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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독서정리

스물 일곱 번째 책 : 이카루스 이야기 - 세스고딘

by 마파람94 2024. 7. 24.



스물일곱 번째 책은 이카루스와 관련된 편견을 깬 책입니다.

너무 높게 날아서 추락한 이카루스, 사실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낮게 나는 것도 주의를 줬다는 이야기를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이름이 낯이 익어서 살펴보니 얼마 전에 한번 접했던 작가였습니다. 어쨌든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공교롭게 두 권을 읽게 됩니다. 이번 책은 작가 세스 고딘이 10년 전에 쓴 책인데, 유튜브 구글 등을 검색해 봤더니 자기 계발 분야에 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작가가 되었더군요.

 

이 책에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책 밑 줄로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점점 높이 올라갔다. 우리는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안다. 밀랍이 녹아내렸고,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런 것이다. 왕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 아버지 말씀을 어기지 말라.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에게 신의 능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이달로스가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게는 물론,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점이다. 수면에 너무 가까이 날다가는 날개가 젖어 물에 빠져 죽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신화에서 너무 낮게 날아서는 안 된다 는 경고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서로를 질책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산업주의자들은 자만을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로 꼽으면서, 그보다 더 위험한 한 가지는 교묘하게 제거해 버렸다. 바로, 너무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겸손이다.

너무 높게 나는 것보다 너무 낮게 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전하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낮은 기대와 소박한 꿈에 만족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안전하다는 느낌 속에 살아간다. 

PART 1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27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기대를 넘어서고 희귀하고 가치 있는, 한마디로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다.

오늘날 희귀함의 기준은 예전과 다르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은 더는 희귀한 물건이 아니다. 뛰어난 인재도 드물지 않다. 훌륭한 선택지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다양한 제품과 인재를 얼마든지 선택하고 고용할 수 있다.

이제 진정 희귀한 것은 연결과 신뢰, 놀라움이다. 훌륭한 아티스트의 작품에는 이 세 가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 연결에 관해 먼저 짚어보자.

현대인은 현실보다 인터넷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 속의 유령이자, 소란을 피우고 모든 것을 만들고 바꾸어가는 존재다.

우리가 네트워크로 방출하는 정보는 우리가 그곳에서 받아들이는 정보에 영향을 미친다. 네트워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그리고 더 중요하게 사람과 아이디어를 연결한다.

이 새로운 네트워크는 연결을 가능케 하고, 모임을 만들고, 개성을 강조하고, 아이디어를 전달함으로써 아트를 고무시킨다. 지루할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다면, 블로그가 있다. 그냥 쓰면 된다. 


PART 1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37



그러한 고통을 외면한다면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 조만간 그 자리를 대신한다. 조직의 작은 부품이라는 역할에 만족하고, 재능을 썩히고, 자신의 미래를 남의 손에 맡기는 한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건 해볼 만한 거래가 아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아트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 자신을 마취 상태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된 안전함의 유혹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고통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아트는 살아 있다는 증언이다. 십 대들이 겪는 성장통처럼 아트의 세계와 맞닥뜨리는 고통은 삶의 중요한 일부이며, 더 나은 자아로 도약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용기란 죽음에 과감하게 맞서는 영웅적인 자질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또한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큼 거대한 모험에 도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고, 그러한 생각을 지키려는 의지를 뜻한다.

물론 용기 있는 사람이 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냉장고를 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 없다. 아무런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PART 1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43

마찬가지로 연결경제에서 독창성과 아트는 선택이 아니다. 연결 없이는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으며, 아트 없이 연결은 불가능하다.

과거의 안전지대는 사라졌다. 이제 새로운 안전지대로 들어서야 한다.

