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덟 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제니퍼 다우드나의 대중을 위한 과학 서적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각종 생명공학과 의학 용어들이 책을 읽는데 조금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전할 만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용들 중에 밑줄들을 가져와 봅니다.~
p. 37 : 1 치료를 위한 탐색
게놈은 데옥시리보산 핵산, 즉 DNA라는 분자로 구성된다. DNA는 오직 네 개의 기본 물질로 이루어진다. 이 기본 물질을 뉴클레오타이드라고 부르며, DNA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A, G, C, T라는 약칭이 바로 뉴클레오타이드를 나타낸다. A, G, C. T는 각각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을 뜻하는데 뉴클레오타이드의 화학기, 즉 염기를 상징한다. 이 분자들은 한 가닥으로 길게 이어진다. 두 가닥이 만나면 그 유명한 이중나선 구조의 DNA를 형성한다.
이중나선은 사다리가 길게 나선형으로 꼬인 형태다. DNA 두 가닥 이 중심축을 따라 서로를 감싸고, 이중나선 바깥쪽에 당인산 뼈대가 이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사다리 난간의 양면을 형성한다. 이 형태는 이중나선 안쪽에 있는 네 개의 염기가 안으로 향하게 해서 가운데에서 서로 만나게 되며, 이것이 사다리의 가로대에 해당한다. 이 구조 물의 우아한 특징은 각각의 가로대를 하나로 이어주는 분자 접착제 같은 화학적 상호작용이다. 염기 A는 항상 맞은편의 T와, G는 항상 C와 짝을 이룬다. 이를 가리켜 염기쌍이라고 부른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화학물질인 DNA가 유전정보를 세포분열로 생긴 두 개의 딸세포에 전달하는 방식이나, 유전정보가 식물이나 동 물의 모든 세포로 전파되는 방식 등, 이중나선은 유전의 분자적 토대를 우아하게 보여준다. DNA 분자의 두 가닥 구조의 장점이나 DNA 조합 4와 T. G와 C)을 지배하는 규칙에 따라 각각의 가닥은 짝을 이루는 가닥의 완벽한 주형 된다. 세포분열 직전에 두 가닥 DNA는 이중나선의 가운데를 열어주는 효소에 의해 분리된다. 이후 다른 효소가 동일한 염기쌍 형성 규칙에 따라 각각의 가닥에 맞는 새로운 가닥을 합성하며, 그 결과 원래의 이중나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두 개의 이중나선이 만들어진다.
p. 77 : 2 새로운 방어법
DNA 영역을 표시했다. 바로 이 영역이 크리스퍼였다. 질리언은 마름모를 색칠한 뒤, 이것이 모두 똑같은 30여 개 DNA 염기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다음에는 사각형에 숫자를 1부터 써넣고 이 사각형은 독특한 DNA 염기 서열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비로소 '짧은 회문구조가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구조가 모여 있다'는 두문자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름모는 짧은 반복 서열이고 사각형은 반복 서열을 규칙적으로 끊어주는 간격에 해당하는 서열이며, 마름모와 사각형의 띠는 아무 데나 흩어져있지 않고 염색체의 한 영역에 모여 있었다(사무실에 돌아와서 반복되는 DNA 염기서열을 더 자세히 살펴보니 두 문어의 P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복된 염기 서열은 앞뒤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똑같아서 회문구조 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senile elines' 처럼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구조를 회문구조 라고 한다).
p. 87 : 2 새로운 방어법.
어떤 바이러스 게놈은 캡시드 안에 아주 단단하게 뭉쳐 있어서, 단백질 껍질이 열리자마자 샴페인 병을 딸 때처럼 내부 압력을 단번에 터트리면서 세균 세포 속으로 폭발하듯이 퍼져나 간다. 일단 바이러스 게놈이 세균 세포 속으로 퍼지면 숙주 조직을 빼앗는 경로는 두 가지가 있다.
용원성(sogenie) 경로에서는 바이러스 게놈이 숙주인 세균의 게놈에 끼어 들어가 수많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자기 복제를 할 적당한 시기를 기다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용균성(lytic) 경로에서는 바이러스 게놈이 숙주의 모든 것을 즉시 차출해서 세균이 자기 단백질 대신 바이러스 단백질을 생산하게 하고 바이러스 게 놈을 수없이 복제해서 세균 세포가 축적되는 압력을 못 이겨 난폭하게 폭발하며, 새로 만들어진 박테리오파지를 산산이 흩뿌려 이웃 세포에 감염을 일으킨다.
