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책
특징 :
정신과 의사의 자기 고백이 있어서 좋았음.
두 분의 작가가 교차하면서 쓴 글
글 쓴 주제에 대한 서로간의 대화
참고로 - 우연이지만 - 김혜남 작가님의 책을 이번 기회로 두 번째 만났다.

"분홍빛 긍정의 안경이 필요해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의 내적 세계의 방식에 따른다.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나 다른 중요한 사람과 관계했던 방식은 이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틀을 만든다. 진영씨 역시 우 울한 과거가 원인이 되어 부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어두운 우울의 강을 따라 사고가 흐르고 있었다.
우울한 과거는 사고의 흐름을 계속 우울한 방향으로 실어 나른다. 그리고 이렇게 흘러간 우리의 사고과정은 작은 일에도 현실이 비관적이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하게끔 만드는 주범이 된다. 흔한 예로 컵에 물이 반이 담겨있을 때,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있네. 아껴 먹어야지.'하고 반기지만, 부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네. 어떡하지, 큰일이네'라며 걱정에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감정이 생각의 방향을 결정짓고 다시 사고의 흐름이 우리의 감정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지나가 버린 어릴 때의 경험은 바꿀 수도 없는데 이제 와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 요'다. 물론 누구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재나 미래까지 슬퍼야 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우리의 무의식이 자꾸 슬프고 험난한 길을 찾아 헤매는 것뿐이다.
Kim haengm 21
아직 죽음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할 수 없는 시기에 마주친 죽음이나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결과, 그 상처가 아이들의 인격구조에 커다란 상흔을 남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무지는 아이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아이들의 애도과정을 방해한다.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는 일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영화 <보통 사람들>의 콘래드도 치료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그리고 여자친구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을 제대로 쏟아놓을 수 있게 된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혼자 슬퍼하기보다는 그를 상실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 슬픔을 공유하는 것도 건강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인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을 서로의 가슴속에 담아 두게 되고,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과의 유대감은 상실을 메꾸어주는데 도움이 된 다. 어쩌면 이 과정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하면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만남과 이별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면서,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타인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43 Kim haenam
대구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하고 있었거든요. 하나둘 털어놓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결국 속의 이야기를 다하게 됐어요. 제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그대로 혼자 있어선 안되겠다며 당장 자신이 있는 대구로 내려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 바로 내려갔어요. 어디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이면 될 것 같았거든요.
Q: 친구분이 그 마음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셨나 봐요?
P: 네. 친구는 제가 혼자 지내지 않도록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동굴 속에 스스로 갇힌 저를 세상 밖으로 끌 어내려 애써줬어요. 제가 축 처져서 집에만 있으려 하면 항상 저를 끌어다가 축구화를 신기고 같이 축구를 했어요. 그리고 억지로라도 끌어내어 함께 등산을 가고, 호숫가에 데려가서 심호흡을 시키고, 산책을 하게 했어요.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하나하나를 다시 하면서 죽으려던 저의 마음에 조금씩 살고 싶다는 마음이 채워졌 던 것 같아요.
사실 그 무엇보다, 세상에 나를 한 인간으로서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46 죽을 만큼 힘든 내 마음을 어떻게 토닥여야 할까요?
더군다나 그렇게 20년 만에 뜬금없이 연락했는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베프처럼 친구가 저에게 너무 많은 정성을 쏟아줬어요. 그렇게 석 달 정도 지나니까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어요. 물론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예전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그때의 일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아주 대단하고 절대적인 사랑만이 나를 구원하고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니 구나. 친구의 가벼운 위로, 지나가는 사람의 작은 친절도 삶의 숨구멍을 틔워주는 소중한 물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희망이 되어 바닥에서 다시 올라올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K: 그래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그래서 정말 죽으려고 할 때 인간은 나를 살게 해 줄 단 한 사람을 찾게 돼요. 박 선생님이 중학교 동창에게 불쑥 전화를 했듯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게 되죠. 그때 그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주면 우울과 죽음의 충동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에 삶의 희망이 조금씩 채워지죠. 그게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깊은 우울의 늪에서 삶으 로 올라오는 시작인 것 같아요. 이별 혹은 배신과 같은 극심한 아픔과 슬픔도 그렇게 전화를 받아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그 한 사람을 시작으로 다시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으로 바뀌어 가게 되죠.
