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손에 처음 들고 완독까지 5년 넘게 걸렸습니다. 그동안 책장에 장식되어 있었던 책을 큰 마음먹고 끄집어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삶의 목적을 다시금 생각해 보고 되새김하게 됩니다.
어김없이 금싸라기 문단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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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가 학교 트로피 전시장에 놓여줬을 때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몇 년 후 어떤 사람이 그 트로피를 우편으로 보내왔는데 학교 재건축 당시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제임스 톰슨은 말한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 삶의 모든 트로피는 누군가에 의해서 버려지게 된다."
지구상에 유산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근시안적인 목표일 뿐이다. 영원한 유산을 남기는 삶을 사는 것이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억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졌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고, 그분은 우리의 삶에 대해 조사하실 것이다. 영생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시험인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하라,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자기 삶에 대한 셈을 해야 할 것이다"(롬 14:10, 12, NLT),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험을 통과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물으실 질문을 미리 가르쳐주셨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그분은 우리의 종교적 배경이나 교리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배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질문은 "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 이다. 너는 삶을 통해 무엇을 했느냐? 내가 준 은사와 재능, 기회, 에너지, 인간관계 그리고 자원들로 무엇을 했느냐? 스스로를 위해 썼느냐? 아니면 내가 너를 창조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느냐?
44-목적이 이끄는 살
그분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용서 그리고 구원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 살게 될 것이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말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이 '좋아,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 라고 말씀하시는 사람들이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 영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사는 것이 존재의 끝이 아니고 그 후의 영원이라는 것이 있으며, 지금의 삶이 영생을 위한 준비 과정이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르게 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깨달았을때 우리는 영원의 빛 가운데서 살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관여하고 있는 모든 관계,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 그리고 처해 있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올바르게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많은 활동과 멋지고 대단했던 목표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던 많은 문제들이 한순간에 의미 없고, 사소하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더 작아 보일 것이다.
영원의 빛 가운데 살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한다. 시간과 돈을 더 현명하게 쓰게 되고, 명예나 부, 또는 일의 성취감이나 쾌락보다 인간관계와 인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또한 유행을 따르고 대중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별 의미 없는 하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한때 이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해주신 것 때문에 그것들을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빌 3:7, NLT)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나는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라고 제안할 것이다. 착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반드시...
Day 4 영원히 존재하도록 지어졌다.. 49
많이 생각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더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보낸 9개월의 시간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을 위한 준비였듯이, 현재의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바로 그것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이 되겠지만, 그것이 우리 존재의 마지막 시간은 아닐 것이다. 삶의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집을 기대하고 있다" (히 13:14, LB).
영원에 비교하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눈 깜짝할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결과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 땅에서의 행동은 다음 삶의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육체를 입고 지내는 매 순간 이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집에서 사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고후 5:6, LB). '남은 인생의 첫날(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이라는 슬로건이 몇 년 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고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운 삶의 모습이다. "우리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이 매일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쓴 매튜 헨리(Matthew Henry)의 말을 기억하자.
52. 목적이 이끄는 삶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시험을 받을 것이다. 나 자신도 하나님이 문제와 연관시켜서 나의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서 희망의 척도를,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랑의 모습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중요한 시험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 32:31), 히스기야는 평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왔지만 하나님은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홀로 두셨고, 그 기간 동안 그의 인격을 시험하시고 약점이 무엇인지 나타내심으로 더 많은 책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단련시키셨다.
삶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사건도 우리의 인격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매일이 중요한 날이고, 매 순간이 인격을 개발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또는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다. 어떤 시험은 아주 크게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떤 시험은 있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험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영원한 것이다.
복된 소식은 하나님이 삶의 모든 시험을 우리가 통과하길 원하시고, 우리가 직면하는 시험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 이상 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하게...