세포 침입, 납치, 복제, 전파로 이어지는 이 생활사를 통해 박테리오파지 하나가 세균 집단 전체를 몇 시간 만에 전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세균도 이 오랜 전쟁에서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식물과 동물처럼, 세균도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인상적인 방어 전략을 개발했다. 내가 질리언과 이야기했던 당시에는 세균의 주요 방어 체계가 네 가지나 밝혀졌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균이 자신의 게놈에 독특한 표지를 달아서, 발현하는 유전정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DNA의 화학적 형태만 미묘하게 변화시키는 전략이다. 그런 뒤, 세균은 제한효소로 이런 표지가 없는 DNA는 모두 잘라 버려서 세포벽을 뚫고 들어온 박테리오파지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제거한다.
세균은 박테리오파지가 만든 구멍을 막아서 박테리오파지 DNA가 주입되는 일을 막거나 세포 표면에 파지 단백질 분자가 부착하는 것을 막아서, 박테리오파지 DNA가 세포 속으로 들어오는 일 자체를 방해할 수도 있다.
p. 105: 3 암호를 해독하다.
이렇게 섬세한 과정을 통해 추측하는 생물정보학자들은 크리스퍼 영역에 항상 공존하는 수백 가지 다양한 캐스 유전자의 화학적 조성을 이미 밝혀냈다. 어떤 생물체를 들여다보는 게놈에 크리스피 DNA 가 있다면 반드시 캐스 유전자도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크리스퍼가 캐스 유전자와 함께 공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으로,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인다.
캐스 유전자가 암호화하는 단백질은 아마 크리스퍼 DNA와 긴밀하게 작용하리라고 우리는 추측했다. 아니면 크리스퍼 RNA 분자,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박테리오파지 DNA와 함께할 것이라고 봤다.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크리스퍼 면역 체계 전체를 이해하려면, 이 유전자의 기능과 이 유전자가 생산하는 단백질의 생화학적 기능을 알아야 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블레이크는 서로 다른 크리스피 체계를 가진 대장균과 녹농균 두 종을 선택했다. 특히 대장균은 생화학자의 가장 오랜 친구다. 미생물, 식물, 개구리, 인간 등 대상과 관계없이 유전자 연구를 하는 생화학자라면 누구든, 유전자를 인공적인 작은 DNA인 플라스미드에 클로닝 해서 특화된 대장균주에 플라스미드를 집어넣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원하는 목표 유전자를 다른 합성 DNA와 이어 붙인 후, 생화학자는 대장균을 속여서 이 플라스미드를 대량 생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대장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목표 유전자가 암호화하는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만든다.
p. 131. : 3 임호를 해독하다
우리가 해냈다. 짧은 시간에 우리는 세균 바이러스 게놈뿐만 아니라 어떤 게놈이든 편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정립해서 성능을 입 증했다. 징크 핑거 뉴클레이즈와 탈렌 단백질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초한 결과다. 세균의 다섯 번째 무기 체계로 우리는 생명의 암호를 교정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냈다.
그날 밤. 부엌에서 저녁을 요리하면서 이 작은 기계의 전망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다. 캐스9과 가이드 RNA가 일치하는 DNA 서열을 찾아서 세균 세포를 윙윙거리며 맴돌았다. 문득,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바이러스 DNA를 찾아 파괴하도록 전사 R: 단백질을 프로그래밍할 방법을 만든 세균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체인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신을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개조하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이 따라준 기적 같은 일인가. 그 옛날 헵스 교수의 실험실에서 느꼈던 순수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2012년 6월, 드디어 에마뉘엘과 크시슈토프는 학회에 참석하러 버클리에 와서 마틴과 나를 만났다. 그동안 우리 네 명이 움직인 거리를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그때까지 우리의 의사 교환은 거의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이루어졌다. 무수한 전화 통화와 스카이프 토론, 이메일 교환 끝에 우리는 모두 버클리의 내 사무실에 모여 짧지만 열정적인 공동 연구의 결과를 보며 감탄했다.
p. 199 : 5 크리스피 동물원.
이 발전은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형질전환 원숭이는 2000년대 초, 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외부 유전자를 원숭이 게놈에 삽입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 원숭이는 크리스퍼 세대 이전에는 만들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2014년에 바뀌어서, 중국 연구팀은 1년 전 생쥐에게 적용했던 유사한 실험방법을 이용해서 단세 포 배아에 크리스퍼를 주입해 유전자 편집 필리핀 원숭이를 만들었다. 이 연구에서 연구팀은 크리스퍼가 동시에 유전자 두 개를 표적 화하도록 프로그래밍했다. 하나는 사람의 중증 복합형 면역부전증과 연관된 유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비만 관련 유전자로, 두 유전자 모두 사람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후 다른 과학자들도 50% 이상의 인간 암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를 변형한 필리핀 원숭이를 만들었고, 뒤센 근이영양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가진 붉은 털 원숭이도 만들었다.