그리고 반대의 상황이 되어서, 누군가 나에게 그런 도움을 청해올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어야 해요. 삶을 향한 첫 끈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실제 그 전화를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안 죽을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생을 향한 그 마지막 몸부림에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으면 삶의 끈을 놓아 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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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통해서만 숨 쉴 수 있는 사람들, 고통을 통해서만 즐길 수 있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을 고통의 세계에서 나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왔던 생활의 틀과 자신에게 부여한 존재의 의미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과정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면 살아있는 세상의 생동감을 만나게 된다. 이제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모두 자기의 것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가혹한 초자아가 그 두려움을 버리고, 융통성 있고 허용적인, 현실적인 초자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타인을 돌보듯이 자신을 돌보는 것. 다른 사람을 용서하듯이 자신을 용서해 주는 것. 이것이 그들이 고통의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다. 스스로와 화해하고 용서함과 더불어 나도 남들처럼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설령 어릴적 행복하지 못했던 불행한 기억이 있더라도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누구의 잘못이라 탓만 할 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이란 여러 가지 이해 못 할 일 들이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곳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일들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도 느낄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72 일부러 불행하고, 언제나 우울한 당신에게
나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사는 그들에게 흔히들 '관종'이란 말을 한다. '관종'이란 관심종자의 줄임말로,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2010년 이후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게 된 이 용어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널리 쓰이게 되면서 아예 고유명사화 되었다.
현재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는 단어 본래의 의미보다 부정적인, 즉 지칭한 상대방을 놀리고 무시하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애정결핍과 중2병, 허언증과 같은 단어들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바라는 욕망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인 만큼 바꾸거나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니 적 당한 수준의 관심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의 관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자칫 나를 잃어버리게 할 위험이 있다.
현재의 내 모습, 내 위치를 부정하거나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신의 진짜 모습과 능력을 미처 모른채 다른 사람의 욕망에, 관심과 평가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행복감은 타인의 평가나 관심이 아닌 나 스스로의 만족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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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성에 갇힌 가짜 스타의 '허언증'
'연극성 인격성향, 해리성 기억의 인지 오류, 작화증'
명훈 씨의 진료기록에 적힌 내용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허언증' 환자다. 면담을 진행하면서도 명훈 씨는 신입사원 연수에 참여해야 하니 병원에 자주 올 수 없다거나, ㅇㅇ전자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라서 합격은 했지만 입사를 안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릇된 자기애와 현시욕" 속에서 명훈 씨는 잘 나가는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살고 있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한 달 만에 100명이나 늘었어요. 음, 이번에 BMW가 대규모 리콜이 된다는데 역시 벤츠를 고르길 잘한거 같아요. 아! 이번 휴가는 여자친구와 발리를 다녀왔는데 비행시간이 너무 길더라구요."
망상의 사전적 정의는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이다. 그래서 망상은 과장과는 달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고전적인 예시로 '나는 하느님이 다., '외계인이 내 머릿속에 살고 있다.'와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강도의 내용만 망상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며, 망상 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간단한 거짓말과 현실부정 등 훨씬 가 벼운 상태로 시작된다.
수학시험에서 70점을 받았는데 엄마에게 혼날까 봐 90점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하자. 성적표가 집으로 올 때까지 이 사실을 숨긴다. 엄마가 “진짜 90점 받은 게 맞아?” 재차 물어봤을 때, 조 금 떨리지만 "응. 90점이야."라고 대답한다.
'어쩌지. 이제라도 사실을 얘기하고 잘못했다고 할까? 아니야, 거짓말까지 했다고 더 혼날지도 몰라....
