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을 하면 영양 균형에 좋지 않습니다. 책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편애하는 분야가 생긴 듯합니다. 최근 읽은 책들을 줄 세워 보면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 다른 책을 고른 노력의 흔적이 지금 이 책입니다.
이 책을 완성하기 전에 저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자녀분이 아버지의 원고를 살려 출간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책을 펼쳐 듭니다.
영웅은 자기보다 큰 것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마침내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필경은 인간의 한계까지 뛰어넘음으로써 신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영웅의 삶은 한 귀퉁이가 모자란 채로 태어난 사람. 자기 동아리에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서 어딘가 동떨어진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경은 극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그러나이 태생적 한계가 영웅의 필요조건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태생적 한계와 고난의 세월을 경험하지 않은 영웅의 이름을 고대의 신화는 별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공주 아이트라는 달이 차자 아들을 낳았다. 아이트라는 이 아들을 '테세우스'라 불렀다. 이 이름은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섬돌 밑에다 무엇을 감추어 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감추어 둔 보물'을 뜻하는 이 이름 테세우스는 '사전(辭典)'을 뜻하는 영어의 '시서러스 (thesaurus)'와 무관하지 않다. 사전이 무엇인가? 역사가 감추어 둔 언어의 보물 창고 아닌가? 많은 영웅들이 그렇듯이 테세우스도 편모 슬하에서 자라난다.
테세우스는 나이 여섯 살에 벌써 영웅의 그릇을 보였다. 일찍이 영웅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자 한 마리를 맨손으로 때려죽인 적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이것을 자랑삼아 그 사자의 가죽을 벗겨 겉옷처럼 어깨에 걸치고 다녔다. 지나던 길에 트로이젠을 방문했을 때도 헤라클레스는 물론 그 사자 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당시 왕궁에 기거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헤라클레스가 진짜 사자인 줄만 알고 혼비백산했다. 딱 한 사람, 번개같이 무기 창고로 달려 들어가 도끼를 들고...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 + 21
진짜 로마 군과 진짜 로마 군을 구별하자면 로마 군이 수염을 깎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테세우스는 어쩌면 머리카락을 바치러 갔다가 신전 문 상인방에 새겨져 있는 다음과 같은 글귀 아래서 소스라치는 순간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자신을 알자면, 자신에게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모색의 경험을 회피하느냐 온몸으로 맞서느냐 하는데서 역사의 주연과 조연의 자리가 갈린다. 테세우스에게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생겨난 사람인가?"
어디에서 많이 듣던 소리, 영웅 신화와 영웅 설화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단히 상투적인 이 대목에서 전설이나 신화는 갑자기 의미심장해지면서 존재론의 높이로 성큼 뛰어오른다.
어머니 아이트라는 아들을 왕궁 객사의 섬돌 앞으로 데려가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테세우스는 무거운 섬돌을 가볍게 들고는 아버지가 남긴 신표를 꺼냈다. 짧은 칼 한자루와 가죽신 한 켤레였다.
유리 태자가 초석 밑에서 꺼낸 것도 칼이고 테세우스가 섬돌 밑에서 꺼 낸 것도 칼이다. 아서 왕이 바위에서 뽑아낸 것도 마법의 칼 엑스칼리버 (Excalibur)다. 칼이 무엇인가? 무사에게 칼은 생명이다.
그러면 신발은 무엇인가? 성(聖)과 속(俗),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이는 이정표, 벗어 놓고 떠나는 자의 정체를 증명하는 신분증과 같은 것이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벗어야 했던 물건, 육신을 거두어 세상을 떠난 달마대사가 무덤에다 남겨 놓았던 유일한 물건이 바로 신발이다. 24+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때의 이야기다.
일리온 시민 하나가 그에게 뭐라 한 틀을 가지고 와서, 파리스의 라라면서 기념품으로 거두어 줄 것을 바랐다. 알렉산드로스가 누구던가? 그는 리라 타기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다. 싸움질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버지 필리포스는 아들에게 이런 말까지 한 일이 있다. "뤼라를 그렇게 잘 뜯다니, 사나이 대장부가 창피하지도 않으냐?" 하지만 퀴라가 무엇이며 파리스가 누구던가? 그리스의 거문고라 할 수 있는 '퀴라(lyra)'는 서정시 (lyrikos)의 어머니다. 파리스는 언필칭 경국지색 헬레네를 꾀어냄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트로이아의 왕자가 아니던가? 이 두 이름의 정서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어울릴리 만무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뤼라라면 또 모르겠소. 나 같은 장수에게 파리스의 뤼라는 어울리지 않소."
그가 대시인 호메로스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던가는 다음의 일화 하나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 신하가 "전하, 좋은 소식입니다." 하고 외치면서 뛰어 들어왔을 때 그가 물었다.
984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아프로디테 축제 때는 남녀가 벌거벗고 어울리는 춤판이 벌어지고는 했다.
