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은 뭔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 하나를 찾은 느낌입니다.
2세기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인이 살던 중부유럽 일대를 여행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로마인은 요일에다 신들의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었는데 게르만인도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목요일을 로마인은 '주피터의 날'로 불렸고 게르만인은 '토르의 날'로 불렀다. 공교롭게도 주피터와 토르는 똑같이 천둥과 번개의 신이었다.
그런데 자기네 고유의 신화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존중하는 현대 유럽인도 유독 요일에 관해서만은 고유 관습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영어로 목요일을 일컫는 Thursday는 바로 '토르의 날'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화요일(Tuesday)은 '티르의 날', 수요 일(Wednesday)은 '오딘의 날', 금요일(Friday)은 '프리그의 날' 로 모두 북유럽 신화 속의 신에서 유래한 이름들이다. 수요일이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오딘이란 신을 영어로는 웨덴 (Weden)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단 하나 토요일 (Saturday)만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업신 새턴(Saturn)을 요일 이름으로 사용 하고 있다.
타키투스는 저서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만 신화를 로마 신화와 비교하여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북유럽 신화 관련 문헌자료이다. 타키투스는 퇴폐와 향락에 빠져 있던 로마인에게 게르만인의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기풍을 소개하 고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 고대 게르만인의 특징을 반영해서 그런지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세련된 맛보다는 꾸밈없고 직선적인 태도로 원시적인 생명 력과 인간의 본능을 드러내 보여준다.
10
한동안 프레야는 용광로의 눈부신 불꽃에 넋을 잃었다. 부신 눈을 비비고 다시 눈뜬 프레야는 난쟁이들이 만들어놓은 기막힌 목걸이를 보고 다시 한번 넋을 잃었다. 그런데 넋을 잃은 것은 프레야만이 아니었다. 프레야가 이처럼 아름다운 장신구를 본 일이 없었던 반면, 난쟁이들도 그녀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이윽고 프레야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게 그 목걸이를 파실 수 없겠어요?"
난쟁이들은 서로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물건은 파는 물건이 아니올시다."
그렇다고 물러날 프레야가 아니었다.
“제가 무엇 때문에 그 먼 길을 걸어서 아스가르드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세요? 대가로 금이나 은을 달라고 하시면 얼마든지 드리겠어요."
난쟁이들은 낮을 찌푸렸다.
"금과 은이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있소이다."
프레야는 애가 탔다.
"그럼 무얼 드리면 될까요?"
얼굴에 홍조를 띤 프레야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난쟁이들은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첫번째 난쟁이가 말했다.
"이 목걸이는 우리 모두의 것이오."
이어서 두번째 난쟁이가 추파를 던지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중의 한 사람 것이면 나머지 사람들의 것이기도..."
59 사고뭉치 로키
그러나 오딘은 발데르를 보는 스카디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스카디에게 마음대로 고를 자유를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스카디를 불러 조건을 달았다.
"아스가르드의 총각 신들 가운데 아무나 한 명을 고르도록 해라. 단, 얼굴을 보고 고를 수는 없다. 모두 네 앞에서 얼굴을 가리고 발을 내밀 테니 발을 보고 선택해라. 그런 다음 얼굴을 보게 해 주마."
스카디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받아 들였다. 신들은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채 맨발로 뜰에 정렬했고, 스카디는 주저없이 그 중에 가장 잘생긴 발을 골랐다. 가장 멋진 발데르가 발도 가장 잘 생겼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역시 눈썰미가 좋아."
오딘은 스카디의 어깨를 톡톡치며 칭찬의 말인지 놀리는 말인지 모를 묘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스카디는 기대에 부푼 얼굴로 발의 주인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두건을 벗어던진 상대는 뜻 밖에도 발데르가 아니라 항해와 고기잡이의 신 뇨르드였다. 그의 얼굴은 오랜 바다 생활로 인해 절어 있었고 심지어는 소금냄새 마저 역하게 풍겨 나왔다. 스카디는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웃고 서 있던 뇨르드가 무안해했다.
