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책에 모지스 할머니 그림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책 내용을 떠나 이 그림을 알아 볼 수 있어서 유쾌한 기분입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에 즐거움을 잃어간다.
집은 아주 기능적으로 설계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 않는 한 점차 단조로워진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보인다. 다양성의 부족은 무심함에서 비롯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음악도 아침저녁으로 같은 곡을 틀지 않는데 하물며 왜 같은 그림을 같은 벽에 일 년 내내 걸어놓아야 하는가? 그 그림을 잘 보이는 곳에 붙였을지는 모르나, 당신이 그걸 바라보지 않은지 분명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라보며 즐기지도 않을 그림을 왜 벽에 걸어놓 았는가?
다시 그림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여기 시도해 볼 만한 실험이 있다. 명화가 잔뜩 실린 책들은 가끔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한 권 사서 한 장을 떼어놓아라. 가끔 들여다볼 수 있는 곳, 예를 들면 식탁 위 같은 곳에 한 장을 펼쳐둔다. 그림을 하루에 한 번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바꾸자, 스스로 느끼겠지만 각각의 그림을 점점 더 보고 싶어질 것이고, 어쩌면 좀 더 큰 그림을 사서 벽에 걸어두고 자주 바꿔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음악은 그때그때 내가 듣고 싶은 것으로 더 쉽게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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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과 일부러는 하늘과 땅 차이
일부러 규칙을 지키는 하루 일과가 지니는 장점은 많다. 우선 건강에 좋다. 외국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불규칙한 일과 때문에 크고 작은 건강문제를 겪는다. 하루 일과를 잘 짜놓으면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매번 생각할 필요가 없고, 하고 싶은 일을 오래 미룰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잠자리를 정돈하기 전에 절대로 침실을 떠나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달려갔다 오기 전에는 절대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나름의 방법들은 상쾌한 하루를 만드는데 도 움을 준다.
즐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일과 운동, 여가를 즐기는 것도 정해진 시간에 하면 좋다. 렉스 스타우트(Rex Stout, 미국의 추리소설가)의 소설 속 주인공 네로 울프를 모델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사건의 압박감이 얼마나 크든 그는 정해진 시간을 꼭 자신의 과수원에서 보냈는데, 그 시간이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추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명상, 독서, 편지 쓰기, 집안일, 운동하기, 식사하기, 의사의 충고 따르기 모두 시간을 정해두면 지켜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의사는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얼마만큼의 운동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고 해서 그것을 따르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날마다 침대에 들어가기 전이라든지 시간을 정해 기록을 남기자. 달력에 계획대로 운동을 했는지 표시하여 하루하루의 결과를 점검해 본다.
좀처럼 밖에 나가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면 식료품을 딱 하루치만 사온다. 그럼 밖에 나가고 싶지 않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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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좀 다른 생활을 해보도록 노력하라. 전에 읽어 보지 못했던 분야의 텔레비전 채널, 신문이나 잡지 또는 책들을 읽어보라. 시간의 이점을 활용해 꽤나 긴 장편소 설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영국의 소설가)의 《두 도시 이야
기》《위대한 유산》《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대작은 처음에 연재물로 시작됐다. 그래서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를 한두 편 들춰보는 것으로는 이해도 안가고 좋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싸구려 소설과 좋은 문학의 차이란 주로 흥미진진한 사건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유념하라. 만화는 대개 네 번째 칸마다 웃음거리를 제공하며, 싸구려 작품은 거의 매 페이지마다 적당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좋은 문학작품을 즐길 줄 알게 되면, 당장은 재미있지 않지만 앞으로 등장할 드물면서도 훨씬 더 감동적인 사건들을 기다리면서 긴 문단들을 읽어나갈 수 있다.