58. 목적이 이끄는 삶
역할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고, 오늘날에도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목적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위탁물답게 다루어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가진 것 중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 당신이 가진 것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스스로 이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 왜 자랑을 하는가?" (고전 4:7, NLT),
몇 년 전 한 부부가 나와 내 아내에게 하와이 해변에 있는 아름다운 별장을 휴가 기간 동안 쓰도록 빌려주었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당신 집처럼 사용하세요"라고 말해줘서 정말로 내 집처럼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을며, 수건과 접시를 사용하고, 재미있게 침대에서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간 내내 우리는 그것이 정말 우리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폐가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말로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사용하며 즐겼던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소유하지 않으면 돌보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그것 들을 돌보아야 한다"라는 더 높은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청지기는 신뢰할 만해야 하고,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전 4:2, AMP). 예수님은 삶이 하나님께 위탁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셨다. 예를 들어 달란트 이야기에서(마 25:14-29), 한 사업가는 그가 없는 동안 재산을 하인들에게 맡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그는 각 하인들의 책임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상을 주며 말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1),
60 목적이 이끄는 삶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예배' 라는 단어가 특정 음악 스타일을 뜻하는 말로 오용되기도 한다. "처음엔 찬송가를 불렀고, 그 후에 찬양과 경배의 곡들을 불렀어." 혹은 "나는 빠른 찬양곡도 좋아하지만, 느린 경배곡이 제일 좋아"라고 말한다. 이것은 빠르거나 시끄럽거나 금관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찬양(praise)이라고 하고, 느리고 조용하고 깊이 빠질 수 있는 때로는 기타가 반주로 사용되는 것은 경배(worship)라고 사용하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예배'의 오용 사례다.
예배는 스타일, 음량 혹은 곡의 속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하나님은 노래가 빠르든 느리든, 시끄럽든 조용하든,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에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 모두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두를 좋아하신다. 만약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그것이 예배의 모습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하나님에 대해서보다는 우리의 배경과 인격에 대해 잘 알려준다. 한 민족의 음악이 다른 민족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시고 그 모든 것을 즐기신다.
'크리스천' 음악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기독교적인 가사가 있을 뿐이다. 노래를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음이 아니라 가사다. 영적인 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사 없이 어떤 노래를 당신에게 연주해 준다면 당신은 그것이 크리스천 음악인지 아닌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목사로서 나는 "오늘 예배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라고 쓰여 있는 쪽지를 받곤 한다. 이것이 예배에 대한 또 하나의 잘못된 개념이다.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익을...
86~목적이 이끄는 삶
이것이 예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에 대해 감사한다. 다윗은 찬양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 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 (9:30-31),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릴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면 우리의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요리해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내가 케이(Kay)와 결혼했을 때에도 우리가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어머니는 아주 기가 막힌 요리를 손수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어머니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이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시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즐거워하면 할수록 어머니는 더 기뻐하셨다.
그뿐 아니라 우리도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표현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기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극찬을 하고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냈다. 나는 음식을 즐길 뿐 아니라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다. 모두에게 기쁨이었다.
예배도 역시 이와 같은 상호 작용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해주신 것들에 기뻐하고 우리가 그 즐거움을 하나님께 표현할 때 하나님 또 한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준다.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683),同民
Day9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97
다른 능력을 주셨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하도록, 또 어떤 사람은 분석적이게 만드셨다. 우리는 기계, 수학, 음악 또는 그 외의 수천 가지 기술에 대한 능력을 받았을 수 있다. 이 모든 능력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다르게 만드셨고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보고 계신다" (시 33:15, Msg).
우리의 능력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때는 하나님께 영광이나 기쁨을 드릴 수 없다. 우리의 모습으로 있을 때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 우리 모습의 어떤 부분을 거부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창조주와 논쟁할 권리가 없다. 너는 토기장이가 빚어놓은 옹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흙은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나요' 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사 45:9, CEV).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에서 올림픽 육상 선수 에릭 리들(Eric Liddell)은 말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나를 빠르게 달리는 사람으로 만드셨고, 나는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낀다.” 후에 그는 “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속적인 능력은 없다. 단지 능력을 오용할 뿐이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 보라.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들을 즐기는 것을 보며 기뻐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각, 소리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청각, 냄새와 맛을 느낄 수 있는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을 위한 신경을 주셨다. 모든 즐거움의 행위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예배의 모습이 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주신다" (딤전 6:17, TEV).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것을 보면서도 기뻐하신다.
