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이 제가 읽는 그의 두 번째 책입니다. 무의미의 축제인데, 올해 여름 광복절에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미술관 전시회에 관람 후 이 책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후 다음 날 동네 도서관에서 다시 책을 빌려서 기어이 읽은 책으로 기억되겠습니다.
길은 꽉 막혀 있었고, 그에게 이런 말이 들려왔다. "나는 꼭 믿고 싶구나, 너하고 나 사이에 어떤 오해도 없다고, 우리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그는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행인 하나가 요리조리 틈을 비집고 길을 건너더니 그를 돌아보며 위협적인 몸짓을 했다.
"솔직히 말할게. 누군가를,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게 나한테는 늘 끔찍해 보였다."
"알아요." 알랭이 말했다.
"네 주위를 둘러보렴.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건 아니란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진리 중에 제일 진부한 진리야. 너무 진부하고 기본적인 거여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을 정도지."
그는 몇 분 전부터 양쪽에서 조여오는 트럭과 자동차 사이로 달렸다.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자기 의지로 삶을 끝내는 일까지도 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허락해 주지 않아."
교차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는 멈춰 섰다.
도로 양쪽의 행인들이 맞은편 보도 쪽으로 건너가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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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역겨워."
"너, 왔다가 그냥 간 게 몇 번이야?"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 니라 한 주 한주 지나며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 미안. 내가 기분이 안 좋다. 어제 많이 마셨거든. 정말 너무 많이 마셨어."
"그럼 뭐 하고 싶어?"
"공원에서 좀 걷자. 날씨가 좋다. 알아, 일요일엔 사람이 좀 더 많지. 그래도 괜찮아. 봐라! 저 태양!"
알랭은 반대하지 않았다. 정말로 공원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달리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잔디밭에 빙 둘러서서 느리 고 이상한 동작을 하는 사람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울타리 너머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
"여기 있으니까 좀 낫다." 라몽이 말했다. “물론 획일성은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그래도 이 공원에서는 획일성이 좀 다양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는 네 객체성의 환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개체성의 환상이라・・・・・・ 그거 참 묘하네. 몇 분 전에 내가 이상한 대화를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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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다음 함께 걷자고 다정하게 권했다.
다르델로는 바로 이 공원에서 불현듯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그에게 이상한 거짓말을 꾸며 댔던 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을 뒤집을 수도 없으니 그냥 계속 심각하게 아플 수밖에 없었는데, 하기는 그것이 아주 거북한 일도 아니다 싶었던 것이, 비참하게 병든 사람이 익살스럽고 쾌활하게 말하면 더 매력적이고 놀라워지는 법이므로, 그런 일로 좋은 기분에 제동을 걸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곧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즐겁고 가벼운 어조로, 이 공원이 자기에게 가장 친근한 풍경에 속한다는 둥, 수차례 되풀이하여 여기가 자기의 '시골'인 셈이라는 둥, 라몽과 그의 친구 앞에서 공원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았고, 시인, 화가, 대신, 왕들의 그 모든 동상들에 대해 "보세요, 과거의 프랑스가 여전히 여기 살아 있잖아요!"라고 떠들어 댄 후에, 신이 나서 살짝 조롱기를 곁들여, 각기 커다란 받침대 위에 발에서 머리까지 실물 크기로 세워진 여왕과 공주, 섭정 여왕 등 위대한 프랑스 여인들의 흰색 동상들을 가리켰는데, 그 동상들은 10 혹은 15미터 간격으로 서서 다 함께 아주 커다란 원을 만들어 아래 있는 예쁜 분수대에 우뚝 솟아 있었다.
좀 더 멀리에는 왁자지껄한 가운데 사방에서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르델로가 미소를 머금으며 “아, 저 아이들! 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나요?"라고 했다. “오늘 무슨 축제가 있는데, 뭔지 잊어버렸네. 하여간 무슨 어린이 축제 같은 거예
7부 무의미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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