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청년 안중근과 우덕순 그리고 그의 주변인물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서로 다른곳에서 출발한 두 열차, 저격 순간, 거사 이후 그의 입장, 천주교, 그의 출신, 처와 아이들 그리고 주교와 신부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그리고 젊은 청년 안중근.
안중근은 두만강 너머 대륙으로 가려는 계획을 동생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배를 타고 원산으로...
안정근은 형이 가려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날 서울 도심에서 눈으로 본 일들이 형이 가려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안정근은 형이 여기에 남아서 함께 견디면서 함께 살기를 바랐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기는 마찬가 지일 듯싶었다. 안정근이 말했다.
-형님은 장자長子 아니오.
장자라는 말이 안중근의 가슴을 때렸다.
-대륙으로 건너가도 나는 여전히 장자다.
-어머니는 내가 모실 테지만 형수님과 아이들은 어찌하시려오.
-어쩔 수 없는 일을 자꾸 얘기하지 마라. 내가 자리 잡히면 데려가겠다.
-형님, 가지 마시오. 여기서 삽시다.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 것이 장자의 길이다.
안정근은 형이 의논하러 온 것이 아니고 통고하러 온 것임을...
하얼빈 73
우덕순이 말했다.
-이토가 온다는 얘기냐?
-그렇다. 하얼빈으로 온다.
-온다고?
항구 앞 루스키섬의 등대 불빛이 어둠을 휘저었다. 불빛은 술 집 안까지 들어왔다. 불빛이 스칠 때 우덕순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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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대련항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철로를 표시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주를 가로질러 하얼빈으로 가는 철로를 표시 했다. 철로는 하얼빈에서 만나고 있었다. 안중근이 말했다.
-하얼빈은 만주의 중심이다. 이토는 대련에서 북상해서 하얼빈으로 오고 우리는 우라지에서 서행해서 하얼빈으로 간다.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는 모스크바에서 하얼빈으로 온다.
우덕순이 안중근이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일본은 대련에서 크게 이겼는데, 이토는 대련에서 또 하얼빈으로 오는구나.
-나는 하얼빈에 가본 적이 없다. 자네는 간 적이 있는가.
-나도 간 적이 없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서로의 시선을 피해서 벽 쪽을 바라보았다. 안중근은 침을 삼키고 나서, 머뭇거리다 말했다.
-자네는 왜 나를 따라나서는가? 왜 이토를 쏘려고 하는가.
-그런 것은 말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까 말을 이어가기가 쉬워졌다. 우덕순이 물었다.
-이토는 지금 어디 있는가.
-이토는 이미 대련에 들어왔다. 내일이나 모레쯤 전용열차 로 북행할 것이다. 오늘 아침 대동공보사에서 정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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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러시아 병대 뒤쪽에서 이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악 소리가 커졌다. 소리가 커지면 총소리가 묻힐 터이므로 유리한 조건이고 러시아 의장대들의 부동자세도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권총은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 다. 이토는 더욱 다가왔다.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두 걸음 정도의 틈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이토가 보였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키가 작고 턱수염이 허연 노인이 서 있었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가물거렸다.
안중근의 귀에는 더 이상 주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쓸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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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손바닥에 총의 반동이 가득 찰 때 안중근은 총알이 총구를 떠난 것을 알았다. 이토 주변에서 있던 일본인 세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 졌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코레아 후라
안중근은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의 몸을 무릎으로 눌렀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철도가에서 묶였다.
궁내성 비서관과 시위侍衛들이 쓰러진 이토를 객차 안으로 옮겼다. 주치의가 이토의 외투를 벗기고 몸을 살폈다. 이토의 몸안으로 들어온 총알은 탄도가 교란되어서 파행했다. 총알은 이토의 몸속을 휘저은 후 추진력이 다해서 흉곽 안에 박혀 있었다.
이토는 숨을 몰아쉬었다. 비서관이 범인은 조선인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보고했다. 이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하얼빈 167
이토가 이미 죽어서 자신이 죽는 이유를 들을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일이 빌렘 신부와의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안중근은 기도했다. 안중근은 살아 있는 며칠 동안에 빌렘 신부를 만날 수 있기를, 살아서 만나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말이 빌렘 신부를 통해서 하느님께 닿기를 기도했다.
미조부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안중근을 쳐다보았다. 미조부치는
-그대의 소행이 사람의 도리와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독촉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조부치는 안중근이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서기가 안중근을 쳐다보면서 펜을 내리쳐서 대답을 독촉했다. 안중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기가 조서의 끝부분에 썼다.
-피고인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미조부치는 사건을 더 이상 파내려가지 않았다. 심층부에 잠겨 있는 마그마를 폭발시킬 필요가 없었다. 미조부치는 남은 일들을 공판정으로 넘기고 석 달 동안의 신문을 끝냈다.
하얼빈 223
이토 공의 진정이 피고인에게 스며들지 않았고, 의붓 어머니가 아무리 자애를 베풀어도 자식이 그 생부모를 그리워하는 심정은 인지상정이라고 미즈노는 안중근을 변호했다.
넓은 도량과 깊은 동정심을 가지신 이토 공은 자신을 해친 범인에 대해 극형을 가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피고인을 극형에 처한다면 이토 공은 지하에서 눈물을 흘리실 것이고, 이것은 돌아가신 이토 공을 경모하는 길이 아니라고 변호인 미즈노는 말했다. 이 같은 취지는 우덕순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미즈노는 변론을 마쳤다.
