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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독서정리

서른세 번째 책 : 여행 아닌 여행기

by 마파람94 2024. 9. 9.


글이 미소국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먹기 편하고, 소화도 잘되고, 건강에도 좋은 그런 미소국 같은 글이라고 비유하고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보내는 어린 청춘 시절이 아닌 30대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사상은 대체로 사람들이 10-20대 시절에 맞이하죠. 그러한 시절이 지나면 자신이 중심이다가 점점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성향이 생기고 철이 든다고 하죠.

 

이 책은 질풍노도의 시간을 마치고 철이 든 사람이면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웃는 얼굴에서 정말 아름답고 따스한 것이 풍기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게 생각지 않으면 그런 표정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에게 좋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 모습이 제비꽃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더러움을 쌓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영악해지고, 조금씩 때가 끼고.

그러나 중년이 지나면 경험이 값을 발휘해 강하면서도 선해지고 점차 아름다워지는 일도 있다.

사람들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대략 이삼십 대에는 불필요한 것을 많이 껴안은 무겁고 어두운 표정이다. 미간을 찡그리고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는 얼굴이다.

그런데 삼십 대에서 사십 대가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여전히 무겁지만 대개는 한 꺼풀 벗은 개운한 얼굴이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지 않은, 집착을 떨어 버린 환한 얼굴.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점점 더 벗어 내고 떨어내어 마침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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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기의 어느 아침, 동네 오빠가 운전하는 차에 타게 되었는데 막 출발하려는 참에야 손에 든 컵에 커피가 절반쯤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같으면 아깝지만 커피를 버리고 컵을 씻어 놓은 다음 차에 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햇살도 아름답고 바람도 상쾌하고, 게다가 커피가 유독 맛있게 내려져 무거운 사기 컵을 든 채 차를 탔다. 커피가 뜨거워 이동하면서 마시자니 위험했지만 그날의 멋진 날씨와 유난히 맛있는 커피가 어 우러져 새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뭐야, 왜 커피를 들고 차에 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불쑥 깨달았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왜 그런 걸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생겼으니 시간을 빼앗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또는 현역 생활이 25년 가까워 일하는 방식이 정착된 탓에 예외 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위험과 안전, 두 가지가 나란히 있다면 다소 유쾌하지 않더라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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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어요. 이제 그만 포기합시다. 이런 일도 있는 겁니다. ○○ 씨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말투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올곧아서 모두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도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었다.

말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고, 말투 때문만도 아니었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의 힘이 되고 싶다는 뜻을 온몸으로 표현했기에 모두가 짐을 덜었다.

인생에는 불가피하게 실수를 하는 일도 간혹 있다. 그 실수가 목숨에 관계되는 일도 있고, 평생의 불화를 야기하는 일도 있고, 타인에게 폐가 되는 일도 있다. 가능하면 그런 실수는 없는 편이 좋지만 일단 하고 나면 어쩔 수 없다.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그런 때 누군가가 나서서 다소 짐을 덜어 주는 일이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한 번 실수에 모든 일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고 믿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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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닌 여행기


그녀들은 침대 시트를 벗기고, 바닥을 닦고, 컵을 씻고, 수건을 교체하고, 책상을 닦았다.

신속하게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는데 그녀들의 동작은 왠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하얀 유니폼의 치맛자락 아래로는 까뭇까뭇하고 가는, 물고기처럼 예쁜 두 다리.

나는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주인공이 청소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불교 의식처럼 모든 동작이 유려했던 무이.

나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집을 청소할까? 하고 생각하자 서글퍼졌다. 합리적이지 못한 움직임에, 닦는 청소는 귀찮아 생략하고, 선반도 거칠게 쓱 훔치고는 끝 내지 않았을까.

청소도, 걷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모두 명상의 일부처럼 행하면 명상은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몸은 사원이니 그 제단에 패스트푸드는 바치지 않는 편이 좋다 는 말도.

