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지막 책을 읽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심기일전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인 동시에 나쁜 병에 걸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필체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가슴에 꽂히는 글들 선사합니다.
여러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금싸라기 같은 조언들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일부분을 주워서 옮겨와 봅니다.
...생각해 절망했더랬다. 그런데 차선으로 선택한 국립 정신병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건 뭔지도 알게 되었다. 만약 대학병원에 남았다면 주어진 길에 내가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 병원에서 떨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촌 오빠의 말처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 있는 법이고, 차선이 아니면 차차선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처럼 차선의 길에서 미처 생각지 못 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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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하게 만들고, 화가 나게 만든다. 하지만 까칠한 손님으로부터 배운 것도 참 많다.
1. 단점을 애써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장점에 집중할 것
파킨슨병에 걸리고 나서 나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 몸이 집이고 내 머리가 이걸 끌고 가는데, 옛날에는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면 몸이 알아서 착착 움직인 반면 지금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집을 끌고 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내 경우 오른쪽 다리가 먼저 약해지기 시작해 그 다리를 끌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고 움직여 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대신 튼튼한 왼쪽 다리에 힘을 줘서 움직이면 오른쪽 다리도 같이 따라갔다. 그때 새삼 깨달았다.
힘이 남아 있는 강한 쪽을 더욱 강화시켜서 움직이면 약한 쪽이 따라가는데, 약한 쪽에 포커스를 두고 움직이려고 하면 죽어도 안 움직인다. 즉 약한 부분인 단점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강한 부분인 장점에 집중해 그것을 강화시키는 게 낫다.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하면 낭비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러니 단점은 그냥 두고 그 시간에 장점을 더 키워 나가면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뛰어난 장점이 단점을 커버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단점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그 단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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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그는 갑자기 발에 쥐가 나더니 팔다리에도 쥐가 나 눈앞에서 1등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1년 가까이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스쿼시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은 그가 운동을 그만두고 하버드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저서 <완벽의 추구>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교재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고, 모든 리포트와 시험에서 완벽한 점수를 받아야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고, 그래도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리포트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치르고 나 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항상 최고점을 받았지만 불행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공부 그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지친 그는 점점 더 불행해져만 가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과 불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오랜 연구 끝에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완벽에 대한 집착과 강박으로 인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했고, 그럼에도 자꾸만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돼 늘 불안했으며, 그로 인해 삶은 피폐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긍정 심리학을 연구한 그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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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외부 상황이 바뀌기 만을 바란다. 상황이 확 변해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상황을 바꿔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헛수고하는 건 아닐까? 맞다. 변하는 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적어도 지금 무기력하게 서 있는 그곳은 탈출할 수 있고, 가능성이 보이는 또 다른 곳에 닿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사람은 살아가게 되어 있다. 언니가 죽고 나서 나는 살면서 다시는 웃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웃음을 되찾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 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세상으로부터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살 건지, 일단 밖에 나가할 일을 찾아볼 건지 선택할 권리 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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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진짜 의미
이 지구상에는 명령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동물이 두 종류 있다. 하나는 청개구리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인간이다. 동화에 나오는 청개구리는 엄마 개구리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 가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뭘 하려다가 누가 시키면 갑자기 하기 싫고 '내가 하나 봐라' 심술을 부리며 일부러 안 하려고 든다. 어릴 적 책상에 앉았는데 "공부해라"라는 엄마의 말에 '에잇, 안 해' 하며 책을 덮어 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누군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는데 명령을 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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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인데 당신의 이야기가 없네요. 그들의 이야기밖에는요."