Day 9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 99
사실 "아니오,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순종하기를 거부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이 다시 시도해 보라고 하신 말씀에 항복하고 순종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항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한다.
완전히 내어드린 삶의 또 다른 면은 신뢰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이끄심대로 따라갔다. 한나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을 기다렸고, 마리아는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기적을 기대했다. 그리고 요셉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삶을 완전히 내어드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주관하거나,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고,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 대신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하나님께 항복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라. 항상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인내하며 기다려라" (시 37:7, GWT), 더 열심히 노력하기보다는 더 많이 신뢰해야 한다. 또한 비난에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드린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우리의 권리만 주장하지 않으며, 자신만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복하기에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돈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또한 돈도 많이 벌어 편안하게 살고 은퇴하고 싶다." 그러나 은퇴는 하나님께 행복한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
108. 목적이 이끄는 삶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욥 22:21), 둘째, 우리는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셋째,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집요한 유혹과 어려운 문제들을 그리스도께 맡길 때 그분의 능력으로 모두 해결 받을 수 있다.
여호수아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쟁을 앞에 두고 (수 5:13-15) 하나님을 대면했다. 그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렸으며, 자기의 계획을 모두 맡겼다. 그 항복이 여리고에서의 승리를 가능케 했다. 이것이 바로 역설이다. 항복할 때 승리 한다. 하나님께 항복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면 우리는 다른 것에 항복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말했다. "인간의 능력이 어느 정도 위대한지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삶을 드렸는지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
하나님은 항복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마리아를 선택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이유는 그녀에게 재능이 있거나, 부유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완전히 삶을 맡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천사가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했을 때 마리아는 차분하 게 대답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 하나님께 드린 삶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그러니 네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라" (약 4:7, NCV),
110. 목적이 이끄는 삶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모든 사람은 결국 어떤 것엔가 또는 누구에겐가 항복한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 돈, 분노 혹은 두려움, 자만심, 욕망 그리고 자아에 항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항복한다. 우리는 항복할 대상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과들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E. 스탠리 존스(E. Stanely Jones) 는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큰 혼돈에 항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삶의 방법이다. 다른 어떤 것도 안 된다. 다른 모든 방법은 좌절, 실망 그리고 자기 파괴를 낳을 뿐이다. 킹 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은 항복을 '너의 마땅한 섬김' (롬 12:1)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성경은 그것을 '하나 님을 섬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 (롬 12:1, CEV)이라고 말한다. 삶을 모두 드리는 것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자극이 아닌 이성적이고 지적인 행동이다. 가장 책임 있는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9). 우리가 가장 현명하게 행동하는 순간은 하나님께 '예'라고 대답하는 순간이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주시는 복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의지와 집요한 자만심, 개인적인 야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계획에 초점을 맞춰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의 가장 큰 일을 하려고 하신다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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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기도에 길고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 말라. 긴 말들은 대부분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라고 로렌스 형제는 권고한다. 집중력 부족의 시대에 단순하게 하라는 이 450년 된 제안은 특히 더 적절한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한 가지 방법은 '숨 기도(Breath Prayer)'를 하는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몇 세기 동안 이 방법을 사용해 왔다. 이것은 한숨에 이야기할 수 있는 짧은 문장 혹은 간단한 구절을 선택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당신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는 당신의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의지합니다" "나는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나는 당신께 속해 있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도록 도와주십시오"와 같은 문장들이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삽니다"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와 같은 짧은 성경구절을 사용해도 된다. 가능한 자주 이 기도를 반복해서 마음에 깊이 박히게 하라. 그렇지만 이러한 기도를 할 때 기도의 동기가 하나님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라. 1619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습관이다. 마치 음악가들이 쉽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음계를 매일 연습하듯이 우리도 하루 일과 중 각기 다른 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노력해서 연습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그 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상기시켜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해
120 목적이 이끄는 삶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개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예배) 배운 후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우리 삶의 두 번째 목적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관계다. 그런데 우리는 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관계에 들이는 시간, 에너지 그리고 관심을 줄이려고 한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이 급한 일들로 인해 바뀌게 된다.
