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책을 읽었습니다. 책 갈피 입니다.

2 月 6 日
자려고 누운 머리맡에서 엄마는 늦게까지 뜨개질을 하시곤 했다.
'수출품'이라 부르던 그것을 납품 기한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손이 재고 올이 짱짱한 엄마의 뜨개질 솜씨는 인근 수예점에 널리 알려진 바, 일감은 늘 쌓여 있기 마련이었다. 아랫목엔 청국장을 띄우는 담요 덮인 소쿠리가, 윗목엔 봉지 봉지 실타래가 불룩하게 놓여 있던 겨울 우리 집.
중간중간 엄마는 식구들의 옷을 뜨기도 했다.
웬걸, '중간중간'이라기에는 온 식구의 겨울옷이 거의 엄마의 솜씨였다.
가운데로 큰 꽈배기를 올린 미색 조끼는 아빠 것도 있고 누나 것도 있고 내 것도 있었다. 외삼촌과 선생님 것도.
-이걸 입으면 점잖아 보여.
엄마는 1982년 부창국민학교 입학식 날 내게 미색 조끼를 입히셨다.
-너는 곤색 감색, 紺色)이 잘 어울려.
엄마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곤색'이 뭔지, '어울린다'는 게 뭔지 몰랐지만 그 말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언제든 옷걸이에서 곤색으로 먼저 가는 손길은 다만 편리한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1988년 2월 10일, 73회 부창국민학교 졸업식 날 나는 엄마가 떠 준 곤색 도꼬리 스웨터를 입고 있다. 볕이 좋은 날이었군. 꽃은 프리지어를 들었다. 아무 다른 꽃을 섞지 않은 프리지어 한 단이다.
-엄마, 프리지어 좀 사 갈까?
논산역에 내렸을 때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 오지 마. 꽃 있어. 프리지어 있어. 누나가 어제 사 왔어.
역에서 집으로 가며 지금은 논산 어디쯤에 수예점이 있는지 한번 찾아본 나는, 미색 조끼와 곤색 도꼬리를 꼭 다시 입어야만 하겠어서 울컥한 나는, 그날 엄마에게 드리려던 돈을 2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한 나는 지금 엄마가 새로 떠 준 곤색 도꼬리를 입고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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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月 7 日
누나가 넷이다. 그렇게 오 남매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막내 모두 3년 터울이라 큰누나와 나는 열두 살 차이. 같은 토끼띠. 내가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에 들어갔을 때, 큰누나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에 입학했다.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국민학생. 그때 우리 집은 그랬다.
저 사진은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간 둘째 누나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 마당에서 셋째 누나, 넷째 누나와 함께 찍었다. 1984년 2월이니, 나는 곧 3학년, 넷째 누나는 6학년, 셋째 누나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될 참. 셋은 모두 엄마가 떠 준 도꼬리를 입고 있다.
가운데에 내가 들고 있는 꽃은 아마도 그날 둘째 누나의 졸업식 꽃이었을 것이다. 가만 보니 카네이션이 보인다. 안개꽃도 조금 있고, 튤립도 한 줄기 있다.
나는 1984년 2월 7일 자 [경향신문] 6면 '시장 속보'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는 것을 찾아냈다.
요즘 계속적인 강추위로 물량 반입이 원활치 못해 화훼류||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 코벤트스토어 1층 꽃 공판장에선 10송이 1단을 기준으로 카네이션이 2,500원, 국화 상품이 2,500원, 튤립이 2,500원이다. 또 백합은 쌍대가 5,500원, 외대가 4,000원이며 흑장미는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꽃값은 2월 졸업 시즌을 앞두고 한차례 더 오를 전망이다.
꽃값은 기록에 남았으나,
우리가 저리도 활짝 웃었던 이유는 남지 않았다.
