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번째 :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올 한해를 보내는 지금 이 시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 이 책을 떠올리니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작가의 말이 뇌리를 스칩니다. - 이 순간 글을 남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칩니다.
사실 책을 선택할 때 올 한해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아 고민을하였습니다. 고르는 중 제목에 눈길이 가는 바람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이즈음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들 중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사람 사이의 거리, 책의 소중함, 순간에 깨어있음이 생각에 스칩니다.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잠이 오지 않는 이 밤 이 순간을 즐겨 봅니다.
PS : 올 한해 서른 여덟권의 책을 읽고 마무리 합니다. 목표한 60권을 채우지 못했지만 여러상황 가운데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전합니다. 올 해 초 부터 오늘까지 읽은 책에서 지금의 정원을 가꾸고 키워나갑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오늘 오후 채소밭을 정리했다. 고랭지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오이넝쿨과 고춧대와 아욱대 등을 걷어 냈다. 여름날 내 식탁에 먹을 것을 대 주고 가꾸는 재미를 베풀어 준 채소의 끝자락이 서리를 맞아 어둡게 시들어 가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가꾸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22 아름다운 마무리
삶의 기술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스승의 대답.
"시간 낭비하지 말라. 네가 숨이 멎어 무덤 속에 들어가거든 그때 가서 실컷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거라. 왜 지금 삶을 제쳐 두고 죽음에 신경을 쓰는가. 일어날 것은 어차피 일어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들만 배워 왔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깨어 있음이다. 삶의 기술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깨어 있는 관심이다.
54 삶의 기술
인디언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네처럼 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71 약한것이...
평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지내다가 이런 안내문을 받아 볼 때면 나는 새삼스레 움찔 놀란다. 어느덧 세월의 뒷모습이 저만치 빠져나간 것이다. 문득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자신의 묘비명에 남기고 싶은 말도 많았을 텐데 그는 덧없는 인간사를 이렇듯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그 어떤 남기는 말보다도 진솔하고 울림이 크다. 누구나 삶의 종점에 이르면 허세를 벗어 버리고 알몸을 드러내듯 솔직해질 것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묘비명이다.
물론 나는 그 교통수당 지급신청서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주의 무거운 은혜 속에 살아온 처지에 국민의 혈세까지 축내게 할 수는 없었다.
겨울 거처가 산자락에 단칸방으로 된 홀집이라 세상은 몇 년 만의 따뜻한 겨울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코가 시리고 귀가 시린 그런 겨울이었다. 서까래가 드러난 높은 천장에다 양쪽 문이 홍문이므로 새벽녘이면 방한장비 총동원령...
77. 우물쭈물하다가는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 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90 알을 깨고 나온 새 처럼
쓰기 때문에 이런 원시적인 헛수고는 '해당사항 무'이겠지만 혹시 나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신참들을 위해 이와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중노릇이란 어떤 것인가? 하루 스물네 시간 그가 하는 일이 곧 중노릇이다. 일에서 이치를 익히고 그 이치로써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간다. 순간순간 그가 하는 일이 곧 그의 삶이고 수행이고 정진이다.
지난 물난리 때에도 나는 아궁이 앞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온 나무꾼의 소임을 거르지 않았다. 누가 중노릇을 한가한 신선놀음이라 했는가.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상황이 있다. 남과 같지 않은 그 상황이 곧 그의 삶의 몫이고 또한 과제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업이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다. 할 일 없이 지내는 것은 뜻있는 삶이 아니다. 그때 그곳에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를 일으켜 세운다.
처서를 지나면서 하루 걸러 다시 군불을 지핀다. 훨훨 타 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내 삶의 자취를 되돌아본다. 늦더위의 뙤약볕에 청청하던 숲이 많이 바랬다. 초가을 냄새가 여기저기서 풍기기 시작한다.
101 아궁이 앞에서
가진 것들을 존중할 때만이 당신들은 성장할 수 있다. 이 대지는 인간 생존의 터전이며 우리 다음에 올 여행자들을 위해 더럽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머니 대지의 물과 공기, 흙, 나무, 숲, 식물, 동물들을 보살피라, 자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대지를 보살필 때 대지도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
105 물난리 속에서
기도는 꾸준히 지속하는 그 정진력에 의미가 있다. 어쩌다 도중에 한두 번 거르게 되면 기도의 리듬이 깨뜨러지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법보전 주련에는 지금도 이런 법문이 걸려 있다.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이 주련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 전율 같은 것이 흘렀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었다.
팔만대장경판이 모셔진 그곳에서 큰 소리로 들려오는 가르침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어디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시절이 있지 않다.現今卽是 更無時節”는 임제 선사"의 가르침도 같은 뜻이다.
116 지금이 바로 그때
책은 좋은 책이다. 읽을 책도 많은데 시시한 책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사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그럼 어떤 책이 좋은 책良書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말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 든지 경전은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그저 눈으로 스치지만 말고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울림에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어 그 경전을 말한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꽉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120 책의 날에 책을 말하다.
미국에서는 자살보다도 광증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심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농경사회를 이루던 그 시절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인간의 도리와 정신적인 평온은 잃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면서도 그것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거나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전에 비하면 다들 가질 만큼 가지고 있는데도 삶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모든 생명이 새움을 틔우는 이 화창한 봄날에 어째서 멀쩡한 사람들이 생을 포기하고 도중하차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전도된 가치관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삶이 매우 아깝다.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123 자신의 그릇만큼
고일 틈이 없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전에는 상행선 휴게소가 길 건너 맞은편에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올라가 있다. 이름은 옥계휴게소, 새로 번듯한 휴게소 건물을 지어 상층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동해휴게소보다 더 가까이서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왼쪽에 시멘트 공장 건물이 바다의 한쪽을 가리고 있다. 바다는 파도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에 있지만 시야는 좁다. 동해휴게소 쪽이 훨씬 드넓고 시원스럽게 보인다.
그렇다. 사람도 얼마쯤의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너무 가까이서 대하다 보면 자신의 주관과 부수적인 것들에 가려 그의 인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
180 바라보는 기쁨
조선 영조 때 사람, 유중림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중 '독서 권장하기'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글이란 읽으면 읽을수록 사리를 판단하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해진다. 흔히 독서를 부귀나 공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는 속된 무리다.”
송나라 때의 학자 황산곡은 말했다.
"사대부는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언어가 무의미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가증스럽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사람은 정신의 음식인 책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1년 365일을 책다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이미 녹슬어 있다.
옛글에 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면 젊어서 유익하다. 젊어서 책을 읽으면 늙어서 쇠하지 않는다. 늙어서 책을 읽으면 죽어서 썩지 않는다."
새해에는 마음먹고 책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런 잔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 복 속에 책도 함께 들어 있기를.
192 녹슬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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