이런 춤판은 결혼의 동기 유발을 겨냥한 정책적인 축제였다. 그러나 노총각이나 홀아비는 이런 축제에 참가할 수 없었다. 데르킬리다스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군이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 다. 한 젊은이가 이 유명한 장군이 다가오는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장군이 꾸짖자 스파르타 젊은이가 응수했다. "장군께는, 장차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줄 자식이 없지 않소?"
남녀가 경기장이나 축제 마당에서 알몸으로 뒤얽히는데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에는 간통이라는 것이 없었다. 게리다스라는 스파르타 사람은, 한 외국인으로부터 스파르타는 간통한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벌을 내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게리다스와 외국인 사이에는 이런 말이 오고 갔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없소." "만일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지요?" "타위게토스 산꼭대기에 선채로 에우로타스 강물을 마실 수 있을 만큼 목이 긴 소를 벌금 대신 내야 하오. "에이, 그렇게 목이 긴 소가 어디에 있어요?" "그러니까 간통하는 사람도 없지." 스파르타 결혼 풍속은 약탈 혼인에 가깝다. 하지만 미성년자 약탈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던 만큼 반드시 혼기가 찬 성숙한 처녀를 약탈해야 했다. 신방에 들면서 신랑이 신부를 안고 들어가는 서양 풍습은 이 약탈혼 풍속의, 퇴화되다 만 꼬리뼈 같은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약탈해 오면, 결혼을 주재하는 여인이 와서 신부의 머리카락을 홀랑 깎고는 남장)을 시킨 다음 어두운 방 안에다 남겨 둔다.
144+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 사람들 중에 당신네들의 더러운 버르장머리를 배우지 못한 것은 우리뿐이니까요." 한 스파르타 사람이 지나가다가 여러 기(基)의 무덤을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잔인한 폭정의 불길을 끄기 위해 셀리누스 전투에서 싸우다 죽다 스파르타 사람은 혀를 끌끌 차면서 한마디 했다.
"죽어도 싸지....... 폭정의 불길이라면 끄려고 할 게 아니라 홀랑 타게 내 버려두어야지, 끄기는 왜 꺼………."
한 청년이 싸움닭을 자랑하면서, 일단 붙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닭이 라고 주장했다. 한 스파르타인이 이렇게 응수했다.
"이길 때까지 싸우는 놈이면 더 좋을 것을......."
아테나이와 엘리아스와 스파르타, 이 세 도시 국가의 특성을 철학자 스트라토니코스만큼 적절하게 표현한 사람은 일찍이 없다.
"이런 법을 만들면 어떨까? 아테나이인들에게는 종교 행사를 맡기고 엘리아스인들에게는 올림피아 경기를 맡기는 법을, 그리고 신통하게 못해 내면 스파르타인들을 불러다 두들겨 패게 하자."
스파르타의 아버지 쿠르고스 153
기이한 것들을 숨기고 있는지요? 이것이 우리가 잘 살다가 안락하게 죽은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는 소이연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아직 신들의 뜻과 운명의 장난을 다 모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주를 끝내지도 못한 선수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당대의 현자이자 우화 작가인 아이소포스, 즉 이솝이 마침 그 나라에 있었다. 왕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던 그는 솔론에게 충고했다. "솔론이여, 임금들과의 얘기는 짧게, 눈치껏 해야 하는 법이오." 솔론이 응수했다. "천만에. 짧게, 사리에 맞게 해야 하는 법이지요." 크로이소스의 권세는 과연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오래지 않아 페르시아 왕 퀴로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적장의 면전에서 화형을 당하게 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화형 당하기 직전 크로이소스는 하늘을 우러러 솔론의 이름을 간절하게 세 번 불렀다. 퀴로스가 까닭을 묻자 크로이소스가 대답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솔론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이 현자를 초청한 것이 아니고 저의 행복을 자랑하기 위해 초청했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얻을 때의 기쁨보다는 잃을 때의 슬픔이 더욱 큰 것을요. 솔론은 저의 운명을 짐작하고 반듯하게 살되 한때의 부귀를 뽐내지 말라고 일러 주었던 것입니다."
퀴로스 역시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솔론이 크로이소스를 깨우쳤고, 크로이소스가 퀴로스 자신을 깨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크로이소스를 방면하고 죽을 때까 지후하게 대접했다. 술 취한 디오니소스, 만년의 솔론은 술과 사랑과 예술이 인생의 낙이라고 노래한다.
솔론은 만년에 이렇게 노래한다. "세월은 늙어 가도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제 여느 남정네들 의 낙(樂)인 퀴프로스 태생의 여신과 디오뉘소스와 무사이(Musai)가 또한 나의 낙이 되었다. 퀴프로스 태생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곧 사랑, 디오뉘소스는 술, 무사이는 예술이 아니고 인가?
176+ 이윤기퍼 그리스 오마 영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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