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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열두 번째 책 : 동물 농장 - 조지오엘

by 마파람94 2021. 3. 28.

열두 번째 책 조지 오엘의 동물 농장을 읽었습니다. 왜 이 책이 필독서 중에 하나인지 책을 읽어 보면 알게 됩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돌아볼 현실입니다. 이 소설은 비단 작가가 살던 그 시대 상과 비판하고자 하던 정치 체제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부패한 정치권, 독재국가, 이익만 좇는 경영자, 포악한 조직들 모두에게 투영됩니다.

 

책의 물리적인 양과는 상관없이 -책 두께가 얇습니다.-의미 있는 책 읽기가 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마지막 메시지가 메아리처럼 남아서 머리에 맴돕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두발로 걷기 시작하는 돼지들 이후에 계명이 하나로 바뀌는 모습입니다. 그 장면은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습의 이미지로 남겨졌습니다.

 

소비에트가 몰락한 오늘날에도 동물농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그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의 정치권력에 대해 각성하고 자유를 추구해야겠습니다. -우유와 사과를 옮겨가는 부패에 두눈 부릅 뜨고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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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8

돼지가 사다리 위에서 몸을 가누기란 쉬운 일이 아니 었으므로 스노볼은 약간의 고생 끝에 어렵사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일곱 계명을 쓰기 시작했고 스필러가 사다리 몇칸 밑에 서서 페인트 통을 들어 주었다. 계명은 타르 칠을 한 시꺼먼 헛간 벽에 흰 페인트 글씨로 큼직큼직 씨 놓아 30미터 밖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계명의 내용은 이러했다.

일곱 계명(동물주의)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깔끔하게 잘 쓴 글씨였다. 친구(friend)'라는 단어의 철자 순 서가 하나 뒤바뀌어 '친고(freind)'가 되고 에스(S) 자 하나가 좌우로 뒤집어진 걸 빼고는 모든 철자가 정확했다. 스노볼이 다른 동물들을 위해 일곱 계명을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동물들은 완전한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 좋은 녀석들은 벌써 그 계명들을 줄줄 외웠다.

스노볼이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 동무들, 이제 풀밭으로 갑시다. 오늘 우리는 존스와 그의 일꾼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건초 수확을 끝내어 우리의 명예를 살립시다."


p. 29

그 순간, 그때까지 다소 불안한 기색을 보여 오던 암소 세 마리가 음매 하고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 암소들은 꼬박 스물 네 시간 동안 젖을 짜지 않아 젖통이 터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한 끝에 돼지들은 양동이를 가져오게 해서 제법 솜씨 있게 젖을 짰다. 돼지 발굽은 그 일을 하는 데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약간 거품이 뜬 크림색 진한 우유가 다섯 양동이 나 되었고 많은 동물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우유 통들을 바 라보았다.

"저 우유는 다 어떡할 참이야?" 누군가가 물었다.

"존스는 우리 먹이에 가끔 우유를 타 주었는데." 하고 암탉 하나가 말했다.

우유에 신경 쓸 거 없소, 동무들!" 나폴레옹이 우유 양동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유 걱정은 하지 말아요. 건초 수확이 더 중요합니다. 스노볼 동무가 여러분을 인도할거요. 난 좀 이따 뒤따라가겠소. 자, 동무들, 앞으로! 풀밭이 기다리고 있소.”

 

동물들은 건초용 꼴을 베기 위해 풀밭으로 전진했다. 저녁때 그들이 돌아와 보니 우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p. 55
나폴레옹이 나서서 풍차건설은 얼토당토 않은 것이다. 아무도 지지표를 던지지 말라고 조용히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삼십 초도 채 안되는 짧은 발언이었고 자기 발언의 효과가 어떨지에 대해서도 나폴레옹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자 스노볼이 발딱 일어나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또다시 외쳐 대는 양들에게 고함을 질러 잠잠하게 한 다음 풍차 건설 안을 지지해 줄 것을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그때까지 동물들은 의견이 양쪽으로 거의 균등하게 나뉜 상태였지만 스노볼의 달변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스노볼 쪽으로 기울었다. 스노볼은 장차 힘든 노동이 사라졌을 때의 동물농장의 미래상을 아주 강렬한 문장으로 그려 보였다. 그의 상상력은 이미 여물 썰개나 사탕무 자르개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전기가 있으면 마구간마다 전깃불, 온수와 냉수, 전기 난방기 등을 공급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작기, 쟁기, 써레, 땅 고르는 롤러, 수 확기, 건초 묶는 기계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이 끝났을 즈음에는 표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가 이미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특유의 곁눈질을 스노볼에게 한번 던지고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꽥 하고 내질렀다.

