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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독서정리

첫 번째 책 : 나는 가끔...

by 마파람94 2023. 1. 6.

요란스러운 책 표지에 눈길이 갔고, 요란스러운 의문의 끌림으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과학 잡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일행 중 미대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말하길, 고등학교 때 배운 과목 중에 물리가 가장 싫었다는 거였다. 그 계기가 된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물리 선생님이 '작용 반작용'을 설명하면서, 자기를 앞으로 불러내 책상에 앉힌 다음 머리를 위에서 눌렀다고 한다. 머리를 누르니 당연히 그는 일어나려고 하고, 아이들은 웃고, 그 선생님은 "이게 바로 작용 반작용"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일러스트레이터는 물리에 대해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물리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창피하다. 이해가 되도록 말로 잘 설명해도 충분한 일을 그런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은 경박하다. 난 그런 사람들이 싫다! 내가 물리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물리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께 들은 칭찬 덕분이었다. "어? 너 물리 잘하는데?" 내가 아는 어느 분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주위를 따듯하게 밝히는 촛불 같은 성격'이라고 성적표에다 적어 준 이후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어느 학생에겐 평생을 결정하는 정말로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따개 하나만 갖고도 물리학 상식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리학적으로 볼 때 깡통& 병따개는 작용점에 대한 회전 모멘트의...

 

35 1장 물리학자의 연구실

 

나의 이러한 변칙적인 사랑을 뒤로 손잡아 주듯 후원해 주었다. 그래서 명품이지만 상처가 난 도자기를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시장의 논리에 따르는 상품이라는 세계에서는 뒷전이었지만 왠지 나는 깨진 도자기한테 더 애정이 갔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면서 겪은 도자기의 인생이 내가 꼭 들어 줘야 할 이야기처럼 생각되었다. 깨진 도자기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취미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혼자만 하는 컬렉션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에 외로움도 한가득 쌓여 갔다.

 

좋은 것을 보고 같이 공감해 주는 사람이, 물건을 모으는 열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연애도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비슷한 차원에서 그림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그림을 그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는 문제가 아니라 그림을 봐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미있네"라든가 "잘 그렸네"라든가 "앞으로 더 그려 봐" 같은 말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그림 그 자체는 낙서로 변할 수 있고 좁은 집 안의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다. 거창한 취미, 그림, 컬렉션보다 중요한 것은 취미를 공유해 줄 사람이 주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보는 사람의 시점이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증거가 되기 때문에, 관찰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빅뱅을 보고 증거가 되어 준 사람이 더 중요한 것처럼.

 

89 2장 만화가의 단골 카페

 


시골 가마에서 만드는 독특한 기술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 도자기의 진정한 멋은 각각이 가진 독특한 모양과 개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 어디에서나 다 똑같은 표준화된 제품은 매력이 없다. 이 물병엔 붉은 막포도주 500cc를 담은 듯하다. 코발트의 강력한 색과 적포도주의 붉은색이 부딪칠 것 같지만, 안쪽에 칠한 흰색 덕분에 튀지 않고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건강한 손잡이, 안정된 손잡이 위치, 넉넉한 포트의 볼륨, 상부의 날카로움이 주는 긴장감, 기가 막히게 연결된 상부와 하부의 조화, 부리가 주는 실용성이 아름답다. 붉은 막포도주 500cc를 염두에 두고 만든 포트치고 너무 많은 미적 감각을 담고 있다.

 

나는 현재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려웠던 과거 시간은 어찌어찌 다 흘려보냈고, 과거의 영광이나 즐거움 역시 지나갔다. 남은 것 중 하나인 불확실한 미래를 뺀다면 제일 안전한 지금이 최고의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머물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는 상황에 놓이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또 어떨 땐 혼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오래되고 시간이 멈춰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서 위안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숨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163 3장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

 

3년이 지난 1946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아쉽게도 생텍쥐페리는 자기가 쓴 책의 어마어마한 명성을 모른 채 1944년 7월 31일 비행을 하다가 바다로 추락했다. 신문을 통해서 그 소식을 들은 콘수엘로는 곧 뉴욕을 떠난다. 뉴욕에서의 모든 생활이 담긴 가방 하나만 들고서 그 가방에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초고와 원화가 들어 있었다.