바쁘게 사는 것은 관계를 맺는 데 가장 큰 적이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고, 일을 하며, 계산서를 지불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도취되어 버리지만 그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삶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사랑은 유산을 남긴다. 이 땅에 가장 오래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의 성과나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했느냐이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가 말했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만큼 사랑을 쏟았는지가 중요하다." 사랑은 영원한 유산의 비밀 열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임종 순간에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168 목적이 이끄는 삶
그들이 영생의 삶으로 막 들어서려던 순간 단 한 사람도 "내 졸업장을 가져와!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 사람들이 주위에 두번 그 졸업장을 보고 싶어. 내가 받은 상, 메달 그리고 금시계를 보여줘"라고 싶어 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가 사 랑하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맺어왔던 관계들이 삶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을 좀 더 빨리 깨닫는 것이 현명하다. 마지막 순간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우리는 사랑으로 평가받는다
사랑을 배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세 번째 이유는 영원한 나라에서 평가받을 부분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적인 성숙함을 측정하시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의 인간관계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너의 직업, 예금 계좌 그리고 취미에 대해 이야기해보아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보실 것이다(마 25:34-46).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들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영생에 들어설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이 땅에 남겨두고 가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은 성품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6).
그래서 나는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무릎을 꿇거나, 침대에 걸터..
Day 16 가장 중요한 것. 169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갈 6:10, NI.T), "모든 기회를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하라" (엡 5:16, NCV), "가능한 순간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 지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절대로 내일까지 기다리라고 말하지 말라" (잠 3:27, TEV),
왜 지금이 사랑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인가? 그것은 우리가 그 기회를 얼마나 오래 가지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황은 변한다. 사람은 죽고 아이들은 자란다. 또한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 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 해야 한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들이 있다. 사람보다 일이나 물건이 더 중요했던 순간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누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하루 일과 중에 정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떤 희생을 치뤄야 하는가?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은 시간이다.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172. 목적이 이끄는 삶
모든 교회는 그리고 모든 소그룹 안에는 적어도 한 명 이상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안정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버릇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히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 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다. 그들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교제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는 그들을 형제자매와 같이 사랑하고 존중할 것인가?
한 개인이 얼마나 똑똑하고 아름답고 재능이 많은지에 따라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속해 있기 때문에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방어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어떤 가족이 조금은 바보스럽더라도 그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처럼 서로에게 헌신하라. 서로에게 최대한 경의를 표하라" (롬 12:10, GWT),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특이한 버릇과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란 서로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의 교제의 바탕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공손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의 과거를 알아보라.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대신에 그들이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얼만큼 멀리 왔는지를 생각하라.
공손함의 또 다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의심한다고 그들을 얕보지 않는 것이다.
200 목적이 이끄는 삶
가능한 한 빨리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잡으라,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고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이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끓는다.
재빠르게 행동하면 우리의 영적인 손실도 적어진다. 성경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의 응답을 막는다고 말한다(벧전 3:7, 잠 28:9), 때문에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욥 5:2, 18:4)라고 말한 것이다.
화목을 위한 만남의 성공 여부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데 있다. 두 당사자가 피곤하거나, 마음이 급하거나, 누군가의 방해를 받을 만한 시간에는 만나지 말라.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두 사람이 모두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다.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 먼저 들어보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 (빌 2:4, TEV)고 충고했다. '돌아보다'라는 표현의 그리스어는 스코포스(skopos)다. 이 단어는 망원경 (telescope) 그리고 현미경(microscope)의 어원으로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다. 사실보다는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 해결이 아닌 공 감으로 시작하라.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라.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 그래서 그들이 방어하지 않고 감정의 짐을 덜게 하라,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한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라, 감정이 항상 진실되거나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다윗이 "내 마음이 슬프고 가슴이
Day 20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209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서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보다는 우리의 성품을 더 많이 생각하신다. 이는 우리가 영생으로 갈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직업이 아닌 성품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리스도와 닮아가는데 초점을 맞추려면 문화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 부모, 동료 그 리고 문화와 같은 다른 힘이 우리를 그들의 모습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기독교 서적을 보면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버리고 개인적인 만족과 감정의 안정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제자도가 아닌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하게, 잘 적응하여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적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분은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시기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원하셨다. 이것이 우 리의 가장 큰 특권이고, 즉각적으로 수행해야 할 책임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종착점이다.