여기서 독자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뇨르드라면 신들의 전쟁이 끝난 뒤 교환 사절로 아스가르드에서 와서 살게 된 바나 신족의 신이다. 그의 슬하에는 이미 프레이르와 프레야라는 장성한 아들 딸이 있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총각 신들 사이에 섞여 있다가 스카디의 점지를 받게 되었는가? 그 해답은 아사 신족과 바나 신족 사이의 풍습 차이에 있다.
88
144
"당신 누구야?"
호롱그니르가 퉁명스럽게 물어왔지만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오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거인은 코를 문지르며 오딘과 그의 애마를 쓱 훑어보았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표정이었다.
"당신 오는 걸 보고 있었어. 말 하나는 잘 빠졌네.”
흐롱그니르가 다시 말을 걸자, 오딘이 거만한 어조로 맞받았다.
"요툰헤임의 어떤 말도 이 말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 장담할 수 있네."
거인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오딘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나, 꼬마 친구?"
오딘은 턱을 곧추세워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틀린 말 했을까?"
거인이 코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봐, 자넨 황금갈 기 이야기도 못 들었나?"
"뭐? 황금으로 뭘 갈겨?"
오딘이 의뭉을 떨었다.
"정신 나간 놈! 황금갈기는 이 어르신이 타고 다니는 천하의 명 마란 말이다. 네 녀석의 말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우리 황 금갈기를 따라잡지는 못할걸! 차라리 황천길을 서두르는 게 나을 게다."
거인이 흥분하자 오딘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삐를 잡아채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다면 우리 한번 겨루어볼 텐가? 내 말이 이긴다는 데 내 목을 걸겠네.
144
신들 사이에 끼어 자기도 마음껏 투척 솜씨를 뽐내고 싶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어쩌랴. 또 한 명 불운의 주인공은 외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남 행복한 꼴을 못 보는 로키였다. 그는 행복해하는 신들의 꼴이 정말 보기 싫었다. 그 는 슬그머니 신들 사이를 빠져나와 프리그의 집으로 향했다.
프리그의 집 앞에 다다른 로키는 노파로 변신했다. 프리그는 마침 집안에서 아들 발데르의 무사함을 기뻐하고 있다가 낯선 노파를 맞이하였다. 근심을 싹 씻은 프리그는 매우 친절하게 노파를 대접했다.
"여기가 아스가르드인가요? 아이고 그럼 제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군요. 그런데 오다 보니 신들이 무슨 시골 장돌뱅이들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있던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프리그는 노파의 말투가 못마땅했지만 기분좋게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우리 아들 발데르가 불길한 꿈을 꾸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세상 만물을 찾아다니며 우리 아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죠, 신들이 그 맹세들을 확인하고 있는 거랍니다."
“아, 세상 만물 모두에게서요?"
“네. 딱 하나 맹세를 하지 않은 게 있긴 해요. 서쪽 벌판에서 자라는 겨우살이 가지는 워낙 약해 빠져서 그냥 무시했답니다."
노파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감추며 프리그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온 로키는 서둘러 서쪽 황무지로 달려갔다. 그곳은 오랜 세월 신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황폐했다.
신들의 황혼 167
아스가르드를 향해 내달렸다. 그의 보고를 접한 아사 신족은 아연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사절단을 조직하여 니플헤임과 지옥을 제외한 모든 세계에 파견했다.
발데르가 흉흉한 꿈을 꾸었을 때 그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만물이 이제는 기꺼이 그를 위해 목놓아 울 것을 약속했다. 아름답고 고상한 인품의 발데르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도 돌도 울었다. 세상 의 모든 병균, 세상의 모든 독초도 발데르를 기리며 엉엉 울었다.
사절단은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약속을 받아냈다고 판단하여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그들은 어느 초라한 농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암팡지게 생긴 노파가 방문을 획 열어젖혔다.
"친애하는 발데르를 위해 울어주시오. 그리하면 그분을 돌려보 내겠다고 헬 여왕이 약속했답니다."
노파는 사나운 눈매로 사절단을 쏘아보았다.
"울라고? 내 눈에 눈물 따위는 없어. 썩 돌아가라. 그깟 애송이 를 위해 거짓을 행할 만큼 한가한 내가 아니야!"
