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와이너의 책입니다. 그가 쓴 책 중 제가 읽는 두 번째 책입니다. 500쪽이 넘길래 잠시 망설이다 들었습니다만, 결국 괜한 망설임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완독하는데 2주가 넘게 걸렸으니까요. 물론 그 사이 바쁜 일들이 많았던 이유도 있습니다만.
책을 모두 읽은 느낌을 표현하자면 작가와 10개국을 같이 따라다닌 것의 10%쯤 느낌을 받는다라고 하렵니다. 덕분에 10개의 나라를 간접체험했습니다. 그 나라를 저자의 생각처럼 모두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으로 글을 쓸수는 있다는데 동의 합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내 실험 결과를 이야기하겠다. 먼저, 나도 모로코제를 추천한다. 모로코제는 정말 부드러운 맛이다. 둘째, 불법적인 행동을 할 때 느끼는 즐거움 중 적어도 절반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다시 말해서, 로테르담에서 합법적으로 해시시를 피우며 느끼는 즐거움은 대학 기숙사에서 언제 들킬지 모 른다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러스티 피시카인드와 함께 불법적으로 해시시를 피울 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괴로움은 전혀 없다. 모로코제 해시시가 내 대뇌피질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자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항상 이런 상태라면? 그럼 항상 행복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겠다고 나선 이번 여행을 여기 로테르담의 알파 블론디 커피숍에서 그냥 끝내도 될 것 같다.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인지도 모른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이 주제에 관해서 한 말이 있다. 알파 블론디에 관해서도 아니고(그가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로코제 해시시에 관해서도 아니다 (그가 모로코제 해시시를 피워보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노직은 쾌락주의와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경험 기계'라는 생각 실험을 고안한 적도 있다.
'엄청나게 훌륭한 신경심리학자들'이 사람의 뇌를 자극해서 기분 좋은 경험을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가정해보자. 부작용도 전혀 없고, 건강에도 해롭지 않은 안전한 방법이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평생 동안 끊임없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이 경험 기계에 자신을 연결하겠는가?
1 네덜란드
내가 신성한 광인 드룩파 컨리의 이름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 다. 하지만 마지막은 아니다. 사실 그 뒤로 드룩파 컨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부담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평범한 웃음이 아니다. 공손한 웃음이다.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컨리는 광인의 지혜라고 알려진 영적인 사조에 속한다. 모든 종교에는 광인의 지혜를 설파하는 분파가 있다. 기독교에는 '예수님을 위한 바보 Fools for Christ' 있고, 이슬람교에는 수피 마스트 칼란더스가 있다. 유대교에는 우디 앨런이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드룩과 권리만큼 미치지도 않았고, 그만큼 현명하지도 않다.
나는 그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마음을 다졌다. 책이 지나치게 꽉 들어찬 팀푸의 한 서점에서 나는 영어로 번역된 그의 전집을 찾아냈 다. 오늘날의 외설적인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어떤 부분은 내용이 너무 음란하다. 권리는 "용처럼 숨을 헐떡거리는가 하면, 속바지를 아래로 내리고 자신의 "불타는 지혜의 벼락"을 사용할 때가 많다(이건 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다). 드룩파 컨리는 엄청난 바람둥이었으며, 처녀를 특히 좋아했다. 그 자신은 이렇게 표현했다. "최고의 술은 통 밑바닥에 있고/ 행복은 배꼽 아래에 있다."
