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글에 어느 정도는 중독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그의 어지간한 책은 모두 읽을 태세입니다. 이 책을 읽고 지금 또 읽는 책이 무라카미의 책입니다.
킥킥 그리기도 하고, 고개를 꺼덕이기도 하고 이 사람 이상한데라고도 하고 그러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는 재미있는 작가의 모습, 한 꺼풀 뒤에 작게보이는 그의 자아, 그리고 공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그으 밑줄이 포함된 책 속으로 가보겠습니다.
자리 외에는 테이블이 딱 하나뿐인 조촐한 커피집이 있고. 그곳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으면 깜깜한 방에 갇힌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거기엔 언제나 커피 잔의 친숙한 온기가 있었고, 소녀들의 보드라운 향내가 있었다.
정말로 내 마음에 든 것은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는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 그리고 등 뒤에는 네모난 틀 속 조그만 풍경이 있었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이 나를 축복했다.
그것은 아담한 소도시에서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은밀한 기념사진이기도 하다. 자, 잔을 가볍게 오른손에 쥐고, 턱을 당기고, 자연스럽게 웃어요∙∙∙∙∙∙ 좋았어, 찰칵.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주는 따스함의 문제라고 리처드 브로티건은 어느 작품에 썼다. 커피를 다룬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든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39
마이 스니커 스토리
'스니커'란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SNEAKER란 '비열한 인간' 을 말한다. SNEAKERS가 정확한 표기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SNEAK는 '살금살금 걷다'란 뜻이다. 과연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 있다. 스니커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틀림없이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신나게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누, 누구야! 아, 너군.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면 깜짝 놀라잖아."
"당신, 이제 그 새 신발 그만 신었으면 좋겠어요. 섬뜩해서 접시를 벌써 세 개나 깨먹었다고요." 뭐 이렇게.
그래도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은 아주아주 즐거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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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1872년 브래들리 씨는 '고무바닥 편자도 있는데, 인간의 신발 밑창에도 고무가 붙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코페르 니쿠스적, 오카모토 다로적 발상의 전환을 이룬다. 그렇게 해서 '브래들리 고무바닥 신발'이 탄생한다.
'브래들리 고무바닥 신발'은 언제부터인가 SNEAKERS 라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악의에 찬 이름이 붙은 걸 보면, 보수적이며 온화한 보스턴 시민들은 브래들리 씨와 그의 발명품에 대해 꽤나 진저리를 쳤던 모양이다.
세월은 바뀌어 1982년.
나는 스니커를 무척 좋아한다. 일 년 중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다닌다. 덱 슈즈로 컷, 농구화 모델, 하양 빨강 파랑 컨버스, 케즈, 정말 여러가지 스니커를 갖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길을 걷노라면 나이를 먹는 것 따위 눈곱만큼도 두렵지 않은 기분이 든다.
때로 어떤 사람이 스니커를 발명했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러
•북미 인디언 중 한 민족.
•일본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
모로 궁리한 끝에 이런 허구를 생각해 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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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뒤엉킨 실타래 같던 머릿속이 한올 한올 소리 없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찻집을 한 군데쯤 알고 있으면 누군가와 긴요한 얘기를 할 때도 편리하다. 그런 찻집에서는 쾅쾅 울려대는 스티비 원더의 (Part- Time Lover)에 대적하듯이 "있잖아. 이번 일요일에 시간 괜찮으면" 하고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된다. 세련된 찻집은 얼마든지 있지만 조용한 찻집은 갑자기 찾는다고 해서 쉬 눈에 띄는 게 아니니 알아두면 은근히 쓸모가 있습니다.
시내에서 문득 책이 읽고 싶어질 때는 오후의 레스토랑이 최고다. 조용하고, 밝고, 한적하고, 푹신한 의자가 있는 레스토랑을 한 군데 확보해 둔다. 와인과 가벼운 전채만 주문해도 점원이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친절한 곳이 좋다. 시내에 나갔다가 시간이 남으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들고 그 레스토랑에 들어가 화이트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러면 아주 호사스럽고 한가로운 기분이 든다. 체홉 같은 작가의 책을 읽으면 무척 조화로운 풍경이 될 것 같다.
생활 속의 이런 소소한 요령은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정보지에 실려 있지도 않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도쿄에 사나 그린란드의 설원에 사나 별 차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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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했고, 게다가 전곡이 다 끝난 후에 전곡을 다시 한번 연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엉터리 같다. 이미 3악장이 끝났는데, 그것도 번듯한 콘서트 홀에서 "아, 브람스군. 방금 악장 꽤 좋았어. 다시 한번 하도록" 이라니. 제아무리 후원자에다 공작이라 해도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언어도단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게 통했던 것이다. 어쩌면 롯폰기에 있는 요즘 재즈 클럽에서처럼, 멋진 솔로 연주가 나오면 모두들 "오예 오예!" 하고 환호했을지도 모르겠다. 꽤 신났을 것 같다.
