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읽었던 책 중에-지난 5년을 통틀어- 이 책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눈에 띄는 문장인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라는 글귀가 최다로 나오는 것으로 판단되고,
이 책 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글을 많이 인용한 책이 있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 짜깁기 된 뇌 과학 책과 같지 않을까라는 감상평입니다.
솔직히 뇌 건강에는 이 책 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한 권이 더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갈피를 가져와 봅니다.
고해상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뇌의 구조와 작동을 관찰할 수도 있고, 노인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신경로가 형성되어 새로운 생각의 회로를 뒷받침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다. 두개골 아래를 들여다보며 습관이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기술이 학습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가소성 plasticity (뇌가 평생에 걸쳐 생리학적 수준에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때문에 다소 지나친 주장들이 나오기도 했다. 뇌가 노년기까지도 가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행동과 인생 결과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평생 유지되는 것이라 해석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마음먹은 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도 든다. 솔깃한 얘기들이지만 별로 옳은 생각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뇌의 가소성에 대해 매혹적이지만 지나치게 단순화된 개념을 믿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육을 단련하듯 뇌도 의식적으로 단련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달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성장형 사고방식 growth mindset이 사회에 퍼져 있다 보니 모든 목표나 욕망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퍼지고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제약과 사회경제적 제약 모두를 부정하는 자유의지의 강력한 비전인 무한한 주체성 agency과 역량 capability이라는 개념에 설득당했다. 하지만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꿈을 꾸면 꿈이 현실이 된다"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슬로건이 아니다.
1. 자유의지냐 운명이냐
027
만 4세의 충동적인 아동과 의지가 강한 아동 사이에 나타났던 성취의 차이가 아동이 만 15세가 되면 대체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 4세 때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만 15세가 되면 부유한 전문직 가족 출신의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배경을 가진 또래보다 일반적으로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실험을 설계할 때 이런 부분을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고 누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는 직관적으로도 말이 된다. 결핍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사람들은 장기적 보상보다는 단기적 보상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첫 번째 나온 마시멜로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아동에게는 두 번째 마시멜로가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약속을 항상 지키지 못하는 경우나 형제가 자기 것을 훔쳐가는 경우에서는 즉각적인 만족을 선택하는 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나는 이것이 교훈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분야가 무엇이든 모든 과학 연구의 결론은 잠정적이며 그 연구를 진행한 사람의 제약과 인지적 편향 cognitive bias에 좌우된다.
성격의 등장에 대해 다루는 또 다른 신경과학적 연구를 살펴보자. 이 연구를 고려할 때는 마시멜로 검사의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이 서로 다른 수많은 연구에서 나온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검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런 부분을 능동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 발달 중인 뇌
059
보이는 지혜와 경직성의 신경학적 기반에 대해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로지어와 그의 아내 앤 로라 Anne-Tanum와 알고 지내 왔다. 앤 로라도 한동안은 수상 경력이 있는 신경과학자로 일했었다. 이 부부는 내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하나 두고 있다. 우리는 자주 얼굴을 본다. 지나가는 얘기로 연구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은 있어도 내가 로지어에게 그의 연구가 갖고 있는 함축적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점점 굳어만 가는 내 뇌의 운명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한 모양이라며 그가 나를 바로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지혜와 경직된 사고를 정반대의 것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직성'을 '전문성'이라고 새로 프레임을 잡고 생각해 보면 노인의 뇌가 자기가 이미 시도해 보아 신뢰할 수 있는 인지 전략을 고수하는 것이 어째서 승리 전략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인은 평생 수십 가지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 왔고, 이런 것들이 하나로 모여 결국 지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프로 테니스 선수라고 해 봅시다. 특정한 방식으로 공을 치는 법을 배워서 승리를 거두면 그 방식을 계속 이어 가게 됩니다. 이때, 이 테니스 선수를 자기만의 방식에 갇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문성을 축적함으로써 기술을 연마하여 거의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놀라울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도 말할 수 있죠, 노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어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혜가 축적되는데 따르는 동전의 이 면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지혜란 평생의 학습에 따라오는 보상 같은 것이며 이것은 노인들이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추구하는 10 대들보다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점을 보상해 준다. 노인들은 그냥 그런 동기가 10대들만큼 간절하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나라를 탐험하고 싶거나 베이스 기타 치는 법을 배우고 싶지 않더라도 죽는 날까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서 저장할 기본적인 신경해부학적 능력은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뇌가 이런 일을 해내는 정확한 분자적 과정은 이제야 이해되고 있다.
072
연구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기준(나이, 성별, 교육 수준, 사는 곳, 신체적 건강)에서 서로 엇비슷하게 맞추어 놓았는데도 그 차이가 대단히 현저했다. 지금의 노인들은 기억력도 훨씬 좋고, 더 행복하고, 사기도 더 높았다. 로지어는 교육과 공중보건의 수준이, 느리지만 꾸준히 개선되어 옴에 따라 노인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진 것이라 해석했다. 이는 노년기의 인지 변화 속도가 고정불변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로지어는 이렇게 강조했다.
