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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독서정리

마흔 여덟 번째 책 : 약간의 거리를 둔다.

by 마파람94 2022. 12. 13.

 

이 책은 연말에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마음이 가난하다고 여길 때 더 좋을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연말 몸과 마음이 부자가 되는 자세에 대한 해답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 답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에서 맛본 기쁨

오기를 부려서라도 나보다 뛰어난 타인의 장점을 깎아내리려는 심리가 있다. 자기만의 토대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소한 부분까지 타인과 비교하고,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려고 버둥거린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전문 분야가 있다. 사소한 일이어도 상관없다. 내 힘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기쁨이 시작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인간사회의 순위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일이 곧 기쁨이라는 말뜻은 그 분야에서 내놓을 만한 기량을 갖추게 되었다는 의미다. 각 분야에서 웬만큼 인정받는 사람들은 스스로 인정하느냐를 떠나 맡은 일에서 기쁨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기쁨은 거저 편하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재만 하더라도 고생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 고생을 참고 인내한 사람만이 훗날 완성된 아 름다움을 소유한다.

핵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성공과 행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한 원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준으로 직종을 찾아낼 것. 그리고 평생토록 그 길을 닦아 나갈 것...

이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은 약간의 지성과 약간의 용기가 전부다. 목숨 걸고 적진에 뛰어들 정도의 용기까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에 던져지는 사람들의 비웃음이라든가, 금전적으로 힘겨운 시절을 참아내는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마저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따른 잠시의 시련이므로 그다지 괴로운 일도 아닐 것이다.

14

인내의 진실

동화 속 '요술봉' 하나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올 텐데, 그 마법의 봉을 구할 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요술봉을 대신할 수 있는, 그나마 유사한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딱 하나 있다. 바로 인내다. 인내는 누구든지원하기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다.

인내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인간은 희망하는 것을 원하는 그 순간에 갖지는 못한다.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몸이 아파서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내 몸은 건강한데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파서 열일을 제쳐두고 간병에 나서야 될 때도 있다.

15

 

남들만큼'이란 말의 모호함

인간에게 최대의 거름이자 재산은 주어진 환경이다. 고주망태 아버지에 불륜을 저지르는 어머니, 가난하다며 멸시하는 선생님은 확실히 바람직스러운 환경은 아니다. 하다못해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생활만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들과 비슷한 역량의 부모 밑에서는 특별한, 그리고 강렬 한 교육적 자극은 기대할 수 없다.

사실 '남들만큼' 이란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무엇을 근거로 '남들만큼' 의 존재라고 부르는 것인지, 남들만 큼의 허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기준은 없다.

19

 

역경이 주는 보람

역경 속에도 즐거움이 숨어 있고, 이를 재미있게 받아 들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경마저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 조심스럽다기보다는 소심한 성격에 가까운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세계는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재미가 없다. 남들에게 들려줄 만한 실패나, 쉽게 경험하기 힘든 체험이 없어서다. 유난히 재미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또한 시간적으로 고생과 위험 부담을 즐겁게 감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처럼 정직한 것은 없다.

23

 

부러워하지 않게 된다.

가톨릭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깊어짐을 느낀다.

각자 우리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임무를 명령받고 있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처한 환경을 고려해 신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살아갈 것을 명령한다. 이 은밀한 사명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신이 내 곁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신의 시선이 느껴짐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게 된다. 또 대단치 않은 삶이라며 업신여기지도 않게 된다. 그저 '신의 도구로서 살아가는 순간들에 만족하는 것이다.

 

톱이 드라이버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우리 들 각자는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사명으로 부여받았다.

25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회사나 조직을 사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랑은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눈을 멀게 만든다. 이성을 향한 깊은 애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과 상관없는 인사 문제에 쓸데없이 간여하고, 그만둔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고, 남아 있는 동료를 귀찮게 만든다.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컨대 구조조정의 광풍이 휘몰아쳐도 절망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조직에 매달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 은 없다. '퇴로'를 미리 계산해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 못이다.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도망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앞으로도 유지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달라지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의 기본은 소박한 의식주의 확보로 충분하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은 죽지만 않으면 사는 것쯤은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


28

 

반려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

아내에 대해, 또는 남편에 대해 이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사소한 감동이 전해져서다. 사회적으로 큰일을 하는 남자들이 정작 자기 아내에겐 평생토록 미움을 받아 불행하게 살아온 예를 많이 알고 있다. 반려자마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국민의 행복을 담보로 정치가가 되고, 사원들의 목숨줄을 쥐 고 경영에 나서는 것이다. 이처럼 웃기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31

 

가 아닌 나를 사랑해주는 세상에 하나뿐인 아내였다. 위대한 화가가 되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희생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10장 42절)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 태오복음 25장 40절)

신을 믿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선택이 어렵지 않다. 화가가 되는 것은 큰 소망이다. 그 전에 병든 아내의 모습을 빌린 신이 내 곁에 있다. 불운을 한탄하며 아내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아내가 있다. 아내를 살리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며, 무거운 임무다. 왜냐하면 신께서 는 '그것은 나를 살리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6

 

시련을 겪은 덕분에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정 폭력이 있었다. 내가 선택 할 수만 있다면 평화로운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평화롭지 못한 가정의 외동딸로 선택했다. 이걸 수 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 시절에 매일같이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 바람에 부쩍 이른 나이 에 인생은 비참하고 어둡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나이 내 인생의 밑바닥을 체험한 덕분인지 작은 도움에도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감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어둔 터널 속에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살기 어렵다지만 매년 조금씩이나마 좋아지는 모습도 있다. 나는 그 작은 변화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어려서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고마움을 느끼는 현재의 내 모습 이야말로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쓰라린 운명의 선물이 라고 생각한다.