성적표가 도착할 날이 다가오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인정하고 용서받는 일은 까다로워 보이는 반면, 새로운 거짓말이나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고민 끝에 결국 성적 표를 빼돌리고 배달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아예 성적을 고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다 보면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실제로 90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70점을 받은 진짜의 나, 엄마에게 혼날 게 뻔한 나는 무의식 속에 밀어 넣은 뒤에 90점을 받은 나, 엄마가 칭찬해 주는 나를 의식적으로 진짜라고 믿으려 노력한다. 심지어 누가 “너 90점 아니잖아, 왜 거짓말을 해?"라고 지적하면 그 내용을 반박하고 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게 된다. 나는 90점을 받은 허구의 상황에서만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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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가꾸고 성장시키기에도 모자란 귀한 시간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짓인 나를 꾸미는 데 허비해서는 안 된다. 3km 뛰기, 등산하기, 일기 쓰기, 간단한 요리 만들기 등 내 삶의 작 은 도전과 전진을 통해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 돌리고 에너 지를 한껏 집중시켜 보자.
그런 사소한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작은 성취감의 축적 이야말로 내 삶을 더 생생하게 만드는 방법이며, 화려함만을 쫓고 겉모습에 집착하는 삶에서 실제 내 삶으로 돌아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명품이 아니라 내게 실제로 필요한 것, ○○전자가 아닌 내 실제 직장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삶이 아닌 나에게 충실하고 진정성이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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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관심으로 사는 사람들
정말 그 사람의 불안을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로,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괜찮아질거야."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미 공황장애, 강박증, 외상 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일 년이 지나도 오 년이나 십 년이 지나도 괜찮지 않아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해하지마.”나 “괜찮아질거야."와 같은 위로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 된다.
공감이 빠진 어설픈 위로나 조언을 할 바엔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훨씬 낫다.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을 지켜봐주고 손 잡아 주고 안아 주기만 해도 80점 이상의 좋은 치료가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면서 30분이고 몇 시간이고 그 사람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얘기를 들어주면서 말없이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주거나 가볍게 어깨를 감싸 준다면 더 효과가 크다. 이는 '지금 너는 안전해.'라는 신체적 메시지를 전해 주기 때문이다.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뇌는 노르에피네프린과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인해 인지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즉 말로 아무리 괜찮다고 해주어도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가벼운 포옹이나 신 체적인 접촉은 그 사람을 안정시키는데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물론 그 사람과 굉장히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이어야 하며 스킨십을 행할 때도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의 흥분이나 신체 증상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Park jongseok 151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왔지만 정작 그 무엇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잘 해내고 못 해내고를 떠나 어차피 나의 역할이고 나의 삶의 일부였는데, 기왕이면 즐겁고 행복하게 해낼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스럽다.
아이를 기르는 기쁨을 즐기지 못하고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될까 봐 아이를 닦달하고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살아왔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즐기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서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만 힘들다고 불평만하면서 살아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이 영유아기를 지나는 동안만큼은 그들과 마음껏 놀아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일로 돌아왔을 때 최소한 직장에서만큼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나의 일과 능력을 즐기고 싶다. 나는 이러한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을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혼란과 죄책감을 호 소하는 워킹맘들에게 그대로 전하곤 한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엄마의 관심이 절실한 시기는 한정돼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할 때에 내 일을 찾아가도 늦지 않다. 물론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바꿀 만큼의 큰 무게는 아니다.
Kim ha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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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끝이 꽉 막힌 듯이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해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쉬기가 곤란할 때도 있어요. 추워서 옷을 껴입으 면 다시 온몸이 더워지고, 며칠 변비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설사를 하 기도 해요."
실제로 신경정신과를 찾는 분들 중에는 마음이 아닌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양한 신 체 증상에 오랜 기간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검사를 해보지 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 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함만 더욱 커져 신경정신과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학적인 검사를 해도 몸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 본인 은 신체의 여러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를 ‘신체화장애'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체화장애'는 주로 중년 이후의 여성들에게 서 많이 발생하는데, 면담을 해보면 이들은 감정이 극도로 억압되어 있고, 자신의 신체에서 발생하는 증상에 과민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에서 건강염려증적 소견도 보인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면담을 해보면 이들이 신체 증상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내가 이렇게 많이 아프니 나를 좀 돌봐달라는 무언의 호소인 것이다. 그리 고 이들은 “이렇게 몸이 약한 내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 저하된 모습을 보인다. 또 자신의 신체적 증상을 통해서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사람들을 꺼리려는 경향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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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당신에게
섭식장애
나는 체중이나 몸매의 변화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살이 올랐을 땐 집중적으로 체중관리에 들어간다. 그래 봤자 평소 즐겨 먹던 피자와 치킨을 제한하는 정도이지만 꽤 효과가 좋은 편이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피자나 치킨 등 먹는 것으로 스트 레스를 풀곤 한다. 치킨 같은 음식에 세로토닌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쾌감, 그리고 이것을 먹었을 때 기분 이 좋아졌다는 기억의 회상은 우리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게끔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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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당신에게
나는 왜 혼자일까, 뭐가 부족해서 아직 혼자일까. 퇴근길에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에서 아이와 아내와 함께한, 가족여행의 사진을 보며 혼자 있는 집으로 향할 때면 우울하다 못해 심장이 욱신거린다. 평 생 타인의 마음을 달래주고 치료하다가 정작 내 마음은 채우지 못한 채 외롭게 늙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면서 두려움까지 밀려온다. "자존감을 높이고 너 자신을 사랑해봐.”, “넌 결혼을 못한 게 아니 라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아끼고 사랑할 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 한 것뿐이잖아."
