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쓴 글이고 작가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그가 옆에서 나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차곡차곡 마음 한켠에 그의 글들을 쌓아둔다...
음식물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이 과식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먹는 것만으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안팎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생활 습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평생 자신을 위해 수고해 주는 소화기를 너무 혹사하지 말고 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출출한 공복 상태일 때 정신은 가장 투명하고 평온하다.(20여년 전 저자가 최근 의료연구결과를 맞췄다.)
말은 들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입을 닫은 침묵을 통해서 말의 의미가 목적에 차오른다. 참으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간단명료하다. 그밖에는 습관적인 또 하나의 소음일 것이다.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나무나 새, 바위나 곤충 또는 구름이나 바람한테 혼잣말을 할 때가 더러 있다. 이런 경우는 한 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무심하다. 이런 무심한 소리에는 그 삶의 향기가 배어 있을 듯싶다.
그리고 오늘 아침나절 나는 또 어떤 행동을 했는가. 아침 기온이 영상 2도, 방이 식어 군불을 한 부엌 지폈고 집 뒤 나뭇간 사이에 있는 추녀 끝 물받이 홈통에 쌓인 낙엽을 긁어냈다. 눈이 쌓여 얼어붙으면 물받이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해도 내가 할 일이므로 그때그때 눈에 띌 때마다 즉시 해치워야 한다. 이 다음으로 미루면 무슨 일이든지 미루는 나쁜 버릇이 생긴다. 이다음 일을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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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곳에 내가 할 일이 있어 내가 그곳에 그렇게 존재한다. 누가 나 대신 그 일을 거들어준다면 내 몫의 삶이 그만큼 새어나간다. 뜰에 뒹구는 가랑잎은 바람이 알아서 치워줄 것이다.
오늘 나는 이와 같이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내 실존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나를 형성하고 내 업을 이룬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듣고,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현재의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쌓은 업이다. 이와 같이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간다,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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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들의 가슴을 찌르는 명언이다. 물건과 재산만으로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예전에 비해 많은 물건과 편의시설 속에서 영양분도 많이 섭취하면서 잘 먹고 잘 입고 번쩍거리면서 산다. 그러나 만족할 줄도, 행복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도 높다.
티베트 노인의 말처럼 현대인들이 불행한 것은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째서 그토록 넓고 크고 많은 것이 필요한가.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사람의 지혜를 오늘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의해 내 인간 가치가 매겨진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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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 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 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차피 저마다 자기식대로 사는 게 인생이다. 똑같이 살라는법은 없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한다. 홀로 있을 때 전체인 자기의 있음이고, 누구와 함께 있을때 그는 부분적인 자기이다. 우리 시대의 영적인 스승 크리슈나무르티도 일찍이 말했다.
'홀로'라는 낱말 자체는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홀로일 때 비로소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아웃사이더로 있으리라. 홀로 있을 때 완벽한 생동과 협동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전체적이기 때문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지 혼자 지낸다고 해서 과연 '홀로 있음'인가.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은 홀로 있음 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즉, 개체의 사회성을 말한다.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도 뿌리는 대지에 이어져 있듯.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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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
다코타 족 인디언 오히예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인디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내 본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는 나날이 커져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먼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자기 관리를 소홀히하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그 인생은 추해지게 마련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즐거움이 없으면 그곳에는 삶이 정착되지 않는다. 즐거움은 밖에서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을 거치면서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한다. 부분적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기 일 때, 순간순간 생기와 탄력과 삶의 건강함이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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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생길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자칫 선민의식에 도취되어 이기적인 벽에 갇히기 쉽다. 그들한테서는 인간다운 체취를 맡기 어렵다.
그러나 세칭 이류나 삼류 쪽 사람들한테서는 보다 인간적인 기량과 저력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을 대하면 우선 마음이 편하다. 저쪽 마음이 곧 내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후덕함과 여유가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일류가 못되고 이류나 삼류 또는 아류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고랭지의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은 과연 어떤 꽃을 피우고 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제발 일류가 아닌 삼류나 아류의 꽃이었으면 좋겠다.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하였다'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그 모진 추위와 비바람과 뙤약볕에도 꺾이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의지가 선연한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다.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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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저마다 다른 환경과 상황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기준(틀)으로 행복을 잴 수 없다는 말이다.