 

생텍쥐페리에게는 두 명의 누이가 있었다. 그 두 누이는 어떤 형태로든 콘수엘로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이었기에 태생적으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던 그들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오직 '어린 왕자'만이 있었다. 이것이 누이들과 콘수엘로 사이의 상속 사업을 더 욱 복잡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시댁 식구들의 미움을 받았던 콘수엘로는 1947년에야 작품 판매액의 반을 누이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법적인 매듭을 지었다. 콘수엘로는 1979년 5월 28일, 호흡기 장애로 죽음에 이른다. 죽기 전에 그녀는 자기의 모든 권리와 소장품들을 생텍쥐페리의 가족이 아닌 그녀의 비서관에게 일임했다. 《어린 왕자》의 오리지널 삽화와 생텍쥐페리가 썼던 안경, 그림을 그렸던 크레용 등, 경매에 내을 경우 폭발물처럼 어마어마한 가치로 둔갑할 보물들까지 함께, 이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분홍빛 복수였다.

 

190

 


포르투갈 리스본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예약하고 일정이 안 되면 버리지 뭐, 하는 기분으로 지냈다. 하지만 이런 비행기 표를 한 장 간직하고 생활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마치 짱짱한 노후연금을 들어 놓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조금 힘들 때마다 '그래도 곧 떠나잖아!이런 마음이 들었다.

 

사실 15만 원 정도인 100유로에 이런 느낌을 얻으면서 살기란 쉽지 않다.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시길. 여름이 되어 발레리가 식구들과 먼저 포르투갈로 떠나고, 난 일주일 후 리스본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려 타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생각 보다 널찍한 집이어서, 그는 나 혼자 쓰라며 방 두 칸을 내줬다. 여름이지만 밤이 되면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가 서늘하고 쾌적했다. 아침에 해가 뜰 무렵 빵을 사가지고 오면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서, 빵을 다 먹고 나면 내리쬐는 햇살이 강해 나돌아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다행히 집은 단열이 잘되어 시원했다. 아침에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쉬다가, 다음에 하는 일이란 오로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포르투갈에서 여름에 먹는 전형적인 음식은 '사르딘'이다. 새끼 고등어를 말하는데, 이 지역의 가장 흔한 생선 중 하나다. 소금이 뿌려진 고기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지나가는 때가 바로 이즈음이다. 별 고민 없이 자동소총처럼 튀어나가 사르딘을 사 오면 점심 준비는 끝이다. 오전의 그나마 선선한 기운에 집 안에서 일을 하며 지내다가 점심

 

195 3장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좋은 것을 함께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이것 좀 봐', '이것 좀 먹어 봐' 하는 말을 서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다." 연애의 법칙은 프랑스의 수리물리학자 푸앵카레의 비가역적 에너지론에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연애의 끝은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삶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치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모터바이크가 알래스카의 해안에서 발견 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시작한 그 지점으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게임이 연애다. 또한 인간이 가진 연애에 대한 에너지는 살아 있는 한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다. 만약 사랑이 어찌어찌해서 끝이 나더라도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분명 우리를 이끌 것이다.

 

새로운 세상 역시 알 수 없는 곳이기는 해도 에너지를 가진 세계임에 틀림없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연애를 하고 사랑하면 된다. 사랑은 우리가 존재하는 한 절대 고갈되지 않는 공기와 같다. 그러니 푸앵카레의 연애의 법칙을 떠나, 눈앞에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랑하라. 죽음만이 그 사랑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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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줄 수 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유쾌하고 잘 던지는 외국인 투수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동경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했지만 점차 조성민의 즐거운 야구에 매료돼 갔다. 얼마 후 최진실이라는 우리나라의 유명 탤런트와 열애설이 퍼지자 그는 더욱 확고한 스타가 되었다. 야구 경기가 없는 날, 동경의 요요기 공원에서 최진실과 잔디밭에 앉아 데이트하는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의 나라 일본, 그것도 동경을 기반으로 한 자이언츠 팀의 투수만이 만들 수 있는 당연한 스캔들이었다.