환자들에게 조언하듯이 스스로에게도 말해본다. 그러나 그다지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을 원하는 것도, 대단한 사랑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내 사람을 만나서 '함께'가 되는 일이 이 리도 힘들까. 동호회에 가입해서 SNS 친구가 수백 명이 늘어난들, 지금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고 유명해진다 한들 '함께'인 충만함을 대신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친구들은 이런 내게 외려 “혼자인 네가 부럽다.”, “막상 둘이 되고 아이가 생겨 셋이 되어봐라. 한 달도 안 돼 다시 혼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와 같은 배부른 소리를 한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진심이라기보다는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 이란 걸 잘 안다. 혼자인 시간이 주는 고독과 외로움으로 바닥을 쳐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난 혼자라도 좋아, 아니 혼자라서 더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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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의 우울
누군가를 만나기 싫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정말 더 큰 우울감이 오잖아요.
그리고 혼자 있을 때도 늘 깨끗이 씻고 머리도 빗고, 거 울을 자주 보면서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 한 것 같아요. 실제로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엔 며칠 동안 머리도 안 감고 속옷도 안 갈아입는 등 자신을 방치하는 분들이 많아요. 혼자이든 둘이든 결 국엔 마지막까지 자신을 보듬고 안아줘야 할 사람은 자 신이잖아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죽을 듯이 슬프고 우울해도 일단 일어나서 씻고 먹고 움직이고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는 것, 이게 시작이 되더라구요. 그걸 해야 내 안에 도파민이건 세로토닌이건 나올 거잖아요. 내게 다시 생동감을 찾아주기 위한 최소한의 첫발만큼은 스스로 떼어 줘야지, 안 그러면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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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을 감추기 위해 갑옷을 입어 보지만 그것은 유리로 된 갑옷이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과 만났을 때 외려 산산이 부서 져 내리고 만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해리 건트립 Harry Guntrip은, 사람은 자신을 약 한 존재로 인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쁜 존재로 인지하는 것을 더 원한다고 했다. 즉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약한 자기(weak self)를 경험 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를 공격성, 죄책감 등이 있는 나쁜 자기(bad self)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약한 자기는 안에 깊숙이 숨겨버리고, 밖에는 이러한 약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나쁜 자기를 출몰시켜 죄책감이나 분노 등의 갈등으 로 위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과 태도를 완 전히 분리할 경우, 결국 안에는 약하고 무기력한 자기가 숨어서 보호 되고 밖에는 두려움에 떠는 나쁜 자기가 대두되어 세상에 대한 분노 를 표출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설령 그러한 약한 모습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강함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내보이며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긴다. 슬픔과 우울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건강하게 배출하고 건강하게 이겨낸다.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눈물을 흘린다. 슬플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울며, 무서울 때도 울고, 아플 때도 울고, 억울하고 분할 때도 운다. 이처럼 울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웃음만큼이나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해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Kim haenam
253
분석적으로 보면, 울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공격성을 씻어내는 배출구의 역할을 한다. 어릴 때는 발버둥을 치고 소리 지르며 운다. 그럼으로써 우리 내부에 있는 분노나 공포를 방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울 때 오히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상태가 된 다. 울 때는 교감신경이 저하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그것은 공격성이 위험한 행동이나 동작으로 방출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 다. 그 대신 공격성이나 공포 혹은 슬픔은 눈물이라는 맑은 분비물을 통해 방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울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우는 사람 앞에서는 화가 가라앉고 보살펴주 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상대방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울음은 적응적인 측면도 가진다. 좌절이나 슬픔을 경험할 때 해결되지 않은 공격성은 울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배출된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울음을 억제할 경우, 공격성을 방출하고 중 화시키는 눈물의 기능이 억압된다. 그리고 방출되지 않는 공격성은 내부로 쌓여 결국은 자신을 공격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우울증으로 확 빠져버리는 것이다.