그러자 밖에서 마치 사냥감을 볼 때 개들이 짖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리더니 목걸이에 놋쇠 장식을 더덕더덕 붙인 커다란 개 아홉 마리가 헛간으로 달려 들어왔다. 개들은 곧장 스노볼을 향해 돌진했다. 스노볼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개들의 이빨을 피해 도망쳤다. 

 

p. 58

"동무들, 여러분은 나폴레옹 동무가 이 가외의 일을 맡느라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다들 고맙게 생각하리라 믿소. 동무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마시오. 오히려 그 반대요. 그건 무거운 책임입니다. 나폴레옹 동무만큼 확고하게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걸 믿는 동물도 없을거요.

 

여러분이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는데는 나폴레옹 동무도 백번 찬성이오. 그러나 동무들, 여러분은 가끔 틀린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우린 어찌 되겠소? 만약 여러분이 스노불과 그 황당한 풍차 계획을 지지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소 모두 알다시피 스노볼은 범죄자요."

"지난번 '외양간 전투에서 그는 용감히 싸웠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용감한 것만으론 충분치 않아요." 스퀄러가 말을 계속했다. "충성과 복종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외양간 전투에 대해선 당시 스노볼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장 되었다는 사실이 장차 밝혀질 것이오. 기율이 필요합니다. 동무들! 강철 같은 기율이 필요해요. 그게 지금부터 우리의 표어요. 우리가 한 발 잘못 디디면 적들이 달려듭니다. 동무들, 여러분은 존스가 돌아오는 건 원치 않지요.?"

이번에도 이런 식의 논의에는 아무도 답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동물들은 존스가 다시 오는 건 바라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에 토의를 벌이는 것이 존스를 돌아오게 하는 일이라면 그 토의는 중단되어 마땅할 터였다. 이제 생각을 다소 정리할 수 있게 된 복서가 동물들의 일반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면 옳은 거야."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더 열심히 한다." 라는 개인 모토 외에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격률을 하나 더 채택했다.


 

p. 108

동물들의 수명은 늘어나고 새끼들이 살아남는 비율도 높아지고 축사 우리에는 더 많은 짚단이 공급되어 벼룩한 테 물리는 횟수도 훨씬 줄어들었다는 등의 내용을 조목조목 자세히 입증해 보였다. 동물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존스라든가 존스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동물들의 기억에서 거의 대부분 잊히고 없었다. 그 들은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 자주 춥고 배고프다는 것.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 존스 시절에는 사정이 훨씬 더 나빴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동물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이 그렇게 믿었다. 게다가 존스 시절에는 모두가 노예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자유롭지 않은가,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스킬러는 언제나 이 점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지금은 먹여야 할 입들도 훨씬 더 많아졌다. 가을에 암돼지 네 마리가 거의 동시에 새끼들을 낳았는데 그 수가 서른하나 였다. 새끼들은 모두 혼합 종이었다. 나폴레옹이 농장에서 유일하게 거세하지 않은 수돼지였으므로 새끼 돼지들의 어미 아비가 누구일지는 짐작할 만했다.

 

본체 정원에는 나중에 벽돌과 목재를 구입해서 돼지 교실을 지을 방침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얼마간은 나폴레옹이 몸소 본채 부엌에서 새끼 돼지들의 교육을 담당했고 체육 교육은 본체 정원에서 실시되었다. 새끼 돼지들은 다른 동물의 새끼들과는 놀지 말라는 지시받았다. 이 무렵에 또 하나의 규칙이 정해졌는데, 그건 다른 동물이 길에서 돼지를 만나면 반드시 옆으로 공손히 비켜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p. 119 : 복서의 죽음

나폴레옹 동무를 겨우 그 정도로 밖에는 생각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스퀼러의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그날 농장에 왔던 마차는 원래 폐마 도축업자의 소유였다가 후에 원링던의 수의사에게 발린 것이고 그 수의사는 미처 마차 천막에 쓰인 옛날 상호를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해는 거기서 생긴 것이라는게 스퀼러의 설명이었다.