후회를 향해 달려가자

지난 100년간은 정규분포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다. 정규분포 곡선이 대량 시장을 정의하고 마케팅과 생산의 효율성이 존재하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요즘 DVD 플레이어는 100달러도 안 된다. 소비자들 모두 똑같은 제품을 원하므로 가격이 그렇게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도심에 월마트가 들어서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폭넓은 선택권과 저렴한 가격이 가능해졌다. 대량 시장은 지금까지 효율성 면에서 엄청난 우위를 보여줬다.

하지만 인터넷과 연결경제가 그러한 대량 시장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제는 이미 엄청난 수의 제품에 질려 있는, 정규분포 중간에 위치한 일반 소비자들에게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제품을 억지로 파는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특이한 사람들, 즉 귀를 기울이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을 위해 획기적이고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PART 2 허물고, 무너뜨리고, 바꿔라 / 63

이제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 온몸이 후끈거리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두 가지 대답을 했는데도 웰즈는 그저 웃을 뿐이다.
웰즈는 3학년이니까 분명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정답을 찾는 일은 아트의 적이다. 정답이라는 말은 생산성에 집착하는 산업가, 재단사, 과학적 경영을 외치는 기업주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다.

이카루스는 아버지에게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렇다면 적절한 고도는 어느 정도일까? 안전한 중간 지대란 어디를 의미하는가? 지도는 어디에 있는가?

아트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라, 흥미로운 대답이다. 혹시 당신은 그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 가치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능력 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 NHL에 뽑힌 선수 대부분이 1~3월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는 무척 중요한데, 학교에 입학할 당시 다른 급우들보다 9개월을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ART 2 허물고, 무너뜨리고, 바꿔라 / 65

우리는 더 많은 이들을 알고 더 많은 자원에 접근하고, 예전보다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풍요는 두 가지 경쟁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최저를 향한 경쟁이다. 인터넷을 통해 비용을 낮추고, 값싼 노동력을 구하고, 더 적은 투입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최고를 향한 경쟁이다. 우리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의 그리움을 받게 될 존재, 즉 린치핀linchpin이 되는 기회를 잡기 위한 경쟁이다(앞서 출간한 책에서 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원 하는 이들을 가리켜 린치핀이라고 불렀다. 린치핀이란 프로젝트를 이끌고 그 책임을 기꺼이 떠안는 사람으로, 그가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게 된다). 최고를 향한 경쟁은 '더 많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 경쟁은 풍부한 선택권을 가진 이 들의 특별한 열정을 환영하고, 고유함과 비범함에 보상을 준다.

연결경제가 매력적인 것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관계가 넓어지고, 하나의 정보가 더 많은 정보로 이어지면서 풍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자체적으로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계가 확장되면서 접근성은 더욱 높아진다. 재능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네트워크의 힘을 활용하려 들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전화망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PART 2 허물고, 무너뜨리고, 바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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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처럼 거대한 규모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지 몇 명의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당신은 그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가?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당신이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한다. 의미 있는 연결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자, 이제 선택하자

"인간은 모두 외롭다. 연결하라."

인류는 안전을 지향하도록 진화했다. 우린 모두 안전을 바란다. 숨을 만한 은신처와 의지할 만한 미래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 결과 권태가 밀려온다. 그러면 도발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는 가려움증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이들에게 그러한 가려움증은 가벼운 욕망이자 지루한 일상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편함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삶을 지배당할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어서 떨쳐 일어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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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자만은 지배계급의 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만이란 권위에 맞서고,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용기를 뜻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카루스 신화를 통해 여전히 강조하는 교훈이 자만에 대한 경고라는 점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자만이다.