나는 그녀에게 그들의 역사를 읊는 대신 그녀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휘둘리고 끌려다니는 이야기 말고, 그들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이야기 말고, 그 와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녀는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고,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러느라 정작 내팽개치고 버려두었던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고, 대신 그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년, 그녀에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조그만 카페를 차렸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친정 부모님과 시댁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너는 내 딸이고 내 며느리니까 당연히 내 뜻을 따라야 해"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상황은 변한 게 없었다. 다만 바뀐 것은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가 그들의 역사 대신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간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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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고,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다.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맞춰 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스스로를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낀다. 그런데 그럴 때도 '그 사람이 원해서 웃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상황을 원만하게 넘기기 위해서 웃어 주자'라고 마음먹어 보라.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를 나 자신으로 가져오라는 말이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죽어도 웃어 주는 짓은 못하겠다는 환자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까짓것 웃어 주면 어때요.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결코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상사 때문에 화를 내고, 상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고, 그에 맞춰 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데 당신의 에너지를 다 써 버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웃어 주는 게 쉽지 않은 일임 은 충분히 이해한다. 비굴한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사를 탓하고만 있으면 문제가 더 꼬일 뿐이다. 설령 그 사람 때문일지라도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는 데 치중하지 말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해 보라.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부모도 가족도 배우자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 탓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라. 그래야 남의 역사가 아닌 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고,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꼴 보기 싫은 사람과 오래도록 같이 하고 싶은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수많은 일들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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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 자신도 다 모른다. 그런데 상대방을 어찌 다 알겠는가. 나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나에 대해 알려 주고, 상대방에 대해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결혼 생활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한 후배가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기 때문인 데, 이 글을 주례사 대신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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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전까지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 등은 일단 덮어 두어라. "내가 연봉이 얼마였는지 알아?", "내가 거기서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알아?"라는 말을 자꾸 해봤자 스스로 자괴감만 더 들뿐이다. 또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며 이것저것 배제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뛰어들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해서 구한 일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껴라. 왜냐하면 당신은 위기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극복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경쟁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필요한 존재였느냐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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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달라. 그런 대답만 해 줘도 틀림없이 마음이 조금쯤 편안 해질 거라고."
작가인 히가시노의 표현을 따르자면 좀도둑들은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배운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신의 문제를 풀어 나간다.
정신 치료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No comment is better " than any comment." 굳이 풀자면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나미야 할아버지 말대로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좀도둑일지라도 그저 내 말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으면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 줄 사람이다. 하지만 듣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에 참견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것도 힘들고, 듣는다는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도 환자를 볼 때 한 시간에 열 명을 보는 게 더 쉽지. 한 명 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듣는 게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굉장한 행운아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기왕이면 당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좀도둑 고헤이가 상담을 하면서 문득 내뱉은 말이다.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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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가 된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즐기기는커녕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될까 봐 아이를 닦달하고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살았고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즐기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분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한다고 서두르기 전에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며 안아 주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출근하며 하늘 한번 쳐다볼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누군가 나에게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 가졌던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나의 기쁨을 앗아 가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릴 시간에 삶을 즐길 아이디어를 내서 그걸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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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 내려고 애쓰면서 조금씩 단단해져 간다. 굳은살이 박이면 소소한 아픔들은 그냥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굳은살이 있어야 더 큰 상처가 왔을 때도 그걸 이겨 나갈 힘이 생긴다. 하지만 상처를 계속 피하게 되면 굳은살이 생기기는커녕 아주 조금만 찔려도 죽을 것처럼 아파하게 된다. 상처 자체에 취 약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 자체가 버거워진다.
살다 보면 갑자기 징검다리를 만나기도 하고 가시덤불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것 조차 상처라고 여겨 어떻게든 피하려고 만든다.
징검다리는 건너 면 될 일이고, 가시덤불은 조심조심 헤치며 나아가면 될 일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해 보자. 업무상실 수에 대한 지적을 한 것인데 그것을 상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상처가 아니다. 지적을 받았으면 고치면 되고 입장 차이로 인한 사소한 마찰과 갈등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소한 일까지 모두 상처라고 말하면 우리 삶은 문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가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고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일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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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정말 왜 저러시는 거야?' 하며 짜증을 냈다. 시어머니를 이해하거나 상황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위해 무진장 애써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는커녕 자꾸만 화가 나고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절대 바뀌실 분이 아닌 데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외우기 시작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하셔도 '우리 시어머니는 원래 저래하고 인정해 버렸던 것이다. 남편과 내가 쓰는 방의 장롱과 서랍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하면 나만 괴롭다.