내 식대로 표현한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로 물어야 한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안에서 꽃향기처럼 들려오는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면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꽃과 잎과 열매를, 바람이 숲을 스치고 지나가듯이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어느새 꽃이 피고 잎이 펼쳐지고 열매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과 밖이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되면 모든 현상은 곧 우리 내면의 그림자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두 개의 화분 곁으로 다가서서 "잘 잤는가"라고 문안 인사를 건넨다. 지난 입춘날(2월 4일)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꽃시장에 들러 바이올렛 화분을 하나 사왔다. 단돈 천5백 원에. 그때는 정갈하게 핀 세 송이 하얀 꽃 이 눈을 끌었다. 화분 중에서도 가장 작은 화분이었다.
4월 초에 다시 그 꽃시장에 들러 같은 화분을 하나 더 사왔다. 나야 성미가 괴팍해서 전부터 홀로 떨어져 살기를 좋아하지만 화분은 달랑 혼자서 지내는 것이 외롭고 적적할 것 같아 친구를 하나 데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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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고생 끝에 참회를 하고 겨우 나았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진다. '자비도량참법'은 여기에서 유래된 참회 의식이다.
육중한 의자가 나를 깨우쳐주기 위해 이 궁벽한 산골에까지 찾아왔구나 생각하니 그 '의자 보살'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행복에 어떤 조건이 따른다면 어디에도 얽매이거나 거리낌이 없는 이 홀가분함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외부적인 여건보다도 묵은 틀에 갇혀 헤어날 줄 모르는 데에 그 요인이 있을 것이다. 마음에 걸린 것이 있어 본마음인 그 따뜻함을 잃으면 불행해진다. 마음을 따뜻하게 가져야 거기에 행복의 두 날개인 고마움과 잔잔한 기쁨이 펼쳐진다.
당신은 행복한 쪽인가. 아니면 불행한 쪽인가. 한 생각 크게 돌이켜 다 같이 행복의 쪽에 서기를 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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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바르고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이런 일이 곧 마음 닦는 수행이고 중노릇이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스승들도 도를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곳은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곳이라 옷을 다릴 때는 내 식으로 다린다. 그 비법을 이 자리에서 공개해야겠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버려진 전기다리미를 주워다가 전선을 잘라내고 부탄가스버너에 불을 켜 다리미를 올려놓으면 열을 받아 가스 다리미 기능을 한다. 다리미가 무거운 것일수록 축열 효과가 좋아 잘 다려진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궁하면 통하게 마련인 것 같다.
지난겨울부터 다시 하루 두 끼만 먹고 오후에는 먹지 않는다. 목이 마르면 생수를 마시거나 차를 마실 뿐이다. 예전부터 불교의 수행자들은 오후에는 먹지 않았다. 오후에 먹지 않으면 마음도 한가하고 뱃속도 한가해서 좋다. 산중에서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은 번거롭다. 그리고 탐욕스럽게 여겨진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을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대충 마치고 나면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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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는 믿음직한 몇몇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청랭한 개울 물소리를 들을 때처럼 내 속이 트이면서 생각의 실마리가 풀린다.
소로우의 《월든》과 허균의 <한정록》과 아메리카 인디언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과 조주 선사가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고 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속이 더욱 깊어지고 투명해진다. 이 좋은 친구들이 있으니 나는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그들은 나를 늘 깨어 있게 한다. 때로는 사는 즐거움이 꽃향기처럼 오두막에 번지는 것도 이런 친구들의 덕이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건 간에 좋은 친구를 통해 삶의 질서와 규범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격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덧없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는가.
이제는 또 군불을 지피러 나갈 시간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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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풍류를 아는 분이라 파초잎을 꺾어다 찻상 위에 깔고 그 위에 다기를 차려 놓으니 차를 마시기 전부터 맑은 기운 이 차 향기를 돋우었다.
