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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독서정리

서른일곱 번째 - 허송 세월 : 김훈

by 마파람94 2024. 10. 16.


서른일곱 번째 - 허송 세월 : 김훈

김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흑산도의 정약종, 하얼빈의 안중근, 키스하는 젊은이, 카인이 남긴 성경구절이 이 순간 머릿속을 스칩니다.



고통의 정도를 1에서 10까지 눈금으로 표시해 놓고 조금 아픈지, 조금 더 아픈지, 훨씬 더 아픈지, 아주 많이 아픈지, 심각하게 아픈지를 저울 눈금으로 찍어서 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나는 내 고통이 어느 눈금에 해당하는지 계량할 수가 없었다. 눈금을 들여다보니까 지나간 고통이 다시 살아나고, 닥쳐올 고통이 미리 와서 눈금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고통은 시간 속으로 광역화되었다. 나는 다만 현재의 고통만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미래의 고통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은 경험될 뿐 말하여질 수는 없었고 눈금으로 표시할 수도 없었다. 고통을 시간과 분리해서 객관화 할 수가 없었다.

환자의 고통을 계량화하려는 의사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고통의 정도를 소고기 무게 달 듯 저울에 올려놓고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었고, 그 고통이 저울 눈금으로 몇 그램이건 간에, 고통을 단위와 개념에 의존해서 소통하려는 중생의 몽매함을 의사와 환자가 공유한 것이 그날 진료의 소득이었다. 개념화된 고통은 전달되거나 공유될 수 없었고 고통은 오직 연민의 힘에 의해서 개별적 인간의 경계를 넘어갈 뿐이었는데, 연민은 눈금으로는 측정되지 않았다. 연민이 이날 진료의 소득이었다.

오래 앉아서 일하지 말고, 술 마시지 말라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본래 오래 앉아서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술 마신지 오래되면 맨송맨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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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소망처럼 다들 시험을 잘 보면 입시제도는 큰 혼란에 빠질 테지만, 시험 잘 보라는 말 외에 무 슨 말을 하겠는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교문 앞에 몰려와서 시험 치르는 선배들을 응원했다. 고2 학생들은 교가를 부르면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들겨서 신명을 올렸고, 고3 선배들을 끌어안고 볼을 비볐고, 초콜릿을 고3 선배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작년에는 핸드폰으로 댄스뮤직을 틀어 놓고 춤추는 아이들도 있었다. 작년에 춤추던 고2 아이들이 올해는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올해 냄비 두들기던 고2 아이들은 내년에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지옥문 앞에서도 아이들은 살판이 난 듯 펄펄 뛰었고 깔깔 웃었고 파이팅을 외쳤다.

나는 너무 가까이 가기가 쑥스러워서 길 건너 쪽에서 이 가엾은 아이들, 이 신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늘 보던 것들이 처음 보는 듯 문득 보이는 이 보임은 너무나 늦고 반갑다.

이날 시험은 아침 8시 40분에 시작되어서 저녁 5시 40분에 끝났다. The longest day in history!'길고 잔혹한 하루였다.

시험이 끝나서 다들 돌아가고, 해가 저무는 운동장 한구석에 서 시험을 치른 여자아이 한 명이 무릎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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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앵카 Paul Anka의 노래 'The longest day'의 마지막 소절.

화장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이 가벼움으로 남은 삶의 하중荷重을 버티어 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과 수의壽衣는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 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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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순결한 삶, 자유로운 정신, 억압 없는 세상의 모습을 역동적 드라마로 제시한다. <노자>는 사상의 원형이며 뼈대 일터인데, 여기에 판타지를 넣고 스토리를 엮어서 인간세人間世 에 적용하면 <장자>가 된다. 장자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다. 장자는 인간의 수많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의 근저를 부수어 버림으로써 인간세의 끝없는 시비를 끝낸다. 질문이란 대체로 성립되기 어렵다. 인간은 짧은 줄에 목이 매여서 이념, 제도, 욕망, 언어, 가치, 인습 같은 강고한 말뚝에 묶여 있다. 짧은 줄로 바싹 묶여서, 괴로워하기보다는 편안해하고 줄이 끊어 질까 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장자가 마음의 도끼질로 이 목줄을 끊어 주는데, 줄이 끊어지면서 드러나는 세계의 질감은 가볍고 서늘하다.

공원에서 연꽃과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장자를 생각했다. 연꽃이 장자고 물고기가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거꾸로 써도 마찬가지다. 내년 여름에는 또 새 매미가 울겠지.