결 국엔 이해가 안 되니까 말이다. 대신 그냥 '시어머니는 그런 분이 다' 인정해 버리면 나중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또 정리하셨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 때문에 고민하는 환자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어차피 안 고쳐질 텐데 그냥 외워 버리세요." 외우다 보면 시어머니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텐데, 저런 상황에서는 이런 행동을 보이실 텐데 하는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더 나아가 어떤 말을 하실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경지에 달하면 신기하게도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시어머니가 뭐라고 해도 "아, 예" 하며 은근슬쩍 넘기게 되고, 시어머니가 곧 화를 낼 것 같으면 미리 선수 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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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내색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솔직한 게 최고라며 싫다고 말해봤자 관계만 어그러질 뿐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들이 귀찮을 때마다 그걸 다 표현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얼마 나 상처를 받겠는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는 있지만 그 감정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표현할 필요는 없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바로 '~하는 척'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휘 둘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맞춰 주는 것이다. 상황을 원만하게 빨리 풀어가기 위한, 그래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니 '~하는 척'이 옳지 않다는 편견을 버려라. 때로는 솔직한 게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3.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자 해도 내가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군가 나를 다짜고짜 비난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비난받는 것만으로도 모멸감을 느끼고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 부당한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욕을 준 상대에게 주먹이라도 날려야 할까. 아니면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며 도망치는 게 편할까?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 투스는 "비난에 화를 내는 것은 그 비난을 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주먹을 날리거나 상대에게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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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는 선물을 받았다고 한 번 생각해 보라.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면 돌려주면 그만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게 부당하다면 그 비난을 받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받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느낌'을 상처로 남길지 그냥 상대방에게 돌려주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그는 당신이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려고 작정했을 수도 있다. 모멸감을 안겨 주려고 벼르다가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휘둘릴지 아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니 누군가 상처를 주고자 해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4. 더 이상 그가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자책하지도 마라. 그가 당신을 함부로 한다고 해서 당신이 못난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그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그가 못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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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영화 평을 쓸 때 꼭 두 번을 본다. 한 번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느낀다. 뭔가 말할 내용이 있다 싶으면 한번 더 보는데 막상 보고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지나면 어느 순간 '맞아, 그렇게 쓰면 되겠다' 하고 글 쓸 방향이 떠오른다. 나의 경험과 지식과 영화의 내용이 섞이고 통합되면서 주제와 방향이 잡히는 것이다. 만약 일주일 정도 문제를 잊고 뇌에게 그냥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영화평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자신 있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라. 잠시 멈추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함은 줄어들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요즘 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며 몸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몸이 피로해도 정신만 괜찮으면 잠을 조금만 자면서 버텼다. 하지만 요즘엔 몸이 피로하고 힘들면 일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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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도 느끼고 가볍게 산책을 가기도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못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나 대신 잡지에 들어갈 원고를 쓸 테고, 다른 사람이나 대신 강의를 할 것이다.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그걸 안 하면 내가 마치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이제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 서 나는 앞으로도 나에게 멍 때릴 자유를 굉장히 많이 허락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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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아마도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엄마를 부르는 동물은 우리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타인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굉장히 의외의 장소에서였다.