 

 

42

 

 

불행은 사유재산이다

인간은 비극적인 체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 나는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질병, 빈곤, 차별, 폭력에 따른 불안한 생활, 전쟁, 이런 것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다. 세상에서 근절시키려고 다 같이 노력하는 것이 마 땅하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비극적인 체험이 위대한 성과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불행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않고 단단히 간직해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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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에는 진짜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행복한 인간은 지나치게 너그럽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과 자신감이 언제 무너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에 숨어 있다. 두려워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행복이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운명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의심 한 점 없는 망상이다.

세상은 절대로 순순히 보답해주는 법이 없다. 화상을 입지 않은 평범한 인간은 화상 당한 고통을 짐작하지 못한다. 불에 타고 데인 후에야 인생이 이토록 괴로울 수도 있음을 깨닫고 좀 더 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설국(雪國) 사람들은 겨울의 혹 독함 없이 봄은 여물지 않는다는 순리를 알고 있다. 도쿄의 겨울은 따뜻하기 때문에 그만큼 봄이 되어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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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앞에 문제가 닥쳤을 때마다 쉽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오늘 당장 대답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리가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나답지 않게 명확한 결론을 앞세우는 것 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푹 자고 이삼 일을 별일 없이 보내버린다. 무 턱대고 가만있는 건 아니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다. 그렇게 시간을 끌며 버티는 도중에 최선의 대책 도 아니고 결코 현명한 해결법도 아니지만 제법 나다운 결론, 훗날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대답 이 나오는 것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경험해왔다.



58

 

"형님이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망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병자나 노인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며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혹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상처 주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 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지도,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무거운 짐의 차이가 개성으로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성에 의해 키워진 성격과 재능이 아니라면 참된 힘을 발휘할 수 없는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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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시력을 회복했다. 지난 50년 동안 안경 없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안경을 쓰지 않고도 또렷이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걸고 기 다려야 한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내가 살아온 의미에 대한 해답은 정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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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에 화가 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나름데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당장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길바닥에 떨어진 만 엔짜리 지폐를 줍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조그마 한 식당에서 간 요리를 시켜 먹고 있는데, 다른 손님이 간 요리를 주문하자 식당 주인이 "죄송합니다. 방금 간이 다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진다.

비행기 사고가 났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 가족과 운 좋게 무사히 살아 돌아온 가족의 환희가 엇갈린 다. 이 환희는 단순히 내 가족이 살아 돌아와서가 아니다. 죽은 자들의 불행을 절감했기에 살아남은 내 가족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사망자 가족의 슬픔을 곁에서 지켜볼수록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행운이 더 크 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잔혹하고 이기적이다.

 

지금껏 살아온 나의 시간 또한 그러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낀다. 인간은 강하지 않다. 오히려 약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 같다.

 

문학은 인간의 위대함만 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학은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유혹을 그려낸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위대함보다는 나약함에서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인생의 슬픔으로부터 인생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한 본성에 굴복하고 아파하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더없이 귀중한 진실이 아니겠느냐고 큰소리로 말해주고 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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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비겁하다


도쿄 우리 집에는 서너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그 밭에서 시금치, 쑥갓, 순무, 유채, 청경채, 써니레터스(레터 스의 일종)가 자란다. 추수는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 직전까지 가능하다. 겨울에도 내 밭에서는 채소들이 자란다. 겨울에는 벌레도 없고, 추위에 단단해져 채소들이 더 맛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약간이라도 녹색을 띄기라 도 하면 감사해하며 무조건 먹는다.

나의 자랑스런 채소들을 가리키며 친구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소노 씨는 종자 박스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다가밭에 뿌린다면서요? 참 대단해요."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칭찬하는 줄로 착각하고 짐짓 겸손을 가장하며 되물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해요?

"그렇게 뒤섞여 뿌려도 쑥갓은 쑥갓으로 자라나고, 청경채는 청경채로 자라나고, 유채는 유채로 자라나잖아요. 우리네 같은 보잘것없는 인간은 사상적으로 타협해서 유채를 심었는데 쑥갓으로 커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 어요."