여름 편지

129

신라 경덕왕景德王(신라 35대 왕, 재위 742~765)이 노래의 '높은 뜻'을 칭송했다고 하니(<삼국유사>, 경덕왕조) 이 노래는 당대 백성들의 사랑을 받은 히트곡이었던 모양이다. 조사 '에'는 1,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랍고 새롭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라고 신라의 풍류남아 처용 處容이 노래할 때 이 '에'는 노는 달과 인간을 직접 매개한다. '에' 는 달과 인간 사이를 놀이의 신명으로 가득 채워서, 달과 인간은 놀이의 짝이다. 달이 놀이판으로 들어와 달도 놀고 인간도 논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라고 고려의 유랑민이 노래했을 때, 이 '에'는 청산과 인간을 서로 사무치게 한다. '청산에'는 '산속' 또 는 '산 가까이'처럼 산과 인간의 물리적 근접을 말한다기보다는 외로움, 소외, 억압 같은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감당하려는 인간의 내면을 토로한다. '에'는 '청산'에 붙어서 청산을 인간의 실존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에'에 힘입어 ‘청산별곡'은 세상 버림의 노래棄世歌를 넘어선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이라고 서정주가 노래할 때 이 '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누님'의 생애 속에 육화시켜서 언어를 삶으로 전환하는 연금술을 수행하면서도 논리적 구조를 구문 안에 돌출시키지 않고 조용하다.

조사 '에'를 읽는다 139

노래의 바탕은 국토의 인문지리적 환경과 그 위에서 벌어진 생활이다. 추 대표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금산리의 노래는 보현산 앞에서 합치는 세 갈래 물줄기의 품격을 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도 산천을 닮는 모양이다. 정치·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람들의 노래 속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소를 몰 때 우회전은 '이라', 좌회전은 '어더', 후진은 '무러', 정지는 '워', 발 들어라는 '굽어'라고 명령하는데, 금산리 농부들 은 이 소리들도 노래로 부른다.

'헤이리 소리'는 금산리 민요 중에서도 경쾌하고 흥겨운 곡조 이다. 이 곡조는 논매는 소리, 회방아 소리, 나무꾼 소리에 쓰인 다.' '헤이리 소리'의 노랫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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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헤 헤허이허어야

헤이리 소리는 농사꾼의 소리라

헤헤헤 헤허이허어야

천하지대본은 농사밖에 또 있느냐

이소라, <파주 민요른), 파주시문화원, 1997.

..

파주위키, '탄현면 금산리 민요'

노래는 산하에 스미는구나

151

그것은 치매의 깃발처럼 대도시의 중심부에서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현수막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나라가 돌이킬 수 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현수막 아래서 젊은이들이 키스를 했다. 젊은이들은 건널 목에서 키스하고, 신호가 바뀌자 길을 건너갔다. 이 썩어빠진 현수막 아래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젊은이들이 저렇게 살아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고 있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 키스는 미세먼지 자욱한 세종로 네거리의 키스였고 치매 증세로 펄럭이는 현수막 아래서의 키스였지만, 새롭게 살아 나가야 할 날들의 키스였고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이제'와 '지금'의 키스였다. 마주 선 두 개의 거울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다. 삶의 쇄신은 ‘이제'와 '지금'의 바탕에서만 가능하다. 키스는 관능이고 혁명이다.

주말에는 키스 구경하러 현수막 나붙은 세종로에 가려 한다.


*정치 현수막 아래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쁨에 대해서 나는 2023년 4월 1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서 이미 말했다.


210



1784년에 정약용丁若簿(1762~1836)은 스물두 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스물여섯 살, 이승훈李承薰(1756~1801)은 스물여덟 살, 이벽李(1754~1785)은 서른 살이었다. 이 청년들은 인간세의 인륜도덕과 물리적 시공간의 운동법칙은 범주가 다른 것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눈뜨기 시작한 당대의 엘리트 지식인이었고 조선 천주교 신앙의 선구자들이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이미 생원시에 합격해 있었다. 이벽의 누님 이 씨 부인은 정 씨 집안의 맏아들 정약현丁若鉉과 혼인했다. 이 청년들은 사돈댁을 오가며 학문으로 교류했고 혼맥으로 인연이 되었다.