학회 참석차 스페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워낙 혼자 돌아다니 는 것을 좋아해서 그날도 혼자 편안한 복장으로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신경 쓸 사람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니까 재미있었다. '이래서 혼자 여행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어느 성의 망루에 올라 석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아참 좋다! 그치?" 했는데 그에 답해 주는 사 람이 없었다. '맞다, 내가 혼자 온 거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 실에 그 순간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아참 좋다! 그치?"라고 말하면 "그러게 진짜 좋다!"라고 말해 줄 사람, "이거 너무 맛있지 않니?"라고 물으면 "응, 너무 맛있다"라고 답해 줄 사람이 필 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혼자만의 경험과 느낌은 내 기억 속에서 색이 바래져 가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기억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와 나 사이의 공 간에 저장되어 의미를 부여받고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혼자여도 좋지만 둘이어서 더 좋고 셋이라서 더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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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상대방도 틀릴 수 있지만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충고가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는 말이다. 그래서 레지던트들을 상대로 슈퍼비전을 할 때도 나는 일방적으로 충고하기를 삼갔다. 슈퍼비전 시간에는 레지던트들이 환자를 치료한 사례를 발표하면 내가 그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면서 멘토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데, 나는 늘 첫 시간에 레지던트들에게 말했다.
"이 시간은 내가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배우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나는 내 경험을 가지고 여러분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 답을 찾아가 봤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해 줘야 할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여러분은 'I don't think so'를 시작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겁니다."
내가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내 말에 "선생님,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는 말부터 시작하게 한 것이다. 그러면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맞든 틀리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만약 내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었다면 그게 정답일지라도 그들이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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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덜 아프고, 덜 후회한다.
아버지는 생전에 뭐든지 아껴 써야 한다며 택시를 왜 타냐고, 그 돈이 아깝다며 죽어도 버스를 타셨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택시를 탔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셨나 보다. "네 아버지는 그렇게 절약하며 살았는데 하늘에서 나보고 뭐라 하겠 다"라고 하시기에 내가 그랬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하늘에서 엄마가 궁상맞고 힘들게 사는 거 바라지 않을 거예요. 쓸 때는 써 야지 너무 아끼면 오히려 아버지가 마음 아파할 거예요."
정말이다. 아버지는 택시를 타면 불행했을 것이다.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당신에게는 행복이었으니까. 하지만 여든이 넘은 어머니가 택시 한번 탔다고 그게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사셨고 그걸 우리가 인정해 드리면 되는 거다. 비로소 안도하는 어머니를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이별을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떠날 사람은 떠날 테고, 남을 사람은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해 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쉽지만 따뜻한 이별을 준비하는 것일 게다. 오늘 하루 잘 살고,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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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친척 집을 전전할 만큼 가난에 시달렸던 아빠는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 내 가족을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어. 게다가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장남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하느라 사람 챙 기느라 동분서주하는 아빠의 어깨에도 엄마만큼의 짐이 지워져 있던 거야. 그걸 알고 난 후에야 아빠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공감이 가더구나. 더 이상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나랑 똑같이 현실에 발 딛고 선 내 남편이 된 거지.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사랑도 탄탄하게 뿌리를 내렸다.
너희들이 언젠가 내게 물었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가 진정 한사랑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 누가 아느냐고. 그러니까 사랑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는 게 똑똑한 거 아니냐고. 그런데 운명의 짝은 불현듯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만들어지는 거란다.
콩깍지가 걷혀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의 장점과 단점, 약점과 강점 모두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래서 사랑을 한다는 건 어 마어마한 일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을 껴안는 거니까.
그러니 사랑이 다가올 땐 거부하지 말고 온몸으로 껴안아라. 사랑을 할 땐 그 사랑에 미쳐 보아라. 사랑만큼 우리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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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질서에 적응하는 걸 어려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핵가족에서 자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능숙한 그들은 수평적인 인간관계에는 익숙하나 상명하복식의 위계질서에는 서툴다. 또 바늘구멍 같은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을 일상적으로 경험했기에 팀 활동이나 팀워크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더 중시한다. 따라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희생하고 양보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패배로 받아들인다.