가능하면 흔들리는 수면처럼 요염하고 매끄럽게, 물이 흐르듯, 바람이 질러가듯 갖가지 동작을 해 보고 싶다고, 손이 야물지 못한 나는 뜨거운 열 속에서 행복한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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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씨가 수심에 찬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쪽으로 둥실 흘러왔다. 엷게 빛나는 하얀 베일 같은 것.

역시 여기에도 사이베르와 코렌이 있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는 왜 결혼하나, 그건 역시 금전 때문도 아니고 연애의 결말도 아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인간 정신성의 한 단계 높은 차원을 보고, 다른 형태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알기 위해서다.

이렇듯 품위 없는 시대에 인류가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고결한 것을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오카노 씨는 보물 같은 사람이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나는 오카노 씨의 작품을 읽고, 아주 멋진 장소에 있는 은밀한 온천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개운한 기분으로 그 세계에서 나온다. 그녀가 빚는 세계의 공기만 마셔도 마음이 되살아난다.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는 마음속의 소중한 방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

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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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스카이 크롤러』도, S&M 시리 즈도, V 시리즈도 모두 그렇다. 등장인물은 짝사랑에 취할 만큼 머리가 나쁘지 않다. 재능이 있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지적이고 행동적이다. 연애는 고통스럽다.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연애의 종착점은 육체관계가 아니다. 그 고통이야 말로 연애의 정체라는 사고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과연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은 남녀 간이든 같은 환상을 공유한 사이든 궁극적으로는 서로의 생각을 절대 알 수 없고, 아무것도 나눌 수 없다. 아무리 상대를 그리워하고, 가령 그 상대와 결혼했다 해도 그 사람은 자기 소유가 아니다. 자기 인생은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사랑은 부조리한 것이라 절대 해답이 없다. 그저 고통스러울 뿐, 절대 즐겁지 않다. 날이 개나 흐리나 그 사람을 생각하면 괴롭고 답답하고, 모든 계절이 모든 날씨가 그 고통을 부각시킬 뿐이다. 오직 그 사람을 돕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싶은데 가령 그렇게 했다 한들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 고통 속에 있는 것만이 해결의 길이다. 이 상태를 극한까지 몰고 가면 거기에는 죽음의 냄새가 떠다닌다. 성(性)이 얼마나 죽음 가까이에 있는지 그 사실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는 미스터리가 쓰기 쉬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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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서로 호흡을 맞춰 춤을 춘 듯한, 일말의 흐트러짐 도 없는, 완벽하게 조화로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호텔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 그 완벽함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다. 시트도, 배스로브도 웃음이 나올 만큼 포근했다. 모든 것이 너무도 기분 좋아서 이대로 계속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지내고 싶다고 상상했다. 멸망의 날이 일주일쯤 후였다면 행운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인간은 불안해지는 법이다. 그렇다. 참 이상한 인과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 행복이 내게 찾아올까 하고 괜한 걱정을 하고 만다.

사랑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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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뇌 구조는 기본적으로 비관적 예측을 하도록 생겨 먹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상에서 만물 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것은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니다. 걱정하고 미리 예방하고 대처하면서 그럭저럭 헤쳐 왔다.

너무도 쉽게 최상의 것을 얻어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이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다. 언젠가 사라진다는 바람직한 비관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고등학생이나 한다. 나 정도 나이가 되면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다. 자신을 포함해 인간이라는 것에 보편성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영원히 계속되는 상황은 없다. 언어로 영원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짓도 하고 싶지 않다.

-「조라, 일격, 안녕에서

긴 문장을 인용했는데 그의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동업자로서, 이 정도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 소설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려는 마음이 없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 싶다. 그 여유로움도 그의 좋은 점이라 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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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닌 여행기

정말 울음을 터뜨리고 화를 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무척 놀렸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고독한 밤을 오직 그 고양이 인형의 웃는 얼굴이 가까이에서 지켜 주었다.

