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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독서정리

열 두 번째 책 :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by 마파람94 2023. 4. 30.

 

또 하루키의 책을 들고 말았습니다. 재미있고 웃게 되는 글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로 치환되는 글들이 많아 공감이 됩니다.

 

 




지쿠라에 대하여

나는 고베에서 자랐기 때문에 쇠고기와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거나 하면 정말이지 행복하다. 도쿄에는 바다가 없고(있긴하지만 그건 바다축에 끼지도 못한다) 쇠고기도 비싸다. 유감천만이다.

이따금 바다가 그리워지면 쇼난이나 요코하마에 가는데,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일부러 바다를 보러 예까지 왔습니다' 하는 느낌이 앞서기 때문이다. 바다 쪽도 '여, 이것 참 잘 오셨습니다'라는 듯한 느낌이다.

바다란 역시 가까이서 밤낮으로 그 냄새를 맡으며 살지 않으면 정수를 알 수 없는게 아닐까? 쇼난이나 요코하마의 바다는 지나치게 세련돼서 그런 '생활감각으로 보는 바다'가 타지에서 온 방문객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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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미나미보소 일대 해안이 마음에 든다. 특히 지쿠라가 좋다. 풍경이라 할 만한 것은 없지만, 여름휴가철을 제외하면 평상시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고, 무엇보다 바다 자체에 리얼리티가 있다.

철썩하고 파도가 밀려왔다가 쏴아 하고 밀려나간다. 조개껍데기며 다시마가 파도치는 해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해안을 어슬렁거리는 개도 쇼난에 비해 왠지 더 다부진 느낌이다. 그런 곳에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짜 바다구나' 싶은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시티 워킹 27

지쿠라라는 동네는 실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고향이다. "지쿠라에 가서 안자이랑 아는 사이라고 하면 누구든 돈을 빌려줄 거예요"라고 미즈마루씨는 말한다. 틀림없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혹...... 정말 그런가 싶을 정도로 자그마하고 조용한 동네다.

지쿠라에서 가장 근사한 건물은 해변에 있는 K출판사 소유의 집이다. 나는 딱 한 번 "원고를 쓰려고요"라고 거짓말하곤 거기에 묵은 적이 있다.

그 일이야 어찌됐든, 상당히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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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그라피티 (6)

나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는 인간인데, 미타카 시절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짧은 일기를 썼다. 뭐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뭘 먹었다. 무슨 영화를 봤다. 누구를 만났다. 몇 번 했다 하는 정도밖에 쓰여 있지 않지만, 그래도 뒷날 읽어보니 제법 재밌다.

1971년 당시의 일기를 보니 석간신문이 15엔이다. <헤이본 펀치>는 80엔, 쇠고기 200그램 180엔, 하이라이트 80엔, 콜라 40 엔. 대충 지금 물가의 절반 정도다.

그해 1월 3일과 5일에는 눈이 내렸다. 1월 3일에는 10센티미터나 쌓였다. 이날은 미타카 다이에 극장에서 야마시타 고사쿠 <승천하는 용> (좋은 영화다)과 아쓰미 마리의 <좋은 거 드리 죠)(좋은 제목이다)를 동시상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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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에는 신주쿠 게이오 명화극장에서 <내일을 향해 달려라>와 <이지 라이더>를 보았다. <이지 라이더>는 세번째 관람이었다.

1971년이란 해는 학생운동이 일단 전성기를 넘어서고 투쟁이 음습해지며 폭력적인 내부투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매우 복잡하고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실제로는 매일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제법 뻔뻔스럽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잘난 척하며 '요즘 젊은 남자들은 어쩌니저쩌니' 하는 얘기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이란 딱히 대의명분이나 불변의 진리나 정신적인 성장을 위해 살아가는게 아니고, 이를테면 깜찍한 여자애랑 데이트를 하면서 맛있는 걸 먹 고 즐겁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시티 워킹 69

나이를 먹고 나서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몹시도 치열한 청춘 시절을 보낸 듯한 기분도 들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모두 바보 같은 생각만 하면서 구질구질 살아온 것이다. 오래된 일기를 읽고 있으려니 그런 분위기가 알알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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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멜 장군과 식당칸

옛날에 무슨 책을 읽다가 로멜 장군이 열차 식당칸에서 비프 커틀릿을 먹는 장면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장면이라지만 특별히 상세한 정경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를테면 '파리행 열차 식당칸 안에서 로멜 장군은 점심으로 비프커틀릿을 먹었다'는 정도의 문장이 실려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딱히 비프커틀릿에 얽힌 얘기도 아니다. 요컨대 로멜 장군이 비프커틀릿을 먹었다는 단순한 언급일 따름이다.