원숭이 모델은 인간 행동과 인지장애 연구에 특히나 적합하므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신경계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도 탐색할 수 있다. 원숭이로 질병 모델을 만드는 일에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인간 질병의 고통을 완화하려면 치료법을 탐색하는 과정 이 꼭 필요하다. 유전자 편집 원숭이는 사람 환자를 대신할 신뢰할만한 모델이며, 과학자는 이런 모델을 이용해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질병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돼지는 크리스퍼 덕분에 인간 질병 모델계의 또 다른 인기 모델이 되었다. 돼지는 인간과 해부학적 유사점이 많으며, 임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한 배에 낳는 새끼 수도 많다. 적절한 지침이 만들어진
p. 224
재력을 보며, 나는 지난 몇 년간 크리스퍼 기술을 익히도록 도와달라는 제약 회사들의 요청과 신약 개발에 크리스퍼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묻는 말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치료법으로서 유전자 편집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며, 임상시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황이 지금부터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전자 치료의 성공을 향한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에서, 의학의 발전은 항상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크리스퍼가 달려갈 실험실에서 진료실로 이어지는 길 역시 멀고 험할 것이다.
어떤 세포를 표적으로 할지 결정하는 일은 과학자가 직면하는 수많은 딜레마의 하나다. 체세포(somatic cell, 그리스어 soma는 '몸'을 뜻한다)를 편집하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생식세포(germ cell, 라틴어 germen은 ‘싹’ ‘발아'를 뜻한다)를 편집하는 편이 나을까? 두 세포의 명확한 차이점은 오늘날 의학계의 가장 뜨겁고 활발한 논점의 하나다.
생식세포는 게놈을 후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세포를 가리키며 따라서 생물의 생식세포 계열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유전물질의 흐름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난자와 정자는 가장 확실한 인간 생식세포이며, 생식세포 계열은 성숙한 성세포의 전구세포뿐만 아니라 초기 발달 단계의 인간배아부터 줄기세포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제세포는 생식세포를 제외한 생물의 모든 세포를 일컫는다. 심장, 근육, 뇌, 피부, 간 등 어떤 세포든 후손에게 DNA를 물려줄 수 없는 세포다.
p. 228
예를 들어, 면역 결핍증은 백혈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헌팅턴병은 주로 뇌신경 세포에 영향을 미치며, 김상적혈구병은 헤모글로빈을 운반하는 적혈구를, 낭포성섬유증중은 주로 폐를 손상한다. 유전 질병의 효과는 이처럼 국지적으로 나타나므로,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신체 부위의 세포만 치료하면 된다.
크리스퍼를 특정 부위에 국지화 하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니며, 세 포 속에 들여보내는 일이 쉽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크리스퍼 전달 문제는 체세포 유전자 편집 기술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전달 전략은 크게 생체 내 유전자 편집 (in vivo, 앞서 말한 대로 라틴어로 생물제 안의 '라는 뜻이다)과 생체 외 유전자 편집 (ex vivo, 라틴어로 '생명체 밖의'라는 뜻이다) 두 가지로 나뉜다. 생체 내 유전자 편집은 크리스퍼를 직접 환자 몸으로 들여보내 몸속에서 편집한다. 생체 외 유전자 편집은 환자 세포를 몸 바깥에서 편집한 뒤 다시 환자 몸속으로 집어넣는다. 생체 외 치료법이 훨씬 더 간단하고, 과학자는 이미 실험실에서 세포를 편집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생체 내 치료법보다는 생체 외 치료법에 한 발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생체 외 유전자 편집의 또 다른 장점은 유전자 편집한 세포를 환자 몸속에 넣기 전에 철저하게 품질 관리 시험을 거칠 수 있다는 점이다.
생체 외 유전자 편집은 먼저 병에 걸린 세포를 몸에서 채취해야 하므로, 특히 현액 질병을 치료하는 데 적합하다. 유전자 편집과 헌혈, 수현 기술을 모두 동원해서 의사는 환자의 몸에서 질병에 걸린 혈액을 때내 크리스퍼로 편집한 다음, 순환계로 되돌려놓는다
p. 246
레일라는 런던에 사는 한 살짜리 아기로, 흔한 소아암인 급성 림프 구성 백인병 환자였다. 주치의는 레일라의 백혈병이 자신이 본 것 중에 가장 공격적인 백혈병이라고 말했다. 약 98%의 아이들이 치료를 시작하면 차도를 보이는 데 비해, 레일라는 항암 화학요법을 해도 나 아지지 않았고, 골수이식이나 항체 기반 약물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레일라 자신의 T세포를 변형시켜 다시 주입하는 치료는 선택사항에 들지도 못했다. 백혈병은 건강한 면역 체계에 필요한 백혈구에 영향을 미치는 병인데, 레일라의 면역 체계는 백혈병 때문에 너무나 약해 지서 추출할 만큼의 T 세포가 몸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레일라의 상태는 절망적이었고 주치의는 레일라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완화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또 다른 선택이 나타났다.
