을 때는, 그때까지의 일을 전부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얼굴도, 어머니 얼굴도, 글씨를 읽는 법도, 산수를 하는 것도, 살고 있던 집의 배치도, 그리고 제 이름까지 몽땅 잊어버렸습니다. 욕조의 마개를 뽑아버린 것처럼 머릿속이 깨끗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나카타는 성적이 매우 좋은 수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갑자기 쓰러졌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나카타는 머리가 나빠져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이렇게 돼버린 나카타 때문에 자주 울곤 하셨습니다. 나카타의 머리가 나빠져서 어머니는 울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고 했지요. 아버지는 울지는 않으셨지만 언제나 화를 내셨습니다."
ΙΟΙ
지하철을 타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얻어맞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이제 울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갑자기 너는 머리가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시면 나카타는 오히려 난처해질지도 모릅니다. 머리가 나쁘지 않게 된 탓에 지사님한테서 받던 보조금도 못 받을지 모르고, 특별 증명서로 시영 버스를 타는 것도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뭐야, 너는 머리가 나쁘지 않잖아, 하고 지사님한테 꾸중을 들으면 나카타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카타는 이대로 머리가 나쁜 채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야, 자네의 문제점은 머리가 나쁜 데 있는 것이 아니란 걸세" 하고 오쓰카 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까요?"
“자네의 문제점은 말야, 이건 내 생각이지만, 자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한게 아닐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생각한건데, 땅바닥에 있는 그림자가 보통 사람의 반 정도밖에 안 보였거든.”
“아, 그래요.”
“나는 전에도 한번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있어.”
나카타 상은 입을 조금 벌리고 오쓰카 상의 얼굴을 보았다. “전 에도 본 적이 있다는 건, 그러니까 나카타 같은 인간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지. 그래서 나는 자네가 나에게 말을 건넸을 때에도…………… 그다지 놀라진 않았던 걸세."
103
가라스야마의 무덤에 들어가면 누구든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지요.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럴까, 저럴까 하고 고민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카타는 지금 이대로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나카타는 가능하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카노 구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죽은 다음에 가라스야마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물론 자네 자유일세" 하고 오쓰카 상이 말했다. 그리고 또다시 발바닥 육구를 핥았다. "그렇지만 말이야, 그림자 생각도 조금은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림자로서도 체면이 안 설지도 모를 일이거든. 만일 내가 그림자라도, 별로....…… 절반인 채로 있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네" 하고 나카타 상은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나카타 상과 고양이 오쓰카 상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윽고 나카타 상은 조용히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풀을 꼼꼼하게 털 었다. 후줄근한 등산모를 다시 머리에 썼다. 몇 번 챙의 각도를 조절해서 습관이 된 각도로 맞추어 썼다. 즈크 가방을 어깨에 맸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오쓰카 상의 의견은 나카타에게 참으로 귀중 한 것이었습니다. 부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105
“네, 그렇습니다. 저는 나카타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고 샴 고양이가 말했다.
“참 반갑습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아침부터 흐리지만, 아마도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고 나카타 상은 말했다.
“비가 안 오면 좋겠네.”
그 샴 고양이는 슬슬 중년으로 접어들려는 암컷으로, 쭉 곧은 꼬리를 자랑하듯이 세우고, 목에는 이름표를 겸한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얼굴도 잘생기고 몸에는 군살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미미라고 불러주세요. 《라 보엠》의 미미입니다. 노래로도 불리고 있답니다. <내 이름은 미미〉라고 말예요.”
“아, 그러십니까?”하고 나카타 상은 말했다.
“그런 푸치니의 오페라가 있거든요. 주인이 오페라를 좋아해서요.” 그렇게 말하고 미미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노래를 들려드렸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노래 솜씨가 없어서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미미 상."
"나도요, 나카타 상."
“이 근처에 사십니까?"
“네, 저기 보이는 이층집에서 살고 있어요. 다나베라는 사람네 집입니다. 보세요, 문 안에 크림색 BMW530이 서 있지요?"
“네” 하고 나카타 상이 말했다. 나카타 상은 BMW가 무엇을 뜻 하는지 잘 몰랐지만, 크림색 자동차 같은 것은 보였다. 아마 그것이 BMW라는 것인 것 같다.
153
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육체적 쾌감을 느꼈습니다. 여러 자세로, 그리고 여러 각도의 체위로 우리는 섹스를 했고, 그 사이에 몇 번씩이나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는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 처럼 탐욕스럽게 다양하게 체위를 바꾸면서 섹스를 한 적도 없었고, 그처럼 강렬하게 오르가슴을 느낀 경험도 한 번도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꿈속에서 우리는 평소의 억제심을 전부 벗어던지고 마치 짐승처럼 섹스를 나누었습니다.