동물들은 그 설명을 듣고 크게 안도했다. 이어 스퀼러는 복서의 임종 때 모습을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복서가 극진한 치료를 받았고 나폴레옹 동무는 비용 같은 건 전혀 생각지 않고 값비싼 약을 쓰도록 배려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동물들의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복서가 적어도 행복하게 최후를 맞았다고 생각하자 동물들은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다음 일요일 회의에 직접 나타나 복서를 찬양하는 짤막한 연설을 했다. 죽은 동무의 시체를 농장으로 가져와 묻어 줄 수는 없었지만 나폴레옹 자신이 본체 정원에서 자라는 월계수로 커다란 화환을 만들어 복서의 무덤에 보내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돼지들은 며칠 후 복서를 기리기 위한 추도 연회를 열기로 했다고 그가 말했다. 나폴레옹은 복서가 생전에 좋아하던 두 모토를 동물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으로 연설을 끝냈다. "내가 더 열심히 한다."와 "나폴레옹 동무는 언제나 옳다." 이 두 가지 신조를 이제부터 모든 동물들이 각자 자신의 신조로 채택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p. 132

그의 세 겹 턱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마침내 말했다. 동물농장의 주인 여러분, 당신들에게 다스려야 할 하급 동물들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에겐 다스려야 할 하층 계급들이 있습니다. 이 '명언에 온 좌중이 함성을 질렀다. 필킹턴 씨는 다시 한번 동물농장이 식량 배급은 줄이면서 노동 시간은 늘린 것을 축하하고 그가 본 대로 이 농장에서는 동물들 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축하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동에게 모두 일어나 잔을 가득 채우라고 요청했다. "자, 여러분, 건배합시다. 동물농장의 번영을 위하여!"

열광적인 환성과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폴레옹은 필킹턴이 너무 고마웠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돌아 필킹턴에게로 가서 잔을 그의 술잔에 쨍 한 번 부딪치고는 술을 들이겼다. 환성이 가라앉자 나폴레옹이 여전히 선 자세로 자기도 한마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의 다른 때 연설들처럼 이번 것도 짧고 간략했다. 자신도 이제 오해의 시대가 끝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자신과 동료 돼지들의 사상이 불온하고 심지어 혁명적이기까지 하다는 소문들(그 소문은 악의를 품은 적들이 퍼뜨린 것으로 아는데)이 오랫동안 나돌았고 이웃 농장 동물들을 부추겨 반란을 기도하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전혀 진실이 아니다. 자신들의 유일한 소망은,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듯, 이웃 농장들과 정상적인 사업 거래를 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p. 147 : 작가의 의견(나는 왜 쓰는가)
이 모든 배경 정보를 내가 여기 털어놓는 까닭은 내 생각에 우리는 한 작가의 초기 발전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서는 후일 그를 지배하는 이런저런 동기들을 알 수 없다. 그 의 문학적 제재들은 그가 어떤 시대에 살았느냐로 결정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럽고 혁명적인 시대의 경우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기 특유의 정서적 태도를 획득하고 그렇게 획득한 태도로부터 아주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기질을 길 들이고 어떤 미숙한 단계나 괴팍한 기분에 매여 있지 않도록 자기를 훈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가 할 일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초기 영향들로부터 아주 벗어나는 것은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 자체를 죽이는 일이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외한다면, 나는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데는 (산문 작가의 경우) 네 가지 큰 동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동기 들은 작가에 따라 각각의 정도가 다르고, 동일 작가의 경우에 도 그가 사는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각 동기의 비중이 달라지 기도 한다. 네 가지 동기란 이런 것이다.

첫째, 순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 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


p. 148

한 사업가, 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 람들과 공유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 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 보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언론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가진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할지 모르지만,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이런 미학적 동기는 산문 작가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미약한 편이지만 팸플릿 저자나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휘와 문구들이 있고, 이것들은 공리적 이유를 떠나 그를 매혹한다. 어떤 활자체를 쓰고 책의 여백은 어떤 크기로 할까 등의 고려도 그런 것이다. 철도 안내서의 수준을 넘는 책이라면 어떤 책도 이 같은 미학적 관심을 아주 벗어날 수 없다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 두려는 욕망.