이 관찰은 매우 훌륭했다. 식물은 이것저것 뒤죽박죽 심어놓아도 자기 자신을 잃는 법이 없다. 그걸 보면서 나는 식물보다 인간이 훨씬 비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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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은 악이라고 규탄했지만 의외로 신은 '상관없다'라고 응답해주는 경우도 있다. 세상과 신은 언뜻 봐서는 공 존이 불가능한 적대관계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해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 인간은 사물을 좀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타인의 오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우리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보여줄 때도 많다.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는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며 억울해할 때도 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와 사람들 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평가는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다. 인간이 나를 오해해도 신은 나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다는 위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신은 내가 무 엇을 했는지 진실을 알고 있다. 세상에서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나와 내가 믿고 있는 신뿐이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것은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 아닌 내 안의 진실을 알고 있는 그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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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이니 피할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따뜻하고 온순한 표정을 감추고 있는 경우도 흔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계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반반이다. 나는 작가로서 그것을 전하기 위해 글을 썼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그 불투명한 진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사람들 모습 속에 절반의 악과 절반의 교활함이 감춰져 있음을 나는 비난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반쯤 교활한 인간에겐 어김없이 그만큼의 교활하지 않은 인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옳지 않아, 라는 나의 판단 뒤에는 저 사람에겐 배우고 감탄하기에 충분한 빛나는 무엇인가가 가려져 있다는 이야기다. 내겐 좋은 점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 면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84

 

상대방을 위해 나의 희생을 감수하며 수고한 일이더라도 그가 고마움을 모른다고 해서 서운해한다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있음을 인식하며 미리 각오해둬야 한다.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형태는 서로 간에 뜻이 맞지 않고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오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관계가 틀어진다.

93

 

오해받지 않은 인류는 없다


슬프게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나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당연하다고 미리 마음먹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며, 때론 싸움도 불사해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산다는 것은 따뜻하게 이해 받음과 더불어 함부로 무시되고 오해받는 고통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만약 이런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훨씬 유치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더 빨리 늙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슬픔이 찾아왔을 때 나만 이런 일을 당하고 있어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온 세상을 막론하고 지금 내가 참고 있는 이 슬픔을 맛보지 않은 인류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내기 바란다.

96

 

"그 집은 일이 참 잘 풀려요. 남편은 부장으로 승진했고, 둘째는 이번에 A학교에 합격했대요"

남의 불행에 기뻐하기보다 서로 축복하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남편이 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아이가 A학교에 불합격한 옆집 여자는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선의의 이웃에게 비참함을 느끼게 될는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귀머 거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청각장애자를 차별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의나 차별 없는 말과 행동이더라도 상대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치욕스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않도록 강해지는 방안을 생각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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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우리 어머니는 후쿠이현 시골에서 몰락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자랐다. 한마디로 평범한 시골 사람이다. 그런 분이었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몇가지 감각적인 조언을 내게 남겨주셨다.

먼저 집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방마다 문은 두 군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통풍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철칙처럼 지키며 내가 살 집을 설계했다. 어머니는 가능하다면 십자 모양으로 집을 지어 어느 쪽에서든 바람이 잘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은 바람이 잘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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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방은 바람이 전후좌우로 들어오고 나간다. 어머니는 집 주변 환경도 공기가 잘 통하는 곳이 좋다고 하셨다. 옛날 시골집들은 주변에 팔손이나무나 단풍, 자양화 등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집 주변을 둘러싼 나뭇잎과 가지를 손질했다. 통풍이 나쁘면 집이 썩고, 그 집에 사는 사람도 병에 걸린다고 믿으셨다.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뒤엎 힐수록 서로 성가셔진다. 살다 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외인 듯싶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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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모 대기업 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는 그와 인연이 없다. 다만 듣기로는 죽기 직전까지 분초를 나눠 움직여야 될 만큼 바꿨다고 한다. 경쟁사를 이겨야 하고, 주주총회에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사내 파 벌을 견제하는 한편, 회사의 막대한 자본금과 명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각은 화려하다. 그러나 뒤편에는 '참담한 행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겉모습만 그럴듯한 안정된 가정, 남들이 인정하는 영광된 자리를 차지해야 객관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며 개인에게 그와 같은 행복을 강요한다. 내가 알기로는 '객관적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지식과 기준이 넘쳐나는 세월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은 각자에게 달리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독한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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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입장

거렁뱅이 근성이라는 게 있다. 내가 봤을 때는 매우 보편적인 근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럽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은 절대로 그 상황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족이 없으니 행복할 리 없다. 환자와 어린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만족한다. 노인의 불행은 누가 나를 부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축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이 다. 세상의 불행은 대부분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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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분명하므로 부드럽다


내 인생에서 운명은 매우 중요한 무게를 차지하고 있다. 나 역시 노력으로 운명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라지만 그에 못잖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믿음을 모순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노력에는 반드시 성과가 있다는 진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우리의 삶은 경박해질 것이다. 특히나 같은 사람은 성공 앞에서는 내가 노력한 덕분이라며 터무니없이 우쭐대다가도 작은 실패에 금방이라도 파멸할 것처럼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내겐 노력이 꼭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 기막힌 현실이 구원이다. 변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노력과 성공의 불분명한 인과관계 속에서 세계는 내가 살아가기에 조금은 부드러운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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