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편을 읽었습니다. 남자에 대해 알고 싶은 연애 중 또는 결혼 초인 여자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왜냐하면 남자의 심리를 대체로 정확히 묘사하는 부분이 책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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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나면 '대수롭지 않은' 디테일이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획에 수반되는 완벽을 향한 의지는 지칠 줄 모르는 전일론적 소갈망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폭압적 완벽주의의 예를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술가는 캔버스의 모든 모서리를, 교향곡의 음표 전체를 단속하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결혼생활하는 부부들은 화장실 타일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사과할 때 구사해야 할 영역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자에게 줄기차게 의견을 제시한다. <메시아>의 마지막 악장에서 트럼펫이 음정을 틀리자 격노했던 헨델을 질타할 수 없듯이, 오븐 접시를 닦는 일이나 장모/시어머니에 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올바른 방법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부부를 보고 놀라서는 안 된다. 물론 헨델은 음악이 연주되는 몇 시간 동안에만 자신의 완벽주의를 행사할 만큼의 절제력은 갖고 있었다. 그에 반해 평균적인 부부들은 커뮤니케이션, 요리, 미학, 교육, 정치, 패션, 섹스, 재정에 이르는 온갖 영역에 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든다.
사회적 관계의 모순 중 하나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결국은 훨씬 더 잘해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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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이해해 주거나 산만한 태도에 인내심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설명은 극도로 아끼면서, 시작부터 다짜고짜 화난 눈 빛으로 목청을 한껏 높여 상대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꾸짖을 뿐이다. 그리고 뛰어난 간파력을 발휘해 상대를 괴롭히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자신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에 그다지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훌륭한 교사의 전제조건 중 하나라고 할 때, 연인 사이란 이를 깨닫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우리가 형편없는 짓을 저지르는 이유가 이론지식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같은 종센으로서, 왜 부부가 서로를 괴롭히고 결혼에 실패하는지를 우리는 이미 정확히 알고 있다. 심리치료 전문가 제럴드 위크스와 스티븐 트리트가 엮은 『커플 심리치 료: 효과적인 실무를 위한 테크닉과 접근법』 같은 심리학 가이드북을 보면 그 실상이 과장 없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덥고 지친 상태에서 바운시캐슬을 찾아 생소한 동네를 헤매고 있을 때는 그런 두꺼운 책 속에 담긴 지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맹렬한 속도로 솟구치는 실망감에 짓눌려 모든 걸 망쳐버린다. 그리고 서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며 비난하는데만 급급한 난투극을 넘어서서,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일련의 상황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토론의 언어를 바꾸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무능함에 좌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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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래종 과일 재배방법과 마이크로반도체 제작법은 알고 있지만, 결혼생활을 꾸려나가는 일에 관한 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행기 착륙법이나 외과수술법을 직관으로 터득하길 기대해선 안 되듯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더불어 살기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거의 모든 활동영역에서의 교육과 훈련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부르주아가 유독 사랑의 영역에서만은 감정의 순수성이 손상될까 염려한 나머지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기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직장에는 직원들끼리 서로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인위적 절차들이 차고 넘치는데, 현대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의례적 절차와 외부의 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만트라mantra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부단히 그리고 아주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게 되리란 사실이 자명해졌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피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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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백조 등에 올라타면 새는 날개를 퍼덕여 하 늘을 날아 새하얀 솜털로 채워진 방에 사뿐히 그를 내려놓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낮 동안 제쳐두었거나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던 생각들이 스스로 꼴을 갖춰나갈 것이다. 재스민이나 라벤더향이 풍겨도 좋겠다. 모든 것이 더없이 부드럽고 순결하 다. 종이 한 묶음을 옆에 놓고 고민거리들을 끼적일 수도 있다. 느긋하게 곱씹어보면 해결책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알프스 산맥의 맑은 물과 연결된 기다란 빨대, 백포도주 한 잔 또는 우유 한 잔, 거기에 수프와 회 몇 점이 담긴 쟁반이 천장에서 내려오면 금상첨화겠다. 따뜻한 물이 찰랑이는 수영장에 발을 담그면, 형체는 없지만 모든 걸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너그러운 두 팔이 그를 감싸 안으며 안쓰러움이 담뿍 담긴 목소 리로 감미롭게 속삭일 것이다. '이해해……………….
하지만 현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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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있다면 이글스턴의 모델들은 옷을 줄곧 입고 있는 반면 포르노그래피 속의 여인들은 정숙한 모습에서부터 원색적인 것, 그리고 그 이상의 것까 지 모두 보여준다.
