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재미있습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덕분에 프랑스 남부의 도시 칸을 떠올립니다. 그 도시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도 구글 지도와 거리뷰로 찾아보게 됩니다.
마르그리타 섬은 소설 배경에 묘사된 이미지와 상관없이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뇌에 대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제가 그은 밑줄입니다.

<유칼립투스 산책로〉와 〈꿩들의 길>을 지나자 나무에 가려져 있던 커다란 건물 하나가 그녀들을 막아선다. 문에는 철갑이 둘러져 있고, 두 대의 감 시 카메라가 문 위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가 어디에요?」
「편집증 환자들의 작업장이에요.」
아리안은 자기 왼쪽에 있는 비디오 카메라를 향해 애교섞인 인사를 보낸다. 그러자 여러 개의 전자자물쇠가 덜거덕거리더니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서자, 수백 개의 작업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갖가지 복잡한 기계를 앞에 두고 일에 몰두해 있다.
「편집증 환자들은 자기들이 공격받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단히 우수한 성능을 지닌 방범 장치들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고 있어요. 환자들의 심리적 특성을 활용하자는게 바로 핀처 박사의 위대한 발상이었지요.」
뤼크레스는 경이감을 느끼며, 복잡한 기계들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에 열중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강박 관념에 이끌려 행동하는 그들이 여느 〈정상적인〉 노동자들보다 한결 유능하고 일에 대한 의욕도 훨씬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돈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에요. 노후의 연금이나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지요. 이들이 일을 하는 것은 일 자체가 자기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에요.」
아닌게 아니라 그들은 모두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휘파람을 불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361
이 생쥐들은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까지 보여 주었다. 그 능력은 인간의 지능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침팬지나 돼지나 돌고래 같은 동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사람과 동물을 길들일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수단을 보통 당근과 채찍이라 부르는데, 우리가 찾아낸 이 당근은 그야말로 초강력 당근일세. 이건 최후의 순간에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에, 이걸 얻지 못하는 것 자체가 최후의 벌이 되는 셈이지.」
핀처의 말대로 지렛대를 눌러서 얻는 전기 자극은 초강력 당근이었다. 생쥐들은 미로에 들어가 학습할 때가 아니면, 온갖 종류의 금단 증상을 보여 주었다. 생쥐들은 오로지 지렛대만 생각하는 듯했고, 매우 공격적인 태도로 우리의 쇠막대를 물어뜯곤 했다.
「문제는 간단해. 한 번에 경험하는 쾌감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돼. 이 녀석들은 결국 스스로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될 거야. 쾌락의 지연이라는 개념을 터득해 가고 있거든. 당장에 모든걸 얻으면 자기가 얻은 것의 참된 가치를 모르는 법이야. 보상과 보상 사이에 기다림의 시간을 두면, 보상을 얻을 때의 만족감이 더욱 커지게 되지.」
핀처는 융이라고 이름을 붙인 작은 생쥐의 꼬리를 잡고 우리에서 꺼내어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생쥐는 지렛대에 다가갈 수 있도록 지능 검사 장치 안에 다시 넣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 듯했다.
「생쥐가 아니라 인간을 상대로 이 실험을 해보고 싶어.」
405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침 8시. 러시아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일류신 여객기가 도착한 잿빛 활주로에는 가랑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기내에 부착된 영어 게시문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승객들에게 이 러시아 항공사를 계속 이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항공사가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국제 민간 항공 기구의 권고를 무시하고 승객들에게 기내 흡연을 허용하는 마지막 항공사라는 점이었다. 69)
사뮈엘 핀처 박사로서는 이미 몇 달 전에 담배를 끊은터라 그 관대함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사실 그의 줄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대는 통에 주위가 온통 뽀얗고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자기들의 행복을...
69) 아에로플로트는 2002년 3월 31일부터 전 노선에 걸쳐 기내 흡연을 금지하고, 그 대신 애연가들에게 니코틴이 함유된 껌이나 니코틴 흡입기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전까지는 비행 거리가 4시간 이상 되는 노선의 여객기 내에서 흡연을 허용해 왔다.