 

그때가 조성민이라는 선수의 최고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마치 챔피언 시리즈의 9회 말 경기, 5 대 2로 이기고 있으며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 상대방은 8번 타자를 맞이하고 있는 듯한 여유가 있었다.

 

당시 동경의 주간지에 실린 최진실과 찍은 사진들은 매우 로맨틱했다. 그 둘 사이의 관계는 마치 메릴린 먼로와 양키스의 디마지오 선수의 로맨스처럼 보였다.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야구를 보던 시기에, 조성민이라는 투수는 나에게 삶의 큰 위안이었다. 야구와 물리학이 뭔 관계가 있냐고 물어본다거나 내 물리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냐고 물어보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다만 빡빡한 연구 생활에 진정한 한 줄기 위안이 되었다는 말밖에는. 그러던 어느 날, 늘 웃고 승승장구하던 조성민 선수의 일그러진 얼굴을 목격했다. 올스타전에서 팔에 통증을 느끼고 스스로 마운드...

 

205 3장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

 


일주일 동안 계속 실험을 한 결과, 유리와 밀러는 10~15퍼센트의 탄소가 유기물질로 합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유리관 바닥에 주황색의 걸쭉한 혼합물이 쌓여 있는 것 또한 관찰해 냈다. 메탄을 구성하던 탄소의 5~10 퍼센트가 이제는 유기 화합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한다. 그 유기 화합물이란 다름 아닌 생명체 대부분을 만드는 화학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우주론에서는 이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약 40억 년 전의 일로 보고 있다. 이 걸쭉한 주황색의 유기물 혼합물은 지구와 함께했다. 자연의 선택이 생명체에 진화의 무대를 제공한 것이다. 사전 계획이나 시나리오는 없었다. 오직 시간의 흐름과 화학, 지질학 그리고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만이 있었을 뿐.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혐기성에서 호기성으로 엄청나고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유전자들이 결합하고 맞물리고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여기서 생명이 진화했고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주론적 입장에서 본 인류 출현 스토리다. 여러 야채가 뭉개지고 서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돌연변이 맛의 야채수프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어째 비슷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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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이었다. 그래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불편하다면 채린이의 짐으로 가득한 유모차를 들고 7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채린이 우유를 타 먹일 에비앙 물 여섯 팩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정도랄까.

식사로는 주로 파스타와 샐러드, 바게트를 먹었다. 샐러드는 반찬이었고 파스타는 주식이었으며 바게트가 밥이었다. 디저트로 콩테 치즈 와 요구르트를 먹었고, 샐러드에는 늘 이 기구를 이용해 짠 레몬즙을 듬뿍 뿌려 먹곤 했다. 그러니 지금도 이 기구로 레몬즙을 짤 때마다 그 시절 파리의 다락방 생활이 떠오를 수밖에. 이때 배운 바로는, 샐러드에 레몬이나 라임을 넣으면 신선함이 배가 된다는 것. 사실 레몬은 아무 데나 넣어도 그 맛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레몬 덕분에 맛이 좋아지는 것을 들라면 그건 굴이다. 겨울철 바다 향으로 가득한 생굴을 레몬즙과 함 께 먹으면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이 없다. 파리에서는 10개에 1만 5천 원 정도 하는 비싼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통영에 주문하면 2만원 으로 10킬로를 먹을 수 있다. 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친구들에게 레몬즙을 짜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면, 누구나 금세 레몬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이 오렌지 짜는 기구를 몇 번 돌리면 완벽하게 즙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오렌지나 레몬이라도 곡률반경에 딱 맞 도록 최적으로 설계된 물건이다. 다른 걸 써 봤는데 짜는 곳의 각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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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이 있는 식품이라, 지방을 섭취하지 말아야 할 부활절 이전 160일간은 먹지 못했다. 부활절 날이나 되어서야 그동안 먹지 못한 달걀을 먹을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는 시기에 맞추어 달걀도 부활한다는 의미로 그 시기에 서로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달걀을 이용한 요리가 다양해졌으며 수도원에서는 특별한 날, 달걀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루이 15세 시대인 18세기 때부터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달걀 한 알을 먹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는 달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부엌 도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달걀 삶을 때 시간을 보기 위한 모래시계, 메탈로 만들어진 달걀 커터, 달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는 도구 등이 등장한 것이다.