“바꿔 말해서 두 세대 사이에 의미 있는 유전적 변화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런 큰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환경적 요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나는 의학연구위원회 건물을 떠나기 전에, 일반 대중에서의 자연적인 노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자신의 경력을 쏟아 온 로지어에게 본인은 뇌를 이런 효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나이가 드는 동안 뇌의 회복력을 키우기 위해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았다. 나는 신경 과학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한다는 것에서 유쾌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뇌를 보호하는 팁 중에 으뜸의 팁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다.
1.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하라.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걷기, 수영, 자전거 등의 저강도 운동을 일주일에 3번 30분 정도만 해 주면 뇌와 몸에 아주 좋다. 당신의 몸집이 어떻고, 시간표가 어떻든 간에 나가서 몸을 굴려라. 이것은 잠재적으로 신경발생도 증가시켜 주지만, 뇌혈관의 건강도 지켜 준다.
078
2. 잠을 잘 자라. 잠이 뉴런 간의 연결을 응고시켜 새로운 지식을 저장 기억으로 바꿔 주는 등 일련의 신경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잠은 또한 면역계에서 낮 동안 뇌에서 만들어진 독소들을 청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이런 독소가 축적되어 뉴런을 죽일 가능성도 낮춰 준다.
3. 사회 활동을 활발히 유지하라. 친구,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면서 그들의 관점과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뇌의 기능을 역동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건강과 행복도 증진시켜 준다.
4. 식생활을 점검하라. 심혈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동물성 지방, 가공식품, 과도한 설탕)은 인지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일반적인 규칙은 심장과 뇌를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둘 모두에 좋은 것을 먹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뉴런들을 질식사하게 만드는 미세뇌졸중 micro- stroke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5. 공부를 계속하라. 인생의 이른 시기부터 공부를 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인지기능의 감소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교육을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뇌도 더 건강하게 나이가 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꼭 정식 교육이 아니라도 종류에 상관없이 평생 학습은 뇌의 건강을 유지하는 훌륭한 전략이다.
6.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라. 자기 기억력이 나쁘다고 믿으면 기억력이 더 빨리 감퇴한다.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길을 못 찾을까 봐 걱정이 돼서 새로운 사회활동을 피하기 시작하면 기능 감퇴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정신건강이 좋으면 인지건강 cognitive health도 좋다. 기분이 우울하면 운동을 하려는 동기도, 운동을 통한 즐거움도 찾기 어려워지고, 자신을 돌보거나 사람들을 만나러 나다니기도 힘들어진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의 일기를 쓰면 아침에 일어날 때 더욱 동기가 부여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 전날에 경험했던 모험을 다시 시도하거나 새로운 모험을 추구하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079
유혹에 저항하는 의지력은 외부의 영향력에 크게 좌우된다. 식품 제조업체와 소매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한다. 슈퍼 마켓에서 입구에 구수한 빵 굽는 냄새를 피워 유혹하는 술수에 당해 본 이들이 많으리라. 그리고 이들에게는 쇼핑을 하면서 슈퍼마켓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발동하는 식욕과 싸워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음식과 관련된 결정에는 여러가지 메커니즘과 영향력이 기여하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며 무의식에 관한 저명한 전문가인 존 바그 John Bargh가 '숨겨진 과거 the hidden past'라고 부르는 깊은 우물 속에 묻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태어나기 수십 년 전 당신의 친할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었는지가 오늘날 당신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영역에서는 수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시대의 공공의료 부분에서 가장 긴급한 위기가 바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비만'이니까 말이다. 전문가들의 경고에 따르면 2025년이면 전 세계 인구 중 대략 1/5 정도가 임상적 비만이 될 것이라고 한 다. 이것이 큰 문제인 이유를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냥 임상적 비만으로 진단이 나오면 수명이 평균 10년 정도 짧아진다 는 정도로만 말해 두자.
3. 배고픈 뇌
087
어떤 사람은 짭짤한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케이크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여기서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다른 음식보다 어떤 음식에 더 끌리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개인으로서, 또 사회로서 우리에게 미치는 파문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케일이냐 도넛이냐?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하필 왜 그 음식을 선택하는지 이해하려면, 혹은 애당초 무언가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뇌에서 생각과 결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본질적으로는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아야 한다. 거의 100년 전에 진행된 실험을 통해 의식은 뉴런을 따라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부산하게 계속하여 움직이는 전기신호로부터 유래된다는 추측이 나왔다. 이 전기신호는 화학적 신경전달 물질을 이용해 시냅스를 건너 다음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본질적으로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종의 중추신경계와 마찬가지로 그냥 전기화학적 회로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규모로 보면 일반적인 회로판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3. 배고픈 뇌
089
그는 수정 이전 단계를 연구하면서 정자와 난자의 영양 환경이 그다음 두 세대의 유전자 발현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식욕의 후성유전학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동안에 태어난 네덜란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에서 형태가 잡혔다. 이 연구는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1년 동안을 거의 굶다시피 살았던 독일 점령 치하의 가족에서 태어난 아동들과 독일 점령지가 아닌 덕분에 식량 조달이 훨씬 용이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동들의 건강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수정 당시 영양 상태가 심각하게 불량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나중에 비만과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이것은 불일치 가설 mismatch hypothesis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이가 먹을 것이 귀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에는 그 아이의 대사가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환경이 가혹해도 이런 환경에 의해 변화를 겪은 것은 DNA 암호가 아니다. 변화한 것은 유전자의 행동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칼로리는 풍부하지만 영양분은 빈약할 때가 있는 현재의 환경에 대해 조사할 때는 이런 효과를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이것도 그냥 출생 전이 아니라 수정되기도 전부터 식욕이 선천적으로 정해진다는 추가적인 증거에 해당할까? 그렇다.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는 있지만 다른 후성유전학 연구가 결국에는 성인도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치료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온갖 행동들이 우리가 임신되기도 전에 부모들이 살았던 환경에 의해 빚어진다는 증거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있다. 한 특별한 실험은 중독 치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를 결과를 내놓았다. 사실 이 실험의 함축적 의미가 워낙에 커서 처음에 발표되었을 때는 과학계 전체가 술렁거렸었다.