그 순간 사절단은 온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그들은 엎드려 울면서 탄원했다. 그들이 거기서 쏟은 눈물의 백분의 일이라도 노파가 흘려주면 만세상의 희망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노파는 끝내 그들의 애원을 뿌리쳤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돌아오는 사절단을 맞이하면서 오딘이 하모든 아사 신족의 신들은 비탄에 잠겼다. 단 한 명의 노파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신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 노파가 둔갑한 로키라는 것을. 그동안 신과 거인 사이를 넘나들며 어지간히 분란을 일으키던 로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 확실히 신들에게 등을 돌렸음을 그들은 간파했다.
그들은 이를 갈며 마음속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로키 이놈, 어디 두고보자!"
176
상대는 비록 삼류 한량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였다. 시구르드는 좀더 브린힐드를 설득 하다가 더 이상 시간을 끌기가 싫어 힘으로 그녀를 제압했다.
"당신이 뭘 믿고 지금 이렇게 저항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오딘이 정한 운명에 따르면 당신은 내 여자가 될 수밖에 없소. 이 불의 담장을 뚫고 들어올 사내는 단 한 명뿐이란 걸 나도 익히 듣고 있었거늘."
심한 혼란에 빠진 브린힐드는 칼을 빼앗기고 시구르드의 완력에 굴복당해 그의 말에 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꼼짝못하고 시구르드의 등에 몸을 맡긴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내가 꿈이라도 꾸었다는 건가? 분명히 이 남자는 불을 뚫고 들어왔어. 그리고 힘도 보통이 아냐.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시구르드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야. 하지만 이건 아냐. 이 남자한테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야. 아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브린힐드를 태우고 쏜살같이 규키의 궁정으로 내달리는 시구르드로부터 한참 뒤처진 곳에서 군나르와 회그니가 달리고 있었다. 규키의 궁전으로 돌아온 시구르드와 군나르는 서로 바꿔 입었던 갑옷을 다시 교환했다. 시구르드는 자기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리 연락을 받은 궁전에서는 벌써 결혼식 준비를 다 마쳐놓고 그 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나르 모습의 시구르드에게 이미 기가 꺾여 있던 브린힐드는 참담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지만 결혼식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222
그러자 브린힐드는 눈매를 치뜨고 구드룬을 쏘아보았다.
"아가씨, 그 이유를 몰라서 하는 말인가요? 아가씨와 내가 어떻게 한 곳에서 목욕을 할 수가 있어요? 저는 출신도 아가씨보다 좋고 제 남편도 아가씨 남편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잖아요? 제 남편은 아가씨 오빠, 이 나라의 왕세자예요. 아가씨 남편은 그런 제 남편의 시종에 불과하다구요."
이런 말에 발끈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진실을 알고 있는 구드룬임에랴.
"이것 봐요, 뭘 좀 제대로 알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당신 남편이 우리 오빤건 사실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당신이 함께 밤을 지낸 남자는 우리 오빠가 아니라 내 남편 시구르드란 말이에요. 우리 오빠가 당신을 차지할 능력이 모자라니까 내 남편이 오빠로 변장해서 당신을 불 속에서 꺼내와 지금까지 당신을 길들여 온 거라구요. 당신은 그 남자와 함께 잠들었을지 모르지만 내 남편은 밤이 이슥해지면 당신 곁을 떠나 내게로 와서 나와 즐거운 밤을 보 냈어요."
브린힐드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구드룬이 틀림없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 구드룬이 손을 치켜들며 결정적인 증거를 내밀었다.
“이 반지를 보세요, 이러고도 제 말이 틀렸다고는 못하겠죠. 내 남편이 당신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제게 끼워주셨거든요."
브린힐드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사태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 난 것이다. 자신은 완벽하게 농락당했다. 더구나 자신을 농락한 그 남자가 실은 자신과 영원한 사랑을 다짐했던 시구르드라니!
저주받은 반지와 영웅 시구르드 227
'2023독서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른 일곱 번째 책 : 스크루테이퍼의 편지 (0) | 2023.12.19 |
---|---|
서른 다섯 번째 책 : 반짝반짝 빛나는 - 에쿠니 가오리 (0) | 2023.11.30 |
서른 세번째 책 :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0) | 2023.11.26 |
서른 두 번째 책 : 오 해피데이 (2) | 2023.11.18 |
서른 한 번째 책 : Six Sigma 101가지 이야기 (0) | 2023.10.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