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 여덟 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순간에 떠오른 장면에서 생각난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면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시지는 단출하면서도 나름의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기를 내면 나의 존재의 의미조차 없던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책 내용보다 삽화가 더 일품이었다고 하면 작가한테 실례가 되겠죠. 그림이 멋집니다.
예전에는 네가 내 것이었다. 내 아들이었다. 병원의 그 여자아이를 보니 네가 생각났다. 네가 태어 났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졌지. 네가 귀청이 떨어져라 울던 바로 그 순간, 난생처음으로 그 사태가 벌어졌다. 다른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아파졌다. 나는 내게 그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옆에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 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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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했기에 딱 한순간 머뭇거리다가 도망쳤다. 나는 네 어린 시절 내내 출장을 다녔다. 네가 그 여자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 나더러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나는 돈을 번다고 대답했다. 너는 그건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얘기했어. 나는 말했다.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목숨을 연명할 뿐이야. 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없어. 물건에는 기대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한다. 지구 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1초는 언제든 1 초고 거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일생일대의 거래, 35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꿀 수는 없었다.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꿀 수만 있을 뿐.
옷 아래로 부는 헬싱보리의 모든 바람을 맞으며 땅바닥에 누워 있는 나에게 그녀가 진득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죽는 걸로는 부족해. 그 여자아이의 온 생애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려면 다른 생명이 존 재를 멈추어야 하거든. 그 생명 안의 내용을 삭제해야해.. 그러니까 네가 네 목숨을 내주면 네 존재는 사라질 거야. 너는 죽는 게 아니라 애당초 존재한적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아. 너는 여기 없었던 사람
일생일대의 거래, 85
"죽는 게 아니야." 그녀가 내 말을 바로잡았다. "삭제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만약...… 내가 아예..….그녀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피곤한 듯 고개를 저었다. "네 아들은 그대로 남지만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너의 업적도 모두 그대로 남지만 다른 사람이 일군 업적이 될 테고, 네 발자취는 사라져. 너는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이 되고, 너희 인간들은 항상 언제든 목숨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실제로 어떤 일이 수반되는지 알아차리기 전의 얘기지. 너는 네 유산에 집착하잖아, 안 그래? 죽어서 잊히는 걸 감당하지 못하지...
일생일대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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