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2003년 가을쯤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화 스토리 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대한 멋진 미장센으로 그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갖게 된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뜬금없이 웬 냉정과 열정사이 이야기인가 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의 작가가 냉정과 열정 사이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쓴 소설의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 입니다. 사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는 일본 남녀 작가가 각각 서로 다른 시점에서 쓴 소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무관심이 있을 수 있나 싶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영화가 남긴 막강한 힘이 아니겠나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시종일간 냉정과 열정사이의 섬세한 작가의 감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가 있어야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멋진 영화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을 원전으로 한 영화 이야기를 한 것이 조금은 이상하지만 책을 읽고 난 느낌 그대로 남겨봅니다.
글의 내용이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안되지만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작가입장에서 글을 읽어 봅니다.
옛 - 치치치, 하고 말이야, 그럼 그 여자는 울음을 터뜨릴 타이밍을 놓치고는, 웃고 싶은데 웃지도 못하고, 그 야 무지 안 됐기는 하지, 코는 쿨쩍거리지, 표정은 일그러지지.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장면을 떠올리고 웃는다. 정말이지 곤은 장난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나 보다.
"곤 씨는 왜 그런 짓을 하는데?"
심각한 얼굴로 쇼코가 물어, 나는 글쎄, 라고 대답하였다. 곤은 옛날부터 동정을 싫어하였고, 남 앞에서 우는 사람은 바보 취급하였다.
"곤은 원래가 그런 놈이야."
샤워를 하면서 내가 말했다. 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인간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목욕을 한 후에 마시는 생수는 꿈처럼 맛있다. 청결한 물이 몸 구석구석까지 피돌듯 돌아, 손톱 끝까지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베란다로 나가 꿀꺽꿀꺽 소리내어 마신다.
“생수는 병이 마음에 안 들더라."
쇼코가 말했다. 쇼코는 담요를 둘둘 감고 서서, 뜨겁게 데운 위스키 잔을 두 손으로 감씨듯 쥐고 있다.
"담요, 덮어 줄까? 몸 다 식겠다."
괜찮아, 상쾌한걸, 이라고 대답하고 나는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035
야근하면 항상 전화도 걸어 주고 도너츠도 사다 주었는데, 어제는 전화도 도너츠도 없어서, 그래서 화가 난 거지.
"아니라니까. 도너츠는 사 왔어."
그런거 아무려면 어떠니, 라고 미즈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이라도 낳지 그러니."
"무슨 소리야, 그거?"
"아이가 생기면 차분해져. 나도 우리 남편 출장 가면 혼자 외로 웠는데, 유타가 태어나고부터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걸 뭐."
"그런 게 아냐."
"그런 거야."
미즈호는 단언하였다.
"그렇게 정서가 불안정해서야, 친정 어머니가 어떻게 안심을 하시겠니. 무츠키 씨도 불쌍하고.
"참 내....”
“뭣 때문에 결혼한 거야?"
"....”
.....애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야. 나는 간신히 반론하였다.
“그야 물론 그렇지."
미즈호가 무슨 말을 하는데,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미즈호는 모른다. 미즈호는 모르는 것이다.
082
한동안 멍하게 지낸다. 식욕도 없어진다. 무츠키 자신은, 전문의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그 환자를 나무라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선량한 무츠키를 슬프게 만들다니.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나는 그 옛날의 불량소녀들처럼, 그 사람의 혼을 체육관 뒤로 불러내어, 슬쩍 쏘아붙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죽고 싶으면 너 혼자서 죽어, 무츠키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아무튼 무츠키가 같이 갈 수 없게 된 이상 유원지에 가기가 귀찮았다. 나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미즈호씨 한테 미안하잖아,라고 무츠키가 빌듯이 말하길래 어영부영 오고 만 것이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일로 속이 부글거리기도 했고, 이런데나 오면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입장권 판매소 옆에 서서, 이런 곳에 온 자신을 후회하고 있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유원지는 미련스러우리 만큼 넓고 알록달 록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발랄한 음악의 부자연스러움에 내 기분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쇼코,”
유독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고, 돌아보자 하네기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청바지에 폴로 셔츠, 그 위에다 줄무늬 재킷을 걸친 키다리 하네기 옆에, 난감한 표정으로 미츠코가 서있다.
08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면 나와 마찬가지다.
"이거, 캘리포니아 오렌지?"
커다란 유리컵 가득한 주스를 꿀꺽꿀꺽 마시고, 곤이 물었다.
"그래.”
그런 거 따위 알 리가 없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캘리포니아 오렌지야. 곤은 만족스럽게, 역시, 라고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플로리다 오렌지는 훨씬 더 시큼하거든요.