3. 배고픈 뇌
109
음식을 먹는 것처럼 수준이 낮아 보이는 행동조차 유전된 선호도, 인생 초기에 학습한 선호도, 후성유전학적 피드백루프, 그리고 고칼로리 음식을 찾아서 계속 먹으려는 오랜 본능 등이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서 나오는 행동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설은 따로 있다. 음식 선호도처럼 보편적 신경회로에 의해 나오는 행동조차도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많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행동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체중을 감량하고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게 도울 한 가지 행동 변화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자기만의 특별한 욕구에 따라 식욕을 느끼는 존재지만 시간을 들여서 자기에게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본다면 변화가 불가능하지 않다. 심지어는 유전학이 사람의 체중에 미치는 운명적 영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길 조차도 자신의 행동 변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적어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개별 전략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음식 선택을 성공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운명의 신경과학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역설적인 연구 분야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뇌라는 기관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로운 복잡성을 갖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말이다.
120
하지만 강력한 본능과 뇌의 달콤한 쾌락 화학물질의 유혹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성적인 선택만이 아니라 낭만적인 사랑, 배우자와의 유대감, 육아, 우정, 그리고 그보다 넓은 사회적 유대감까지도 포함된다면?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덕분에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가 심부 뇌 기능 deep brain function에 의해 어떻게 주도되고 통제되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번식과 인간 종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뇌 회로 때문에 생겨난 부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이미 앞 장에서 살펴보았고, 뒤에서도 계속 등장할 보상체계의 기능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상체계는 온갖 종류의 행동에서 대단히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장에서는 가수 로버트 파머 Robert Palmer가 아주 옳은 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고 한다. 사람들은 정말로 '사랑에 중독'되어 있다. 그것도 온갖 종류의 사랑에 말이다. 우리의 뇌는 로맨스, 애착, 사회적 유대 등을 갈망하며, 이 모든 것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도록 내몬다.
아마도 번식 욕구의 과학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익숙하다고 느낄 것이다. 꼭 학생 시절에 배워 어렴풋이 기억나는 생물학 수업 내용이 아니어도 성적 행동에 대한 연구는 신문에서 특집기사로 내놓을 수 있는 요긴한 기삿거리이기 때문이다. 성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에게 먹히기 때문에 성에 대한 과학 역시 먹힌다. 그런 이유로 신경과학이나 신경심리학 neuropsychology을 통해 성적 행동이나 남녀 성차에 관해 연구한 내용들은 다른 연구에 비해 뻥튀기나 사이비 과학을 더 많이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124
연구자들은 한 집단의 남성들에게 티셔츠 한 장을 세탁하지 말고 이틀 동안 그대로 입고, 체취제거제를 사용하거나, 다른 냄새를 가리는 냄새가 너무 강한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도 않게 지도했다. 그리고 한 집단의 여성들에게 그 옷을 입은 사람에 관해서는 일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티셔츠의 냄새를 맡고 그 매력을 평가하게 해보았다.
그 결과 여성들은 면역계가 자기와 아주 다른 남성의 체취를 훨씬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주조직적합성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로 알려진 100개 정도의 유전자 때문에 생긴다. MHC는 면역계가 병원체를 비롯한 외부 이물질을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단백질 정보를 암호화하고 있다. 이 유전자들은 당신 몸에서 나는 체취를 결정하고, 당신의 면역계 구성을 결정하는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과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거기서 나온 자손은 감염에 대해 훨씬 광범위한 저항능력을 갖게 되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여성들은 말 그대로 자기와 유전자 궁합이 제일 잘 맞는 남편감을 냄새로 알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와 뇌에 새겨진 완전히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남성은 이런 후각 능력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성보다 냄새에 덜 민감하고, 따라서 냄새로 '올바른' 배우자감을 찾아내는 데 그리 큰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남성들은 아이의 육아에 여성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4. 보살피는 뇌
129
우리들 대부분은 육아가 분명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물학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동물이든 성공적으로 번식을 하고 나면 그 자손이 성적으로 성숙해서 또다시 소중한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반드시 보살펴 주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느끼는 사랑은 자식이 살아남아 번식하는 것 을 보고 싶은 바람에 의한 것이다. 사실 부모-자식 패러다임은 유용 한 프리즘이다. 이 프리즘을 이용하면 타고난 성향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행동이라는 개념으로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을 이용하면 애착 affection이 어떤 면에서는 섹스 및 번식 모두와 연결된 선천적 욕구의 부산물임을 아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인간은 아이가 자신의 사랑에 보답을 하든, 안 하든 자기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몇몇 흥미로운 연구에서는 새로 부모가 되었을 때 이 육아행동 스위치가 켜지는 메커니즘을 조사해 보았다. 수컷 생쥐는 방임주의 부모라기보다는 잔인한 부모로 악명이 높다. 조금 소름 끼치는 이야기지만 일반적으로 수컷 생쥐들은 새로 태어난 수컷 생쥐를 우연히 만나면 죽여서 먹어 버린다. 아마도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수컷 생쥐가 성행위를 하고 3주 후에는 마주치는 모든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 육아행동을 보이는 시간의 창이 열린다.