컨리의 문란한 행동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 것은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는 부탄 사람들을 충격으로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컨리의 모험담을 영어로 옮긴 키스 다우먼은 "감정, 특히 욕망을 억압하지 말고 정화해야 한다"라는 것이 컨리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상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무엇이든 적당히 하지 말고, 지나치게 많이 빠져들어라
122 부탄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라는 레이더 스크린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몰딩이 변색된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을 보며 이런 유대감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가족의 일원인 삼촌에게 선물 포 장을 한 새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에서 그런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저서의 말미에서 행복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우주시민임을 느끼며, 우주가 보여주는 장관과 우주가 주는 기쁨을 흔쾌히 즐긴다. 그는 자신이 후세에 태어날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의 물길과 이처럼 심오하고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무신론자를 자처한 사람치고는 지독히도 초월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이 문장을 보니 소아마비 백신의 발명가인 조너스 소크가 인생의 가장 커다란 목적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고 한 말이 생각난 다. "좋은 조상이 되는 것."이런 말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깊게 인식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나는 조너스 소크가 아니다. 우주 안에서 내 자리를 찾기는커녕 내 차를 어디에 세워놓았는지 몰라서 헤매기 일쑤다. 하지만 최근 나는 그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운이 좋으면 70년이나 80년쯤 이 지구 상에서 어정거리다 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삶은 정말 하잘것없는 것이 된다.
4 카타르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몰입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몰입이란 우리가 어떤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근심을 잊어버리고 시간 감각마저 잃어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긍정적인 심리학 운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도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좋은 일이 실제보다 많았던 것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우울한 사람들은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가 최고의 충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간의 자기기만은 행복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아이슬란드인들에게는 이것이 맞는 말이다. 이 섬에는 사람들에게 어디어디가 부족하다고 지적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인들은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태도 때문에 아이슬란드의 예술가들은 엉터리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엉터리 작품들이 예술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이 엉터리 작품들은 농사를 지을 때의 거름과 같다. 엉터리들 덕분에 좋은 작품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엉터리가 없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물론 엉터리 작품이 화랑에 떡하니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동네 식품점의 채소 진열대에 거름이 버티고 있는 걸 보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엉터리는 중요하다.
앞날에 겪게 될 어려움에 관해서 아이슬란드인들은 무지하다. 라루스는 이것이 의도적이라고 말한다. "아이슬란드인들은 무지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강점이죠.
267, 5 아이슬란드
돈을 벌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일부 몰도바 여성들은 속임수에 빠져 매춘부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현금을 얻으려 고궁 한쪽을 파는 몰도바인들도 있다.
물론 이건 전혀 좋은 상황이 아니다. 나는 몰도바인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상황이 단순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점이다. 몰도바보다 가난한데도 더 행복한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나이지리아나 방글라데시가 좋은 예다. 문제는 몰도바인 들이 자신을 나이지리아인이나 방글라데시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탈리아인이나 독일인과 비교한다. 몰도바는 부자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다. 이런 처지에서는 결코 행복 해질 수 없다.
내가 아파트로 돌아오니 루바가 문간에서 나를 맞이한다. 몇 개나 되는 자물쇠를 여느라 몇 분이나 걸린 다음이다. 나는 손바닥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없었느냐고 묻는다. "50대 50." 그녀가 왼쪽 어깨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마 거기가 아픈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더워 죽겠다는 뜻으로 손부채질을 한다. 놀랍다는 생각 이 든다.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가 여섯 개밖에 안 되고, 그나마 그중 하나는 '보드카'인데도 이렇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니.
몇 분 뒤 루바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그 밑에 손을 갖다 댄다. 그만 자겠다는 뜻이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액자에 걸려 있거나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사진들을 본다. 이 사진들은 루바의 과거다. 어떤 남자의 사진도 있다. 세상을 떠난 루바의 남편인 것 같다.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너무 멀리서 찍은 것 같다.
315, 6 몰도바
그들은 대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한 집단에게는 일주일 동안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게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일주일 동안 자신 이 착한 일을 몇 번이나 하는지 숫자를 세게 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착한 일을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숫자를 세라고 했을 뿐이었다. 일주일 뒤 두 번째 집단은 첫 번째 집단에 비해 행복도가 눈에 띄게 높아져 있었다. 학자들은 "일주일 동안 착한 일을 몇 번이나 했는지 세기만 했는데도 사람들은 더 커다란 행복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신경과학자들은 뇌에서 이타주의와 관련된 부위를 찾아냈다고 믿고 있다. 놀랍게도 그 부위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원시적인 부분에 속해 있다. 식욕과 성욕을 관장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뇌 구조 자체가 이타주의에 맞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착한 척 연기를 하는 게 아닌 셈이다.