서글픈가 하면 그렇지 않고
여전히 웃고만 싶어서,
하하하 힘차게
웃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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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 14 日
학년이 바뀌면, 그러니까 봄이면 봄마다 '가정환경 조사'라 했던가, 16절 프린트 한 장에 이것저것 신상을 써내야 했는데, 아버지 직업란에 가서 나는 막히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국민학교 3학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그게 다른 아버지들의 직업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선생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실지, 누나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 한꺼번에 들이닥치듯이 감당해야 했다.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건축설계'라는 말을 배워서는 누군가 아버지 뭐 하시느냐 물으면 “건축설계를 하십니다", 답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1985년 가을부터 학교에 신축 교실을 짓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아버지가 오셨다. 그땐 모르는 말이었지만, 나는 '카오스'를 느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하교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했었나.
오늘 비 내리는데, 걸음이 뒤죽박죽 학교까지 닿았다. 과학실이 있던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고, 울타리 측백나무들은 세를 불렀다. 계단은 그대로일까? 이 난간은 그대로군. 여기는 선생님들 배구하시던 곳, 여기는 4학년 때 우리 반 실외 청소 구역. 교정을 걷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아버지의 손길을 만났다.
벽돌 사이사이를 까맣게 갠 반죽으로 채워 선을 긋는 일. 그걸 '메지めじ넣는다'라고 한다. 1985년 겨울에 아버지가 메지를 넣은 건물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우산을 펴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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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月 19 日
-만타가오리가 오면 주위가 갑자기 어둑해져요. 그러니까 여름에 큰 구름이 운동장을 지날 때처럼 그렇게.
정말 크거든요. 그걸 올려다보면 모든 걸 잊게 되죠. 잠실 스킨스쿠버 다이빙 교실의 윤재준 선생은 대뜸 가오리 얘길 했다. 어떤 장비가 필요하고 어떤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지, 뭘 어떻게 해야 물속에 머물 수 있는지 묻기 전에 가오리 얘기부터 했다. 윤 선생은 전복에 대해서도 말했다.
바위에 붙은 전복은 손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경험하면 그냥 알게 되죠. 전복은 정말 강하구나!
서울올림픽 때 다이빙 경기장으로 쓰였던 잠실 제2 수영장은 주말마다 잠수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의 꿈은 온통 바다의 밑으로 향한다.
저는 지난겨울 동해 바다를 잊을 수 없어요. 바다로 10분쯤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글쎄 온통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구의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우리에게 지구의 시詩|를 읽으라고 말하는 걸까? 그날 밤 산호가 너무 보고 싶어 서교동 홍산수족관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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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月 17日
세상 어딘가에 이런 게 놓여 있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씻기는데, 마침 묘한 우연도 있었다. 필립 로|Phillip Low|의 이 노란색 아크릴 조각을 본 엇비슷한 시기에 황벽나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황벽나무의 껍질을 한 꺼풀 벗기면 노란 속살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기어이 황벽나무를 찾아낸 나는 끝내 그 껍질을 벗겨 노랑을 보았다.
-이건 진짜 노랑이잖아.
나는 잠시 착한 사람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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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 16 日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가을 전시를 보고 나오면 으레 뒤뜰의 파초芭蕉에게 다가갔는데, 봄에는 왜 그러지 않았는지 새삼 모를 일이다.
지금도 파초가 거기에 우두커니 그대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0月 18 日
취암동에 취암리슈빌이 들어서고 나서 계룡산이 보이지 않는다. 온통 논이었던 곳에는 얼기설기 체크무늬로 도로가 생겼고, 이웃의 형들과 누나들은 더 이상 동네에 살지 않는다. 수리조합 똘|도랑이 복개되면서 둑을 따라 관촉사 은진미륵으로 향하던 학교들의 소풍 행렬은 진작 사라졌다. 아예 소풍이란 걸 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흰 오리도, 칠에끄리 폐도, 25년을 살았던 검정 기와집도 없다. 어머닌 헐린 집터에 생강을 싫었다. 수수도 내년 봄에 떡고물 할 만큼은 거기서 자란다. 논산시 번영로 17번길. 한때는 논산군 논산읍 취암 2동 384번지였던 곳. 나의 고향. 취암리슈빌이 들어서기 전에는 거기서 계룡산이 보였다.