논고와 변론은 이틀에 걸쳐서 길게 이어졌다. 안중근은 피고 인석에 앉아서 잠자코 들었다. 검찰관은 안중근의 범죄가 무지와 오해의 소치이며 이것이 살의의 바탕이라고 말했고, 변호인은 이 무지와 오해는 동정할 만한 것이고 감형의 사유가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인의 변론이 가지런하게 잇닿아서 서로를 꾸며주고 있었다.
안중근은 긴말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안중근은 곁눈질로 옆자리의 우덕순을 살폈다. 우덕순은 부스스했다. 우덕순은 침을 흘리며 졸고 있었다. 미조부치가 단상에서 우덕순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법정 경위가 우덕순의 이깨를 흔들면서 줄지말라고 경고했다.
240
원문을 찾아내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본국으로 보냈다. 황사영의 글을 번역하면서 뮈텔은 이 천둥벌거숭이의 몽매함에 한숨 쉬었고 순수한 신앙의 열정에 목이 메었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황사영은 서양의 군함을 부르다가 몸이 토막 나서 죽었는데, 황사영이 죽임을 당한 후에 프랑스 신부 아홉 명이 또 죽임을 당했고, 천주교인을 길라잡이로 세운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서강西江까지 올라와서 국가를 겁박하고 강화도를 약탈했으니,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 프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뮈텔의 날들은 경건했다.
하얼빈 251
황해도 신천에서
빌렘
속달 편지는 명동대성당 주교관으로 배달되었다. 뮈텔은 지체 없이 펜을 들어서 답장을 썼다.
출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안중근은 제 발로 걸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서 죄악을 저지른 자이다. 안중근은 이미 교회와 관련 없다. 나는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의 죄를 사하여줄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그의 이른바 정치적 명분을 철회하고 자신의 몽매함을 반성하고 그 실행의 결과를 뉘우치는 뜻을 공개적으 로 표명한다면 그의 마지막을 도와줄 방도를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안중근에게 그것을 설득하려면 안중근도 괴롭고 말하는 사람도 괴로워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깊이 생각해서 결정했다. 출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조선 대목구장 뮈텔
안중근과 빌렘의 접견을 허락함으로써 일본은 얻을 것이 크지만 안중근이 명분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부를 보낸다면...
하얼빈 263
-불가하다. 우리는 죄수와 면회객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 이것은 감옥의 규칙이다.
안중근과 빌렘은 눈을 마주치고 한동안 서로 바라보았다. 빌렘은 안중근이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기다렸다. 안중근이 말했다.
-신부님, 제가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말씀드려도 좋겠습니까?
-말해라. 듣겠다.
안중근은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냈다. 안중근은 메모를 보면서 말했다.
-저는 작년 10월 19일 연추의 포시예트항에서 기선을 타고 우라지로 갔습니다. 배가 떠나기 직전에 항구에 도착해서 겨우 배를 탔습니다. 그 배는 두 주일에 한 번씩 운항합니다. 그때 배를 놓쳤으면 저는 이번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중근은 말을 멈추고 빌렘의 기색을 살폈다. 빌렘이 말했다.
-계속해라.
-저는 우라지에서 이석산을 협박해서 백 루블을 빼앗았습니다. 제가 총을 들이대자 이석산은 별 저항 없이 백 루블을 내주었습니다. 그 돈을 구하지 못했으면 저는 하얼빈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얼빈 267
-계속해라.
-저는 우덕순을 데리고 채가 구역에 가서 이토의 열차를 기다리다가 거기서 열차 통과 시간을 미리 알아서 하얼빈으로 갔습니다. 그때 시간을 알지 못했다면 저는 채가구에서 허탕을 쳤을 것입니다.
-계속해라.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저는 이 하루 차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있느냐? 계속해라.
-저는 이토를 쏘아서 쓰러뜨린 후에 총알이 정확히 들어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 옆에 있는 세 명을 쏘았습니다. 세 명 모두 총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에 다들 회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빌렘이 안중근의 말을 끊었다.
-도마야, 너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이 모든 것이 저의 모자람이고 저의 복입니다. 이 복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빌렘은 한참 후에 말했다.
268
작가의 말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 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주었다.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 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 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303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깨어난 말들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것의 힘으로 일 어서서 말들끼리 끌고 당기며 흘러가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저 남루한 세 단어가 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이 대하大河의 흐름은 일본인 법관들이 작성한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적들의 공문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말들이 악의 구조를 머리통으로 들이받아서, 강과 약의 이항 대립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의 벽을 부수고 있다.
나는 이 세 단어가 다른 말들을 흔들어 깨우고 거느려서 대하를 이루는 흐름을 소설의 주선율로 삼고, 그 시대의 세계사적 폭력과 침탈을 배경음으로 깔고, 서사 구조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에 따르되, 이야기를 강도 높게 압축해서 긴장의 스파크를 일으 키자는 기본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토털 픽처 total picture 를 만드는 일은 글 쓰는 자의 즐거움일 테지만, 즐거움은 잠깐뿐이고 연필을 쥐고 책상에 앉으면 말을 듣지 않는 말을 부려서 목표를 향해 끌고 나가는 노동의 날들이 계속되지만, 이런 수고로움을 길게 말하는 일은 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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