*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어요." 사뮈엘 베케트의 1막짜리 연극 <엔드게임>에서 양다리가 없는 몸으로 쓰레기통에 사는 빌은 이렇게 말한다. 베케트는 틀림없이 몰도바에 와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유머가 전혀 없다. 심지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농담도 없다. 하지만 몰도바에도 우스갯소리가 적어도 하나는 있다. 그 우 스갯소리를 들어보면 몰도바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에서 온 고위 인사가 지옥을 둘러보게 되었다. 관광 안내인은 고위 인사를 미국인 방으로 안내했다.
328
꽃이 솟아오르고, 수십 명의 무장 경비원들이 그곳에 잡혀 있는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쪽은 러시아인 방입니다. 이 방에도 불 꽃이 솟아오르는 솥단지가 있었지만, 경비원 숫자는 적었다. 이쪽 은 몰도바인 방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불꽃이 솟아오르는 솥단지 가 있었지만, 경비원은 하나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고위 인사가 말했다. '왜 몰도바인들 을 감시하는 경비원이 없는 거죠?"
"아, 경비원은 필요 없습니다." 관광 안내인이 대답했다. "한 사람 이 단지를 빠져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다시 안으로 끌어 내리거든요."
행복의 적, 시기심이 몰도바에 만연해 있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의 시기심은 유난히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대개 시기심에 동반되게 마련인, 강렬한 야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몰도바인들은 시기심의 좋은 점은 하나도 맛보지 못하고 나쁜 점만 죄다 안고 있는 꼴이다. 시기심의 좋은 점이란, 사람들이 야망에 불타서 자기가 남보 다 더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업을 세우고 건물을 세워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몰도바인들은 자기가 성공하는 것보다 이웃이 실패하는 데서 더 기쁨을 느낀다. 이보다 더 불행한 상황이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혹시 몰도바인 중에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329, 6 몰도바
이 만원 버스에 타고 있는 우리는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정류장에 설 때마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몇 명이 내리고 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올라타기 때문이다. 마침내 자리가 하나 빈다. 나는 행운아가 된 것 같아서 기쁨이 솟아오른다. 미국 최초의 자기 계발서 저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행복이란 "가끔 다가오는 커다란 행운보다는 매일 일어나는 자그마한 행운에서 생겨난다'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차가 광고판을 지나간다. 플라스마 스크린 텔레비전 광고가 걸려 있다. LG : 인생은 좋은 것." 몇 마디 안 되는 이 말속에 수많은 아이러니가 들어 있다. 우선 몰도바에서 인생은 좋은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승합차에 탄 사람들 중에는 저 플라스마 스크린 텔레비전을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만 빼고 하지만 나는 거 실에 저런 텔레비전을 들여놓을 생각이 없다. 저 광고판, 아니 소비문화 전체가 몰도바인들을 비웃고 있다. 대부분의 몰도바인들에게 광고 속의 상품들은 영원히 그림의 떡일 테니까 말이다. 콩팥이라도 하나 떼어서 팔지 않는 한은 조지프 엡스타인은 시기심에 관한 저서에서 광고업계 전체를 가리켜 "시기심을 생산하는 거대하고 복잡 한 기계"라고 말했다. 몰도바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기심을 풀 곳이 전혀 없다. 그래서 유독성 폐기물처럼 시기심이 계속 쌓이기만 한다.
나는 버스를 갈아탄다. 이번 버스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편이지만, 스무 마리가 넘는 병아리들을 데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농부가 문제다. 병아리들이 삐약거린다. 처음에는 이 지방의 풍경 하나를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미쳐버릴 것 같다.