내가 어째서 이 별것 아닌 문장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색깔의 조화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우선 롬멜 장군의 맛 빳한 남색 서지 군복, 흰색 테이블클로스, 막 튀겨낸 옅은 갈색의 비프커틀릿, 버터에 가볍게 볶은 누들,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북프랑스의 푸른 전원 풍경-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며 언뜻언뜻 떠오른 것이 그런 색깔 들의 어울림이었다. 그렇기에 이렇다 할 의미도 없는 그 문장이 언제까지고 머리 한구석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장의 미덕이라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문장 말입니다.

가령 소설 같은 걸 쓸 때는, 이렇게 열린 문장으로 시작하면 이야기가 점점 확대되어간다. 반대로 아무리 공을 들인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더라도 그게 닫힌 문장이면 얘기는 거기서 그만 멈추고 만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참을 수 없이 비

시티 워킹 117

이쯤이면 되겠지
성실파/몰영치파

내가 위대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 흙알갱이를 내려놓는 방식이다. 땅 위에까지 날라와도 개미는 결코 그 흙을 아무데나 휙 내 던지고 돌아서는 법이 없다. 그랬다간 입구 주변에 모래산이 생겨 여러모로 곤란해진다는 걸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멍에서 30센티미터 내지 5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기어가. 적당한 곳을 가늠해 흙알갱이를 내려놓고는 다시 구멍 속으로 돌아간다. 이 '가능'하는 분위기가 개미의 뒷모습에 배어 있어. 곁에서 보고 있으면 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개미가 그런 것은 아니고 개중에는 입구 옆에다 흙알갱이를 내던져놓고 휙 돌아서는 몰염치한 녀석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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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세계에도 각양각색의 개미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꼭 흙알갱이를 멀리까지 날라야 한다는 규칙은 없고, 골고루 흙을 뿌린다는 관점에서 보면 몇 마리는 입구 가까이에다 흙을 버리고 간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줄곧 그런 상황 판단을 하면서 움직이는 거라면, 역시 개미는 대단하다.

시티 워킹 133

산세도 서점에서 생각한 것

며칠 전 간다의 산세도 서점에서 책을 사는데 계산대 옆에 내가 쓴 책을 들고 선 여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산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내 책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한 권이 뭐였는지도 봐두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책의 저자라는 인간들은 자기 책이 다른 어떤 종류의 책과 더불어 구매되는가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그 가상 이웃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쥐어찌봤지만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상 한 일이다.

서점에서 누군가가 자기 책을 사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도 이상하다면 꽤 이상한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소설을 썼을 무렵 출 판사 사람이 "자기 책을 사는 사람을 서점에서 발견하면 그건 베스트셀러라고 봐도 좋죠"라고 해서, 으음, 그런가.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다. 어쩐지 바퀴벌레나 흰개미 같은 얘기다. 하기야 나는 그리 자주 서점에 드나드는 인간이 아니라, 그런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 누가 자기 책을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책이란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니까, 책이 팔린다고 화를 낼 작가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기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잘난 척할 생각은 없지만-그 뒤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남는다. 뭐랄까, 부적합한 예일지도 모르겠는데, 자기 누드 사진이 실린 잡지가 팔리는 것을 바라보는 여자의 심경과도 비슷하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시티 워킹 171


"그럼 말이죠. 후지 산이 학생복을 입고 짜잔 나와서 인간이라면 좋았을걸. 하는 것도 모릅니까?" 텔레비전이 없으니 그런 걸 알 턱이 없다고 하잖느냐!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낙담한 듯 맥이 풀려 전화를 끊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①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알 바 아니다.
②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성적 평가는 신용할 수 없다.

야마구치 군, 다음에도 또 진구 구장의 박스석 티켓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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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4) 사인회 단상

새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오는데, 나는 이 사인회라는 것을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사인하는 걸 딱히 싫어하진 않지만 좌우지간 귀찮고 부끄럽다는 명분으로 사인회만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사인회 현장을 구경하는 것은 싫지 않아서, 멀찍이서 바라보며 제법 좋은 구두신었군'이라든가 '글자 가지고 되게 멋 부리네' '사진보다 훨씬 늙었잖아'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한다. 그러면서 책은 사지 않는다. 스스로도 참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해, 그런 신세가 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절대로 사인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사인회라는 존재 자 체에 비판적이거나 그런 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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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에 대하여 (1)