뒤꼍에 심어 놓은 다섯 그루 소나무도 자리가 잡혀 새움이 많이 돋았다. 칡넝쿨이 감고 올라 낫으로 그것을 걷어냈다. 심어 놓은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는 걸 볼 때마다 대견스럽고 생명의 신비 앞에 숙연해진다.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보다 나무들이 좋아서일 것이다. 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여, 고맙고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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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러 나갔다가 맑게 흐르는 물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이 개울물에서 세월을 읽는다.
가을 물이 맑다고 했는데 사람은 어느 때 가장 맑을까?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귀가 밝다. 이 말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가을바람에 감성의 줄이 팽팽해져서 창밖에 곤충이 기어가는 소리까지도 다 잡힌다.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를 하느라고 상수리나무에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오 관이 온통 귀가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사람은 맑아진다. 너와 나의 간격이 사라져 하나가 될 때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 가을 들어 나는 빈 그릇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서쪽 창문 아래 조그만 항아리와 과반을 두고 벽에 기대어 이만치서 바라본다. 항아리는 언젠가 보원요 지헌님한테서 얻어 온 것인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낸 그릇이라 그 연한 갈색이 아주 천연스럽다. 창호에 비껴드는 햇살에 따라 빛의 변화가 있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백자로 된 과반은 팔모 받침에 네모판으로 된 것인데 가로 한자 두치, 세로 한 자의 크기. 과반치고는 크다. 이 역시 빈 채로가 더 듬직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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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를 걸쳐 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개울이 많이 씻겨 내 국가 그 폭이 너무 넓어졌기 때문이다. 산동네 사람 뜻에서 힘을 모아 최근에야 물길이 옅은 곳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징검 다리는 비가 많이 오면 이내 잠수교가 될 것이다.
개울물에 띄엄띄엄 놓은 그 징검다리를 징검징검 딛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오두막 둘레의 개울도 아주 낯설게 변해 있었다. 눈에 익은 큰 돌들이 사라지고 난데없이 바위가 굴러와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의 돌담이 절반쯤 무너져 내렸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방 안에 귀뚜라미들이 몇 마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밤의 친구들이다. 아궁이에서 젖은 재를 켜내고 군불을 거라는데 아궁이 속이 눅눅해서 불이 잘 들이지 않는다. 한참을 부채질해서 불을 붙여 놓았다.
그대 가을바람에 숲이 성글어졌다. 붉나무에는 벌써 가을이 내리고 있다. 개울가에 피어 있음 직한 용담은 토사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땅을 치우고 여름 동안 비워두었던 벽에 액자를 하나 내걸었다. 언젠가 송영탕 화택이 내 책 표지화로 그려준 것인데 담채 만주상으로 그린 연꽃 그림이다. 그 여백에 내가 국제표를 써 놓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 장에 나오는 구절인대 초기 불교에서 출가자가 처신해야 할 생활 태도에 대해서 말씀한 가르침이다.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에 걸리거나 물들지 말라는 교훈이다. 다음과 같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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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복더위에 뚱딴지같은 물음이라 이 자리를 빌어 대답하기로 한다. 잘 들으라.
삶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그 자신의 삶이 있을 뿐이다. 정진이 잘 안 된다고 했는데, 정진이란 무엇이며, 왜 정진을 하는지 그 일부터 밝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정진은 한결같이 꾸준히 나아감을 뜻한 말이다. 날씨처럼 갠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듯이 정진도 또한 그럴 것이다. 잘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잘 되면 되는대로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한다면 마음에 분별이 사라질 때가 올 것이다. 인욕과 정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참는 것이 곧 정진이다. 인욕으로 정진 삼으라는 말이다.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그것은 정진이 아니다. 명심하라.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 무엇인가와 그 무엇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하라.
이와 같이 한다면 그대의 삶 자체가 곧 선정삼매가 될 것이다.
뭐, 잠을 잔다고? 웃기지 말게. 잘 바에야 누워서 편히 잘 것이지 않아서 비몽사몽 꿈속을 헤맬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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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떠들어대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영혼이 있다면,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이슬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시키는 영혼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서로의 향기로써 대화를 나누는 꽃에 비해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 인간인 우리는 꽃에게 배울 바가 참으로 많다.