계룡산 너머 '새미래'라는 곳이 고향인 윤택수의 시 (세 가지 소원)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고장의 것들을
상속받은 기술과 상상력으로써
내가 사용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논산에 있으면 이 시가 생각나곤 했다. 시인 역시 아직 이루지 못했기에 '소원'이라 썼을 테지만, 과연 아름다운 소원이 아닌가 한다. 나에게도 소원이 있다. 그것은 부디 논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 나는 논둑을 어떻게 걷는지 안다. 모를 내기 전 갈아엎은 논에서 어떤 풀이 자라는지, 모를 내고 나서는 어떤 바람이 부는지, 그 바람이 벼 포기 사이로 어떻게 지나가는지, 물꼬를 튼 곳에 물고기가 어떤 모양으로 모여 있는지, 이삭이 팬 때쯤 비가 오지 않는 날씨가 왜 어울리는지, 벼를 벤 논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그 냄새가 얼마큼 멀리까지 퍼지는지……………. 내 소원은 내 고향의 것들을 내내 간직한 경험과 상상력으로써 죽는 날까지 내가 디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book | 윤택수, [새를 쏘러 숲에 들다], 2003
10 月 20日
제주에서 사흘 밤을 잔다.
제주에는 노란색 털머위꽃이 한창이다.
어쩌다 다가가면 개미들이 병정처럼 기어 나와 영향력을 행세하는 바람에 막상 그걸 만지지는 못했다.
제주 조천읍에 선흘이라는 곳이 있고 선흘에 가면 선흘분교가 있는데 나는 운동장에 앉아 '여기는 언제부터 이랬을까', 그런 질문을 만든다.
살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살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제주도에 가면 말이다.
귤밭에 귤이 또한 한창이었다.
보름 후면 노지 귤이 나온다고, 남원읍 김계림 농부가 전화기 저쪽에서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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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 28 日
10월도 다 끝나갈 무렵, 프랑스 부르고뉴 Bourgogne| 지방의 와이너리 winery를 몇 군데 방문하게 됐다. 포도는 이미 수확이 다 끝난 후, 아침이면 남은 포도알을 탐내는 새들이 공중으로 무리를 이뤘다.
상볼뮈지니, 뫼르소, 몽라세, 주브레 샹베르탱, 로마네콩티.......
흘러내리는 듯한 이름을 중얼거리며 취하지 않고도 취한 사람처럼 그곳을 다녔다. 실은 서울에서부터 티슈로 겹겹이 싸 간 물건이 있었다.
나는 겉멋의 화신이니까 싸면서 일말의 민망함 따윈 없었다. 그건 바카라 Baccarat 의 아르쿠르 harcourt | 와인 잔이었다. 부르고뉴에서 이 잔에 와인을 마시겠노라는 순진한 기쁨!
하지만 막상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잔을 꺼내지는 못했다. 겉멋의 화신인 동시에 방구석의 대갈장군인 나는 그걸 호텔 방에서만 남몰래 꺼냈다. 손에 쥐는 순간 건축적인 위용을 과시하는, 육각 받침으로부터 우뚝 솟은 기둥을 지나 마침내 압도하듯이 벌어진 볼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는 잔. 게다가 손아귀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결코 복종하지 않는 긴장감. 입술을 대어야만 비로소 열리는 기이한 지조,
-무거운데 계속 들고 있고 싶네.
열일곱 살 조카는 거기에 자몽 주스를 따라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로 돌아와 가방을 풀다가 잔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숫자를 많이 눌러 전화를 걸면, 젠틀한 매니저가 잔은 보관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며 부쳐 줄까 묻겠지만,
나는 찾지 않기로 했다. 그게 거기에 남아 있다는, 남아 있을 거라는 사실이 좋았으니, 겉멋이라면 그렇게도 부리는 것이라서.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종류. 차례로 Chambolle-Musigny, Meursault,
Montrachet, Gevrey-Chambertin, Romanée-Co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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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 29日
부르고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메종 루 뒤몽|Maison Lou Dumont| 방문이었다. 일본 남자와 한국 여자가 프랑스에서 만드는 와인. 그 유명한 만화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뒤 갑자기 한국에서도 동나 버린 뫼르소 2003년 산을 만든 곳.