얼마 전에 마누라와 비행기 얘기를 하는데 '보아크'란 말이 종 종 튀어나왔다. 내가 모르는 말이라 뭔가 싶어 물어보니 놀랍게 도 'BOAC'를 일컫는 것이었다. 애당초 'BOAC'라는 회사는 이미 없어지고 '브리티시 에어웨이'로 바뀐지 오래지만, 그런 사 실은 제쳐두고 'BOAC'를 '보아크'라고 읽는 것은 정말이지 언어도단이다. 어째서 'BOAC'를 보아크로 읽는 것이 언어도단인 지는 좀 설명하기 곤란하다. 여하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BOAC'는 어디까지나 '비오에이시'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누라는 "당신, 자꾸 그렇게 자질구레한 일에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나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란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티 워킹 203

어미, 이렇게 쓰면 무라카미 영감한테 혼나
그. 할아버지가 좀 까다롭지

그러나 그녀가 'UFO'를 '유포'로 읽거나 할 때마다 나는 늘 머리가 아프다. 'UFO'는 역시 '유에프오'다. 아무래도 '유포'가 좋다는 사람은 USA도 '유사' 라고 읽어주십시오. 그렇잖습니까.

비행기 얘기로 돌아가서, 예를 들어 JAL이나 KAL은 각각 '잘'  '칼'이라고 읽지만 TWA 같은 경우는 '트와'라고 읽지 않는다. 극동방송 FEN을 '펜'으로 읽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그건 어째서일까? 미국인 중에 FEN을 '펜'으로 읽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에프이엔'으로 따로따로 읽어줘야 할 듯 한 기분이 든다. 크게 힘든 일도 아니니까.

<블루 선더>라는 영화를 보면 신참 헬리콥터 경찰이 'JAFO'라 고 새겨진 모자를 쓰게 되자, 사람들에게 "자포가 뭐의 약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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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하여

외국으로 나가면 신문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게 가장 마음 편하다. 나는 일본에 있을 때도 거의 신문을 읽지 않는 편이라 사실 딱히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일본에 있으면 웬만한 사건들 은 싫든 좋든 관계없이 귀에 들어오고, 가령 대한항공기가 미그기에 격추되었다는 사건쯤 되면 아무래도 신문을 펼쳐보게 된다.

반면 유럽 같은 데 있으면 현지 신문은 글을 몰라 읽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 비싼 돈 들여 <헤럴드 트리뷴> 영문판을 사는 것도 멍청한 짓 같아서, 정보와 완전히 담을 쌓고 생활하게 된다. 이런 생활은 정말 편하다. 솔직히 말해 신문 따위 없어진다 해도 조금도 곤란할 게 없다.

특히 그리스에 있을 때가 그랬는데, 아침에 일어난다→밥을먹는다수영을 한다→ 밥을 먹는다→ 낮잠을 잔다→ 산책을 한다→ 술을 마신다→ 밥을 먹는다→ 잔다. 

시티 워킹 215


이런 패턴을 매일 반복하느라 도무지 신문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그리스는 정말 굉장한 나라인 것 같다.

지난번에는 독일에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도 신문이라는 걸 전혀 읽지 않았다. 딱 한 번 베를린행 팬암기에서 서비스하는 <트리뷴>을 읽었지만 이렇다 할 사건이 없어서 '음, 미국이 그레나다를 침공했군' '론과 야스가 악수를 했군' 하며 흐음흐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보다는 독일 젊은이들이 모두 반핵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거나, 퍼싱II 미사일 반대 캠페인 스티커를 자동차에 떡떡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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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에 대하여 (2)

며칠 전 영국 신문을 읽는데 광고란에 개가 목을 매달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읽어보니 그건 애견 가협회에서 보내는 메시지로, '한국에서는 개를 먹는 습관이 있는데 이건 야만적 행위이니 저지합시다'란 내용이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호놀룰루신문을 읽고 있으려니 '중국 인은 들개 사냥을 해서 그 일부를 먹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이건 지나친 야만행위이니 중국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투고가 실려 있었다. 베이징에서 대규모 들개 사냥을 행해 육주 동안 약 20만 마리의 개가 죽은 사건(끔찍하다!)에 대한 한 호놀룰루 시민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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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해
그럼 안 돼
나는 개

내 기억에 의하면 백 년 전쯤에도 한국과 영국 사이에 개소동이 한 번 있었다. 그때 빅토리아 여왕(이었던 것 같다)이 우호의 뜻으로 조선의 왕에게 선물로 보낸 개를 조정에서 완전히 잘못 받아들여 요리해 먹어버리는 바람에, 당시 상당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재밌다고 하면 안되겠지만 재밌다.