6 몰도바, 331
시카고 대학의 학자들이 최근 다양한 직업을 지닌 5만 명가량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가장 대접받는 직업을 지닌 사람들(변호사, 의사, 은행가의 행복 점수가 낮았다. 그럼 행복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였냐고? 성직자, 물리치료사, 간호사, 소방관이었다. 다시 말해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기적인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
조애나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몰도바에서 사는 게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고 여기에도 좋은 전통이 몇 가지 있어요. 노인과 죽은 사람을 존중하는 전통 같은거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명절 중에 일종의 '죽은 사람들을 위한 부활절'(조애나의 표현이다) 같은 것이 있다. 이날이 되면 모두들 꽃을 들고 세상을 떠난 가족의 무덤을 찾아간다. 몰도바인들은 산자보다 죽은 자에게 더 친절한 것 같다
"물론 과일과 채소도 좋죠." 그녀가 말한다.
"아주 신선하죠?"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나는 웨이트리스에게 찻값을 치른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미소도 없이 돈을 받는다. 나는 짐을 꾸리려고 숙소로 향한다. 이만하면 몰도바의 시골을 충분히 본 것 같다.
6 몰도바
몰도바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그중 한 권의 저자인 찰스 킹은 이 나라를 가리켜 '조약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허구의 나라라고.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 물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나라에 가서 거리를 걷고, 마마리를 먹고, 형편없는 포도주를 마시고, 불행한 국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나중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여권을 펼쳐 보며 '몰도바 공화국'이라는 스탬프에 감탄할(이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중요하지 않다. 몰도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하여튼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정체감을 되새기며 살지는 않더라도 정체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처럼. 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거기에 기댈 수 있다. 그런데 몰도바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가 없다. 물론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이제 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떠나 진짜 세계로 돌아갈 때가 됐다. 진짜 세계 역시 비록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실제로 존재하기는 한다. 그런데 돌아가기 전에 나는 뭔가 할 생각이다. 충동적인 행동이자 정말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선뜻 말하기가 좀 그렇다. 나는 루바의 집 책꽂이에 있는 영어·러시아어 사전 책갈피에 루바 몰래 100달러 지폐 한 장을 끼워 넣는다. 루바가 단어를 찾느라 항상 펼쳐 보는 책이다. 나는 러시아어로 행복을 뜻하는 'schaste' 옆에 지폐를 놓는다. 신파적인 행동이다. 어쩌면 이기적인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이타주의.
6 몰도바, 349
내 밑에 있는 사다리 발판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몰도바인이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뻔한 사실 외에 몰도바인들의 불행에서 건질 수 있는 더 큰 교훈이 있을까? 그래 있는 것 같다.
교훈 1. "내가 신경 쓸 문제 가 아니다"라는 태도는 삶의 철학이 아니라 정신병이다. 비관주의와 나란히 붙어 있는 병, 다른 사람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다. 이웃이 해고당하면, 우리는 그 운명이 자신을 비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운명은 우리도 때린다. 우리가 아직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루트 벤호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보다 사회 전체의 질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오염된 호수의 큰 물고기가 되느니 깨끗한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되는 편이 더 낫다는 얘기다.
교훈 2. 가난, 즉 상대적인 가난은 흔히 불행의 핑계가 된다. 몰도바인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가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행한 건 가난뿐만 아니라 경제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몰도바인들이 느끼는 불행의 씨앗은 그들의 문화 속에 뿌려져 있다. 신뢰와 우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문화, 비열함과 속임수에 보상을 주는 문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친절이 들어설 공간성 아우구 스티누스가(빌 클린턴이 등장하기 오래전에) "희망의 행복"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한 공간을 전혀 만들어주지 않는 문화, 고대 인도의 문헌인 《마하바라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희망은 모든 사람 이 마지막에 의지할 수 있는 뜻이다. 희망이 무너지면 엄청난 슬픔 이 그 뒤를 따르는데, 그 슬픔은 죽음과 거의 맞먹는다."