잠이 깼을 때 주위는 희끄무레했으며, 저는 매우 이상한 기분이 되 었습니다. 온몸이 나른하면서 몸 안쪽에 아직도 남편의 성기가 느껴 졌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숨이 가빴습니다. 제 성기도 성행위 를 하고 난 뒤처럼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라 진짜 성교였던 것처럼 생생하고 절실한 느낌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그대로 자위행위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성욕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가라앉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밥공기 산으로 향했습니다. 산길을 걷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저는 성교의 여운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자궁 안 쪽에서 남편이 사정하던 감촉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자궁 벽에, 남편이 내뿜은 정액이 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저는 그 것을 느끼면서 남편 등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더 이상 크게 벌릴 수 없을 만큼 다리를 활짝 벌리고, 발목을 남편 넓적다리에 휘감았습니다.
193
나머지 시간은 네 마음대로 책을 읽으면 돼. 별로 나쁘지 않지?"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물론 나쁘지는 않지만.” 하고 나는 말한다. 도대체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에키 상이 그런 일을 허락해 주시 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네요. 저는 어쨌든 열다섯 살의, 신 원도 알 수 없는 가출 소년인데.”
“사에키 상은, 뭐라고 할까………………” 하고 오시마 상은 말을 하려다 말고 보기 드물게 말을 더듬거리면서 적당한 말을 찾는다. “보통 사람하고는 다르거든.”
“보통 사람하고는 다르다구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사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사물을 생각 하지 않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특수한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오시마 상은 고개를 흔든다. “아냐, 그런 것이 아니야. 특수하다 면 내 쪽이 더 특수한 인간이지. 다만 그녀는 상식적인 고정관념에 구애되거나 하지 않는단 얘기지."
나는 보통이 아닌 일과 특수한 일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209
다섯 시 반에 나는 고무라 도서관 현관에서 오시마 상이 나오기 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뒤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 가서 녹색 스포츠카의 조수석에 태운다. 마쓰다의 로드스타다. 덮 개는 덮여 있지 않다. 그 스마트한 오픈카의 트렁크는 너무 작아서, 내 배낭이 들어가지 않아 뒤쪽의 랙에 로프로 단단히 맨다.
“오래 차를 타고 갈 테니까 도중에 어딘가 들러서 식사를 하고 가 지”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하면서 시동을 건다.
“어디까지 가는데요?"
“고치(高知)” 하고 그는 말한다. “가본 적 있어?”
나는 고개를 젓는다. “얼마나 멉니까?"
“글쎄, 목적지까지 아마 두 시간 반 정도 걸릴걸. 산을 넘어 남쪽 으로 내려가.”
“그렇게 멀리 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어. 도로는 곧장 뚫려 있고,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고, 탱
크에는 기름이 가득 차 있어.”
우리는 황혼이 가까워진 시내를 빠져나와 일단 서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그는 능숙하게 차선을 바꿔가며 자동차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왼쪽 손바닥을 사용해서 기어를 자주 바꾼다. 유연하게 속도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때마다 엔진의 회전음이 미묘하게 변화한다. 기어를 바꾸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힘껏 밟으면, 속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속 140킬로미터를 넘는다.
“특별히 튠업했지. 가속이 쉽거든. 보통 로드스타와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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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다양한 명피아니스트가 이 곡에 도전했지만, 그 어떤 연주도, 느낄 수 없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거든. 바로 이 연주만은 결함이 없다고 할 만한 연주는 아직 없다. 왜 그런지 알아?"
"모르겠어요" 하고 나는 말한다.
“곡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야. 로베르트 슈만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의 뛰어난 이해자였지만, 그런데도 이 곡을 '무지무지 장황' 하다고 평했지."
“곡 그 자체가 불완전한데 어째서 수많은 명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에 도전하는 걸까요?"
"좋은 질문이야"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리고 사이를 둔다. 음악이 침묵을 채운다. “나도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어. 하지만 하나만은 말할 수 있지.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적어도 어떤 종류의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야. 예를 들어, 넌 소세키의 <고후〉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 <고코로>나 <산시로> 같은 완성된 작품에는 없는 흡인력이 미완성의 작품에는 있기 때문이지. 너는 그 작품을 발견한 거야. 바꿔 말하면, 그 작품이 너를 발견한 셈이지.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도 그것과 마찬가지야. 그 음악에는 그 작품이 아니고서는 바랄 수 없는 마음의 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하고 나는 말한다.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는데요, 어째서 오시마 상은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듣는 거죠? 특히 운전하고 있을 때?"
