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인 것을 책을 읽는 도중 작가의 프로필을 검색하고선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영화로 만났습니다. 이 책 때문에요.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원작은 소설이었고, 이를 영화로 만들면서 작가가 더 유명해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책 덕분에 작가를 알게 되고 덤으로 영화를 보게 되어 즐겁습니다.
이 책 자기 결정은 작가 페터 비에리가 어느 강연 내용을 글로 옮겨 온 것처럼 보이는 책입니다. 재미가 있어 술술 읽히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도전합니다.
저의 책 갈피 입니다.

16
이 능력으로부터 자기 결정이 성공하는 경험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이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아상입니다. 자아상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 있어서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것을 자기 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자기 결정이 한계에 부딪히거나 실패하는 것은 자아상과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알기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아상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 일치를 이루며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과 일체감을 가지게 하는 과정은 어떤 형태일까요?
이러한 종류의 자기 결정을 이루는 내적 구조 변경은 정신적 삶의 강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고고한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6
내가 나를 판단하는 위치는 이 강의 일부분이며 다시금 내 특정한 사고나 소망이나 감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아상의 기준이라는 것도 손댈 수 없는 신성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아상에 허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구속하고 노예처럼 옭아매는 생각을 과감히 던져버리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할 때도 있지요.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도 그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내적 구조 변경은 어느 날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여 영혼의 연금술로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환경을 바꾼다든가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든가 낯선 인간관계를 개척한다든가 필요할 경우 치료나 훈련을 받는다든가 등등 외적인 우회로가 많이 필요하지요. 이 모든 것은 내적 단조로움과의 싸움, 체험과 바람이 변화 없이 굳어버리는 현상과의 투쟁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인식에 있습니다.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나를 조종하는, 나의 느낌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의 표면 밑에서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를 감지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굉장히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17
내가 이 나라에 대해, 이 경제적 성장에 대해, 이 정당에 대해, 내 결혼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요?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반복되면 내 의견의 총합이 완전히 탈바꿈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의 정체성이 변화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명백히 밝히는 과정이 자기 결정의 한 행위인 것이지요. 특정한 정당을 선택하거나 하나의 종교에 귀의하거나 낙태 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이유가 집안 대대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고의 들러리로 살아온 것이지요. 그러다가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거리를 두고 검증 과정을 통해 생각의 주인 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녀온 언어적 습관과 거리를 두는 것과도 큰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또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많은 것들이 모국어를 그대로 따라 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어떤 것을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이 에요. 사고에 있어서 성숙해지고 자립적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고 믿게끔 속이는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대해 잠들어 있던 촉을 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19
이러한 경각심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확한 의미를 따져보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그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알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유, 정의, 애국심, 존엄성, 선과 악 등 중대한 주제를 접했을 때 본 능처럼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익숙해지는 삶이 바로 자기 결정적 삶입니다.