만화나 가벼운 소설이 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판단하는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수한 문학작품이나 훌륭한 그림 또는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좋은 작품들이라고 불리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가를 위한 시간이 생긴 지금이야말로 고급 취향을 기를 만한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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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의견은 당시에 정말로 옳았을 수 있다. 다만 지식의 증가와 시대의 변화로 다른 의견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생긴다. 익숙한 생각에만 머무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노인들도 여전히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 기 위해 유명한 실례를 몇 가지 인용하겠다.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는 89세까지 살았으며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베르디(Giuseppe Verdi,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는 80세에 코믹 오페라 <팔스타프 Falstaff> 를 비롯해 여러 곡을 작곡했다. 그런데 그 나이까지 창조적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젊은이들의 발명품은 노인들의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젊은이들의 마음속으로 훨씬 잘 흘러 들어간다”고 말한 프랜시 스 베이컨(Francis Bacon,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은 진실에 매우 가까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1953년 <나이와 업적 Age and Achievement〉이라는 고전 연구에서 심리학자 하비 레만(Harvey C. Lehman)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의견이 세월이 갈수록 타당하다는 증거가 있다 고 보고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이루는 때가 18세기에는 40대였지만, 19세기와 20세기에는 30대라고 보고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는 인생이 길어짐에 따라 더욱 짧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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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레만이 노년에 여러 분야에서 다시 창조력이 되살아나는 조짐이 있다는 것도 발견해내지 않았다면, 이 보 고는 노년에게는 매우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특출한 시를 써내는 생산력 곡선 그래프는 25세에서 29세에 절정을 이루고 다시 80세에서 84세 사이에 정점을 찍는다. 또한 작가 70명이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를 저작하는 생산력 곡선은 35세에서 43세에 절정을 이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60세에서 64세에 다시 한번 절정에 다다른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중요한 작품들을 보면 30 대 화가의 그림이 많지만 70대 화가가 그린 작품도 적지 않다. 많은 교향악이 작곡가가 30대 후반일 때 작곡된 것 들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많은 양의 교향악이 70대 초반의 작곡가에 의해 쓰였다. 철학자들은 특히 35세에서 40세에 생산적이지만, 80세 이후에도 다시 생산적인 활동을 보였다.
노년에 독창적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은 당신이 이미 하고 있는 일 중 무엇이 됐든 조그마한 변화를 꾀하는 것이 다. 누가 보더라도 자명한 사실일지라도 반대로 바꾸어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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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을 쓴다. 저술을 끝내고 그 책이 잘 팔리면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책을 쓰는 동안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괜찮은가, 내가 의도하는 것이 정확히 표현되었는가, 이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었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도 마찬 가지다. 일을 마친 뒤에야 따라오는 장기적인 결과는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 또는 방금 생각난 음절을 피아노 건반을 쳐서 시험해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다.
장기적인 결과와 즉각적인 결과의 차이는 모든 게임과 스포츠에도 존재한다. 골퍼들은 드라이브를 하고 퍼팅을 하여 게임을 한다. 게임이 끝났을 때 그는 생애 가장 나쁜 점수를 얻었을 수도 있고, 상대편을 꺾었을 수도 있다. 이는 골퍼가 게임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공이 옳은 방향으로 갔는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갔는지, 공이 홀에 들어갔는지 빗나가 홀에 들어가지 못했는지에 달려 있다. 반면 골프가 주는 즉각적인 즐거움은 골프채를 잘 사용하면서 공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행위 자체에 있다. 이것은 이긴다는 것과는 다르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은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 그저 물레를 돌려 실을 짓는 일일 지라도 노동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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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이야기를 또 반복하는 것 역시 지루하다는 반응을 낳는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같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마라”.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관객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 비해, 노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똑같은 관객에게 지나칠 정도로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경향 이 있다. 아마도 벌써 지난번에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잊었을지 모른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는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관객에게 진정으로 그 이야기 가 듣고 싶은지 물어봐야 재밌는 무대를 펼칠 수 있다.
한편, 당신의 나이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는 면도 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어 보이기 때문에 당신은 지루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만일 실제로 무대에서 펼쳐진 연극이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일어나서 나갔을 것이다. 지금은 예의 바르게 듣고 있지만, 다음번에 또 레퍼토리가 같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객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노인에 대한 예의와 존경은 당신에게 '장광설'이라는 또 하나의 지루한 특성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젊은 사람들은 당신이 계속하 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노인이라서 당신에게 그와 같은 여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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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옆으로 지나치는 풍경으로 눈을 돌린다. 시골길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고, 싱싱한 채소가 자라나고 있는 밭과 푸르른 나무 그리고 구름을 음 미하라. 도시에서는 새로 생긴 건물의 모양 또는 사람들의 옷차림 또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라. 그러다 보면 당신은 익숙한 옛 장소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도 시시해지고 흥미가 없어지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보라.
달리는 차의 전방을 지켜보지 않는데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나면 그게 얼마나 쉽고 차창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우며, 당신과 당신 친구가 얼마나 즐거운 여행을 했는지를 깨닫고 놀랄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며 운전 지시를 하는 것은 노인들에 대한 많은 불평들 가운데 하나의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활동적인 역할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자꾸만 느낄 것이다. 그러나 바라지 않는 충고는 상대방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상대 역시 충고하는 사람을 더 가치 있는 친구로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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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나 경로와 함께 외워야 할 것을 같이 기억해두는 전략이다. '걸이단어법(peg word system)'은 어떤 목록을 외우고 여기에 외워야 할 것을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전략이다. 이렇듯 연상을 활용해 기억을 돕는 방법들이 있는데, 이는 당신이 한 사람의 이름을 나중에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때에만 효과적이다.