테이블 매너에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잡다한 것이 많다. 특히 서양 요리가 그렇다.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격식을 갖춘 곳에서는 밥을 포크 뒷면에 얹어서 먹어야 한다는 매너가 있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고기는 꼭 한 조각씩 썰어서 입에 넣어야 한다. 그 매너도 참 성가시다. 나는 요즘에는 식사 시작 단계에서 최대한 절단 작업을 끝내고, 그다음은 나이프는 제쳐두고 포크만 오른손에 쥐고 먹는다. 매너에는 어긋나지만. 그러는 편이 훨씬 더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예쁜 여자가 포크만 가지고 식사하는 모습은 엄청나게 섹시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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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택시 요금을 지불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후로는 온종일 셰이빙 크림을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셰이빙 크림을 한 손에 들고 걷다 보면 거리가 여느 때와 좀 다르게 보인다. 권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걸으면 거리가 여느 때와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셰이빙 크림 하나로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바에 들어가 카운터 위에다 셰이빙 크림이 든 봉투를 슬며시 올려놓고 위스키를 즐기는 것도 상당히 멋스럽다. 그게 어디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면 제일 먼저 그 지역 슈퍼마켓에 뛰어들어가 셰이빙 크림을 산다. 그리고 그것을 호텔의 욕실 선반에 면도기와 칫솔과 함께 나란히 늘어놓는다. 그러면 그때야 '아아, 외국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제품은 질레트의 '트로피컬 코코넛'이란 셰이빙 크림인데, 그것으로 면도를 하고 있노라면 한 걸음 너머가 이미 와이키키 해변인 듯한 기분이 든다.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179
학교의 정문이 내려다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후 한숨 돌리고 있노라면 대개 이 고등학교의 등교 시간이다. 똑같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들이 줄줄이 걸어와 교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이 보인다. 한참 구경하다보면 차츰 여자애들이 종종거리며 길을 달려온다. 이윽고 운명의 종소리가 울리고, 교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닫힌다. 트레이너 차림의 심술궂게 생긴 선생이 문 옆에 서서 지각한 여자애들에게 일일이 훈시하며 이름을 적는다.
그러나 개중에는 '지각생이란 딱지를 호락호락 붙일 성싶으냐'는 발상을 하는 용감한 여고생이 반드시 있다. 그런 여자애는 교문 가까이에 있는 전봇대 뒤에 숨어 사태를 관망하다가 트레이너 차림의 선생이 잠시 한눈파는 틈을 타, 날쌘 토끼처럼 길을 가로질러 이웃집 담으로 뛰어올라서는, 살살 그 담을 타고 그대로 학교 안으로 뛰어내린다. 그러고는 치맛자락을 탁탁 털고, 시침 뚝뗀 얼굴로 교실로 들어간다. 용기와 판단력과 체력을 모두 갖추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아슬아슬한 재주다. 이런 장면을 보면, 나는 호텔 4층의 창가에서 나도 모르게 짝짝 박수를 치 고, 그날 하루를 즐거운 기분으로 보낸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 여고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을 제법 좋아한다.
랑게르한스님의 오후 187
외출하는 일도 있다.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가서는 목욕하리는 줄 착각하고 옷을 전부 벗어버린 일도 있다. 그것도 한참 시간이 지나기까지. 대체 무슨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아무 의미 없는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빤히 쳐다보는 일도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아니, 왜 이런 걸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보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의식이 없다. 전에는 지하철역에서 몸매 보정 팬티인지 뭔지의 포스터를 몇 분 동안이나 빤히 쳐다본 적도 있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창피했다.
이럴 때는 참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할 뿐이다. "하루키 씨는 좀 덜렁거리는 게 귀여워!"라고 젊은 여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나이를 먹어서까지도 내내 이런 꼴이라면, 영락없이 노망 난 노인네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어둡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써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인간인지라 이런 일종의 비사회적 행위도 예술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툭하면 전철을 잘못 타고, 전철표와 디스코텍 우대권을 바꿔 내는 바람에 역무원 아저씨한테 꾸지람을 듣는 외과 의사에게 어찌 맹장 수술을 맡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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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에 대한 성찰
나는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라는 영화에 그리 감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영화의 완성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UFO에 별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만두를 싫어하니까, 만약 만두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면 그 작품에 매기는 점수 역시 상당히 낮지 않을까 싶다. 이기적인 사고방식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다.
하긴 만두와 달리 UFO는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단순히 관심이 없을 뿐이다. UFO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누가 있다고 하면 '있나' 하고 생각하고, 없다고 하면 또 '없나' 하고 생각한다. 백지상태랄까, 어느 쪽이어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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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확행
최근 바지를 미국식으로 '팬츠'라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안에 입는 팬티, 즉 종래의(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팬 츠는 뭐라 불러야 좋을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다. 영어로는 언더 팬츠겠지만, 그런 명칭이 확실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바깥 팬츠와 속 팬츠의 혼란 상황이 그 혼미함의 도를 점점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언더팬츠'를 모으는게- 물론 남성용입니다- 일종의 취미다. 가끔 백화점에 가서 '저걸 살까. 이걸 살까' 하고 혼자 망설이다 대여섯 장을 한꺼번에 사들인다. 덕분에 서랍장 안에는 상당한 양의 팬츠가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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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 만 깨끗한 팬츠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이한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혼자 사는 독신자를 제외하고 자기 팬츠를 제 손으로 직접 사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또 러닝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면냄새가 풍기는 하얀 러닝셔츠를 새로 꺼내 머리부터 꿸 때의 기분 역시 소확행 중 하나다. 다만 러닝셔츠는 늘 같은 상표의 같은 물건을 한꺼번에 사니까. 팬츠와 달리 골라서 사는 즐거움은 없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 속옷이라는 장르는 기껏해야 이게 다다. 여성의 속옷이 커버하는 광대한 영역에 비하면, 마치 분양주택의 앞뜰처럼 좁고 간결하다. 오로지 팬츠와 러닝셔츠뿐이니 말이다.
때때로 속옷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남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감회에 젖는다. 만약 내가 지금의 성격 그대로 여자로 태어났다면, 두세 개 정도의 서랍에는 도저히 속옷을 다 넣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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