또한 1914년에는 달걀에 관련된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줄을 잇는다. 달걀 집게, 달걀을 이용해 만드는 마요네즈 도구, 달걀을 섞는 기구, 모터를 이용해 휘젓는 도구들이 나오고 커터도 다양해진다. 나무 틀, 알루미늄, 은색 메탈 등, 모양과 재질이 다른 많은 모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달걀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달걀 프라이보다 삶은 달걀을 더 좋아한다. 여행할 때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면 보통 달 걀을 세 개씩은 먹는다. 배고픈 날에는 다섯 개까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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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고 난 후 밤에 출출하면 달걀을 삶아 먹는다. 삶은 달걀을 달걀 커터로 잘라 접시에 올린 후 올리브기름을 살짝 뿌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하면 달걀의 풍미가 달라진다. 삶은 달걀을 그냥 까서 손으로 들고 소금에 찍어 먹을 수도 있지만, 접시에 깔아 포크로 찍어 먹는 맛은 더 색다르다.

예전에는 냄비에 물을 끓여 달걀을 삶아 먹었는데 최근에 달걀 삶는 기계를 하나 장만했다. 벨기에를 여행하다가 쇼윈도에서 그 기계를 보는 순간 무작정 들어가서 샀다. 20유로를 줬으니 3만원 정도였는데, 사실 그 가격에 어떻게 이런 멋진 기계를 장만할 수 있겠는가? 진작부터 달걀 삶는 기계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팔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 기계로 달걀을 한 번에 일곱 개까지 삶을 수 있다. 물을 끓여 삶을 땐 달걀이 깨지기도 하고 시간을 맞춰도 어떨 땐 덜 삶아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걱정이 없어졌다. 물 조절을 하면 달걀 삶아지는 정도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이 기계의 또 하나 장점은, 달걀 이 다 삶아지면 버저가 크게 울린다는 것. 그래서 완전히 신경을 끄고 있어도 된다. 예전 가스 불에 달걀을 삶아 먹을 땐 가끔 딴짓을 하다 가 냄비를 태우기도 했는데 그런 걱정마저 싹 사라졌다.

특히 샐러드를 만들 때, 물을 뺀 야채에다 커터로 자른 달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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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할머니의 골동 부엌

 


그의 모습을 보던 내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순간 국물을 먹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마른 빵에다 생선 통조림을 박박 긁어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술을 먹고 난 이 아침에. 프랑스에서는 등산을 가면 늘 사람들 가방에 들어 있는 것이 이 사르딘 깡통과 바게트 빵이다. 프랑스 부엌 창고에 빠짐없이 보유해 놓은 것 역시 이 정어리 깡통이다. 즉 우리로 치면 라면 같은 비상식량인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년에 4000통의 사르딘 깡통을 소비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보다 세 배 많은 양을 소비한다. 다시 말하면 유럽에서 프랑스인들만큼 사르딘 깡통의 전문가가 없다는 소리다. 바쁜 독신자, 돈이 없는 학생, 요리에 아이디어가 없는 엄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한 끼 식사, 등산하는 사람,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 군인, 항해하는 사람이 애용한다. 1790년도에 이 깡통을 발명해 내지 못했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깡통의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한 밀봉 상태, 또한 상하지 않게 100도 이상의 온도로 끓인 단순한 물리, 생물, 화학적 방법이 음식의 역사를 뒤바꾼 것이다.

처음엔 엘리트만의 산물이었던 사르딘 깡통의 맛과 풍미가 점차 떨어지면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싼 깡통이 되었지만, 최근엔 고급 포도주처럼 다시 깨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체 대서양에서 잡힌 살아 있는 정어리로 만든 깡통이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 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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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할머니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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