하버드 대학교의 캐서린 듀락은 짧은 기간 동안 수컷 생쥐가 어린 새끼들을 털 고르기 해 주고, 입으로 물어 날라 둥지로 돌려보낸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4. 보살피는 뇌
143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완충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해지기 전에 동맹관계가 미리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죠, 친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인지적 비용이 따릅니다. 하지만 우정은 이렇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즉각적인 자기만족보다 우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더 우선해야 할 때가 있죠."
로빈은 인류가 눈확앞이마겉질orbital prefrontal cortex(눈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뇌 영역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관여한다)을 발달시키던 것과 때를 같이해서 든든한 우정을 구축하고 가꿈으로써 자 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이러한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 눈확앞이마겉질이 인간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다는 점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 진화하는 데 핵심 토대가 되어 주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경이로운 처리 능력 자체가 아니라 크고 복잡한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그 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로빈은 그가 '사회적 뇌 가설 social-brain hypothesis'라고 부르는 것을 종과 종 수준에서 분석해 보고 포유류, 특히나 영장류에서 이 뇌 영역의 상대적 크기가 그 종의 사회집단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이 뇌 영역의 크기는 인간에 와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인간이 평균적으로 150명 정도의 사람과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4. 보살피는 뇌
149
타인을 평가할 때 모든 사람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것이 도움이 된다.
친구를 고르는 성향은 대체로 공통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자기와 판박이처럼 닮은 사람한테만 끌리는 지경까지 가서는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결국 인간은 새로움에 끌리도록 만들어져 있다. 친구들을 사귈 때 이렇게 공통점을 선호하는 것은 번식을 위한 배우자를 찾을 때 적용하는 기준과는 대조적이다. 면역계가 튼튼한 자손을 생산하려는 강력한 선천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면역계가 건강에서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조사한 최근의 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이 그 정당성을 입증받았다.
예를 들어 '염증에 걸린 뇌 inflamed-brain' 가설에서는 우울증의 발생에 결함이 있는 면역계에 의해 야기된 뇌의 염증도 한몫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자기 유전자를 생존시킨다는 측면에서 이런 욕구를 통해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진다.
성적 행동이 아닌 사회적 행동과 면역계 기능 사이의 상관관계는 심한 감기나 독감, 혹은 복통으로 고생할 때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우울한 감정에서 잘 드러난다. 면역계가 감염원과 싸우느라 바쁠 때는 기분이 가라앉고 사람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 하루나 이틀 정도 집에서 푹 쉬는 것은 자신과 접촉하는 집 단에게 감염원이 퍼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몸과 뇌의 여러 시스템들은 종과 개인 모두의 이득을 위해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협동한다.
154
그런데 엄마와 딸이 옷 색깔이 무엇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한 사람은 이 옷이 검은색과 파란색 줄무늬라고 말하고, 한 사람은 흰색과 금색이라고 말한 것이다. 자기가 보는 것을 엄마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이 예비 신부는 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이 게시글은 천만 건 이상의 트윗을 이끌어 냈다. 사람들이 이 드레스의 색깔을 두고 격하게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강력하게 옹호받고 있는 이런 지각의 차이는 대체로 맥락, 기존의 경험, 기대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색각 color vision이 자연 일광에 맞춰 적응되어 있어서 드레스 색을 하얀색과 금색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노란색 기운이 있는 조명 아래서 이미지를 보는 올빼미형 사람이라면 파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볼 가능성이 높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각은 구성된 것construct이다. 서로 다른 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잠재력은 막대하다. 당신이 매일매일 경험하는 하루는 모든 감각을 통해 뇌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는 당신이 기존에 세상을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했느냐는 색안경을 통해 처리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자기가 예상한 것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되먹임 고리로 작용해서 미래의 지각에 영향을 미쳐 당신의 평가와 의견을 강화한다.
166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강화된 유형의 뇌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사람은 판박이 일상을 고수하는데 본능적으로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당신도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활동 패턴이 무너지는 것을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경험과 감각을 갈망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상반된 성격이 각자에게 태어날 때부터 새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경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늘 그렇듯이 그 대답은 '양쪽 모두'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유전이 잘 되는 성향이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최근의 연구를 보면 새로움과 감각을 선호하는 성향이 최고 60퍼센트까지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나 이런 성향과 연관된 유전자들은 당신의 추측하는 바와 같이 신경화학 물질인 도파민 시스템과 관 련이 있다. 도파민 시스템은 뇌가 보상에 대비하도록 도와준다. 본 질적으로 도파민 기능(구체적으로는 D4 도파민 수용체 아형)이 고조되는 유전적 보완물을 타고난 사람은 뇌가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새로움에 반응해서 더 많은 도 파민이 나오는 유전자 꾸러미까지도 함께 갖고 있다면...... 그렇다. 그런 사람은 탐험을 통해 보상을 추구하는 삶에 이끌리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을 탐험해 보는 성향은 진화적인 측면에서 인류에 게 분명한 이점을 주었고, 오늘날에도 그 점은 계속 유효하다.