현대판 미신, 선전

선전propaganda과 신화는 구별해야 한다. 선전은 기껏해야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다. 소련 시절의 포스터들은 힘든 노동을 독려하고, 나치 영화들은 민족의 단결을 찬양한다. 이보다 좀 부드럽기는 하지만, 기업들의 교육 영상물은 겉으로는 다양성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획일화와 복종을 강요한다. 오늘날 기업에 관한 이야기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지어낸 이들은 대중이 그것을 신화처럼 받아들이기를, 즉 자신들의 자아와 진정한 공감을 나누는 이야기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선전은 절대 신화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전' 이란 권력층이 바라는, 대중의 이상향을 담은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즉, 사람들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이야기인 것이다. 산업 시대는 선전을 통해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는 세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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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인위적인 것들을 모두 떨쳐버리고 자기 책임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러한 솜씨가 발휘 되는데, 이는 자아에 대한 인식 없이 행동하는 순수함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순수하고 올바르게, 신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얼마나 담대한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고, 겸손을 저버린 채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갔던 이카루스의 기개는!

우리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자만은 우리를 신과 같은 존재로 높인다. 그리고 신과 같은 존재로 올라서려는 노력은 우리를 더욱 인간적인 존재로 만든다.

우리의 겸손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적은 봉급에 만족하는 근로자, 까다로운 질문을 숨기는 학생,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작품을 감춰두는 아티스트 등. 하지만 이것은 왜곡된 겸손이며,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선전 활동을 펼친다.

조지 오웰조차 그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은 꼭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다. 대략 서른 줄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거창한 꿈을 접고, 대개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실제로 인간들은 주로 타인을 위해 살고, 힘든 노동을 참고 살아간다. 하지만 오직 자신의 길을 걸어...

PART 3 이카루스에 속지 마라 /

121

가끔은 몇 시간 동안 그러고 있기도 한데, 심지어 열네 시간이나 그랬던 아이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있다. 사다리를 오르고, 다이빙대 꼭대기에서 망설이기까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분명히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에는 도전 욕구와 흥분을 느꼈다. 그런데 꼭대기에 도달하는 순간 아이들은 얼음이 되고 말았다.

틀림없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 풋내기 다이버들은 아래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았음이 분명하다.

물론 실제로 변한 것은 없다. 아이들의 생각이 변했을 뿐이다. 아래에 있을 때는 두뇌의 한 부분이 빨리 위로 올라가라고 끊임없이 재촉한다. 모험을 추구하는 우리의 전두엽은 다이빙이 분명히 즐겁고, 용감하고, 영웅적이고, 대담하고, 환상적인 경험이 될 거라고 외친다. 이때 두뇌의 또 다른 부분인 도마뱀 뇌는 수면에 얼굴이 부딪혀 아플 거라거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지만,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꼭대기에 이르자 게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뀐다. 이제 죽음이 눈앞의 문제가 되었다. 도마뱀 뇌는 갑자기 엄청난 힘을 얻어 이렇게 외친다. "말도 안 되는 장난을 그만둬! '너무 높아! 위험해, 미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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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마뱀 뇌의 외침에 지지 않고 다이빙에 한 번 성공한 아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한다. 아이들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 곧장 뛰어내린 다. 아이들의 안락지대가 안전지대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롤러코스터의 진실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보다 놀이공원까지 운전해서 가는 게 더 위험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맨 처음 고지를 향해 천천히 올라갈 때면 점점 숨통이 조여오듯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윽고 절벽에서 떨어지듯 순식간에 하강한 이후, 오르내리기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에도 내내 공포에 떤다. 그것은 롤러코스터가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의 회전과 소음, 속도는 우리의 이성적인 전두엽을 그냥 통과해서 아미그달라로 직행하도록 설계되었다. 아미그달라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하면서 걱정을 담당해 온 두뇌 조직이다.

우리 문화에는 가상의 롤러코스터가 가득하다.

가령 공항의 입출국 심사는 일종의 문화적 롤러코스터다. 그 과정은 제복을 입고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교통안전국 직원 들 등의 장치를 통해 일부 승객으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파티는 이와는 좀 다른 형태의 롤러코스트이다

PART 3 이카루스에 속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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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생이여, 어서 오게나. 나는 천만 번이라도 경험의 진실을 마주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러 내 영혼의 대장간으로 가리라."
스티븐 디딜러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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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쉽고, 안전한', 이 세 마디는 좋은 일자리의 특성처럼 들린다. 이카루스 속임수를 널리 퍼뜨리면서, '좋은' 일자리를 잡으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산업가들은 이 세 가지 모두를 제시한다.