사람을 소개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정말로 당혹스러우며, 이러한 당혹스러움이 악순환을 부르기도 한다. 말을 더듬는 사람의 경우, 특히 말을 더듬어서 나쁜 결과를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말을 더욱 더듬게 된다. 사람을 소개받을 때 이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해한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이름을 더 잘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 결과 이름을 잊어버린 사 람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되면 이런 불안은 더 큰 문제가 된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프랑스의 작가)의 소설 《잃어버 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듯 아주 사소한 일이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는데, 상대를 똑바로 보지 않으면 아무 단서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이름을 기억하기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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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각이 달라진다
만일 노인이 된 느낌이 어떤가를 알고 싶다면, 먼지 낀 안경을 쓰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뒤 커다랗고 무거운 신을 신고 장갑을 낀 채 여느때처럼 하루를 보내보라. 나이가 늘어갈수록 감각이 무디어지고 근육이 약해진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운동선수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 퇴하는 것은 감각과 근력이 떨어진다는게 현역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실 운동선수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많은 일들 중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 다는 걸 깨닫는다.
이와 같이 노년이 갖는 몇 가지 부족함은 안경이나 보청기 같은 여러 보조기기로 보완할 수 있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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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후의...
그들의 성적 흥분에 공감하고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들에 우리도 성적으로 흥분한다.
물론 우리는 모든 일에 똑같이 흥분하고 기뻐하고 자극받지는 않는다. 우리가 성에 대한 관심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면 열정적인 흥분에 쉽사리 도취되지 않고, 그래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적다는 장점을 내세울 수도 있다.
듣자 하니,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보다 더욱 성공 적으로 애정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틀림없다. 젊은 부부가 이혼했을 때는 거의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들의 이혼은 뉴스거리가 되고 그들이 함께 지낸 햇수가 강조되면서 이야깃거리가 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 사이의 애정관계를 거 북하게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다. 일방적인 사랑만 아니라면,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사랑은 적어도 성적인 사랑이 아닌 한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나이 차이가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다른 중요한 이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 재정적인 문제 등도 그 일부다. 그러나 이는 결코 죄악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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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도 몇 가지 있다.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짐을 들어주며 길을 건널 때 팔을 잡아주는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얼마만큼 친절하고 품위 있게 받아들여야 할까? 열 살 정도의 아이들에게 할 법한 너무 자세한 설명을 베푸는 사람들의 자상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치원 선생님들이 어린애들 대하듯 “그래도 참 잘했어요”라고 좋은 뜻으로 격려해 주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물론 “정말 이제는 많이 자랐구나”라고 말하 는 대신 그들은 “당신이 그렇게 늙은 건 아니에요"라고 이 야기하겠지만 말이다.
이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굴 욕감을 느낄 때, 당신이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몇 가 지 진실한 겸손뿐일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자신이 하는 행동과 그 행동을 일으키는 환경으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이다. 필사적인 의지로 기분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환경을 바꿈으로써 기분을 전환하는 게 낫다. 이 숲에서 나는 풀과 꽃이 즐겁지 않다면 다른 숲으로가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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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단 한 가지 공포가 있다면, 바로 죽음의 공포가 자신의 인생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만일 죽은 뒤에 우리가 이승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거나,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 는지 확신하지 못해 두려움에 압도되는 사람이라면 “언젠 가는 죽을 것임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경고 정도만 새기고 그 이상은 잊어버리는 게 적절할 듯하다. 구약성서의 구절 중에서 “이 태양 아래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에 더 기대어, 꼭 필요한 순 간이 오기 전까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죽음, 불가피한 종말
때가 되었을 때 그것이 오리니.
_줄리어스 시저(Gaius Iulius Caesar, 로마의 황제였던 정치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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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되 새길 수 있는 추억거리가 확실히 더 많고,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나 노인들이 자신의 추억을 즐기는지 아닌지는 추억의 성격에 달려 있다. 추억을 회 상하며 후회하고 슬퍼한다면, 그 시간이 즐거울 리 없다. 물론 제임스 헌트(James Hunt, 영국의 시인)가 읊었듯, 행복했 던 일화는 떠올릴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피곤하다고 이야기하고
나는 슬프다고 이야기하라.
건강과 부는 나를 지나치고
나는 늙어간다고 말하라. 그러나 꼭 덧붙여라.
제니가 나에게 입 맞추었다고.......
진심 어린 따뜻한 애정을 나눈 기억,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기억, 이 모두가 진실로 가치 있는 일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노인들이 계속 바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지금을 즐겁게 보내라고 북돋우는 것은 마치 우울증에 빠진 젊은 사람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봐. 사랑스러운 아내, 귀여운 아이들, 쾌적한 가정, 경제적 부유함......"이라고 말하면서 달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문제는 그 모두는 예전의 성취라는 점이다.