5. 지각하는 뇌
185
일부 연구에서는 성공한 사업가나 혁신가들에게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행동의 수준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이런 유전적 특성 때문에 약물 남용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에 끌리는 성향도 함께 나타나게 됐다. 이런 활동은 보상 경로를 장악해 버린다.
여기서 배워야 할 인생의 교훈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각을 추구하는 유전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는 비밀은, 어쩌면 삶을 모험으로 가득 채워 새로운 경험을 자극하고 예상치 못했던 얘기들을 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익숙한 일상을 고수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서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해도 안전하고 확실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가벼운 도전 과제를 제시해 보는 것도 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앞에서도 알아보았듯이 결국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활동성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장기적인 뇌 건강에 중요한 부분이니까 말이다.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이든 집돌이나 집순이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운동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몸짓이나 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번식한다. 인간은 보잘것없는 멍게와는 정반대 되는 존재다. 멍게는 어린 시절에는 바다를 탐험하며 보내다가 적당한 바위를 찾으면 그 위에 정착하는 원시적인 하등 동물이다. 멍게가 그 바위에 몸을 붙이고 처음 하는 일은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소화하는 것이 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자리에 눌러앉아 어쩌다 물살에 떠내려 온...
186
신념의 신경과학은 방대하고 매력적인 주제로, 온갖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그 어떤 분야보다도 그렇기 때문에 선천적 특성, 유전, 삶의 경험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서 한 개인의 행동을 만들어 내는지 깊게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신경과학 연구의 놀라운 발전을 통해 가장 경이로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 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이제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신념이 의식적이고 지적인 노력이 아니라 심부 뇌 회로의 무의식적 작동에 의해 결정되는지 더 완전하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믿는 내용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입력되는 내용과 함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것은 지각의 메커니즘으로부터도 유래한다. 신념은 자기만의 독특한 현실감 sense of reality을 통해 형성되고 또 그와 동시에 압축된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 초기에 습득한 신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인간은 정치나 축구에 대한 의견을 갖기 오래전에 이미 세상의 본질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어린 유아기에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어서 자신이 고통받을때면 어디선가 보호자가 나타나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을 형성한다면 그 신념은 자기강화적 self-reinforcing 경향을 가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세상은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적대적이라는 신념도 자기 영속적 self-perpetuating 일수 있어서 가끔은 한 개인의 인생에 비극적인 결말을 갖고 오기도 한다.
6. 믿는 뇌 199
신념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신경과학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의미의 창조를 뒷받침하는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대해 살펴보겠다. 왜 인간은 그렇게도 끈질기게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이론을 추구할까?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이 깊은 욕망은 어디서오며, 대체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까?
심리학 교수이자 과학 잡지 <스켑틱Skeptic>의 창립자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최근에 펴낸 책 『믿음의 탄생 The Believing Brain』에서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은 인간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사랑은 어떤 면에서 보면 번식욕구가 낳은 부산물임을 확인했던 것처럼 서머는 신념이 뇌의 고질적인 패턴 추구 습성이 낳은 부산물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습성은 명확한 진화적 이점을 제공해 준 기술이다.
예를 들어 정글의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그늘에 가린 포식자의 얼굴 패턴을 알아보고 곧 그 포식자의 점심거리가 될 수 있으니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것이 좋을 거라 예측하는 능력은, 해당 개체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 살아남아 이 기술을 자손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200
광합성을 하기 위해 미로에서 길을 찾아가는 존재가 앞에서 언급했던 완두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솝우화에서 먹이를 얻기 위해 문제를 푼 까마귀가 그렇고, 인간이 직접 농사 기술을 발견하기 훨씬 오래전에 작물을 경작하는 법을 배운 개미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의식이란 곧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학습하여 현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예측에 대한 믿음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개인의 의식적 노력이 복잡한 신념의 생성에 기여하는 부분을 덜 강조하면 의식이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엔진으로서 진화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정글 속에서 그늘진 포식자의 얼굴 패턴을 알아보는 수준에서 조직화된 종교나 정당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교한 사고 체계까지 가는 여정은 분명 아주 먼 길이었다. 하지만, 의미를 창조하려는 뇌의 노력이 갖는 진화적 이점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진화는 실제로 우리를 그 먼 길로 데리고 갔다. 이것은 개인이나 복잡한 사회집단 모두에 해당된다.
도널드 맥케이 Donald Mackay는 70년대와 80년대에 킬 대학교 Keele University의 소통 및 신경과학부 Department of Communication and Neuroscience에서 활동하던 물리학자였다. 그는 신경과학이 인간의 의식과 기독교 신학 모두에 대한 이해를 밝혀주는 것에 특히나 흥미를 느꼈다. 맥케이는 신념이 제공하는 목적에 대해 영향력 있는 논증을 펼쳐 보였다. 그는 신념이란, 판단을 내리기 위한 조건부 준비성 conditional Radiness 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도록...