215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특히 D장조 소나타는 곡 그대로 매끈하게 연주해서는 예술이 되지 않아. 슈만이 지적한 것처럼, 소박하고 서정적인 목가와 같이 너무도 길고 기술적으로도 지나치게 단순하거든. 그런 것을 악보 그대로 연주하면 아무 맛도 없는 흔해 빠진 골동품이 되어버려.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기교를 구사해. 장치를 마련하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아티 큘레이션(또렷한 음 표현)을 강조하거나, 루바토(박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주법)로 하거나, 빨리 치거나, 강약을 궁리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리듬감을 살려나갈 수가 없거든. 하지만 아주 주의해서 하지 않으면, 그런 장치는 흔히 작품의 품격을 무너뜨리게 되고, 슈베르트의 음악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되어버려. 이 D장조 소나타를 치는 모든 피아니스트는 예외 없이 그런 이율배반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이야
기를 계속한다.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야.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든 불완전한 연주이기 때문이지.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장조 소나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그것이 나를 격려해 주거든.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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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아름다운 물이다. 손으로 떠 마셔보니 달고 차다. 나는 물속에 한참 동안 양손을 담근다.
프라이팬을 사용해 햄에그를 만들고, 석쇠에 살짝 토스트를 얹어 구워서 먹는다. 냄비에 우유를 데워 마신다. 그러고 나서 포치에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난간에 양다리를 올려놓은 채 오전은 느긋하 게 책을 읽기로 한다. 오시마 상의 책장에는 수백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소설은 얼마 안 되고, 그것도 잘 알려진 고전 작품뿐이다. 대 부분이 철학, 사회학, 역사, 심리학, 지리, 자연과학, 경제 같은 종류의 책이다. 오시마 상은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니까, 아마도 필요한 일반 지식을 독서를 통한 독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이곳 에서 실천했을 것이다. 그 책들의 내용은 광범위한 여러 학문의 영역을 망라하고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두서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관한 책을 고른다.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은 나치 전범자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그 책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뽑아 든 것뿐이다. 나는 그 책에서 금속테 안경을 쓰고 숱이 적은 친위대의 한 중령이, 얼마나 뛰어난 실무가였는가 하는 사실 을 알게 된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는 나치 간부들로 부터 유태인의 최종 처리─요컨대 대량 학살―라는 과제가 주어 져, 그 어마어마한 일을 어떻게 실행하면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계획서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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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의문은 그의 의식에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단기간에 얼마나 적은 비용을 들여서 유태인을 처리할 수 있느 냐는 것뿐이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유럽 지역에서 처리해야 할 유 태인의 수는 전부 천백만이었다.
차량 몇 칸을 연결한 화차를 마련해서 한 화차에 몇 명의 유태인을 몰아넣으면 되는가, 그 가운데 몇 퍼센트가 수송중에 자연히 목숨을 잃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그 작업을 처리할 수 있을까, 시체는 어떻게 하면 가장 비용을 덜 들이고 처리할 수 있을까, 불에 태울 것인가, 땅에 묻을 것인가, 녹여 없앨 것인가, 그는 이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계산한다.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고, 거의 그가 계산한 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략 6백만 명(목표의 절반을 넘는 수준)의 유태인이 그가 계획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그는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방탄유리가 둘러쳐진 피고석에 앉아, 자기가 어째서 이런 거창한 재판에 회부되어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아이히만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는 한 사람의 기술자로서, 자기에게 부여된 과제에 대해 가장 적합한 해답을 제출했을 뿐이다. 전 세계의 모든 양심적인 관료가 하고 있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한 것뿐이지 않은가? 어째서 자기만 이처럼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255
혹시 라디오를 자주 들어?"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럼 아마 들은 적이 없을 거야. 라디오의 흘러간 옛 노래 특집 이 아닌 한, 지금은 아마 들을 기회가 없을걸. 하지만 근사한 노래 야. 나는 그 곡이 들어 있는 CD를 갖고 있어서 이따금 듣거든. 물 론 사에키 상이 없는 곳에서이지만. 그녀는 그 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니까. 비단 노래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은 어떤 일이든 언급되는 것을 몹시 싫어해."
“곡의 제목은 뭐였어요?"
“<해변의 카프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했다.
"<해변의 카프카>?"