254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 당신에게
눈물을 이젠 놓아주세요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이륜마차와 마부로 비유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인 고든 리빙스턴 Gordon Livingston은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밖에서 보기에 인간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피부 아래는 세 개의 창조물이 숨겨져 있다. 하나는 머리가 여럿 달린 야수로, 어떤 것은 사납고 어떤 것은 유순하다. 이것은 욕망과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용감한 사자로, 의지의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 막은 인간으로서 이성적인 요소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사자의 도움을 받아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이를 인간의 최고의 경지라 하였다. 여기서 열정과 욕망의 머리 여럿 달린 야수는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성적 욕망과 공격성 등의 본능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사자는 의지의 부분으로서 공격성이 되며 가학적인 초자아에 흡수되어 나중엔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 마부인 이성은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자아가 된다.
이것을 수영 씨의 경우에 적용해보면, 그녀는 자신의 피부 아래에 있는 괴물이 뛰쳐나올까 봐 두려워하고, 사자가 화가 나서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물어뜯을까 두려워서 자아의 옷을 두껍게 입고 꼭꼭 싸맨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야수의 사나운 머리뿐 아니라 부드럽고 유순한 머리조차 피부 아래로 갇히게 된다. 그리고 사자의 의지 또한 갇혀버리게 되어 그녀는 다른 사람(엄마)의 의지를 빌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Kim ha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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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은 나눔의 의미도 지닌다. 불쌍한 사람을 보았을 때, 다른 사람의 슬픔 앞에서 우리는 깊은 동정을 느끼고 같이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순수하게 닦아낸다. 그리고 나 와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결코 내가 혼자가 아니 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 힘으로 우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울음은 자기 연민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같이 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위로해줄 사람조차 없을 때, 스스로의 뺨을 타고 흐르며 “그래 너 많이 힘들었지."라고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눈물은 어릴 적 어루만 져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를 잠에 빠져들게 한다.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 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 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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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 당신에게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보아도 공허한 울림만이 돌아왔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우울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음을.
술을 마시고, 게임에 몰두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갔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나를 싫어했고 부끄러워했다. 나약함을 들킨 듯, 약해빠진 인간으로 낙인찍힌 듯, 스스로를 부정 하고 자신에게서 도망쳤다. 우울한 나는 내가 아니라며 부정했고, 비난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018년, 대구에 사는 홍식이, 판교의 형섭이 형과 하은 형수님, 인천 재형이와 희경 부부는 우울증에 걸린 나도 모자라지 않다는 걸, 우울증을 간직하고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끝없는 짜증과 찌질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여준 인내와 수용의 따뜻함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 사랑하는 이에게 준 상처와 모진 말도 주워 담을 수 없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몇 번이나 다짐하면서도 또 실수하고야 마는, 의지가 한없이 약한 인간을, 나는 매일 아침 화장실 거울에서 본다. 나는 아마 또 우울해하고 실패하고 좌절할 것이다. 찌질하고 못난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열등감의 동굴 속에서 지겹도록 무력했던 나는 자책이야말로 상대방과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 왜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더는 이런 의문과 후회가 아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오늘 좌절해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켜켜이 쌓은 노력이 가져다줄 기회와 인연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로또 같은 기적이나 운명 같은 사랑이 아니라, 오분 더 일찍 출근하고 십분 더 운동하는 현재에 대한 충실함이란 것을 우울증이 가르쳐 주었다.
감사할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김혜남 선생님과 박영미 대표님, 가장 소중한 사람인 지은이. 마지막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가르쳐 준 우울증에게, 존중과 애정을 담아 감사를 표하고 싶다.
2019.05. 박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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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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