조금의 불합리도 견디지 못하고 주어진 일만 완벽하게 해내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인사 담당자는 "요즘 신입 사원들은 자신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프로 축구팀) 소속의 선수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스타플레이어인 호날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푸념하더구나. 그들은 조직에 순응하는 걸 개성과 능력을 모두 버리고 100퍼 센트 조직에 맞추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그걸 자존심 상해하고, 지는 거라고 여기지. 그래서 윗세대보다 힘겨운 적응 과정을 거치더구나.
그런데 엄마가 하나 알려 줄 게 있다. 이 세상에 어떤 적응 과정도 100퍼센트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경우는 없다. 적응이란 일방적으로 환경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환경도 변화시키면서 내가 점차 확장되어 나가는 게 적응이야. 심리학에서는 적응의 과정을 동화와 조절,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간단히 풀면 동화는 자신의 틀에 환경의 변화를 맞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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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라고 여기며 재도전하게 된다. 그러니 너희들은 결코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더불어 앞날이 불안하고 자꾸만 위축될수록 작은 도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다시 말하지만 알을 깨고 나가는 건 무척 신나는 일이다. 몸집이 커져 어느새 답답해져 버린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신나지 않을 수 있겠니? 그리고 그렇게 만난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준다. 어찌 보면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다.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철학자 파스칼의 잠언대로 우리가 인생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평생이 우리가 우주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가정하고, 그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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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도 모르게 싸움을 붙여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딸아, 좋아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끼고 쓰다듬지 않고 멋대로 먼지면, 그릇처럼 다 깨져 버리니까. 그리고 한 번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이기도 어렵다.
베이징사범대학 교수위단이 쓴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꽃은 활짝 피고 나면 시들 일만 남게 되고, 달은 꽉 차게 되면 기울일밖에 남지 않는다. 활짝 피기 전이나 꽉 차기 전에는 그래도 마음속에 기대와 동경이 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아 니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두 사람이 친밀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자신을 일고 상대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친밀함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하며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까울수록 더 신경 쓰고 아껴야 한다는 뜻이란다. 상대가 모든 걸 받아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고, 자존심을 할킬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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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친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물었으니까. 또 SNS상에서 친구를 맺고는 은근히 '좋아요' 눌러 주길 기대했다. 친구는 부담스러웠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상사의 노력을 무시하기도 어려워서 '좋아요'에 댓글까지 달곤 했다.
매일 봐야 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괴롭겠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수익 창출이지 구성원들 사이의 친목은 아니기 때문이지. 또 살다 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 가치관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너희들도 이미 그런 사람을 만났거나 앞으로 만나게 되겠지. 따라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같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호감은 일의 윤활유가 되어 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 선후배 사이의 호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더구나. 다시 말해 직장에서 가족 같은 관계를 은연중에 원하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 차장이 신입 사원 장그래를 돌봐 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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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친해지는 것과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 야기다. 친밀함은 관계에 따라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간다. 소 수의 친밀한 관계부터 서로 알고만 지내는 사이까지, 동심원의 크기는 다양하지.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관계에 따른 동심원의 크기를 잘 알고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직장 선후배 사이의 동심원은 서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꼭 서로를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부족한 점을 격려하고 함께 노력할 수 있으면 그뿐, 꼭 친해져야 할 필요도 없다.
회사 내 원만한 인간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보다 중요한 것 이 바로 주고받는 문제다. 사실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주고받음이란다. 내가 하는 만큼 상대가 돌려줄 때에야 기본적으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지. 그러므로 싫은 사람과 일하게 되더라도 그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상대와 공정히 주고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라.
내가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하고 일적으로 서로 도울 건 도우면서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무심해지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지금까지 살아 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열명 중 두 명 정도이더라.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두 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가까워지는 법이 없더구나.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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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신을 상실한 것이 된다. 즉 내가 내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타인에게 맞추어야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절망적인 느낌으로 변해 버린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고립되어 공허감과 고독감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한 현대인들이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동안 겪게 되는 고립감을 '군중 속 의 고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고독 좀 겪으면 어떠냐고? 남들이 박수쳐 주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으면 그게 곧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그러기엔 현대사회의 1등이 너무나 힘들고 불안하고 외로운 게 아닐까? 엄마는 그 런 1등이라면 줘도 갖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물론 1등을 해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 내 인생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꿔 나가고 있으며, 오늘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족한다는데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뭐가 그리 두렵겠는가.