“그래, 다무라 카프카 군. 너와 같은 이름이야. 기묘한 인연이라 고나 할까?"
“그건 진짜 내 이름이 아니에요. 다무라는 진짜지만.”
“하지만 자네가 스스로 정한 거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을 지은 것은 나였고, 나는 그 이름을 새롭게 탈바꿈한 나에게 붙이겠다고 오래전부터 정해 놓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중요한 거야”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스무 살 때 사에키 상의 애인은 죽었다. 〈해변의 카프카〉가 한창 대히트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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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얼마 있다가 고무라 가와 이야기가 오갔고(고무라 집안의 현재의 호주는 사망한 장남보다 세 살 아래인 차남이다. 사에키 상과 그, 둘이서만 이 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결과 사에키 상은 고무라 도서관의 관리 책임을 맡게 되었다.
지금도 그녀는 아름답고 가냘픈 몸매를 지니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의 레코드 재킷에 찍혀 있는 사진과 같은 지적인 청초함을 거 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만 거기에는 맑고 투명한 미소는 없었 다. 그녀는 지금도 가끔 미소를 짓는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건 시간과 범위를 어느 지점까지만 한정한 미소였다. 그 미소의 바깥 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있었다. 그 미소는 아무도 어딘 가로 이끌어가지 못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시내에서 회색 폴크스 바겐을 운전하여 도서관에 출근했고, 저녁이면 다시 그것을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오긴 했지만, 옛날 친구들이나 친척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어떤 기회에 얼굴을 마주치면 깍듯이 남들이 하는 만큼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화제는 항상 한정되어 있었다. 과거의 사건이 화제에 오르면(특히 그 사건에 그녀가 관련되어 있는 경우 에는), 그녀는 곧,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유도했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공손하고 상냥했으나, 거기에 는 본래 있어야 할 호기심이나 놀라움의 파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녀의 본마음은 만일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언제나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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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알게 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오시마 상은 손을 뻗어 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다무라 군,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들은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우리는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그 전에 오시마 상은 차를 세우고 자동차 덮개를 덮는다. 그리고 다시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튼다.
“또 한 가지, 자네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것은 사에키 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지. 물론 나도 너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 크건 작건 간에 말이야. 그것은 틀림없어. 하지만 사에키 상은 그런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서, 좀더 개별적으로 앓고 있는거야. 영혼의 기능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위험하다든가, 그런 말은 아니야. 일상생활에서 사에키 상은 지극히 정상적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상적이야. 깊이가 있고 현명하고 매력적이거든. 다만 그녀에게 만약 무엇인가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너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이상한 점이라니요?”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묻는다.
오시마 상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사에키 상을 좋아해. 존경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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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면, 나는 참을 수가 없거든. 나도 모르게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게 돼. 조금 전의 경우도 적당히 받아넘기고 적당히 맞장구를 쳤으면 됐을 텐데. 아니면, 사에키 상을 불러서 맡겼으면 됐을 텐데. 그녀라면 미소 띤 얼굴로 능숙하게 대처했을 거야. 그런데 나는 늘 그렇게 할 수가 없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마구 하는가 하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버리거든.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어. 그게 내 약점이야. 어째서 그게 약점이 되는지 알겠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일이 진지하게 상대하다가는 몸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란다, 는 얘기인가요?" 하고 나는 말한다.
“그래, 맞아”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리고 연필의 지우개 부분으로 가볍게 관자놀이를 누른다. "정말 그래. 하지만 다무라 카프카 군, 이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결국 사에키 상의 연인을 죽인 것도 그런 인간들임에 틀림없어.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비관용성非寬容性 독불장군 같은 계급 투쟁의 운동 방침, 공허한 말들, 찬탈된 이상理想, 경직된 시스템.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야. 나는 그런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증오해,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가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 그러나 그런 개별적인 판단은 혹시 잘못되었더라도 나중에 정정할 수가 있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대개의 경우는 돌이킬 수 있지.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것이나 관용할 줄 모르는 것은기생충과 마찬가지거든. 중간 숙주宿主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어서 끝없이 이어져가는 거야.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여기에 들여놓고 싶지는 않아."
오시마 상은 연필 끝으로 서가를 가리킨다. 물론 그는 도서관 전 체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을 적당하게 웃어넘길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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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선택하기 전에 이미 일어나기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생각돼요. 나는 다만 누군가가 미리 어딘가에서 정한 것을, 그냥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아무리 애써 보았자 그런 것은 전부 헛일이라고 말예요. 아니,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점점 더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들어요. 내가 나 자신의 궤도로부터 멀어져가는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나에게 아주 힘든 일이거든요. 아니, 무섭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라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때때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요."