반면 아트는 그중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즐거운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아티스트는 자주 저항에 직면하며, 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더욱이 진정한 창조는 절대 쉽지 않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일 터이고, 그래서 귀한 일이다. 힘들고 중요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한발 물러서면서 포기하는 게 더 쉽고 편안할 것이다.

저항의 목소리는 100만 년이나 이어져왔다. 그 목소리는 아트가 우리를 위태롭게 하고, 비난을 불러일으키며, 오직 소수만을 위한 위험천만한 것이라 말한다.

오랜 옛날에 사회적인 비난은 심각한 위험이었다. 당시에도 아웃라이어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차원에서였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트는 성공을 향한 최고의 또는 유일한 선택이다. 하지만 아트에는 항상 본능적인 저항이 따른다. 즉, 아트와 저항은 언제나 같이 다닌다.

PART 4 무엇이 두려운가?/171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하자.

전화 한번 안 하는 의사

얼마 전 나는 어떤 의사에게 가벼운 수술을 받았다. 나는 그가 매스 같은 섬뜩한 의료 도구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알지 못한다. 마취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사가 수술 이후의 좋은 기회들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나를 보러 왔다. 그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퇴원 후 지금까지 그 의사는 상태를 묻기 위해 전화한 일이 한 번도 없다.

사실 특정 세대 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모습은 그다지 낯선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할이 사람들을 낫게 하는 것보다 수술을 잘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의 전화나 이메일 안부가 신체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의 마음은 그게 아니잖은가. 유용한 정보까지는 아니라도 심리적인 위안을 받거나 경과가 정상이라는 확인만 받아도 엄청나게 고마워할 것이다.

산업주의자들에게 제품은 제품이고 거래는 거래다. 일단 판매를 하고 나면, 위험은 모두 구매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에게는 영향과 연결이 아트의 중요한 일부 분이다. 

PART 5 아티스트가 되라/
213


목표를 달성했는가? 다시 말해 매출이 올랐는가? 소비자들이 구매하는가? 기대만큼 높은 수익을 올렸는가? 그랬다면 성공을 거둔 것이며, 그동안의 고통은 참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산업가들이 제시하는 이런 기준은 자칫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카루스 속임수의 일부다.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하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하는 방식을 왜곡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의 이웃과 자동차, 배우자, 자녀들은 남들만큼 수준이 높고 인기 있는가?

반면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기준에 집착하지 않는다. 후원자나 매출 또는 큰돈을 버는 게 중요해지는 건 많은 아트 활동을 위한 기회가 될 때뿐이다.

연결경제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올바른 기준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감동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평론가들이 마음에 들어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떤 일을 했는가? 그리고 그 일을 왜 했는가?"

직급과 급여, 지위에 이르기까지 산업가들은 객관적인 확실한 기준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 티켓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점진적인 단계가 보장된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은 춤추는 원숭이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포기하고, 그 대신 훌륭한 작품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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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능력 덕분에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 유명한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악보에 지시된 대로 잘 따르는 능력을 갖춘 덕이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입학할 때 필요했던 기술이 졸업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훌륭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넘쳐나고 오케스트라에서 원하는 공손한 연주자들도 수두룩하다. 오케스트라들이 연주자를 뽑는 일은 무척 드문데 항상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 그런 까닭에 졸업반이 되면 학생들은 진로를 찾느라 고심하게 된다.

상황은 앞으로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빠지기가 십상이다. 그렇다면 성공을 거두는 방법은 개성 있는 음악가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만의 연주를 하는 것이다.

풍요에 익숙해지자

앞으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에서 '무엇을 줄 수 있을까'로 고민을 이동해야 한다.