정약현의 아내이자, 약전·약용 형제의 큰형수인 이 씨 부인은 서른 살에 죽었다. 1784년 봄에 약전, 약용과 이벽은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호 물가마을)의 큰형님 댁에 모여 젊어서 죽은 이씨 부인의 4주기 제사를 지냈다.

1784년 4월 15일(음력)에 이 청년 세 명은 서울로 돌아가려고 팔당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 물길을 따라 하류로 향했다. 배는 물의 흐름에 실려서 천천히 내려갔다. 강의 양쪽에서 신록으로 빛나는 산봉우리들이 지나가고 다가왔다.

조선의 19세기는 천주교도를 박멸하는 고문과 학살로 시작되었다(1801년 신유박해). 이 참극은 성리학의 왕조 조선이 서양 문 물과 사상을 퇴치하는 문명충돌이었고, 체제를 수호하는 비상조치였고, 왕조 내부의 권력투쟁이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 로운 세상을 미리 본 사람들의 순교 사태였다.

1784년 4월 15일에 지식인 청년 세 명을 태우고 팔당나루를 떠난 돛단배 쪽으로 이 박해와 살육의 서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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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탄 청년 세 명은 어떠한 운명이 닥쳐오고 있는 줄 알지 못했으나 이날의 한강 뱃길은 신천지에 개안하는 푸르고 빛나는 청춘의 날이었다.

배를 타고 가던 중 이벽은 정 씨 형제 두 명에게 '한 권의 책'을 보여 주면서,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 정약용은 예순한 살이 되어 그날을 회고하면서 말했다..

천지조화의 시초, 사람과 신, 삶과 죽음의 이치를 듣고 황홀함 과 놀라움과 의아심을 이기지 못했는데, 마치 <장자>에 나오는 하늘의 강이 멀고 멀어 끝이 없다는 것과 비슷했다.

배 안에서 스물두 살 정약용의 마음은 학문에서 신앙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에 올라서 있다. 정약용은 멀어서 끝이 안 보이는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정약전은 이날의 일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정약전도 배 안에서 이벽이 보여 주는 그 '한 권의 책'에 빠져들었고, 이해 겨울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 '한 권의 책'은 젊은 그들의 운명에 깊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박석무, <다산 정약용 평전), 창작과비평사, 1992, 128쪽.

청춘예찬

229

안중근의 논리는 신앙의 길과 세속의 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토를 죽인 자신의 행위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조부치는 신문의 방향을 돌려서 안중근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다.

미조부치

그대가 믿는 홍 신부(빌렘)가 이번 범행 소식을 듣고 자기가 세례 준 사람 중에서 이런 사람이 나온 것은 유감이라면서 한탄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대는 자신의 행위가 사람의 도리와 종교의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미조부치는 안중근의 신앙적 정당성을 교회의 제도적 가르침과 성직자 우월이라는 현실의 벽 앞으로 몰아붙였다. 미조부치의 신문 기술은 마나베보다 윗길이다.

안중근은 이 신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재판을 기록하는 서기는 "피고인은 묵묵히 답변하지 않았다"라고 조서 말미에 썼다.

안중근에 대한 모든 기록들 중에서 나는 일본인 서기 다케우치 가츠모리가 쓴 이 짧고 메마른 문장 한 줄을 특별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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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침묵은 신앙과 현실의 간극에 끼인 그의 깊은 고뇌를 느끼게 한다. 나는 이 침묵이 가장 현명하고 거룩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이 위태로운 신문에 침묵함으로써 현세의 교회와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통로를 열어 놓았다. 이 통로를 따라서 빌렘은 여순 감옥의 안중근에게 왔다.

적의 법정에서 안중근은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고 자신의 행위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웅변했다. 그의 법정 진술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언어의 장관을 이루었고, 해외 언론을 통해 세계에 퍼져 나갔다.

1909년 12월 22일의 안중근의 침묵은 그의 웅변에 못지않은 무게를 지닌다. 안중근은 이 침묵의 힘으로 세속의 길을 이끌고, 신앙의 길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의 졸작 <하얼빈>은 여순 감옥의 고해성사와 사형집행 대목에서 끝난다. 나는 이 고해성사의 내용을 상술하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것은 소설가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이 안중근의 영혼을 안아서 거두었을 것으로 믿는다. 믿지만 '믿음' 그 자체는 소설로 쓰지는 못했다.

안중근의 '침묵'의 내용은 하느님이 아신다.