Day 22 그리스도를 닮도록 참조되었다.. 235
하나님은 우리를 그에게로 가까이 오게 하시려고 문제들을 사용하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화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우리가 경험한 가장 깊고 친밀한 예배는 아마 가장 힘든 때 드린 예배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을 때,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심한 고통으로 신음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한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직한 기도를 배운다. 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기도를 할 에너지가 없다.
우리가 경험한 가장 깊고 친밀한 예배는
아마 가장 힘든 때 드린 예배일 것이다.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이렇게 지적했다. "삶이 잘 풀 릴 때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그분을 모방하고 인용하고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만이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갇히지 않도록 하실 수 있었고(창 39:20-22),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실 수 있었으며(단 6:16-23)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지지 않도록 하실 수도 있었다(렘 38:6), 또한 바울이 탄 배가 세 번이나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셨고(고후 11:25), 세 히브리 사람이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셨다(단 3:1-26),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문제들이 모두 일어나게 하셨고, 그 결과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256-목적이 이끄는 삶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불의, 죄, 고통, 혹은 그에 따른 이 세상에서의 고통스러운 결과들에 대해 감사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대신,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과 문제를 사용해 당신의 목표를 성취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를 바라신다.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 4:4)고 말한다. "너희 고통에 대해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학대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한다. 어떤 일부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돌보심, 지혜 그리고 신실하심에 기뻐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눅 6:23).
하나님이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또한 기뻐할 수 있다. 우리는 안전한 사이드 라인에서 상투적인 말로 격려하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분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함께하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그렇게 하셨고, 지금은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포기하지 말라
인내하며 끝까지 버티라.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3-4),
인격이 자라는 것은 길고 느린 과정이다.
Day 25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263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시험에 빠진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하나님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에는 우리가 계속 같은 시험에 빠지는 것이 부끄러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그분에게 되돌아간다고 해서 화를 내시거나, 지루해하시거나, 조급해하지도 않으신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그분은 영원히 인내하신다. 만일 우리가 특정한 시험을 이기기 위해 하루에 200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해도 하나님은 기꺼이 자비와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니 담대히 나아가라. 옳은 일을 하기 위한 힘을 달라고 구하라. 그리고 그것을 주실 것을 기대하라.
시험은 우리가 계속 하나님께 의지하게 한다. 바람이 불면 나무의 뿌리가 더 튼튼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가 시험에 맞설 때마다 우리는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넘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굴복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고 상급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Day 26 시험을 통해 성장하기 273
즉시 거룩한 사람이 되는 비밀'은 없다. 하나님은 큰 참나무를 만드는데 100년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버섯은 하룻밤 사이에 만드신다. 위대한 영혼은 고민과 태풍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거쳐 성장한다. 과정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야고보는 말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4).
낙담하지 말라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이 빠르게 움직이시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계획한 일들은 바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전이 실현되는 시간은 천천히, 꾸준히, 확실하게 다가온다. 느리게 보여도 절망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인내하라! 단 하루도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합 2:3, LB). 조금 지연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거절하시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라. 우리가 원하는 곳에 서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서 있던 곳에 있지도 않다. 몇 년 전에 사람들은 PBPGINFWMY라는 글자를 새긴 배지를 달고 다녔다. 이것은 '제발 인내하세요. 하나님은 아직 나에 관한 일을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Please Be Patient, God Is Not Finished With Me Yet)' 라는 의미였다. 하나님은 우리에 관한 일도 아직 완성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계속 전진하라. 달팽이는 강한 끈기로 방주에 도착했다.
