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패널로 출연한 이 책의 작가를 본 적이 있고, 달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소개되어서 낯선 출연자로인해 잠시 동안 신선한 느낌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손이 들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부럽기 때문이겠죠. 밤하늘의 별을 공부한다는 그런 멋진 느낌. 그런 동경을 처음 느끼게 된 것은 과거 퀸의 멤버 중 기타 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음악을 잠시 중단하고 천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큰 충격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저토록 신나게 기타 치다가 잠시 멈추고 천문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는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부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브라이언 메이는 훗날 영국의 어느 대학의 총장까지 하게 되죠. 사기 캐릭터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요.
오늘 만난 이 책의 저자는 브라이언 메이와 같은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동네 이웃 같은 느낌입니다. 책을 보다 보니 소탈하고 털털한 느낌이 전해져서인 것 같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제가 찍은 원픽 구절입니다.
비용이 소모되는데, 기업은, 화려한 스펙의 지원자가 몰리는 회사일수록, 큰 비용을 들여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한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반값 등록금'이니 '국가장학금'이 니가 국가적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작금의 대학 교육을 반대하는 이 불순한 사상을 가진 채 대학의 강단에 처음 선 날을 기억한다. 나는 학생들이 큰돈을 치르며 이십 대 초반을 낭비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그 시간과 비용을 내 강의에 낭비해야 먹고살 수 있는 처지였다. 첫 강의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짐짓 닳고 닳은 시간강사인 척했다. 모교는 아니었으므로 나를 아는 이는 없었고, 내가 시간강사는 처음인 박사 수료생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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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앞에서 다리는 옆에서 본 것처럼 그렸다. 그리스 헬레니즘은 사람의 삼차원 형태를 그대로 모사하려고 애썼는데, 중세시대에는 다시 이집트식의 평면 양식이 유행했다. 르네상스시대에는 다시 실제의 형태를 중시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피카소와 같은 해체적 화풍이 대두되었다. 시대에 따라 고평가되는 분야가 바뀌었지만, 그중 무엇이 가장 우월한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도 이와 비슷하다. 서양식 과학을 무조건 맹종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게 되었는지 관찰하고 탐구해 볼 필요는 있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그 자체 가 학문적 태도다. 신기하고 새로운 현상을 배우고 발견하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한다. 밤하늘의 모든 별이 한 방향으로 흐를 때 홀로 역행하는 행성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거나 신기해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사람이 수세기에 걸쳐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 끊임없이 검증하고 반박하고 새로운 근거를 더하는 것, 나의 생각을 제삼자의 눈으로 조망하는 것, 그것을 대학에서 배워야 한다.
다음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글쓰기의 형식이었다.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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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권도 넘게 선물하셨다고 한다. 한때 나는 스님 흉내를 내느라 무소유를 여러 권 사다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연쇄 선물마'를 따라 하기에는 나의 인간관계가 턱없이 빈약했다. 책이라는 것은 선물하기가 은근히 까다로운 물건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각자의 독서 취향이 있고,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은 책 좀 읽으라 는 뜻이냐며 발끈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권은 선물할데를 찾지 못해 내가 읽던 책 옆에 나란히 꽂아두었다가, '무소유'를 이중으로 소유하는게 영 머쓱해서 한 권만 남겨도었다.