노인들에게는 '지금'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함으로써 더욱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리처드 2세 Richard I》의 표현처럼 “눈과 얼음에 덮인 코카서스 산맥 위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손으로 불을 쥐어보려는” 것과 같다. “아, 슬 프도다! 좋았던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는 더욱 나빠질 것뿐이라는 감정밖에 주지 않는다."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아주 추운 곳에 낙 오되었을 때 잠이 오는 것과 같다.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 기 위해서는 계속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찾아낸 할 일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짜 무사평안한 생활이다. 노인의 삶을 조용하고 수동적인 움직임 안으로 한정하는 것은 아마도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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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현명한 사람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돈 많고 현명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더 이상 건강을 유지하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보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현명함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명하다는 것은 존경받는 노인의 특징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이 어린 사람들보다 잘 단련되었 고 원숙하다. 또 여러 갈래의 길 중 어느 길로 가야 하는 지를 안다.
원로원(senatus)이라는 옛 로마의 통치기구 이름은 '나이 가 든'이라는 뜻을 가진 세넥스(senex)에서 유래했고, 많은 종교에서 지위를 가진 사람을 가리켜 '장로(elder)'라고 불러왔다. 현대사회에서 투표로 뽑히는 시의회의원(aldermen)을 예전에는 원로(eldermen)라고 불렀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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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인들은 여전히 책이 대신할 수 없는 분야의 전 문가다.
당신의 손주들은 분명히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당신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학교 선생이 나 직업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조차 묻지 않을 수도 있다. 신기하게 생긴 다이얼 전화기,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리는 구식 자동차, 우습게 생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며 옛 시대의 춤동작 등은 늦은 밤 텔레비전에서 다 볼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책으로는 알 수 없는 가문의 전통이나 지방 역사 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지혜는 노년 그 자체다. 많은 나이로 인한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당신이 정 말로 인생을 즐기고 있다면, 스스로를 권위자라고 느껴도 좋다.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비법을 배우려고 당신에게 올 것이고, 어쩌면 당신은 그 비법을 누설하지 않으려고 짐짓 인색하게 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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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준 교훈
노년은 곧 많은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노인이 되면 젊었을 때 너무 열정적이어서 일으키 는 많은 문제들, 책임감, 야망의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고 말한다. 그러나 다 놓아버리는 자유는 분명 위험하다. 키케로는 너무 많은 특권을 버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노년은 노인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신의 권리를 유 지하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아무에게도 종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배할 때에만 존경받는다."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 King Lear》이란 작품이 있다. 고대왕국 브리텐의 리어왕은 나이가 들자 세 딸에게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느냐?”라고 묻는다. 효심 깊은 대답을 한 사람에게 왕국을 물려주고 자신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내심 가장 애틋이 여겼던 막 내 딸 코딜리어가 기대와는 달리 담담한 대답을 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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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고너릴과 둘째 리건이 온갖 헌사와 사랑을 바치는 뜨거운 말로 왕국을 나눠 받는다. 코딜리어는 쫓겨나지만 이내 리어왕 자신 역시도 권좌를 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매몰차게 버림받는다. 리어는 왕의 권위와 부, 자신을 진심으로 아꼈던 딸 등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하여 광야를 헤매게 된다.
리어왕의 중요한 실수 중 하나는 스스로 너무 일찍 자 기방어와 권리를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당신의 왕국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어느새 차디찬 대륙에 버려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이나 어느 단체에 물려줄 때, 또는 사업가가 자기 회사의 운영을 젊은이들에게 넘길 때, 정치가가 새로운 젊은 사람들을 위하여 은퇴할 때, 그리고 과학자·예술가·작곡가·작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가끔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들은 리어왕만큼 비천하게 취급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빨리 잊을 수 있는지 그 속도에 놀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인은 많은 책임감, 강한 열정 그리고 치솟는 야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노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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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열네 살이었을 때는 열여섯 살처럼 보인다는 말에, 열여섯 살일 때에는 열여덟 살처럼 보인다는 말에 신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20대 전반 어느 때부터인가 반대가 된다.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서른 살 같이 보인다고 하면, 또는 예순 살을 일흔 살로 본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현재의 나이를 정말로 즐기고 있다면 젊어 보인다는 말에 기뻐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겠는가.
“그 연세처럼 보이지 않아요"라는 칭찬에 적절한 대답은 "내 나이의 사람들은 이렇게 보인답니다"이다. 젊어 보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 나이처럼 보이고 행동하고 말을 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품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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