이렇게 개를 먹느냐 안 먹느냐 하는 관습의 문제를 편식과 동일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좀 무리겠지만, 그래도 무엇을 먹고 무엇은 안 먹는다는 선택이 기본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차원의 얘기다. 야만이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문제다. 내가 굴은 먹지만 대합은 못 먹는다는 것에 대해 누가 "왜 그런가?" 하고 집요하게 묻는다면, 본인인 나도 설명하기가 무척 곤란하다. 성향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개

시티 워킹 231


더티 해리 문제

지난번에 영화의 자막은 글자수가 한정되어 있어 만들기 힘들 다는 얘기를 썼다. 특히 <스타워즈>의 C3PO처럼 무턱대고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캐릭터가 나오면 완전히 녹아웃이다.

재미있는 표현의 사투리 같은 것도 전달하기 어렵다. 동음이 의어나 말장난 유도 그 묘미를 살릴 길이 없다. 자막을 제작하는 일이란 실로 고달프다. “이거야 원, 번역이라기보다 하이쿠나 카피라이팅의 세계에 더 가깝죠"라고 모 관계자는 말했다.

<더티 해리 4>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질에게 총을 들이대는 강도를 향해, 개의치 않고 매그넘 총구를 노려보며 "Go ahead, Make my day"라고 위협하는 장면이 있다. 자막은 "자. 쏴봐"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미상으로만 보면 틀린 게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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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널 용서해도
내 등의 사자는 용서 못 하지
더티 해리

너무 군더더기 없이 매끈해 어쩐지 감동이 덜하다. 이 대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니까, 좀 더 비틀어보는 게 좋을 뻔했다.

그러나 이 'Make my day'란 말은 참 번역하기 껄끄럽다. 느낌상으로는 "자, 쏘라고. 나도 한 방 당겨보게" 정도인데, 모처 럼의 기회니까 좀더 멋진 대사를 지어내고 싶다. "어디 쏴봐. 나도 원하는 바야." 이쯤이면 더티 해리 캘러핸 형사의 성격에 좀 더 가까워진다. 더 멋진 번역문이 완성되거든 가르쳐주세요. 조건은 열일곱자 이내로 마무리할 것. 제법 어렵죠. 과연 이쯤 되면 하이쿠나 카피라이팅 세계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호놀룰루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런 멋들어진 대사가 나오면 젊은 청년들이 모두 "야호!" 하고 환성을 지르며 즐거워...

시티 워킹 267

그런 날에 먹는 겁니다.

하루키 : 그렇군요. 반찬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평소에는 안 먹 는군요.

미즈마루 : 안 먹죠. 길 가다 보면 널린 게 톳인데. 하루키 하아, 그럼 지쿠라 사람들은 평소에 뭘 먹는데요?

미즈마루 : 생선을 먹죠, 주로.

하루키 : 아침식사부터 설명해 주시죠.

미즈마루 : 음, 아침에는 역시 돌김이나 전복 같은 걸・・・・・・ 하루키 아침부터 전복을 먹는군요.

미즈마루 : 전복회 같은 거요. 음. 길 가다 사과가 떨어져 있으면 다들 줍지만, 전복이 떨어져 있으면 아무도 안 주워요. 지쿠라에서는.

하루키 : 하하하...

미즈마루 : 그리고 소라를 달콤하고 간간하게 조린 거. 그 다음으론 따끈따끈한 밥과 울타리고둥을 먹죠.

하루키 : 울타리고둥?

미즈마루 : 울타리고둥 모릅니까?

하루키 :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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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밖에 없어요.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면 실망스럽습니다. 너저분한 차림이에요, 다들. 단정치 못하죠. 슬리퍼를 끌고 나와 바겐세일하는 생리대를 한 아름 사들고, 어쩐지 넋 놓고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미즈마루 : 그건 안 되죠. 역시 야무진 사람은 깔끔한 얼굴로 시장을 보는걸요. 나이를 먹어도 멋진 여성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루키 : 자기의 생활 스타일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 죠. 그렇지만 이십 대 초반에는 무언가에 정신 팔려 지내고, 그다 음은 그저 열심히 나이를 먹어갈 뿐이라…………… 시간이 걸리지만, 일부러 멀리 돌아가듯 보여도 그게 가장 확실하죠. 오늘은 꽤나 교훈적인 얘기가 돼버렸군요(웃음).

미즈마루 : 요즘 젊은 여자랑 알게 됐을 경우- 만약에 말인 데ㅡ무리 없이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키 : 음, 자신 있습니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의 용량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경향은 바뀌어도 기본에는 변함이 없죠. 지난번에 취재차 아오야마 대학에 간 적이 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그 학교 학생들이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자동차가 없으면 안 된다는 둥, 꼭 일류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둥, 그런 걸 우선으로 치는 학생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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