레일라가 입원한 병원에 크리스퍼의 이전 세대 기술인 탈렌을 이용해서 T세포를 편집하는 연구실이 있었다. 바로 여기에 프랑스 생명공학 기술 회사인 셀렉티스 사가 임상시험을 준비하던 입양 세포 이식용 세포가 있었다. 레일라의 부모와 셀렉티스 사의 동의를 받은 후, 레일라의 주치의는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이 세포를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적절한 치료제가 없을 때 허가받기 전인 지료제를 일부 중증환자에게 사용하도록 이용하는 제도)을 통해 최초로 사람에게 투입했다.
레일라에게 주입한 T세포는 몇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첫째, 이 T세포는 백인 분자 표지를 가진 세포를 표적화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새 수용기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둘째, 이 T세포 레일라 세포에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전자 편집되었다. T세포는 종종 환자 세포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이러면 공여자 사이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T세포는 레일라의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투명망토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유전자가 편집되었다.
세포 이식 후 몇 주 동안 한 살짜리 아기에게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p. 259
사실 샘이 크리스티나와 만나기 한 달 전에 정확한 유전자 편집으로 게놈을 교정한 최초의 원숭이가 태어났고, 크리스퍼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로 이끄는 문 앞으로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영장 류와 그 이전의 벌레부터 염소까지 다른 동물 종을 크리스퍼로 조작하는 발전에 힘입어, 점점 길어지는 크리스퍼로 게놈을 조작한 생물 목록에 사람이 올라가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이 가능성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이해했다. 인간유전학이 더 발전하고, 식량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생산할 수 있으며, 파괴적인 유전 질병을 치료하는 등, 유전자 편집이 우리 세계에 가져올 압도적이며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퍼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일을 상상하면서 점점 우려가 커졌다. 우리의 발견이 유전자 편집을 '너무 쉽게 만들었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불러올 결과나 타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새로운 연구 분야에 무턱대고 뛰어들고 있지 않은가? 크리스퍼는 특히 사람 게놈과 관련된 부분에서 악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을까?
나는 특히나 머지않은 미래에 과학자들이 사람 게놈에 유전성 변형을 시도해서, 살아 있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거나 수정되지도 않은 아이가 앓으리라고 예상되는 질병을 제거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문제는 크리스티나가 샘에게 한 제안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만약 크리스티나가 실패했더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 가능성은 나를 괴롭혔다.
p. 286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기사를 거기서 뽑아가기도 하므로, 과학 학술지에 사설을 싣기로 했다. 우리의 회합이 생물학 전체에서도 가장 뜨거운 주제를 다루었으므로, 이 기고문이 눈길을 끌 것이라 여 겼다.
우리는 사이언스에 투고하기로 한 사설의 윤곽을 잡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사설에서는 오로지 이 주제에만 관심을 모으는데 집중하기로 동의했다. 물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주제가 많지만, 처음부터 이런 논쟁에 뛰어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공을 굴리는 데 집중하고, 더 깊은 논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하게 되면 다 음 회의에서 다루기로 했다.
마침내 기운이 빠진 채로 우리는 나파강 위쪽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안젤로 자리를 옮겼다. 근처 언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긴 타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포도주와 간식을 먹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일과 가족,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오전과 오후 내내 우리를 짓눌렀던 무거운 주제를 내려놓게 되어 모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널뛰고 있었다
새로운 무대에 오르면서 나는 정말 옳은 행동을 했는가? 대중에게 과학 주제를 설명한다는 생각은, 그 주제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내게 는 매우 낯설고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주장이 영향력이 있을지, 우리 의도대로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었다. 잘 넘어갔다고 하터라도 영향력이 너무 미미하거나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포럼에서 들었던, 주요 과학 학술지에 발표하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논문이 뇌리에 서 지워지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에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 중이거나...