6. 믿는 뇌 207
이런 부분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겠지만, 이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의 연구자들이 그런 뇌 스캔 영상을 이용해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공화당 쪽인지 민주당 쪽인지 아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따라서 이 연구 결과가 암시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 연구가 진보주의나 보수주의 중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연구가 세상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편도체와 뇌섬의 상대적 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이데올로기의 상대적 장점에서 신경과학의 유효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에 대해 당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의견에 크게 좌우된다.
나의 신념은 양쪽 뇌 유형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해석으로 기울고 있다. 어쩌면 보수성이 강한 유형은 현재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반면, 진보성이 강한 유형은 미래 세대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도 모른다.
정말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이런 지식을 적용해서 정치적 관점을 역설계 reverse-engineering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214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뉴스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소셜미디어에서 쏟아 내는 내용들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은 뇌에게 위험 경고를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몇몇 소규모 연구에서는 페이스북 Facebook 피드를 바꿈으로써 사람의 감정상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지각과 의사 결정의 미세 조정에 변화를 주며 인지에 영향을 미쳐 협동적, 공감적, 혁신적 문제 해결 능력을 훼손시키고 그 대신 우리를 보호하도록 진화된 습관적, 자동적, 방어적 시스템을 더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더욱 '보수적인' 선택이나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주체의식 sense of agency에 대한 그 함축적 의미가 심오하다. 의식적이고 지적인 활동의 결과로 나온다고 여기는 의견이나 신념 중 상당 부분이 사실은 심부 뇌 기능이 주도하는 감정 반응에 의해 빚어진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사회적, 정치적 함축 또한 심상치 않다. 특히나 페이스북에서 개인 정보 취급 문제로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고, 그 정보들이 정치적,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이데올로기 스위치' 설계의 가능성은 한 인간의 신념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바꿔 놓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장의 시작 부분에서 보았듯이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소비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보면 지각과 의미의 생성이라는 측면에 관해서는 내재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극적인 사건의 결과로, 혹은 삶의 경험이 천천히 축적되면서...
6. 믿는 뇌
215
이는 새로운 정보가 있을 때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감정 반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조나스는 이렇게 얘기했다.
"자신의 신념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보가 등장하면 큰 반발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자신의 핵심 자아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어느 쪽 뇌 유형에 해당되든 상관없이 뇌의 자기보호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편도체 시스템이 크게 활성화되는 사람들은 그런 증거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 들죠.”
조나스의 연구는 생각의 유연성을 고취하는 맥락에서 유용하게 적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이런 연구를 통해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예를 들면 기후 변화를 부정하며 좀처럼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기후 변화에 관한 설득력 있는 연구들을 제시해서, 자신의 정신이 구축한 핵심 정체성 신념의 요새를 박차고 나오게 도울 방법이 있을까? 조나스는 바로 이런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감정 조절 훈련을 시켜서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 수 있을지 시도해 보고 있다. 그는 감정 재검토 emotional reappraisal 라는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 기법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처음에는 이들이 역겹다고 여기는 사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 사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서 자동 반응과 자동 해석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북돋운다.
218
잠을 자는 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저주파수 전기파 electrical wave가 명상하는 시간 동안에도 지배적으로 나타났지만, 독특하게도 인지 작업과 일반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고속도의 전기진동 electricaloccllation과 결합되어 나타났다. 명상은 회복을 돕고 영양을 공급하는 수면의 일부 측면을 모방하면서 그와 함께 여유 있고 편안한 창의적인 사고도 불러와 기억을 공고화하는 memory consolidating, 편안한 각성 상태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주는 듯 보인다. 이는 정신건강과 인지기능 개선에 대단히 좋다.
따라서 뇌 건강을 북돋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운동, 그리고 성찰 reflection과 휴식을 위한 자리가 모두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운동 쇼비니스트들은 자신의 신념 체계가 인간의 목적이라는 수수께끼를 설명해 준다고 다소 편협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운동과는 정반대 상태이며 수천 년 동안 종교적 신념 체계의 핵심 교리였던 정적상태stillness 역시 개인의 안녕과 집단의식의 발달에서 똑같이 중요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상태는 신경학적 수준에서 서로 깊이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육체훈련 mental and physical training, MAP이라는 새로운 임상적 방법이 개발되었다. 우울증은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는 믿음들을 갖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6. 믿는 뇌 221
인간은 과연 생물학적 운명의 노예인가, 아니면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 존재인가? 인간은 정말로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매일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사실은 미리 정해진 계산을 통해 나온 결과인가?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한가?
1985년에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은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몸을 움직이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이 뇌가 신체 운동 착수 신호를 개시하기 전에 만들어지는지, 아니면 그 후에 만들어지는지 판단하려는 실험이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반복적으로 손목을 구부려 보라고 했다. 그는 운동이 일어나는 순간과 뇌의 운동겉질의 활성이 일어나는 순간을 기록해서 그 데이터를 실험 참가자가 의식적으로 손목을 구부리기로 결정했다고 보 고한 시간과 비교해 보았다. 손목 운동의 정확한 시간은 근육의 전기 활성을 측정해서 얻었다. 그와 유사하게 두피에 전극을 장착해서 운동겉질의 전기활성도 대단히 예민하게 기록했다. 그 결과 리벳은 운동겉질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지시가 먼저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몸을 움직이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은 350밀리초 후에 등장했다. 그리고 실제 운동이 일어나기까지는 200밀리초 정도의 지연이 발생했다. 사실상 뇌가 행동을 지시한 후에야 의식적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실험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실험 참가자가 시선을 시계에 맞추고 정확한 시간을 읽어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24
내가 리지, 마리아와 만날 수 있게 주선해 준 곳도 이곳이었다.