어린 왕자는 해 지는 광경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 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 그렇게 황홀한 황혼은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구에서 태어난 나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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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대비 환율만 알려주면, 그거 하나만 계산해 보고 책장에서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겠다고 약속한다.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두었다가 님이 오시는 날 굽이굽이 펴지 않아도' 퍽 괜찮을 것 같다. 하루가 엄청나게 기니까 일몰도 오랫동안 볼 수 있다. 게다가 수성은 태양가 까이에 있어서, 해가 지구에서보다 두세 배 크게 보인다. 거대한 태양의 아래쪽 끝이 지평선에 닿을 때부터 위쪽 끝마 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열여 섯 시간. 지구에서는 해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 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게으름뱅이는 아니지만 슬플 때면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에게 수성을 추천해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해가 하루에 두 번지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다. 적도를 따라 펼쳐진 루거스평원 Lugus Plantia, 그 한편에 라트비아의 시인 라이니스 Rajnis의 이름을 딴, 80킬로미터 크기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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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다. 그는 아주 꼼꼼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지구를 중심에 두고서는 행성들의 운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관측자료를 다시 분석했다. 그의 자료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말하고 있었다. 태양이 가운데 있고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로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분석을 해놓고도 정작 자신의 결과를 믿지 못했다. 과학자로서 확신이 부족했던 것인지, 지동설을 주장하는 순간 시작될 교회의 탄압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 인지, 그가 지동설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정리한 것은 말년의 병석에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발간되었다. 훗날, 그가 완벽하게 옳았음이 증명되고, 지동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발상의 대전환을 촉발하는 사건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라고 비유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꼼꼼한 천문학자의 계보는 튀코 브라헤로 이어진다. 그는 많은 양의 상세한 관측자료를 남겼는데, 행성뿐 아니라 혜성의 밝기와 위치를 기록했고, 1572년 갑자기 새로운 별이 나타난 것도 발견했다. 아직 맨눈으로 밤하늘을 관측하던 시기다. 현대의 도시와는 달리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았을 텐데, 없던 별이 생겨난 것을 알아차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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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
지구와의 통신도 수월치 않다. 통신 중계역할을 하는 위성을 거쳐서만 겨우 통신할 수 있기 때문에 통화 품질도 좋지 않고 시간 지연도 길어진다. 달 기지 건설이 호황을 맞아 여기저기에 수많은 달 기지가 생긴다면 앞면과 뒷면 중 어느 지역의 부동산에 먼저 투자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달의 앞면에선 늘 지구가 보인다. 하늘의 어느 한쪽에 거대한 파란 보석 같은 지구가 떠 있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 나 크다. 다시 말하면 달에서 보는 지구는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보다 네 배나 큰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지구가 떠 있는 하늘을 가질 수 있다니, 숨 쉴 공기도 없고 먹을 유기물질도 없는 척박한 그곳으로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게다가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 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달은 우리의 오랜 벗이면서, 자주 이용당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특정 국가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쓰였고, 과 학 목적의 달탐사시대에는 우주와 태양계라는 대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견본으로 쓰였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달을 이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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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 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 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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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우리는 모두 태양계 사람들
지만 행성이었던 명왕성처럼 과제로 인정받지 못한 과제였던 그 노래를 들으며, 우주 항해의 괴로움을 과제 채점의 괴 로움으로 잊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24년 다시 달로 향할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BTS를 들으면 우주를 항해할 예정이다. 우주에서 그들이 떠나온 지구를,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볼 것이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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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와 나의 공동연구자 중에는 옛 소련에서부터 활동해 왔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된 원로 과학자가 있다. 우주경쟁시대 초반에는 소련이 늘 미국보다 한 발 앞서나갔는데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으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그때도 달 과학자였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나눠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미항공우주국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 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 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무렵에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 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4부 우리는 모두 태양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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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달 탐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 감사한다.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자료를 전 세계와 나눌 차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성과는 우리나라가 혼자 서만 잘해서 얻은 것은 아님을 생각한다. 유사 이래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교육받고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참조해 가며 쌓아온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자료를 내어놓을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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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과학자가 하는 일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더욱 실 감하게 될 것 같다.
과학자가 하는 일 중에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과학자도 에세이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도 있지만 쓰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책을 쓰더라도 대개는 전문적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책이나 대학의 교재를 집필한다. 하지만 그런 책을 쓰기에는 스스로가 아직 너무 초짜라고 여기는 일종의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초보 연구자의 고군분투기를 쓰기에는 허구한 날 연구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나의 삶이 지나치게 단조롭다. 나는 좀처럼 실험실에도 들어가지 않고, 천체 관측을 위해 오지의 천문대로 떠나지도 않으며, 남극이나 우주에도 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체 어떤 책을 쓴다는 거야?' 원고를 쓰는 데 하둥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질문을 오래도록 품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책장에 꽂힌 김중혁 작가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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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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