식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까? 물론 알아듣는다! 생각을 담은 말이기 때문에 영혼이 있는 존재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식물학자의 실험을 빌릴 것도 없이 언젠가 내 자신도 경험한 바 있다. 어느 해 가을, 개울가에 다른 꽃은 다 지고 없는데 용 담이 한 그루 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꽃 속이 어떻게 생겼 을지 몹시 궁금했다.
입 다물고 있는 용담의 꽃봉오리에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나는 네 방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데 한 번 보여주지 않을래?" 하고 청을 했다. 다음날 무심코 개울가에 나갔다가 그 용담을 보았더니 놀랍게도 꽃잎을 활짝 열고 그 안을 보여 주었다.
어떤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 이쪽에서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여야 저쪽 마음도 열린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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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는 동물과 식물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식물은 인간이 이 지구에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와 꽃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무한한 우주의 생명 앞에 마주 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산목숨을 소홀히 여겨 무자비하게 허물고 살해하는 이 막된 세상에서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나무와 꽃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전하는 우주 생명의 신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은 산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식물이 없으면 동물은 살 아갈 수 없다. 한 그루 나무와 꽃을 대할 때 그 신성 앞에 고마 운 생각부터 지녀야 한다.
봄은 가도 꽃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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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웃들에게 충격과 서운함이 클 것이므로 그 충격과 서운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서히 물러가는 연습을 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달마다 쓰는 이런 글도 좀 달리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가를 돌아보니 내가 그동안 쓴 글들이 번역물을 포 함해서 서른 권 가까이 되는구나. 말을 너무 많이 해왔듯이 글도 너무 많이 쏟아 놓은 것 같다. 세월의 체에 걸러서 남을 글 들이 얼마나 될지 자못 두렵다.
말과 글도 삶의 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전제됨이 없이는 새로운 말과 글이 나올 수 없다. 비슷비슷한 되풀이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선감이 없는 말과 글은 그의 삶에 중심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읽히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삶의 진실을 담 고 싶다.
옛글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나이 칠십에도 어떤 직위에 있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되 었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과 같아서 그 허물이 적지 않다'
이 구절을 나는 요즘 깊이 음미하고 있다. 요즘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참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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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인생의 전 과정으로 볼 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생각 돌이키니 그곳이 교도소가 아니라 국립 선원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도소 안의 규제와 제약을 구속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주는 부처님 법이라고 생각하니 그대로가 자유라고 그는 말한다.
'일체 만물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사랑할 것을 다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라고 그의 편지는 맺는다.
남쪽에서 전해 오는 꽃 소식에 못지않게 이 봄에 듣는 훈훈 한 봄소식이다. 그는 지금쯤 자유의 몸이 되어 꽃향기가 밴 밝은 햇살을 한 아름 안고 새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한 생각 돌이키니 교도소가 국립선원으로 바뀌더라는 그의 체험담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리고 둘레의 규제와 제약이 그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지켜 주는 부처님 법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니 값진 체험이다.
천당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결코 먼 데 있지 않다. 내가 지닌 그 한 생각에 천당과 지옥이 달린 것이다.
지혜가 딴 데 있지 않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그 자리이며, 사 랑또한 미움이 가시고 난 바로 그 자리다. 그래서 번뇌가 보리 (도)를 이루고, 생사가 열반(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라고 한 것이다.
이 봄에 당신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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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윗목에 종이를 깔고 잘게 썬 무를 말리고 있다. 낮에 는 햇볕이 들어오는 곳이다. 겨울 동안 내가 즐겨 먹는 부식인 데, 그 어떤 찬거리보다도 이 무말랭이를 나는 즐겨 먹는다.
얼마 전에 장에서 무를 한 배낭 가득 사 왔다. 그때 그 무게가 아직도 내 왼쪽 어깻죽지에 남아 있다. 개울물에 씻어서 물기를 말린 뒤 난롯가에 앉아서 삭둑삭둑 썰 때 울리는 도마질 소리가 잔칫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산중에서 벌어지는 겨울 잔치.
말린 무를 바구니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 꺼내어 한 단지씩 채워 진간장을 부어 놓는다. 가끔 작은 주걱으로 뒤적여 간장 이 고루 배어들도록 해야 한다. 간장이 충분히 배어들지 않으 면 질기다. 꺼내 먹을 때 고춧가루와 참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입맛에 따라 설탕을 조금만 치거나 치지 않아도 된다.