351, 6 몰도바
힐마르는 불행을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아서는 이것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영국인들은 그냥 불행을 즐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불행에 열광한다.
나도 공감이 간다. 사실 내 성인 와이너는 'whiner(투덜대는 사람이라는 뜻 - 옮긴이)'와 발음이 같지 않은가. 나는 이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겁게 한숨을 내쉬는 난처한 버릇이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한숨을 내쉰다. 글을 쓸 때, 운전할 때, 심지어 회의를 할 때도 사람들은 내가 지루하거나 흥분한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한숨은 내 안에 점점 쌓여가는 불평불만의 압력을 줄이려는 나만의 방법일 뿐이다. 신나게 한숨을 내쉬는 것은, 실컷 투덜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불평꾼들의 나라인 여기 영국에서 나는 불평꾼 축에도 못 낀다. 영국인들의 불평은, 일단 마개가 열리면, 걷잡을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지구력이 놀랍다
헤더 화이트도 나처럼 아마추어 불평꾼이다. 그녀는 그냥 몇 분 동안 투덜거리다가 평소처럼 행복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축복을 하나씩 헤아린다. 자기가 기르는 개, 집 앞의 정원. 친구들. 게다가 <슬라우 행복하게 만들기> 방송된 뒤로는 명성도 조금 얻었다. 하지만 헤더는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돈 이 생겨도 어쩔 줄을 모를 것이다. "돈이 많은데도 불행한 사람을 많이 봤어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사람이지 돈이 아니에요. 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요."
헤더는 호텔까지 나를 차로 바래다주겠다고 말한다. 내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있는데, 그녀가 내 불안감을 눈치챈 모양이다.
8 영국, 431
"글쎄요. 우선 사람들한테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줘야겠죠. 행복 선언문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기운 없이 처져 있는 사람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그러면 돼요. 이 카푸치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맛이 없으면 우리는 금방 불평을 해대죠. 하지만 맛이 좋으면, 기대보다 훨씬 맛이 좋으면, 우리가 이 카페를 칭찬하는 글을 쓸까요? 그렇지는 않죠.
리처드는 카푸치노를 다 마셨다. 여담이지만 맛이 아주 좋은 카푸치노였다. 우리는 밖으로 나온다. 하늘이 회색이다. 내게는 다른 흐린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씨다. 하지만 행복 선언문에 서명했고, 삶과 죽음 사이를 서성거리는 리처드 힐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파란색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부분적으로 햇살이 비 치는 날씨라고 단언한다.
치약, 아니면 화장지? 베로니카 퍼글리아는 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우울한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이혼해서 복지수당으로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치약과 화장지를 둘 다 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둘 중 무엇을 살까? 그녀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나중에 말해주겠다. 우선 베로니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아보자. 그녀는 폴란드 이민자의 딸이며, 처녀 때 성은 폴란드어로 '열매가 풍성한 중심부'라는 뜻이다. 그녀는 이 이름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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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저절로 뒤따라올까? 조지 오웰은 회의적이었다. "유토 피아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치통에 시달리면서 치통만 없어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닮았다."
맞는 말이다. 행복은 슈퍼 비관주의자인 쇼펜하우어의 믿음처럼 단순히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무엇이 존재하는 상태다. 그 무엇이 뭘까? 그리고 정신과 의사와 전구에 관한 남은 우스갯소리처럼, 우리가 어떤 장소를 변화시키는 걸까, 아니면 그 장소가 먼저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야 하는 걸까?