-나는 그 와인 별로 안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루 뒤몽의 박재화 대표는 고향이 거제도다. 부르고뉴 한복판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니, 물인지 술인지 꿀꺽꿀꺽 와인이 절로 넘어갔다.
-나중에 그 작가들한테 2003년 뫼르소는 좀 부족한 와인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그 부족함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합디다.
그래도 제가 보기엔 2007년 산이 더 맛있습니다. 안 그래요?
그렇다고 끄덕이는 나는 벌써 취했다. 이미 여섯 잔 째. 지하 창고에서 아직 숙성 중인, 덜 익은 것들을 스포이트로 뽑아 마시면서 '이건 호두 냄새가 나고, 이건 소시지 반찬이랑 점심시간에 먹고 싶고, 이건 겨울에 눈 쓸고 나서 마시고 싶고......', 한국말로 한껏 감상을 말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와인의 천국에 온 듯했다.
한 달 뒤, 뫼르소 2007년산을 들고 논산 집에 갔다. 김장하는 날이었다. 엄마와 누나와 나는 절인 배추속을 안주 삼아 그걸 대접에 따라 마셨다.
-목도 따뜻하고 속도 따뜻하다.
한 사발 들이켠 엄마가 말했다. 겨울 햇살이 거실로 마구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에 김장을 하면, 부르고뉴로 김치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283
11 月 30 日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달렸다.
꽃은 언제 어디서나 예쁘죠. 어쩐지 나는 반발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아뇨, 그렇지 않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꽃 역시 어느 때에만 따로 예쁠 수 있죠.
세상에서 제일 안 예쁜 게 꽃일 수도 있을 거예요.
뭐 하나 만들어 놓고 '수제'만 붙이면 갑자기 정성스러운 것이 되고 뭐 하나 꺼내 놓고 '북유럽'만 붙이면 전생에도 없던 감성이 생기는, 유난히도 그렇게 귀신같이 몰려다니는 이곳에서 의심은 불가피합니다.
'이것이 예쁜가? 어떻게, 왜 달리 예쁜가?' 의심하지 않은 말은 칭찬이 아니라 공해입니다.
댓글을 더하는 대신 사진을 지운다. 당연히 꽃을 버릴 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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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月28日
내가 좋아하는 요지 야마모토 Yohji Yamamoto|의 남색 코트는 겨울에 그거 하나만 걸쳐도 좋을 만큼 따뜻한 옷감은 아니지만 뚝 떨어지는 밑자락의 쾌감으로 치자면 가히 바람과 한 쌍이다. 겨울에 그걸 걸치고 길을 나서면 으드드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어쩐지 더 걸어 보려는 용기가 생기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자처럼.
서울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여행자에게 주인을 내준 도시가 아니라서 남산 소월길을 걸으며 나는 외국어로 말하는 상상 따위로 킬킬거리는 좀 모자란 지경에 이르는 것이지만, 남산도서관과 괴테 인스티튜트 독일문화원, 필립스 한국 지사와 예전에 로열 코펜하겐 Royal Copenhagen | 사무실이 있던 건물, 봄이면 벚나무가 되고,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되는 가로수들, 어딘지 짐작할수록 더 멀어 보이는 언덕의 선들로부터 외국어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쾌적한 기분을 느꼈다.
하얏트호텔 1층 창가에서 책을 내리 두 권 읽으며, 창이 그렇게나 큰데도 그 시간을 비밀이라 여겼지만
여행자는 결국 들킨다.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낮이 길어진 하루.
'겨울은 낮에도 어두웠다'는 말 말고,
다른 말 하나를 갖고 돌아오기를.
오전에 코트를 입으며 그런 기대를 했다는 게,
코트를 벗어 옷장에 넣는 밤에 다시 생각났다.
나는 코트를 도로 입는다.
혼자 산다는 건
이제라도 다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라서 나는
코트 주머니에 땅콩을 한 줌 넣는다.
아예 양파를 넣을까?
혼자서는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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