p. 323 :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일단 판세를 바꾸는 기술이 세계에 퍼져 나가면 억누르기는 불가능하다. 신기술을 이용해서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면 그 자체로도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핵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은 집중적인 연구 개발 노력으로 이어졌고, 선 세계 정치 체제와 사람들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놓았으며, 때로는 더 불안한 삶으로 이어졌다. 핵무기와 달리 유전자 편집 기술은 충분히 정보를 습득한 대중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그리고 생명의 미래를 통제할 크리스퍼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할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나 너무 미적거리다가는 고삐를 손에서 놓칠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종을 정의하는 특성 중 하나는 알려진 것과 가능한 것의 경계선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여 탐색하려는 투지다. 로켓 과학의 발전과 우주여행은 인간이 다른 행성을 탐험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입자물리학의 발달은 물질의 기반을 보여주었다. 같은 방식으로 유전자 편집의 발달은 우리가 생명의 언어를 수정해서 자신의 유전적 운 명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할 능력을 주었다. 동시에 우리는 기술을 활용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신지식을 다시 묻어 버릴 길 은 없으니 기술을 수용해야 한다. 다만 신중해야 하고 이 기술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상상 이상의 힘 존중해야 한다.
대부분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은 자연이 행사하는, 느리고 때로는
p. 324
감지할 수 없는 진화 압력에 노출되었다. 이제 우리는 진화 압력의 강도와 초점을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이제부터 인간과 지구는 지금까지 발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지금부터 불과 몇십 년 후에 평균적인 인간 게놈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인간이나 세계가 몇백 년 또는 몇천 년 사이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올더스 헉슬리는 유전자 카스트가 존재하는 미래를 상상한 으스스하고 유명한 소설 (멋진 신세계》를 집필했다. 요즘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이라는 주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 소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헉슬리의 디스토피아는 2540년이 배경이다. 생식세포 편집에서 유전적 불평등이 생겨난다면, 디스토피아가 구축되는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크리스퍼 같은 기술이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우리 인간을 재정립할 수많은 다른 길을 생각해보라.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아마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 좋은 방향일 것이다. 크리스퍼는 세계를 개선한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유전자를 편집해서 심각한 유전 질병을 대부분 없애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백신이 천연두를 몰아내고 이어서 소아마비도 없앤 상황과 비슷하다. 수천 명의 과학자가 크리스퍼로 암 같은 재앙을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법이나 완전한 치유법을 찾아내는 장면은 또 어떤가? 농부가, 목축업자가. 세계 지도자가 크리스 퍼로 창조한 기후 변동에 더 잘 견디는 곡물로 세계의 기아 위기를 해결하는 일도 상상해보기 바란다. 위의 시나리오들은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기술은 없다. 다만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크리스퍼를 예로 들자면, 이 신기술의 잠재력은 좋든 나쁘든 인간의 상상력에만 제한받는다. 나는 인류가 크리스퍼를 선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나쁜 방향으로는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굳건하게 믿는다. 동시에 이 모든 일이 개인 그리고 집단으로서 인간의 결정에 따라 달라지리라는 점도 알고 있다. 이전에는 한 생물종으로서 인간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만한 기술을 손에 쥐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의 유전적 미래를 통제할 힘은 경이로운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대면한 적 없는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p. 329 : 에필로그
협력 연구가 과학탐구라는 바퀴에 칠하는 윤활유라면, 경쟁은 엔진을 움직이는 불꽃이다. 건전한 경쟁의식은 과학이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부분이며, 수많은 인류의 위대한 발견에 이바지하는 연료가 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크리스퍼 분야에 일어나는 강도 높은 경쟁이라든지 불과 몇 년 사이에 크리스퍼가 발전할 정도의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사실상 누구나 접하는 세계적인 분야가 된 현실 등을 깨닫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과학의 두 축인 경쟁과 협력은 내 경력을 정의하며 한 개인으로 나를 구체화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나는 깊은 우정에서 충격적인 배신까지 온갖 인간관계를 전반적으로 경험했다. 이런 만남은 내게 나 자신에 관해 가르쳐주었고, 인간은 자신의 열망을 통제하든지 열망에 통제를 받든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또한 내게 익숙한 공간에서 걸어 나와 비전문가들과 과학에 관해 토론하는 일의 중요성도 인정하게 되었다. 과학자의 사회 공헌에 관해 회의적인 대중에게 과학자는 점점 더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곧 세계를 설명하고 개선하는 과학의 힘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뜻 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기후 변화를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자녀에게 백신을 맞추지 않으려 저항할 때, 유전적으로 변형된 생물은 인간에게 해롭다고 주장할 때, 이런 상황은 대중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소통이 단절되었다는 일종의 신호다. 이미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유전자 변형CM 아기'를 비난하며 크리스퍼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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