 

넷째,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어떤 사회를 성취하고자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이 여러 가지 충동들이 어떻게 서로 싸우고, 사람과 시대에 따라 각각의 충동이 갖는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리는 안다. 성질상 나는 (여기서 '성질'이라 함은 처음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가 도달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동기들 가운데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것을 족히 압도했을 만한 사람이다.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테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았을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나는 결국 일종의 템플릿 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잘 맞지 않는 직업 (인도와 버마에서의 대영 제국 경찰)으로 첫 오년 을 보냈고 가난을 경험했으며 실패를 맛보았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권위에 대해 안 그래도 이미 갖고 있던 증오를 한 층 더 키웠고 노동자 계급의 존재를 처음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 또 버마에서의 내 직업은 제국주의의 특성도 웬만큼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경험들은 내게 정확한 정치적 성향을 주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자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 내전 등이 발생했다. 1935년 말까지도 나는 어떤 확고한 결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무렵 나의 고민을 표현한 짧은 시 한 편을 쓴 기억이 난다.




p. 152

스페인 전쟁과 1936~1937년의 기타 사건들은 정세를 결정적으로 바꾸었고 그 이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진지하게 쓴 작품들은 한 줄 한 줄 이 모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 시대처럼 소란한 세월을 살면서 이런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난센스다. 이 시대의 작가는 누구나 이런저런 형태로 그 문제들을 다룬다. 그것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어떤 방법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다.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더 많이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진 미학적, 지적 성실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도 더 많이 갖는다.

지난 십 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 의식, 곧 불의(不義)에 대한 의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자리에 앉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자, 지금부터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쓰는 것은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이 동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책을 쓰지 못하고 잡지에 실릴 글조차 쓸 수 다.

 

누구든 내 작품들을 검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가 쓴 것들 중에 전적으로 선전적인 책조차 본격적인 정치인의 눈에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p. 154

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내가 분노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예 그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여러 형태로 계속 대두된다. 언어의 문제는 훨씬 더 미묘해서 그걸 논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이다. 단지 나는 근년 들어 아름답게 쓰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만 해 두고자 한다. 글쓰기의 형식 하나를 잘 다듬어 터득하고 나면 이미 그 순간 우리는 그 형식을 넘어 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지금 칠 년째 나는 소설에 손대지 않고 있으나 곧 한 편 쓸까 한다. 물론 실패작일 것이고 모든 책은 실패작이지만 내가 쓰려는 책이 어떤 종류인지 나는 분명히 안다.

 

지금 이 글의 마지막 한두 쪽을 다시 읽어 보니 마치 나의 글쓰기 동기가 전적으로 공공심에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나는 그것을 이 글의 최종적 인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게으르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동기의 밑바닥에는 어떤 미스터리가 놓여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처럼 끔찍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 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피곤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귀는 어린 아기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내지를 때의 본능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p. 160

자신의 개성을 끊임없이 지워없애려 노력하지 않고서는 읽을 만한 책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다. 내 경우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하게 작용했는지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그 여러 동기들 가운데 어느 것이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나는 안다. 내가 쓴 책들을 돌아보니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일수록 나는 어김없이 생명력 없는 책들을 썼고 분홍색의 화려한 단락과 의미 없는 문장과 수식하는 형용사들 속으로 속아 넘어갔으며, 그래서 대체로 허튼 소리들을 했다는 사실을 알겠다.

(1947년, 작가)

 

 

작품 해설

유립인들이 오웬의 독자, 곧 『동물농장의 일차적 독자이며, 그들이 갖고 있던 관심과 그 들이 이미 친숙하게 알고 있던 시대 상황이 『동물농장』의 당 대적 문맥이다. 그러므로 "동물농장」이 나왔을 당시의 독자들 에게는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 농장을 세운다는 이 이야기에서 인간이 누구이고 동물이 누 구인지, 동물들 중에서도 동물 공화국을 지배하는 똑똑한 돼 지들이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독재자 나폴레옹은 누구이며 그와 경쟁하다 쫓겨나는 스노볼은 또 누구인지 등등을 판별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소비에트가 소멸하고 없는 20세기 말 이후의 독자들, 특히 스탈린 시대의 정치 현실을 경험이 아니라 역사 기록과 증언 들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현대 독자들에게는 "동물농장의 풍자 문맥이 반드시 그리 자명하지 않다. 그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동물농장의 이야기 세계와 그것의 시대적 문맥이 된 현실 세계의 연결 관계를 일대일 로 표시하면 이러하다.