오시마 상은 손을 뻗어 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그 손바닥의 온기를 느낄 수가 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는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눈을 들어 오시마 상의 얼굴을 본다. 그의 말에는 뭔지 모를 설득력이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거기에는 아이러니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아이러니?"
오시마 상은 내 눈을 들여다본다. “자, 내 말 잘 들어, 다무라 카 프카 군. 네가 지금 느끼는 것은 수많은 그리스 비극의 동기가 되기 도 한 거야.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 택한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근본을 이루는 세계관이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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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극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사자의 결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의 장점을 지렛대로 해서 그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내가 말하는 걸 알 수 있겠어? 다시 말하면 인간은 각자가 지닌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질美質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거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그 뚜렷한 본보기라고 볼 수 있어. 오이디푸스 왕의 경우, 게으름이나 우둔함 때문이 아니라 그 용감성과 정직함 때문에 그의 비극은 초래되었거든. 거기에 불가피하게 아이러니가 생겨나는 거야.”
“그러나 구원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러나 아이러니가 인간을 깊고 크게 만들거든. 그것이 더욱 높은 차원의 구원을 향한 입구가 되지. 거기에서 보편적인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예술의 하나의 원형이 되고 있는 거야. 다시 되풀이하게 되지만, 세계의 만물은 은유라고 하는 메타포거든. 누구나 실제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메타포라는 장치를 통해서 아이러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깊게 그리고 넓게 다져나간다는 얘기야."
나는 잠자코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상념에 깊이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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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도코로(六條御息所)는 본처인 아오이노우에葵上)에 대한 심한 질투로 괴로워하다가, 악령이 되어 그녀에게 씌워버렸던 거야. 밤이면 밤마다 아오이노우에의 침소를 습격하여 마침내는 죽여버리고 말았어. 아오이노우에는 겐지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어서, 그 소식이 로쿠조노미야 스도코로의 증오의 스위치를 켜버린 거야. 히카루 겐지는 승려를 모아놓고 기도를 해서 악령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 원한이 너무 강해서, 로쿠조노미야 스도코로에게는 무슨 수를 써도 당할 수가 없었어.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 자신은 자기가 생령이 되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 있지. 악몽에 시달리다 잠이 깨면 길고 검은 머리에, 전혀 기억에 없는 호마(호마목을 태우며 재앙과 악업을 쫓는 불교의 일파인 밀교의 의식 역주) 냄새가 배어 있었지. 그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혼란 스러웠지. 그것은 아오이노우에를 위한 기도에 사용하던 호마 냄새 였어.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간을 뛰어넘어 심층 의식의 터널을 빠져나가, 아오이노우에의 침소에 다녔던 거야. 이것은 《겐지 모노가타리》 속에서도 제일 으스스하고 스릴 넘치는 장면이야.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는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소 행을 알고, 자기의 깊은 악업을 두려워하여 삭발하고 출가하지.
괴기한 세계라는 것은, 즉 우리 자신의 마음의 어둠이야. 19세기에 프로이트나 융이 나와서, 우리의 심층 의식에 분석의 빛을 비추기 전에는, 그 두 가지 어둠의 상관성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생각할필요도 없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고, 메타포조차도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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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서로 별 관련도 없다는 것이었지.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할 때까지 세계의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의 물리적인 어둠과 내면의 영혼의 어둠은 경계선 없이 하나로 뒤섞여서 그야말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야.”
오시마 상은 두 손바닥을 찰싹 치면서 하나로 합친다.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겐지 모노가타리>의 저자)가 살던 시대에는 생령이라는 것은 괴기 현상인 동시에, 바로 곁에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였어. 그 두 종류의 어둠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마 불가능했을 거야. 그러나 우리들이 지금 있는 세계는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지. 바깥 세계의 어둠 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마음의 어둠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 우리가 자아나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빙산과 마찬가지로 그 대부분은 어둠의 영역에 가라앉아 있어. 그런 괴리가 어떤 경우에는 우리들 내부에 깊은 모순과 혼란을 태어나게 하지.”
“오시마 상의 통나무집 주위에는 진짜 어둠이 있어요.”
“그래, 맞아, 거기에는 아직도 진짜 어둠이 있어. 나는 가끔 어둠을 보기 위해서 거기에 가지”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인간이 생령이 되는 계기나 원인은 늘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인가요?" 하고 나는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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