무말랭이는 조근조근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나처럼 성질 이 급한 사람도 무말랭이 먹을 때만은 천천히 씹어 그 특유한 맛을 음미한다. 송나라 때의 왕신민이란 학자는 이런 말을 남 겼다.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
기름지게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무엇을 뜻 하는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담백하게 먹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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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내게 나누어준 그 마음씨도 너무나 착하고 기특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곱게 자란다면 이 땅의 미래도 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전 나는 정기집회에서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이 무엇이라는 걸 그 애가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나눔이란 이름을 내걸거나 생색을 내지 않고 사소한 일상적인 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끼어들려는 차에 선뜻 차로를 양보하는 일,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 뒤에 오는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마음 쓰는 일, 또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열린 문을 붙잡아주는 일,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는 일, 이와 같은 일들이 다 나눔 아니겠는가. 나눔에는 무엇보다도 맞은편에 대 한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흔히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거두어들임이 아니고 나누어줌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여름날의 폭풍우와 뙤약볕 아래서 가꾸어 온 이삭과 열매와 잎과 뿌리를, 곡식과 과일과 채소들을 무상으로 나누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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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어떤 계기에 이름을 인도식으 로 바꾸고 명상 수행자가 된 '람 다스'는 생활 규칙으로 다음과 같이 권유한다.
-하루에 한 시간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라.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잠들지 말고, 조용히 명상을 하다가 잠들도록 하라. ㄹ
-간소하게 먹고 간편하게 입으라.
-사람들하고는 될 수 있는 한 일찍 헤어지고 자연과 가까이 하라.
-텔레비전과 신문을 무조건 멀리하라.
-무슨 일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그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라.
-풀과 벌레들처럼 언젠가 우리도 죽을 것이다.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이 다. 이 24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 든지 달라진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지만 하루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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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할 일을 대신하게 되면 사람은 스스로 존재 의미를 잃는다.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것은 돈이나 물건이나 집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가 돈이나 재산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에 따라 그는 부자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드물게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할 수 없다. 그 마음이 곧 부자이기 때문이다. 나눌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부자가 있기 때문에 도둑과 강도가 생긴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나름의 삶의 철학이 있다. 그들은 절제의 미덕을 알고 있다. 그들은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기보다는 안으로 맑고 조촐하게 누리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원한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삶도 하나의 기술이다. 먼저 우리들의 삶에 무엇이 보다 값있고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영원히 빈 껍데기로 처질 것이다.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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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것만을. 그것도 최소한도로 갖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고마워하는 삶의 태도는 결코 낡고 소극적인 생활 방식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생활 태도는 오늘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 지혜로운 삶의 철학이다.
당신도 부자가 되고 싶은가? 우선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당신 다운 삶을 이루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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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보면 이와 같은 빈부 격차의 맥락으로 보는 견해가 미국 내의 양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이웃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이웃과 함께 나누며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았던 우리 선인들의 순박한 그 마음씨가 그립다. 분수 밖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맑은 가난의 미덕을 다시 생각할 때다. 탐욕을 이기려면 우선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대상마다 보다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임제 스님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목주 선사는 고향 땅 목 주의 개원사 주지로 있으면서 깊은 밤이면 부지런히 왕골로 짚신을 삼아 그것을 곡식과 바꾸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선사는 밤잠을 줄여가며 짚신 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한 묶음 짚신 꾸러미를 남몰래 지고 나가 큰 길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신고가게 했다. 그래서 선사의 별명을 진포혜라고 했다. '진'은 스님의 속성이고 '포혜'는 왕골로 삼은 짚신이다.
지리산 자락에 홀로 사는 60 넘은 한 노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이 버린 물건을 거두어다 망가진 것은 말짱하게 고치고 해진 것은 빨아서 깨끗이 꿰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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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에 선반을 만들어 거기 물건을 놓아두고 아무나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한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웃에게 어떤 일을 나누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잘 산 한 해였는지 허송세월을 했는지 점검한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나누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날이다. 이웃과 나누는 일을 굳이 돈만 가지고 하는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 한 그 마음씨가 소중하다.
나누는 일을 이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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