자신에 대해 결정한다는 것은 사고를 조망하는 능력과 사물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일 모두에 언제나 굽힘 없는 열정을 가진다는 것과 통합니다. 이 열정은 플라톤적인, 철학적 열정과 맞닿아 있지요. 여기서 과감히 플라톤적 대화의 방법적 기본 사상을 표현해 본다면, 문법적으로 잘 만들어진 문장이 전부 어떠한 사상을 나타낸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사유 면에서 아무런 내용도 없이 오직 잡설에 불과한 문장들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정의와 의미와 진실 같은 것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상대방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을 때 드러났던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대화의 말미에 이르러 전보다 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며 익숙하게 사용해 왔지만 내용적으로는 빈 화법들에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20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감정과 바람의 정체를 밝히고 표현하며 그것을 다른 감정이나 바람과 차별화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 감정에 대해 전보다 확실히 더 명확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언어로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혼란스러운 느낌들은 감정적 확신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을 일반화해 본다면, 경험을 나타내는 우 리의 언어가 세분화될수록 경험 자체도 세분화된다고 할 수 있겠 지요. '감정 교육(Éducation sentimentale)'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내적 구조까지 변경하는 이러한 과정을 다르게 표현한 다면, 자기표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것을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것도 이 작업의 하나지요. 어떤 경험에 대한 새로운 서술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해서, 이제 그 감정이 어떤 사람에게 느끼는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포함된 것임을 밝혀낸다면 나의 인식은 새로운 국면에 도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걸어온 족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가진 미움의 감정이 과거의 사건,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무시당했거나 모멸감을 느꼈던 사건에 연유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억지로 밀어내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놓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감정일 수 있지요. 가정에서 출발한 이 인식은 이제 그 인과적 힘을 펼쳐서 우리로 하여금 내적 검열의 선을 부수고 부정 돼왔던 감정을 더없이 명확하고도 제약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23
즉 나에게 경험된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는 전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이야기하기는 절대로 사실 그대로의 중립적인 묘사가 되지 못합니다. 나의 이야기는 선택적이며 평가적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에 부합하도록 편집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아떨어지도록 언제나 적당한 첨삭이라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경험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우리의 능력은 그러므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집니다. 첫 번째 얼굴은 자아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락하는 측면입니다. 이때 자아상은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나서 결국 미래를 향한 설계도를 가진 현재에 도달한 한 사람의 초상화지요.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삶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이 자아상이 필요합 니다. 또 하나의 얼굴은 모든 자아상이 그 진위가 모호하고, 착각과 자기기만과 자기 설득으로 가득 찬 구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아상은 진실이 밝혀져 어쩔 수 없을 때나 도덕적으로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 등등 때에 따라 고쳐지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새롭게 짜이고 앞뒤가 맞는 또 다른 정황이 생겨나며 맞지 않는 부분은 억지로 잊히고 익히 알고 있던 것이라도 새로이 윤색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물론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종종 기만적이기도 합니다.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25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업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문학이 있습니다. 문학은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읽기와 쓰기 가 자기 결정력을 습득하는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문학작품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이제 상상력의 반경이 보다 넓어진 것입니다. 이제 더 다양한 삶의 흐름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 인간관계의 다양한 종류를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합니다. 우리는 정신적 정체성의 성공과 실패, 발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결정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패하면 어떻게 해서 실패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지요.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는 것은 자기 결정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질문의 답은 오직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 안에서 여러 가지로 입장을 바꿔보는 정신적 활동을 할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28
우리는 앞서 자기 결정에 있어서 자아상의 서술적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았습니다.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입니다. 내외적 에피소드에 관한 짧은 글들은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길고 복잡하게 서술하는 것은 긴 호흡과 하나의 구조가 필요하기에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문학이, 아니 오직 문학만이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절정을 향한 드라마적 전개이며 이 부분이 자아상의 핵심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무의식의 판타지라는 깊은 기저에서 온 것일 때라야만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큰 매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 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언어와의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경험을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내는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29