그로 인한 시간낭비는 무시무시할 정도다. 경제전문가들은 온라인 포르노산업을 백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 는 우리는 www.hotincest.com이나 www.spanksgalore.com 같은 곳을 헤매고 다니는 사이 낭비되는, 어쩌면 많게는 이억 시간에 달하는 인간의 노동력 낭비는 전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그 정도면 회사 하나를 차리고, 아이를 키우고, 암을 고치고, 걸작을 쓰고, 다락방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우리 인생의 나머지 계획과 의향에 얼마나 정확히 반대되는 것인가 하는 사실은 오르가슴을 느낀 이후에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방금 전에 벤은 포르노 사이트에서 한 번 더 클릭하는데 자신의 세속적 재물을 바쳤다. 하지만 바로 뒤, 그는 잠시 올바른 판단을 포기했던 스스로에게 공포와 수치심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벤은 자신의 욕망이 이성과 얼마나 상반되는가 싶어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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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주며 대화가 잘 통하는 남성에게 끌린다는데 이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섹스가 끝나자마자 곧 다른 대륙을 찾아 떠나는 잔인한 악당이 성적으로 훨씬 매력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창녀와 나쁜 남자는 소유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우리의 상처받기 쉬운 내면과 이상한 습벽들을 환기하는 영원한 목격자로 행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섹스는 잘 아는 사람과 하기엔 지나치게 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섹스에 적극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로막는 근심거리가 또 있다. 나의 파트너가 실제로 나와 얼마나 자고 싶어 하는가에 관한 문제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욕구에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립 로스의 신작 소설이나 루이스 부뉴엘의 새 영화를 보고 있는 상대방을 본의 아 니게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저어하게 된다. 사랑은 우리가 평소 섹스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게 폐를 끼칠까 봐 매우 신중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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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는 모순되고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 감상적이고 호르몬의 힘에 조종당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것들은 광기에 사로잡히거나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수백 가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감정들 하나하나를 다 존중한다면 일관성 있는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때때로,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싶다거나, 배우자의 잔에 독을 타고 싶다거나, 전구를 가는 것 때문에 싸우고서 이혼하고 싶다거나 하는, 스쳐 지나가는 충동들에 진심을 발휘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거짓된 마음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벤은 인간의 외적 삶과 내적 감정들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중대한 계획들을 이끌어줄 북극성의 역할을 감정에 맡긴다면, 이는 감정에 너무 큰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다. 인간은 복잡한 화학적 유기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기본 원칙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자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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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직업군에게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연인이나 부모가 되기 위한 공식 훈련과정을 만드는 것에는 눈에 띄게 소극적이었다.
우리의 문화는 사랑도 믿고 일도 믿지만, 사랑을 위한 일의 가치는 믿지 않는다. 아직도 낭만적 충동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숙명적으로 끌린다. 연습이라는 생각에 반대하며, 만일 연습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헌신에 대한 약속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한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연습을 꺼리는 것은 이 감정과 관련한 초기 경험과 관계가 있다. 우리를 최초로 사랑해 준 사람들은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그만큼 되돌려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면이나 불안들, 욕구들을 내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연인으로서보다는 부모로서 알맞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좋은 의도로부터 가장 복잡한 결과를 낳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다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성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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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에 반대할 결정적 논점이 있다면 아마 이 부분이리라. 그것은 이상화된 어린 시절의 모델에 맞춰 사랑을 감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맛본 안온한 느낌을 되살려줄 성인은 어디에도 없으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고 연약함과 불안을 막아줄 사람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하게 된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 보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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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아빠, 덜 화내고 좀 더 참아주는 아빠가 아니라는 죄책감, 아이들이 재능을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리고 언젠가 집을 떠나가 버릴 아이들에 대한 서늘한 예감. 그들은 벤과 엘로이즈에게서 생명의 피를 다 빨아먹은 뒤에 조용하고 음산해진 과거 속의 집을 어쩌다 한 번씩 의무감으로 들르곤 하겠지.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자 밝은 기분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고 싶어졌다. 그는 날아봤다는 경험을 떠올리며 그 이미지에 기대어 강해지고 싶었다. 지금 그는 엘로이즈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았다. 자신이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가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광기와 기벽을 타고난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우리는 행복을 오래 지속되는 어떤 상태로 생각한다. 적어도 수십 년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로 순간을 낚아채는 것이다. 호화로운 호텔, 공장, 쇼핑센터, 신용카드, 식당(이것들을 위해 우리는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등 문명이 이룩한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십 분 남짓의 만족을 맛보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벤은 극적인 운명을 원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미 그런 운명을 가졌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잘 지켜내는 것, 온전한 정신상태와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고, 아이들이 잘되는 것. 이런 계획들은 노르웨이 시인의 서사시만큼이나 영웅이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 공한다.
한때 그는 용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어렸을 적 그는 용을 잡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그렸었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림을 가졌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 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헬리콥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 그리고 그 뒤로도 가끔씩 우리의 영웅 벤은 이 과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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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알랭: 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알아요. 사랑하는 법은 그냥 자연스럽게 아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벤도 제 생각에 동의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직관만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외과수술하는 법을 알 수 없듯 이, 함께 사는 방법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순수한 감정이 다칠까 무서워서 사랑이라는 영역에선 너무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더욱 유감스런 일이고요. 현대의 연인들은 아직도 자기들의 삶에 의식적인 절차를 도입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는 걸 주저해요.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만트라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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