나는 가끔 삶을 완성한다는 것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낼 뿐 서로 비교할 수 없듯이, 자기실현을 위해 애쓴 인생은 그 자체로 의미 있을 뿐 다른 인생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각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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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너희들은 장기 불황의 시대를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구나. 그러나 세상이 장밋빛 미래를 펼쳐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성공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 정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그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1등,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한 성공을 추구하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인정은 1등을 한 누구에게나 쏟아지는 인정이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도 상관없다. 그러니 다음에 1등을 못해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진다고 해서 왜 나한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느냐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인정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든 1등을 하면 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너희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모진 세상이 너희들을 쥐고 흔들지 못하도록, 그래서 외롭든 말든 1등이 되는 게 좋지 않느냐고 부추기는 세상에 끌려가지 않도록, 너희의 내 면을 더욱 단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명심하렴. 너희의 인생을 멋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100퍼센트 너희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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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불만스러운 점만 조금 고쳐 주기를 바랄 때 부부 관계도 편안해질 수 있다. 또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있지. 그러므로 결혼을 결심할 때 그 사람의 문제를 고쳐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그 문제를 네가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보렴.
또 여러 커플을 상담해 오면서 깨달은 건데, 이런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더구나.
첫째, 웬만하면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결혼하지 마라. 경제적 상태가 같더라도 소비 지향적인 사람과 저 축지향적인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싸우게 되듯, 기본적인 가치 관이 다르면 함께 살기 어렵다.
둘째, 느닷없이 연락이 끊기거 나 사라지는 사람 역시 피해야 해. 도박이나 기타 중독에 빠질 위 험성이 높은 사람들이니까.
셋째, 사사건건 확인하고 간섭하는 사람은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렴.
결혼 32년 차 선배로서 너희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첫째,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하는 거야. 여자의 경우, 부부 관계를 해칠까 봐 혹은 힘든 사람 신경 쓰게 해서 뭐하 나 싶어 참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참고 살아서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지. 그러나 지나칠 경우 오히려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인 거리감을 만들어 내게 돼. 또 남자의 경우, 가족을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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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플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참고 때론 싸우며 현명하게 그 산을 올랐을 때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은 남다르다. 지금 까지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에도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결혼 서약을 여전히 지키고 있단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 거동도 불편해지고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영향력도 줄어들 때가 오겠지. 그때 나를 아주 잘 아는 좋은 친구가 늘 곁에 있다면 참 행복할 게다. 그게 네 아버지였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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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름대로 참 좋은 일이야. 세월은 젊음을 앗아가지만 그만큼의 다른 선물을 주거든."
물론 탄력 있는 피부와 생기 넘치는 예쁜 얼굴, S라인의 탄탄 한 몸매와 초콜릿 복근의 역삼각형 몸매 등 젊음을 숭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말처럼 '젊은이들의 세상에 이민 온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보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 면 대답은 "노(NO)"다. 다시 그 시절의 예민함이나 방황, 열정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난 지금이 좋다.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진 나 자신이 좋고,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웬만한 일들은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게 되어 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 또한 세월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했던 10대, 닥치는 대로 공부하며 정 신없이 보낸 20대,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키우며 치열하게 보 낸 30대, 꿈을 펼쳐 보려고 했더니 병이 찾아온 40대를 넘어 50 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이 빚어낸 살아 있는 조각품이다. 지금도 성장하고 발달하는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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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꿈을 접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 하며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에드워드는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카터와 달리 병원을 열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인데, 역시 폐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는다. 병실에서 처음 마주친 그들은 같은 방을 쓰기를 꺼려 하지만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은 서로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한편 카터는 대학 신입생 시절 교수가 과제로 내준 '버킷 리스 트'를 떠올리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본다. 하지만 막상 시한부 선고를 받자 의미 없다고 생각해 버킷 리스트를 버렸는데 에드워드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냥 이대로 죽기는 아깝다며 자신과 함께 실행해 보자고 제안한다.