글을 깨우치고 얼 마 되지 않아 작가 카를 마이(Karl May)를 발견한 나는 강렬한 한낮의 햇빛을 가리려고 덧문을 내리고는 스탠드 불빛-밤과 꿈꾸 기와 환상의 빛 만을 켠 채, 글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상상력에 서 비롯된 경험의 강물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일이 내 안에서 더 많은 작용을 일으켰기에 창문 너머 바깥세상의 일보다 더 진짜같이 느껴졌지요. 극장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보게 되는 일상의 무의미한 일들보다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픽션이 더 진짜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느낌은 영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 상상력의 물결, 상상의 중력에 이끌려 들어갈 때, 오직 그때만이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1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 내면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겨나거나 작용하는 정체성이 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질문은 자아상과 자기 인식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만 지금은 타인의 판단을 바라보는 눈에 더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중 나는 보지 못하지만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기기만을 발견하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신의 자아상을 점검하고 자기 인식에 새로운 전환 점을 선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 확인에도 우리가 거리를 둬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라브뤼에 르가 꼬집었던 것으로,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 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결정적 삶은 이러한 낯섦도 견뎌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36
저의 소망은 이 책에서 나온 자기 결정의 원칙이 현재 우리의 문화권에서보다 더욱 중요하게 취급되는 문화 아래 사는 것입니다. 지금의 문화에서는 원인이 있는 행위와 결정의 자유가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통하기는 하지만 자기 결정이 좀 더 복잡한 형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자기 결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 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 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 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경쟁과 순위의 논리가 너무도 시끄럽게 세계를 뒤덮고 있지요. 그것도 전혀 울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울리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문화는 조금 더 잔잔한 소리가 지배하는 문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 고요함의 문화입니다. 오직 그것이 최우선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 말이에요.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39
이유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습니다. 걷다가 걷는 이유를 잊어버리면 일단 멈추지요. 이유가 생각나고 나서야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직장에 출근한다든가 극장에 가는 등의 단기적 행위뿐 아니라 인생의 긴 단락에 걸쳐 일어나는 행위, 예를 들면 대학 공부, 결혼, 창업, 책 집필 같은 것에도 해당됩니다. 이런 행위를 할 때에도 그 행위를 통해 어떠한 의지가 표출되는지, 그리고 그 행 위가 우리 자신과 우리 삶에 어떻게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을 때 만이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 행위는 정지합니다. 장기적인 행위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대강의 이해가 뒷받침될 때라야 가능하지요.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
43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해석을 부여하여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핵심-보다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을 배워서 자신의 상태를 더욱 명확하고 상세하게 살피는 일을 포착하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것들이 명료해집니다. 신체적 상태와 감 정, 기분, 기억의 개별적 부분, 백일몽과 상상의 흐름. 이러한 깨어 있음의 방법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현재 자신의 상황과 기분과 분 위기를 더욱 능숙하고 신뢰도 있게 서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인식의 주요한 부분이 됨은 물론이고요.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이후로 진행되는 것들은 내적 집중으로 더 이상 해결되지 않아요. 현재를 더 잘 이해하려고 할 때부터 이미 문제는 시작됩니다. 이 장에 들어오면서 언급한 것처럼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왜 하느냐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 즉 주도적 역할을 맡는데에 대한 확신이나 감정, 바람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의 각도는 그 폭이 매우 큽니다. 냉장고 문을 여는 행위나 슈퍼마켓에 가는 일 등은 그렇지 않겠지만 편지를 받고도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왜 약속을 어기는지, 왜 대학에 가는지, 왜 직장을 그만두는지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표면적이고 단기적인 이해만 따를 수도 있고 좀 더 큰 의미와 깊이에 기 반을 둔 해석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깨어 있음은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해요.
46
첫 번째 강의에서, 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이해와 인식 이 아무 영향력 없는 단순한 점검으로만 끝나지 않고 내적 구조 변경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인 식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갈고닦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세계를 조명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적 정체성의 창조에 관한 문제가 됩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생각의 조각들과 틀에 박힌 말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물에 대한 통일된 생각의 합체를 찾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서로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생각의 영역들 간에 일관성 있는 연결을 맺어주는 작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세의 형평성과 국제적 빈곤, 또는 교육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주제들 간의 연관성 말입니다. 그들의 뿌리와 깊숙이 숨어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렇게 인식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망과 감정에 영향력을 가하는 것은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인데, 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래에는 무엇이 중요할지에 대한 고민이 화두가 됩니다.
54
외부 시점으로 써 내려간다면 서사의 언어가 순전히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나타내는 언어가 되게 할 것인지 내면세계까지도 서술하게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때의 선택은 작가 자신과 등장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이야기가 가지게 될 분위기로 구 현됩니다. 그리고 작가가 주제 안에서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어떤 작업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알려줍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어떠한 서사의 차원에서 써 내려갈 것 인지 말입니다. 즉 작가의 직접적인 언어가 될 것인지, 아니면 비록 제삼자의 목소리라고 하더라도 단어의 선택이나 음률이나 문장의 리듬 같은 면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적 스타일이 드 러나는 언어로 쓸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지요.