훗날 나는 다스칼로스라는 그리스 종교가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 병적 사례로 석유램프를 사랑해서 램프를 아내라 부르고, 램프와 섹스를 하고, 잠을 잘 때나 깼을 때 나 램프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외에는 아무 문제없는 남자인데 6년 동안이나 램프와 함께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램프를 깨뜨렸다. 남자는 자살했다.

다스칼로스는 사람이 오래도록 한 가지만 머릿속에 그리면 거기에 '엘리멘털'(정령)이 깃들어 실제로 생명이 느껴지는 강한 암시에 걸리는데, 그걸 어떻게 다룰 줄 몰라 그런 짓을 한 아버지 잘못이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고 말한다. 내일도 평생들

이 사례를 읽고서 나는 미탕의 고양이 인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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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돌아와서 다행이네! 하고 생각한다. 그런 예전의 나는 작년에 죽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물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너무 황홀하고 행복해서 거의 미칠 듯하다.

여행가이며 에세이스트인 다카노 데루코 씨는 "행복의 허들을 낮추면 행복한 일이 많아진다."라고 말했는데 그야말로 지금 내 행복의 허들은 아주 낮다. 트라우마로 생긴 상처가 예리할수록 이런 현상이 따르리라. 결과적으로 내게 인생은 고마운 것으로 변모한 듯하다. 이런 변화가 어른이 된 후에 생기다니 놀랍다.

지금 상황에서 언제까지 여기 살지는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 인류의 존속마저 위태로우니 내일이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다. 있으면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매일이 정말 고맙다. 태양도 비도, 이 세상이 보여 주는 것 모두가 재미나고 고맙다. 지나치게 낙관적인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지진 피해로 바뀐 것과 그 후에 읽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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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생명 그 자체가 그를 움직여 그는 좀비들을 떨쳐 내고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움직이려 하는 임산부에게 뛰어간다. 헬리콥터는 이륙하고,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임산부가 말한다. 상관없다고 그는 말한다.

체념으로, 혹은 희망에 차서 한 말이 아니다.
목숨이 있는 한 살아야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초등학생 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인생관에 영향이 미칠 만큼 큰 감명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 인간성을 잃고 파충류나 상어처럼 감정 없는 눈으로 다가와 나를 먹으려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쏘는 길밖에 없다.

테마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품격이나 존엄성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질문인데, 이 영화는 확실하게 대답해 준다. 인간은 품격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존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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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처음 깨달았다. 인생에는, 매일의 시간에는 파도가 있다는 것을. 그 파도를 무시하고 혼자서만 앞으로 쑥쑥 나가면 파도를 읽어 내지 못한다. 무언가가 다가오면 거기에 대처해 수동적으로 지내야 할 때와 스스로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세상은 그렇게 많은 정보로 매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서핑을 못하지만 인생은 서핑과 다르지 않다. 혼자서 흐름을 만들려는 건 큰 잘못이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한다. “배가 고프다." "오늘은 뭘 하고 싶다." "배가 좀 아프다." 나는 어떤 반응을 한다. "그럼 집에서 먹을까? 밖에 나가 먹을까?" "지금은 그거 못 해. 조금 기다려." "어떻게 아픈데? 병원에 갈지 말지, 상태를 좀 두고 보자." 등등

그에 따라 예정이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좋아, 오늘은 꼬맹이랑 같이 놀아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얌전히 방에 앉아 따뜻하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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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귀엽네. 정말 귀여워."

그러고는 나를 꼭 껴안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베스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어머니는 이미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할머니와 간병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치매가 와서 이제 어린이로 돌아간 어르신과 중년 여자로서가 아니라, 그쪽은 어른이고 이쪽은 아이라는 입장으로 돌아가 한 순간 빛났다는 것이.

그런 일은 이제 없을 줄 알았다. 내가 어떻게든 다부지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의외의, 그리고 멋진 것을 신(같은 존재)은 늘 마련해 준 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 모녀의 그리 아름답지 않은 역사 속에서 빛나는 깨알 다이아몬드로 언제까지나 남으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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