415
생쥐들이 두 개 천공 수술을 받은거 아니냐. 생쥐들의 뇌 속에 전극을 심고 멀리서 전기 자극을 보내고 있는거 아니냐고 말이오. 그러면서 내가 보기엔 그가 생쥐들을 더욱 영리하게 만드는 뇌의 어떤 부위를 찾아낸 것 같다고 덧붙였지요. 그가 웃더군요. 하지만 그 웃음이 이상했소. 음산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웃음이었지요. 그러더니 그가 딱 한 마디를 했소. <훌륭해>라고 말이오.
나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서 이야기를 계속했소. 내가 보기에 생쥐들이 영리해진 것은 뇌에 전기 자극을 받고 싶은 욕구가 대단히 강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게 맞느냐고 물었지요. 그는 여전히 그늘진 곳에서 있었소. 게다가 모자의 테두리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소. 단 지 그의 목소리만이 들렸을 뿐이오. 그의 목소리는 열에 들뜬 것 같기도 했고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했소. 그때 그가 앞으로 걸어나와서 모자를 벗었소. 삭발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실험실의 생쥐들처럼 그의 두피에 작은 안테나가 삐죽이 나와 있었소. 나는 겁에 질린 채 뒤로 물러섰소.」
뤼크레스가 침을 꼴깍 삼킨다.
「그래서요……………….」
「나는 가까스로 이렇게 중얼거렸소. 〈제임스 올즈의 실험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소. 〈그래, 올즈의 실험이야. 그것을 마침내 인간을 상대로 실시한 걸세.〉」
움베르토는 자기의 빈 잔을 바라보다가 기운을 더 얻을 양으로 다시 술을 따른다.
「제임스 올즈의 실험이라는 게 뭐죠?」
439
「그럴 수도 있지. 우린........ 기계가 아니니까.
「그래 맞아. 너희 세계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어. 그래서 언젠가는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고, 인간의 힘만으로는 인간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거야.」
「우리가 기계의 힘을 빌리게 될 거라는 얘기야?」
「그래, 언젠가 우리는 깨닫게 될 거야. (컴퓨터) 대통령이 통치할 때 우리 세상이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마르탱은 아테네가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아테나는 인간과 컴퓨터를 아울러서 〈우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컴퓨터에게 정부를 맡기면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을 거야. 컴퓨터 대통령은 부패하지 않고 큰 과오를 범하지 않으며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아. 당장의 인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장기적인 전망을 견지할 수 있어. 그는 여론 조사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 막후의 실력자에게 좌지우지 당하는 일도 없고, 베갯머리 송사에 영향을 받지도 않아.」- 약 20년전 프랑스 작가가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예견하는 듯...
마르탱은 아주 오랜만에 아테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생각을 해야 했다.
「문제는 그런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거야. 컴퓨터 대통령은 검은돈이나 베갯머리 송사의 영향에서는 벗어나겠지만, 어떤 수리공이나 시스템에 침입하는 해커의 영향에서는 벗어날 수 없을 거야.」
「보호 시스템들이 있어.」
「그 시스템들의 프로그램에는 뭐가 들어가지?」
484
「도달해야 할 목표들이 들어가지, 인류의 복지 증진, 인류의 영속성 보장 등과 같은 목표 말이야...... 컴퓨터 대통령은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완전히 파악하 게 될 거야. 그는 휴가도 갖지 않고 하루 24시간 내내, 일주일 내내 일할 거야. 리비도의 문제나 세습의 욕구 때문에 방해를 받는 일도 없을 거고, 노화나 건강의 문제도 없을 거야.」
「그야 그렇지만........
「그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지극히 철저하고 상세하게 자기 메모리 속에 저장할 수 있을 거야. 너희 성현 중의 하나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어? (과거에서 교훈을 끌어낼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의 전철을 되밟게 된다)라고 말이야. 컴퓨터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아. 또한 컴퓨터는 그날그날 사회 변화의 모든 요인을 낱낱이 파악하고 분석해서,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최선의 정책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다 좋은 얘기야. 하지만........