산업경제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모든 생산 활동은 보상을 낳고, 그 보상은 경영진과 근로자들에게 주어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충돌이 일어난다. 귀한 자원을 나누어 가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PART' 5 아티스트가 되라/221

아티스트는 사기꾼인가?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아티스트의 당면 과제는 작품을, 그것도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티스트로서 우리는 자신의 작품이 누구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고, 다른 이의 작품을 베낀 것도 아니며,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건 오로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청중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면, 거부당했다는 사실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청중과의 교류에 성공했을 때도 그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몫이다.

아티스트들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그래서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이것이다. "이런, 순 사기꾼 같으니라고!"

아티스트들은 혹시 사기꾼 취급을 받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키보드로 1분에 81개의 단어를 치거나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화학약품을 제조하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는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려 한다. 예전에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주제를 다루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기꾼이다. 누구도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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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들은 기존 후원자들만 계속해서 주목한다. 새로운 기부자를 발굴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은 끊임없이 스팸 메일을 뿌린다. 고객들의 관심을 장기적으로 붙잡아둘 방법을 고안하는 것보다 덜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과점 시장을 이루고 있는 탄산음료산업을 들여다보자. 이들 기업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쉬운 전략은 더욱 큰 크기의 제품으로 교육 수준과 소득이 낮은 계층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소위 '위stomach 점유율' 이라 부른다.

마이크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공공장소에서 판매되는 탄산음료 제품의 크기를 450밀리리터로 제한했다(이는 50년 전 코카콜라 광고를 기준으로 약 3인분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자 음료 기업들이 들고일어났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는

자유시장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기업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제한 기준이 경쟁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그러한 정책은 오히려 무조건 많은 양을 팔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기업들의 아이디어와 창조성, 혁신을 향한 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기대 수명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기업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만약 그 기업들 중 하나에서라도 아티스트다운 발상을 할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 제한 조치를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다.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장기적인 이익의 기회를...

PART 5 아티스트가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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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윤리적인 지름길을 선택해도 좋다고 눈을 감아버린다.

반면 게임은 자발적이다. 우리는 규칙을 직접 선택하고, 자신과 잘 어울리는 게임을 고를 수 있다. 게임을 할 때 우리는 몰입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승자 또는 패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게임을 즐기는 것은 진정한 자아의 모습이다.

만약 '일'을 게임의 일부로, 실패가 아닌 도전으로, 비극이 아닌 성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 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게임의 일부이기에 즐기면서 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도 종류가 있다.

종교학자 제임스 카스는 제한 게임과 무한 게임이라는 개념에 대해 글을 썼다. 제한 게임이란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거기에는 게임의 법칙이 존재하고 분명한 끝이 있다. 제한 게임에서 목표는 승리하는 것, 그리하여 최후의 일인으로 남는 것이다.

산업 시대는 바로 이러한 제한 게임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시장점유율이 바로 제한 게임에 속한다. 경쟁 기업에서 인재를 빼앗아오는 것도 그렇다. 당신의 기업이 모든 인재를 차지하면, 경쟁 기업들은 인재를 가질 수 없다. 미국풋볼리그NFL 역시 제한 게임이다

PART 5 아티스트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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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맞서 싸우든, 아니면 지방정부에서 일하든 간에, 저는 우리 모두 자기만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재클린 노보그라츠(아큐멘펀드 설립자)

“아티스트가 되고 나서 아트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아트를 하면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다 잘될 것이다

MBA 시절 스물두 살의 나 자신에게 조언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은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구글 주식을 사거나, 차버렸던 애인을 붙잡으라거나, 어떤 동네로 이사를 하라는 등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바꿀 수 있었던 기회에 대해 말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과거의 어떤 부분도 바꾸고 싶지 않다. 항상 있었던 사업적인 어려움조차 지우고 싶지 않다. 그건 그러한 일들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더 나은 상황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것은 한 가지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국 다 잘될 것이며, 고통은 여정의 일부이고, 그러한 고통이 있기에 여정이 가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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