존스 : 메이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메이저 : 마르크스 :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돼지들 :볼세비키 

 

복서 :프롤레타리아트

 

동물 반란 : 러시아 혁명.

모지스 :러시아 정교

몰리 : 러시아 백인, 백군

스릴러 : 《프라우다>

개들 : 비밀경찰

양들 : 선전대

미니무스 : 마야코프스키

 

필킹턴 : 영국

프레더릭 : 독일

농장 본채 : 크렘린

동물 재판 : 모스크바 재판

동물 학살 :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

외양간 전투 : 1918~1919년의 연합군 침공

풍차 전투 :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

풍차 :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들

「영국의 짐승들」 : 「인터내셔널」


그런데 『동물농장이 특정 시대에 얽매이는 역사적 풍자이기만 할까? 이 지점에서 현대 독자는 「동물농장이 시대적 배경 문맥에 묶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고 그 함의의 폭이 훨씬 넓은 우화(fable)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따라서 우화 장르에 합당한 위기의 방법과 수용 태도를 채택할 필요있 다. 시대적 사회 풍자의 경우와 달리 우화당대의 현실 문 때에 반드시 매이지 않아도 되는 서사 형식이다. 이솝 우화가



p. 163

동물 농장」의 첫 프랑스어 판 번역자들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기원에 신경을 쓴 나머지 이 지도자 돼지의 이름을 세자르 (카이사르)'로 바꾸어 넣었는데, 이는 분명 우둔한 짓이면서 다른 한 측면에서는 용납될 만한 구석을 갖고 있다.)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고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 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라는 데 있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동물농장의 풍자 문맥과 우의성을 이처럼 구분해 보는 것은 이 작품의 효과적 수용을 위한 한 가지 방법적 안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구분으로부터 『동물농장」을 풍자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끌어낼 필요가 없고 그래서 이 작품을 반드시 초문맥적 우화로만 읽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결론에 도달해서도 안 된다.

 

동물농장」은 풍자와 우화라는 두 서사 형식을 결합한, 문자 그대로 '풍자 우화이기 때문에 두 형식 사이에 어떤 우열 관계가 설정될 필요는 없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풍자 형식에 의존하고 풍자로서의 「동물농장』은 우화 형식에 의존한다. 우리의 구분은 이 작품이 특정한 역사적 풍자 문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배경을 넘어 어떻게 더 넓은 의미의 우의적 풍자가 될 수 있는지 해명해보고자 한 것이다.


 

p. 165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단체의 초청에 저로서는 용할 수 없습니다. 오웰은 답신 끝부분에 또 이렇게 쓴다. "저는 러시아 전체주의를 증오하고 그것이 영국에 끼치는 악영향을 증오하지만, 저는 좌파 소속이며 따라서 좌파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오웰의 문학과 정치적 신념에 밝지 못했던 문제의 보수 단체는 오웰을 사회주의 비판자로 잘못 알고 강연을 요청했던 것이다. 오웰은 『동물농장』의 단계에 와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방기했다는 소리까지도 듣는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오웰을 잘 이해하던 당대 일급의 평론가 드와이트 맥도널 드의 경우에도 『동물농장」에 대한, 꼭 오해랄 수는 없을지 몰라도 모종의 '어리둥절함은 드러낸다. 오웰은 서둘러 자기 해명을 시도한다. 그는 『동물농장」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풍자로 쓰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풍자가 '더 광범한 적용 범위를 갖게 하자는 것도 자기 의도였다고 말한다.

 

이 해명에서 오웰은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꿀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에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이 그가 「동물농장」에 싣고자 한 메시지라 말한다. 「동물농장의 앞부분 내용 중에 돼지들이 우유와 사과를 돼지들만의 몫으로 빼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웰은 바로 이 대목이 혁명의 부패가 시작되는 전환점이라는 말도 한다. 이는 동물들이 그 대목에서 돼지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면 동물농장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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