나는 리지,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기존에는 어떤 경우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것이 더 낫 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대화를 통해 그 부분에 대해 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게 됐다. 나 자신도 혈색소중 유전자 보유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식 때문에 내 아들이 애매한 위치에 처했던 일을 경험하고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에 대한 신념이 잠시 흔들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인생이 다 그렇듯 모든 것은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느껴진다.
리지는 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고 아직은 헌팅턴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데 따르는 고통이 마리아보다는 훨씬 덜했다. 리지는 아버지가 질병이 늦게 발병해서 천천히 진행되어 가족의 상황도 특별했고, 자신의 위험을 함께 짊어진 든든한 배우자가 있었던 덕분에 마리아는 선택할 수 없었던 결정을 선택할 수 있었다. 반면 마리아의 어머니는 병세가 심각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것이 크나큰 고통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아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확실함이 그녀가 두려워하는 결론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인과 메커니즘을 아무리 잘 이해하더라도 그 완치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헌팅턴병이 실로 암울한 운명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262
오래전 나를 신경과학의 길로 끌어들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최근에 회복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신경생물학 연구들이 있었다. 여기서 회복력이란 역경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한 인생관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감정적, 신체 적, 혹은 성적으로 학대를 경험했던 아동의 경우 이런 경험이 없었던 아동보다 중독, 자해, 반사회적 행동, 우울증, 불안 등의 정신건강상 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비교적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아동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10에서 25퍼센트 정도는 어른이 되어 정 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학대를 막아 줄 수는 없었더라도 아끼고 보살펴 줄 수 있었던 어른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친구, 신념, 높은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일까? - 내 생각에 그것은 은총
회복력은 복잡한 현상이지만 유전적 요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 졌다. 여기에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유전자 중 하나는 뇌유래 신경영양인자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 다. 이것은 기존 뉴런의 생존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고, 뉴런들 사이의 연결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단히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한다.
7. 예측 가능한 뇌
265
학사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더 취약한 10대들의 경우 이런 급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면 대단히 긍정적인 인생의 결과를 쉽게 달성할 수도 있다.
교육 신경과학은 젊은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엘리너 매과이어 Eleanor Maguire 교수도 성인의 삶에서 학습이 뇌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뇌를 연구해 보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해마의 크기가 더 크 다. 이들은 택시 운전면허를 받으려면 복잡한 런던의 도로를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현상을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 알고 보니 택시 운전사가 되려고 1년간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 중 절반만 통과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은 실제로 기억과 길 찾기에 관여하는 영역인 해마의 회백질 부피가 더 컸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안 쓰면 잃게 된다 use it or loose it'라 는 격언을 보여 주듯 택시 운전사들은 은퇴하고 나면 해마의 크기가 평균에 가까워졌다)
엘리너는 택시 운전사 지망자 중 절반만 시험에 통과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해마의 가소성에 한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자신의 해마 최대 부피가 런던의 도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최저 한계에 못 미치는 사람이 있는 것인가? 개인의 뇌가 갖고 있는 가소성에 대한 내재적인 생물학적 한계를 분석하는 것은 현재 수많은 교육 신경과학자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다.
8. 협동하는 뇌
297
물론 언어적 소통과 문화적 생산이 집단적 응집력과 행동 변화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 로완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해 줄 과학은 많다. 실제로 한 이론에서는 언어가 진화한 이유 중에는, 개개인의 뇌가 가진 처리 능력의 수많은 결함을 피해 가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현실을 소통하고, 자신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세상이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더욱 신뢰할 만한 작업 모형을 생산할 수 있어 집단 수준의 발전을 도와준다.
저명한 행동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는 1976년에 펴 낸 혁신적인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문화적 전파의 단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밈mem'이라고 명명했다. 밈은 언어를 기반으로 할 때가 많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사회적으로 전파된다. 밈을 또래 집단 사이에서, 그리고 세대를 따라 전달되는 새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자. 중요한 밈으로는 불을 피우는 기술에서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각각의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은 주변에서 관찰하는 것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밈을 습득한다. 이 밈은 복제되고, 경쟁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밈은 세대를 거치며 살아남아 많은 사람에게 채용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성이 입증되면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과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에서 '밈학memetics'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이들은 밈은 유전자와 달리 명확하게 암호화된 정체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308
그러니까 연민과 협동의 신경과학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타주의의 신경생물학적 기반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타주의 altruism'라는 용어는 1850년대에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 Auguste Comte가 만들었다. 당시 그는 인간은 자신의 사리사욕 보다는 타인의 필요를 더 앞에 두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는 주의를 개발했다. 윤리학으로 알려진 철학 분야는 콩트의 철학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해 살아갈 능력이 있는지, 혹은 친절한 행동을 하려는 충동조차 그 밑바탕에는 이기적인 충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를 두고 철학계, 신학계, 정치계, 그리고 근 래에 들어서는 생물학계에서까지 항상 논쟁이 있어 왔다.