안중근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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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1*

승용차 유리창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써 붙여 놓았을 때, 이 아기는 누구네 집 아기인가. 이 아기는 승용차 주인의 아기이 다. 다른 집 아기는 이 '아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구의 속뜻은 '내 자식이 타고 있어요'라는 말이고, 결국 하려 는 말은 '가까이 오지 말라'일 터이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써 붙인 운전자가 음주운전에 걸려 서 끌려가는 꼴도 나는 보았다. 그 차에 아기는 타고 있지 않았고 술 취한 사내 서너 명이 타고 있었다.

며칠 전에 택시를 타고 일산 롯데백화점 사거리에서 신호대 기 중이었는데 앞차 뒷유리창에 “어르신이 타고 있음. 고령운 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차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내 또래의 허

*최초의 어린이날(1923년 5월 1일)에 방정환이 어린이에게 당부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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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급 국회의원이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에 자기 자식을 부정취업 시키고, 끗발 좋은 부모들이 권력자들에게 자기 자식의 취업을 부탁해서 남의 자식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이 오래된 갑질의 전통도 '아이고 내 새끼야'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근현 대사에서 '내 새끼'를 앞세운 이 갑질의 전통은 유구하고, 밥술이나 먹게 되자 이 갑질은 더욱 권력화되고 일상화되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내 새끼' 갑질 앞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졌겠는가. 끗발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그날그날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이 더러운 세상에 만정이 떨어져서 아기를 낳지 않는다.

남의 자식을 짓밟고 ‘내 새끼'를 밀어붙이는 이 고위층 갑질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저출산 정책에 수십 조를 퍼부어도 그 결과는 모두 헛것이다. 이미 헛것이 되었다. 이제 “아기가 타고 있어요"도 점차 사라지고 “힘센 꼰대가 간다”만 남을 판이다.

252

신구문화사 편집실에서 모였고 청진동에서 마셨다.

서른다섯 살 백낙청의 젊음은 그가 비평가로서 살아가야 할 한 생애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 속에서 그는 젊음의 힘으로 빛난다. 그는 키가 크고 표정이 예리하고 옷차림이 멋지다.

사진을 찍던 날 눈이 내려서 다섯 명의 머리에 눈이 내려 있다. 강운구는 다섯을 함께 찍고, 한 명씩 다시 찍었다.

<농무〉가 보여 주는 울분과 소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표정은 맑고 선하다. 눈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은 천진성의 바탕을 보여 준다. 이 순간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본질을 보여 준다. 무엇을 기필코 보아야 한다는 의도가 없다. 물러서 있는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보았다. 그 순간이 보였다. 이날 눈송이는 굵었다. 사진 속의 신경림은 아마도 눈이 내리는 것이 좋아서 웃고 있는 것 같다.

전시장에 걸린 160명 중에서 72명이 작고했다(2021년 12월 기준).

사람은 지나가지만 사람됨은 지나가지 않는다. 짓밟히고 억눌린 시대에도 사람은 사람다운 표정과 체취와 온도를 지니고 있었고 억압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그때'를 '사람의 지금' 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264

답변을 미리 설정해 놓은 질문은 사람들 사이를 소통시킬 수가 없습니다. 카인의 이 질문은 상대의 질문에 사실로써 답변하지 않고, 질문의 구조를 이탈합니다. 카인은 느닷없이 공중으로 몸을 띄워 돌아서면서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습니다. 이 돌려 차기로 카인은 형제살해 범죄에서 발생하는 도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있습니다.

낙원에서 추방된 후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첫 번째 대화는 인간의 근친살해 범죄에 관한 것이고, 그 언어의 내용은 허위와 회피, 오리발 내밀기, 돌려차기와 뒤통수 때리기, 딴소리하기와 뭉개기로 이루어졌습니다. 카인은 이 모든 묘기를 동시에 보여 주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이 대목은 인간과 언어가 서로를 파괴하는 참상의 기원을 서너 줄의 문장으로 벼락 치듯이 묘사하고 있지만, 이 비극적 소통불가능은 그 후의 인류사 속에서 증폭되어 왔고, 지금 대한민국 국회와 여러 당파집단, 이익집단과 SNS의 언설에서 넘쳐 나고 있습니다.

삶의 현실을 배반한 언어들이 모호한 추상개념을 거느리고 신기루처럼 무리 지어 몰려다니면서 한 시대의 거대한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풍경은 철벽같이 완강하고 안개처럼 뿌옇습니다. 헛것인지 실체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이 풍경 속에서 헛것은 실체보다 더 강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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