무츠키가 일하는 병원으로 놀러가잔 말을 꺼낸 것은 곤이었다. 12년이나 사귀면서 일하는 무츠키 씨의 얼굴은 본 적이 없거든 요, 라고 곤은 말했다. 일하는 무츠키의 얼굴. 나도 없는데, 라고 대답하자, 곤은 하기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럼 가 봐야겠죠, 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내와 애인이 한꺼번에 찾아가다니, 얼마나 좋습니
얼마나 좋은지 어쩐지는 차치하고, 환자들의 눈에 무츠키가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했다. 전문가로서의 무츠키,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고, 버스도 순조롭게 갈아탈 수 있었다. 갈색 벽돌 건물의 병원은 한여름 낮의 햇살 속에서 졸린 표정이었다. 접수 카운터에 있는 간호사에게 무츠키의 이름을 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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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가자, 쇼코가 스톱워치를 손에 쥐고 서 있다. 헤엄치는 금붕어를 관찰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 왔어."
아무튼 나는 말했다.
"장인 어른, 지금 돌아가셨어."
욕조를 쳐다보며, 그래, 라고만 쇼코는 대꾸했다. 세면대 옆에 걸려 있는 클립 보드에 하얀 그래프 용지가 끼어 있다. 진보 상 황을 기록하려 해도 욕조가 너무 넓어, 금붕어는 아직 한 번도 횡단에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쇼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대하기 어렵다. 금붕어는 물 속에 서 꼼짝 않고 있다.
"만약 무츠키가 사기를 친 거라면."
살랑살랑 흔들리는 빨간 생물을 응시한 채 쇼코는 말했다.
"나도 사기친 거지. 안 그래?"
잔뜩 생각에 골몰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아버지는 통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아무래도,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순간 애틋한 기분이 들면서, 쇼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와 가냘픈 어깨와, 약간 홍조 띤 뒷꿈치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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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 말을 놓칠 리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침실 서랍장 제일 윗단에서 진단서 두 통을 가져와 내보이는 신세가 되었다. 쇼코의 정신병이 정상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증명서와 내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지 않다는 증명서다. 양 부모님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방향 전환을 하여, 격분하였다.
"동성애는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지만 정신병이라면 사돈 어른, 유전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개인적인 기호?"
정말 어이가 없군, 이라고 장인이 말한다.
"호모입니다, 호모, 근본적으로 결혼할 자격이 없는 인종 아닙니까. 더구나, 정서 불안정이란 일시적인 겁니다. 구미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시대입니다."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쇼코는 무표정하게 보리차를 마시고 있지만, 그녀 역시 견딜 수 없는 심정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없이 내가 말했다.
"우리는 이대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쇼코가 분명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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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이고, 뭐랄까 아주 엉뚱한 것이었다구.”
카키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끊고, 말하기 어렵군, 이라고 말했다.
"말해 봐.”
이런 때의 카키이는 정말이지 시간이 걸린다. 5분 정도 입씨름 을 하고서야, 카키이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쇼코 씨의 생각은, 그러니까, 말하기 어려운데 그, 무츠키의 정자와 곤의 정자를, 미리 시험관에서 섞어서 수정할 수 있느냐 는 거였어. 그렇게 하면, 그러니까 그, 모두의 아이가 될 수 있을 거라면서."
아연했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한 1분 정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곤이 내 턱을 친 것이다. 막무가내였다. 나는 책상으로 쓰러졌고 서류더미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다니, 무츠키는 쇼코 씨 랑 결혼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곤답지 않은, 감정적인 말투였다. 내가 쇼코뿐만 아니라 곤역 시도 줄곧 괴롭히고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때서야 처 음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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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이면 정리가 되겠지 했는데, 전화를 걸었더니 쇼균 씨가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참 내,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그렇지?"
쇼코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하고, 나는 이제 와서 무슨 말 을 하랴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둘 다 나를 속였단 말이야?"
"말하자면 그렇지 뭐.”
쇼코도 곤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생긋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거짓말하는 것 정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거든."
나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쇼코 씨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처리해 주어서, 엊그제 여기 들어왔어. 빚도 좀 졌으니까, 아르바이트 더 열심히 해야지."
곤은 싱긋 웃고는, 앞으로는 이웃 사촌이야, 라고 말한다. 농담이겠지? 대체 어떤 생활을 하자는 거야.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야채를 듬뿍 담아놓은 식기 바구니가 놓여 있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기쿠보 역 앞에 있는 캅셀 호텔에서 지냈어. 견학하러 갔더니 너무 기발해서 놀랍더라니까."
쇼코는 내가 들고 온 종이봉투의 내용물을 점검하면서, 무츠키 그런 데서 잔 적 있어? 라고 물었다.
곤은 샴페인 마개를 열고, 나는 한 잔씩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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