292 목적이 이끄는 삶
성경은 거듭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신 11:13, 삼상 12:20, 롬 1:9, 엡 6:6)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섬길 때 의무감이 아닌 열정으로 섬기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즐기지 않거나 열정 없이 일할 때 성공하는 예가 거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관심을 사용해 당신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원하신다. 내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사역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첫 번째 분명한 신호는 열심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동기 부여를 하거나, 도전하거나,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상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지 않아도, 급여를 받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이와 반대의 원리도 진실이다. 우리가 마음 없이 무엇을 하고자 하면 쉽게 낙심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것의 두 번째 특징은 효율성이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좋아하게 만드신 것을 할 때는 그 일을 잘하게 된다. 왜냐하면 열정이 완벽함을 추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떠한 특정한 일에 관심이 없으면 그것을 해봤자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어느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을 보면 그 성공은 의무감이나 이익을 추구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열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말을 우리는 많이 듣는다. "나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다. 마음이 가지 않는 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물질이 아님을 기억하라, 인생의 의미가 돈 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하루는 이렇게...
Day 30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받았다.. 313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고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둘째, 다른 사람을 섬기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나누는 데 우리의 사업을 이용한다. 셋째, 최소한 수입의 십일조를 예배의 행위로 하나님께 돌려드린다(신 14:23, 말 3:8-11),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표를 부를 축적하는데 두지 않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데 둔다. 이에 대해서는 33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자신밖에 없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히 13:21, LB) 준비시키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우리가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헌신하라고 절대로 부탁하지 않으실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지표다. 만약 우리가 디자인을 잘하거나, 사람을 모집하는 일을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조직을 잘 구성하는데 능숙하다면 이 모든 재능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안전한 잣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의 능력과 우리의 소명을 일치시키신다
단지 살아가는 데만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의 사역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말한다.
318 목적이 이끄는 삶
신실한 좋은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자신을 선전하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의를 끌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를 섬긴다(벧전 5:5). 누군가가 사역을 인정해 줄 때는 겸손하게 받아들이지만, 유명세로 인해 사역이 방해되지 않게 한다.
바울은 겉모습만 보면 영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여주기 위한 쇼 내지는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끄는 섬김을 폭로했다. 그는 그것을 '눈가림(눈만 즐겁게 하는 봉사)' (엡 6:6, 골 3:22)이라고 불렀는데, 그런 섬김은 자신이 얼마나 영적인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범한 죄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돕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일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1)고 경고하셨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과 종의 마음은 함께 섞일 수 없다. 신실한 종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 섬기지 않는다. 바울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고 말한 것처럼 한 분의 관객을 위해 사는 것이다.
진실한 종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가능하면 그런 자리를 피하려 하고 음지에서 조용히 섬기는 것에 만족해한다. 요셉이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조용히 보디발을 섬겼고, 그리고 감옥의 간수를 섬겼으며, 바로 왕의 떡 굽는 관원과 술 맡은 관원을 섬겼다. 하나님은 그런 섬김의 자세를 보시고 복을 주셨다. 바로가 그를 높은 자리로 승진시켰을 때도 요셉은 계속 종의 마음을 가졌고, 특히 자신을 판 형제들에게도 종의 마음을 가지고 섬겼다.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의 많은 지도자들이 종의 자세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유명인사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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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우리는 '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겸손은 매일매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거듭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대면한다. 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느냐의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야말로 종이 되기 위한 가장 핵심 요소다.
우리가 종의 마음을 가졌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종처럼 다룰 때 어떻게 그들에게 반응하는가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아랫사람처럼 무시하며 대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 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너희를 부당하게 이용하면 종의 삶을 연습하는 기회로 사용하라” (마 5:41, Msg).
진실한 종은 주인이 아닌 청지기같이 생각한다
종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한다. 성경에서는 청지기란 종의 신분으로 주인의 소유를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죄수로서 이러한 역할을 했던 종이었다. 첫째로 보디발은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집안일을 총괄하게 했다. 그리고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간수는 요셉에게 감옥 안의 모든 일을 맡겼으며, 마침내 바로는 요셉에게 이집트 전국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므로 종의 자세와 청지기의 자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역할 모두에서 믿을 만한 행동을 기대하시고 있기 때문에 일맥 상통한다(고전 4:1).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놓으신 자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진실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돈의 문제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Day 34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347
• 바울의 느낌 :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나는 나의 감정을 너희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고후 6:11).
• 바울의 좌절 :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8).
• 바울의 두려움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2:3).