스카이다이빙 하기, 문신하기,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머스탱 자동차로 레이싱 하기, 인도 타지마할 방문하기, 눈물 날 때까지 크게 웃어 보기,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되는 일 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장엄한 광경 보기 등등 그들은 병원을 나와 3개월 동 안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행에 옮기면서 잃어버렸던 삶의 열정을 되찾고,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가족을 찾고, 돌보지 않고 방 치했던 자아를 찾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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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나 결혼 생활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 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도, 하물며 옷 입는 것과 화장하는 것도 다 공부였다. 세상과 부딪치고 사람과 부딪치며 내 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50여 년을 살고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공부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도 한 번쯤은 공부에 미쳐 보았으면 좋겠다.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면의 호기심이 발동된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춤이든, 음악이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좋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는 호기심의 영역을 점점 넓혀 주고 인생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저 재미로 인문학 강좌를 듣거나 취미 활동에 열심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얼굴이 꼭 청소년처럼 해맑지 않던가.
로마의 정치가카토는 80세의 나이로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 역시 80세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60을 넘긴 나이에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 미켈란젤로의 좌우명은 "나는 아직도 공부한다"였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알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또 즐기려고만 한다 면 공부야말로 지력이 달리고 활동 반경이 좁아지는 노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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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공감이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만 아기를 가슴에 안고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젖을 먹이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젖을 먹일 때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행복과 경이감을 아기에게 전달한다. 아기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며 따라 웃는다. 이런 애착과 사랑의 교감은 아기로 하여금 관계를 맺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도록 해 준다. 만약 이 시기에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애착 장애나 자폐증, 성격 장애가 생기기도 한 다. 그만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타인은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 또한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집에 빠지지 않고 성찰하고 비판하며 좀 더 지혜로워지고 겸손해진다. 더 나아가 공감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하고 듣고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으며, 함께 일하고 나누고 창조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부서지기 쉬운 유한한 본성과 그 사람의 약점과 한 번뿐인 유일한 목숨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실존적 외로움과 개인적인 곤경과 살아남고 성공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마치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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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못할 거라는 걱정,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시도해 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일에서도 쉽사리 호기심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동안 우리는 그날 누릴 수 있는 진짜 재미를 놓쳐 버리고 만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며, 22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걱정들이고, 4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4퍼센트만 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96퍼센트의 걱정과 불평불만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오늘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만다. 그에 대해 인도의 명상 가 오쇼 라즈니쉬는 《장자, 도를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 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생각만으로 지쳐 버리는 삶에서 벗어나라. 오쇼의 말처럼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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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인적이 드문 숲에서 홀로 생활하며 <월든>을 쓴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사람이 평생 탐구하고 즐길 수 있는 영역은 결코 반경 10마일(약 16킬로미터)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의 눈에는 새롭고, 신기하고, 감탄할 만한 일들이 수없이 발견된다는 뜻일 게다.
이는 마치 연애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연애를 막 시작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참 많은 것을 물어본다.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상대의 머리 스타일이 조금만 바뀌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예쁘다, 멋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알려 주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면 서로 기분이 좋아지고 더욱 섬세해지고 더욱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재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감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상엔 즐거울 일투성이며 인생은 더욱 신나고 재미있 어진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 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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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수용소에서조차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듯, 어느 때고 감탄할 만한 일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면, 당신에게 삶과의 연애를 권한다. 삶과 연애해 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모두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 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라보!"라는 감탄사 하나로도 연주 분위기가 바뀌고 연주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 이 바뀌는 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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