슬라우에서 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행복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는 이론은 결코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슬라우의 자원자 50명이 행복에 관해 한두 가지 교훈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그 교훈이 널리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행복 바이러스 이론에 결함이 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저 이건 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행복의 씨앗(리처드 힐이나 헤더 화이트나 베로니카 퍼글리아) 같은 사람들을 많이 심으면, 결국 기하급수적인 성장 법칙이 발동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행복은 캘리포니아의 소규모 산불처럼 번져 나갈 것이다.
그럼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 씨앗을 심으면 될 것 같다. 사실 중요한 건 씨앗을 심는 것이지 수확이 아니다. 많은 철학자가 지적했듯이, 행복은 부산물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말했듯이, 행복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는 나비와 같다.
그렇다면 어떤 장소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대신 캐나다의 저술가 로버트슨 데이비스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에 관한 걱정을 그만두고 자신의 불행에서 뽑아낼 수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저분하고 낡은 슬라우가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 이젠 더 이상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는 버크셔의 마을이 아니라 누가 뽑아주기를 기다리는 불행의 보물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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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우고 있다가, 그런 냄새가 감지되면 그가 가르쳐준 지혜를 모조리 부인해버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건 아니다.
1980년대에 인기 있는 구루였던 바그완 슈리 라즈니시, 일명 오쇼가 인도와 미국에서 차례로 엄청난 추종자들을 끌어 모았다. 그가 오리건에 설립한 아쉬람은 넓은 땅에 공들여 지은 일종의 단지였다. 오쇼는 사랑과 마음수련이 중요하다고 설교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쇼는 롤스로이스를 93 대나 구입했으며, 나중에는 이민법 위반으로 당국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가르침을 읽어보았다. 개중에는 상당히 현명하고 분별 있는 가르침도 있었지만, 내게는 롤스로이스가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오쇼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인도인 친구 만주는 그렇지 않았다. 델리 출신의 대단히 이성적인 변호사인 만주는 롤스로이스 때문에 오쇼의 지혜를 내팽개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좋은 건 남기고 나쁜 것만 버리면 돼요." 그녀는 어느 날 나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인도인들은 구루에게서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 다. 심지어 일관성도 기대하지 않는다. 현명한 구루 사기꾼 구루 모순적인 이 두 가지 생각이 인도인인 만주의 머릿속에서는 편안하게 공존하고 있다.
내가 아쉬람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다. 강의는 끝났다. 나는 아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9 인도, 471
우리가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돈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기본적인 생존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자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봤을 때 가난한 미국인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 하지만 돈이 곧 행복이라는 이런 주장에 딴죽을 거는 요인이 하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1950년대보다 세 배나 더 부유해졌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는 점.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한 가지 요소가 기대치를 높여놓았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금의 자신을 1950년의 미국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국, 오늘날의 이웃 국가들과 비교한다는 점. 우리는 입으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미시간 대학의 연구에서 삶의 질을 개선해주는 요소가 무엇이냐 고 물어보았을 때 미국인들은 돈을 첫 손으로 꼽았다.
자기 계발 산업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기계발서들은 행복이 우리 내면에 있다며 우리로 하여금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면이 아니라 밖을 바라보는 것이 맞다. 여기서 밖은 돈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 지역공동체,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 등 분명하게 밝혀진 행복의 원천을 의미한다.
미국인들은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 더 먼 곳의 직장으로 출근해서 더 오랫동안 일한다. 특히 긴 통근 시간은 건강뿐만 아니라 행복에도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1분 늘어날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1분 줄어든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바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순간인데.
504
슈빌에는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겨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제대로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집주인이 연 파티를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파티에는 애슈빌의 거물이 여럿 참석했는데, 그 중 하나가 로리에게 말했다. "요리 솜씨가 좋은데요. 식당을 여셔야 겠어요." 그녀는 로리에게 식당 창업에 관한 책을 주며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로리는 그것이 자신에게 '황금실'과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자세히 살펴볼 의지만 있다면 점점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길과 같은 것. 로리에게는 자세히 살펴볼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출장 요리 사업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식당을 개업했다. 얼마 전 소나기가 내리던 여름날에 나는 애슈빌에서 그녀를 만나 시내에 그녀가 새로 개업한 널찍한 식당에서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나는 로리를 보자마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부탄에서 카르마 우라를 만난 뒤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로리가 내게 열두 살 때 부모님이 몇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을 했을 때, 두 번이나 암에 걸렸지만 살아났다고 말했을 때, '아, 어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면 더 강인해질 뿐만 아니라 더 정직해진다.