데이비드 흄 David Hume과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렸지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 이 행동의 모든 측면을 주도하는 '보편적 이기심'을 천성으로 타고났 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사하는 친구를 돕기로 나섰다고 상상해 보자. 이것이 진정으로 이타적인 행위일까? 아니면 친구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당신의 이타심을 알아차리고 자신에 대한 사회적 신용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로도 우러 나선 것일까? 당신은 자기가 지금 제공하는 도움이 미래에 자 기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의 손길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인지 과학자들이 '미래 계획future planning'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312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면 더 열린 마음을 향해, 더욱 깊어진 연민과 이타주의를 향해 나아가도록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2017년 말에 "연민의 과학 옥스퍼드 핸드북 Oxford Handbook of Compassion Science』 이라는 환상적인 책이 발표됐다. 이 책은 이 신흥분야에서 나온 연구 결과들을 리뷰하는 책이다. 나는 이것은 내리고 있는 주요 결론을 다섯 가지 팁으로 요약해서 모두가 연민과 향상된 소통 능력을 일상 속으로 통합하는데 사용할 수 있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워 그 내용을 긍정적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행위는 자신의 감정을 지각하는 방식에 신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8. 협동하는 뇌
319
예를 들어 '나 화가 났어'라고 차분하게 말하는 행위는 뇌 속의 원시적인 감정적 분노반응을 누그러뜨려 고등 인지회로로 활동을 올려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분노에 따르는 감정적 고통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운이 따라 준다면 당신이 이런 감정을 표출했던 사람이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반응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자신의 감정을 입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당신의 뇌 속에서는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긍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와 비슷하게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몸짓, 얼굴표정, 행동 등을 관찰함으로써 명확한 언어적 단서 없이도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법을 훈련하는 것에서 도움을 얻는다. 이런 기술을 익히면 우정을 가꾸는데 도움이 되고, 더욱 연민 어린 관점이 자랄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얼굴에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을 읽는 연 습을 해 봐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즐거운 저녁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연민의 명상 연습하기
이것을 하려면 자기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에 방점을 찍고 자아 성찰을 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 행동의 목적은 자신의 결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에게 연민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주의를 돌려 그들을 자신의 연민과 감사의 마음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삶에서 대하기 어려웠던 사람들, 당신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320
이렇게 하려면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 목적은 그들 역시 사랑과 친절, 평화로 채워지기를 빌어 주는 것이다. 연 민의 명상은 마음챙김 mindfulness, 행복,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의 감정, 걱정의 감소 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명상은 잠재적으로 부정적이거나 괴로운 사건도 거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새로운 방식으로 틀 잡을 수 있게 해서 그런 사건을 잘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명상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두려움과 쾌락이 들쭉날쭉 불안정한 보상경로 중심의 생활과 거리를 두고 좀 더 안정된 마음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3. 타인의 연민에 감사하기
다른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을 목격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해 낙관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타인을 돕고자하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이것은 도덕성을 고양해 준다. 도덕성 고양은 경외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감정이다. 이 감정은 투쟁-도피 반응 fight-or-flight response을 담당하는 좀 더 원시적인 감정 회로에 대한 앞이마겉질의 통제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좀 더 집행력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도덕성 고양은 또한 옥시토신 수치를 높이고,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신경가소성을 높여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더욱 잘 이해하고 통합할 수 있게 해 준다. 종합해 보면 도덕성 고양이라는 이 긍정적인 감정은 '선행 나누기pay it forward' 정신을 고양해 준다. 사람들의 친절한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사회 전반에 연민을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8. 협동하는 뇌
4. 감사의 마음 갖기
우리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사회에 살고 있지만 혼자서 자급자족 할 수 있게 진화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친사회적인 뇌를 발달시키게 된 것은 서로 의존할 때 생기는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가 성립되면 생존에 도움이 된다. 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단순한 행위도 그런 지지를 소중히 여기는데 도움이 된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그날 하루 감사했던 세 가지 일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이렇게 하면 그런 일을 있게 해준 사람에게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하루에 긍정의 마침표를 찍고, 나 자신도 친절한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이런 감정을 유도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5. 연민에 초점을 맞추는 부모가 되기
연민을 강화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우면 나중에 자기만의 긍정적인 지지 네트워크를 발전시키고 세대를 가로질러 이타주의를 더 널리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은 보호자들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감정이 용인되는 감정인지, 그런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배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느린 호흡 같은 기술을 이용해서 감정을 통제해서 분노를 가라앉히는 행동은 당신 자신이 나 자식 모두에게 이롭다. 연구에 따르면 시간을 내어 자기 관리를 하는 부모를 둔 아동도 그와 유사하게 장기적으로 그에 따른 혜택을 입는다고 한다. 건강하게 잘 먹고,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라. 그리고 취미생활을 통해 긴장을 풀고 명상을 실천하라.
322
'2024독서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른세 번째 책 : 여행 아닌 여행기 (0) | 2024.09.09 |
---|---|
서른두 번째 책 : 너무 쉬워서... 너무 어려워서... (0) | 2024.08.22 |
서른 번째 책 : 애프터 다크 - 무라카미 하루키 (0) | 2024.08.07 |
스물 아홉 번째 책 : 하얼빈 - 김훈 (0) | 2024.08.01 |
스물여덟 번째 책 : In his steps - 찰스 M 숼든 (0) | 2024.07.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