물론, 약점은 위험하다. 방어막을 거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삶을 개방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실패, 감정, 좌절 그리고 두려움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유익함은 그러한 위기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약점은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드러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또한 이는 자유로 가는 첫 단계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겸손함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겸손함이란 강점을 부인하고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들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다. 정직하면 할수록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고, 또 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은혜를 받을 것이다. 약함은 사랑스러운 특성이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들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거만함은 사람들을 주변으로부터 몰아내지만 정직함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약함은 친밀함으로 가는 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만이 아닌 약점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의 강점만을 본다면 그들은 좌절하고 ...
Day 35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 361
영어 단어 '사명(mission)'은 라틴어 '보내다(sending)'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해서 이 땅에 보내지는 것을 포 함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당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이해하셨다. 열두 살 때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 (눅 2:49, KJV)라고 말씀하셨고, 21년 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 (요 19:30)라고 말씀하셨다. 책의 앞뒤 부분처럼 이 두 문장은 목적을 따라 올바르게 산 삶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지고 계셨던 사명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하신 일을 우리는 그분의 영적인 몸인 교회로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그 사명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의 적에서 친구로 바꾸셨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친구가 되게 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고후 5:18, TEV).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탄으로부터 구원해 당신과 화해하고, 우리를 창조하신 다섯 가지 목적을 우리가 성취하기를 바라신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것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신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리고 우리를 보내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후 5:20),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을 세상에 전하는 메신저이다.
368. 목적이 이끄는 삶
물론 구원받은 이야기 말고도 여러 가지 간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 모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님이 겪게 하신 모든 문제, 상황 그리고 위기들을 기록해 두라. 그리고 그 가운데 믿지 않는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상황에 맞게 이용하라. 상황이 다르다면 다른 간증이 필요하다.
삶의 메시지는 삶의 교훈을 담는다
삶의 메시지 그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진리다. 이것은 하나님, 관계, 문제, 유혹 그리고 삶의 다른 여러 부분들에 관해 우리가 배운 교훈과 성찰이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 119:33)라고 기도했다. 슬프게도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시 106:43). 당신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더 현명한 일이다. 시행착오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울 만한 시간은 없다. 서로의 삶의 교훈에서 배워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경험자가 들으려 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경고는 가장 좋은 금으로 만든 보석보다 귀하다" (잠 25:12, TEV),
삶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들을 기록하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380 목적이 이끄는 삶
있게 사는 것, 그 외의 여러 가지 활동이 그 중심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좋은 것들이기는 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 어떤 것 도 우리 삶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붙잡아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중심이 필요하다.
아사 왕은 유다 백성들에게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라" (대하 14:4, Msg) 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헌신하면 그분은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신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서 그분이 중심에 계속 계시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7).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예배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하게 된다.
걱정은 하나님이 옆으로 밀려나셨다는 경고 신호다. 하나님을 다시 중심에 모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평안을 찾을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그 에오브레뎅사시코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예배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하게 된다.
나는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제자도(discipleship)와 관련된 문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 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신다.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가지고 갈 것은 직업이 아니라 성품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삶에서 노력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부분들을 기
410. 목적이 이끄는 삶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엡 5:25)라고 말한다. 목적 선언서에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동안, 이 목적들에 대해 말씀하는 성경 구절들도 포함시키라. 이 책에도 많은 예가 있다. 삶의 목적 선언서를 마음에 들도록 완성하는데는 몇 주에서부터 몇 달까지 걸릴지도 모른다. 기도하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말씀을 묵상하라. 완성하기까지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 완성한 후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수정해야 될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모습(SHAPE)에 대한 통찰력을 더하시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삶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는 것과 함께 짧은 슬로건을 만들어서 다섯 가지 삶의 목표를 항상 기억하고 격려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매일 스스로 그것을 상기할 수 있다. 솔로몬은 이렇게 충고했다. “이것들을 기억해서 필요할 때 바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라" (잠 22:18, NCV). 목적 선언서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 “내 삶의 목적은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나의 모습으로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가족과 교제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며, 이 땅에서 그분의 사명을 수행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 “내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가족이 되고,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며, 그분의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며,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내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에 대해 나누고,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섬기며, 나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Day 40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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