일례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나는 그레고리우스를 무작정 리스본으로 가게 만듦으로써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존재하는 방식임을 독자들이 얼핏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문장들 속에서 느끼도록 했습니다. 분위기라는 것은 하나의 작품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그 처럼 작가의 영혼을 잘 나타내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극적 선택을 이와 다르게 하여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수위를 설정한다면 작가는 또 다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즉 작가는 그들에게 각자의 특성이 살아 있는 말들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듣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사실 한없이 어려운 일입니다. 이 작업 또한 스스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풍부 한 원천이지요. 작가는 자신의 언어적 멜로디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전혀 낯선 다른 리듬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낮삶의 경험이 작가가 자기 나름의 어법을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서 듣고 그 안에서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볼 수 있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자기 안에서 나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아는 것, 바로 이것이 막스 프리쉬가 가장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
61
한 인간의 도덕적 정체성은 많은 경우 종교적 정체성에 바탕을 둡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란, 세계의 기원에 관한 해설과 도덕성에 대한 개념, 그리고 죽음이나 고통이나 고독 등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이겨내는 해결책을 제시할 때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갖춘 세계관입니다. 하나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가 얼마나 그리고 어떤 형태로 종교적 영향을 받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교육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받아온 영향에서 벗어나서 문화적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작업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반드시 자신의 종교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정의해야만 합니다. 신의 천지창조를 믿는가, 아니면 생물학과 우주 물리학에서 자연적 세계 발생의 해설을 찾고 있는가? 도덕적 판단을 신의 권위와 경전에 의지하는가, 아니면 비극 없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와 타인에게 존중과 양보에 관한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을지 자립적으로 숙고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감정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그리고 고통과 죽음 앞에서 종교가 제공하는 제례에서 위안을 얻는가, 아니면 나름대로의 감정과 행위로 길을 찾아 극복하는 방법을 택하는가?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91
책임은 오직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 대해질 뿐입니다. 이 점은 간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생각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수월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중요시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기 위해 자 기 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일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 교양의 핵심적 구성 요소입니다.
아는 문화와 체험된 문화
삶의 모든 단계에 거쳐서 진행되는 교양이라는 어려운 과정은 우리 각자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문화도 이야기와 드라마와 신화와 동화, 은유, 유머, 문학적 주제, 영화, 그림, 조각, 사진적 상징, 오페라, 거리에서 불리는 노래 같은 것들이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문화적 공간의 요소들에 우리를 비춰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들에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경계를 짓지요.
이 대목이 나오기를 오래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왜 처음부터 나오지 않고 이제야 나오는 건지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94
그에 대한 대답은, 단지 하나의 문화를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 저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자주 혼동되곤 합니다. 하나의 문화권을 매우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만 그 문화의 요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거나 결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나라 또는 한 시대의 연극과 소설, 영화, 노래를 매우 정확히 알고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내 삶의 방식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그것들은 내 지식과 박학함을 이루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내 교양의 구성 요소는 아직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적합한 문화적 이야깃거리를 전후 문맥에 맞게 적절히 꺼내어 활용할 줄 아는 단계에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남 앞에서 보이기만 위해서라거나 아는 척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그저 자기 혼자서만 문학이나 그림이나 음악 등의 지식을 즐긴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문화의 주제는 앞에서 말한 습득의 과정에서 어떤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교양에 진정한 도움을 줍니다. 자신이 쓰는 언어가 독서를 통해 풍부해지고 차별화되고 독립적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교양의 차원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에 관해 쓰인 글들을 읽고 고찰한 후 그것이 자신의 사고와 행위의 조직 속에 골고루 파고들어야 그 글이 교양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95
'2025독서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두 번째 책 : 2030년 돈의 지도 (0) | 2025.03.08 |
---|---|
아홉 번째 책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교수 (1) | 2025.03.02 |
열 번째 책 : 좋아서 웃었다 (1) | 2025.02.23 |
여덟 번째 책 :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 (1) | 2025.02.15 |
일곱 번째 책 : 뇌-하 (0) | 2025.0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