로리는 애슈빌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여행을 갔다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릴 때마다 그녀에게 가장 먼저 와닿는 건 부드러운 공기다. 마치 공기가 그녀의 살갗을 쓰다듬는 것 같다.
10 미국, 517
오로지 불행밖에 보지 못한다. 혹시 인도인이라면 앞뒤가 안 맞는 이 모든 현실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머리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속이 상해서 유명한 행복학자 중 하나인 존 헬리웰에게 전화를 건다. 어쩌면 그는 답을 조금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단합니다. 그가 말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에요."
물론 그렇겠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톨스토이의 말은 거꾸로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여기서 탄소를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탄소가 없었다면 우리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탄소는 모든 생명체의 기반이다. 그 생명체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탄소는 또한 카멜레온 같은 원자이기도 하다. 탄소를 서로 단단히 맞물리게 배열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아무렇게나 헝클어놓으면 검댕이 된다. 배열 방법이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장소도 똑같다. 각각의 장소에 존재하는 여러 특징보다는 그것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배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배열 방법에 따라 스위스가 되기도 하고, 몰도바가 되기도 한다. 균형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카타르는 돈은 지나치게 많고, 문화는 부족하다. 카타르는 지금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어떤가. 아이슬란드는 아직 행복해질 권리가 없는 나라인데도 행복하다. 균형을 제대로 맞춘 덕분이다. 작은 나라지만 분위기는 국제적이다. 어둡지만 밝다. 효율적이지만 느긋하다. 미국의 진취성이 유럽의 사회적 책임과 결합했다. 완벽하고 행복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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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구 결과만 가지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 연구가 중요한 진리를 가리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저분함 속에서 번성한다는 진리. “좋은 삶이란... 결코 즐거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친 모래와 진실이 어느 정도 들어 있어야 한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의 말이다.
두안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리학자 다.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그의 책을 가지고 다녔다. 그는 자서 전 중 한 장에 "지리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농담이 살짝 섞이긴 했으나 진실이 담긴 제목이다. 지리학이 정말로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도교의 믿음을 조금 더 확대시켜 생각해보면, 주위 환경이 곧 우리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멀리 있는 어떤 곳이든,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든 다른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훨씬 덜 고독한 것 같다.
'유토피아'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좋은 곳'이라는 뜻과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낙원의 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과 함께 살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듯이, 완벽한 곳에서 사는 것도 마냥 좋은 일 만은 아니다. "오로지 행복하기만 한평생이라니! 그런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삶은 지상에서 경험하는 지옥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인간과 초인》이라는 희곡에서 이렇게 썼다. 행복 데이터베이스의 관리자인 루트 벤호벤의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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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행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철저히 관계 속에 존재해요."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카르마가 정말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 말을 했음을 안다.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철저히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이웃, 게다가 우리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 무실 청소부까지도 모두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그럼 행복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먼 걸까? 나는 행복을 찾아낸 걸까? 난 지금도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가방을 갖고 있으며, 갑자기 중 병에 걸린 것 같다는 걱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그래도 가끔 행복한 순간이 있기는 하다. W. H. 오든의 충고처럼, 나는 "출수 있을 때 춤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든은 춤을 '잘' 춰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내가 100퍼센트 행복한 건 아니다. 아마 50 대 50에 가깝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모든 걸 고려했을 때, 그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 결코 나쁘지 않다.
2007년 7월
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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