「컴퓨터는 이미 체스 세계 챔피언이 되어 있어. 그 이유가 뭔 줄 알아? 서른두 수를 미리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야. 그에 비해서 인간은 기껏해야 열 수 정도밖에 내다볼 수 없어.」
마르탱은 일찍이 아테나와 그토록 정치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문득 아테나가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핀처를 잊고 있어. 뇌에 자극을 받으면, 그는 어떤 슈퍼 컴퓨터라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동기의 힘은 더할 수 없이 강해.」
485
이곳은 너무나 음산한 곳이라서, 굳이 출입을 통제하지 않아도 어느 산보객 하나 감히 안으로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않는다. 뤼크레스와 이지도르는 쓰레기 터 안으로 들어간다.
한동안 사람들 곁에서 살았던 기계들의 종말이 이러하다. 노예처럼 부림을 받다가 그저 서툰 운전자에게 조종되었다는 죄로 플라타너스에 받히고 만 자동차들. 자녀들이 조용히 있어 주기를 바라는 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맡아 주었지만 이제는 속이 텅 비어 버린 텔레비전 수상기. 주철로 된 요리용 화덕. 도기로 된 변기. 오른쪽에는 한때 아기들에게 주된 위안이 되었을 플러시 천의 곰 인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더 멀리에는 사람의 발이 거친 땅바닥에 닿아 다치는 것을 막아 준 신발들이 산을 이루 고 있다.
이지도르의 머릿속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언젠가는 이것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명이 없는 이 물건들에게도 언젠가는 의식이 생겨나지 않을까? 혹시 딥 블루 IV는 <더 이상 못 참겠다!〉 하고 가장 먼저 일어선 스파르타쿠스가 아닐까?
전화기 더미가 보인다. 아직 다이얼이 온전하게 붙어 있는 것 들도 더러 눈에 띈다. 다리미와 자명종도 한쪽에 쌓여 있다
뤼크레스와 이지도르는 약간 우울한 기분을 느끼며 나아간다.
한쪽에서 타이어들이 불타고 있다.
녹슬어 가는 헬리콥터 한 대가 눈에 띈다. 그것의 회전 날개가 시든 꽃의 꽃잎처럼 구부러져 있다.
혹시 딥 블루 IV는 대중 앞에서 수모를 당한 뒤에 복수를 결심....
487
〈중심이 자리 잡고 있네. 여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일세.〉
마르탱은 이어서 몇 가지 자료를 보여 주었다.
〈이 식물들은 송과체(松果體)에 영향을 미치네. 사미, 자네 송과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해 보겠나?>
사뮈엘 핀처는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채 잠시 대답에 뜸을 들였다.
「송과체는 송과선, 또는 솔방울샘이라고도 해. 사람의 분비샘 가운데에 가장 작은 것이지. 무게는 0.16그램쯤 되고 색깔은 빨간데, 모양이 작은 솔방울처럼 생겼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네. 17세기에 데카르트는 이것이 영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 이런,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의 실험을 이 송과체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네. 이상하지?」
<나는 송과체에 관해서 대단히 많은 정보를 수집했네. 처음에 이 기관은 몸속에 있지 않고 몸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어떤 줄기 같은 것이 떠받치고 있어서 두개골 상부의 표피로 돌출해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일세. 거기에서 이 기관은 제3의 눈과 같은 기능을 했던 듯하네. 이 사진을 보게. 뉴질랜드에는 송과체가 몸 밖에 있는 도마뱀이 아직 존재하고 있어. 사람의 몸에 와서 이것이 내분비샘으로 바뀐 거지. 이 내분비샘은 임신 49일째에 생긴다네. 말하자면 성기와 한 날 한 시에 생기는 것이지. 마치 성적인 쾌락과 관련된 기관이 외부에도 하나 있고 내부에도 하나 있어야 한다는 듯이 말일세.〉
「그렇다면, 성기의 경우가 그렇듯이 이 내분비샘도 훈련을 필요로 하겠는걸!]
502
〈맞아. 성기를 처음 사용할 때는 누구나 서툴게 마련이지. 스스로를 거의 통제하지 못하기가 십상이야. 그러다가 경험이 쌓이면 그것을 자기 뜻대로 제어할 수 있게 돼. 송과체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자네는 송과체를 훈련시키는 일에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일세. 송과체를 훈련시키는 일은 쾌감 중추를 길들이는 일이기도 하네. 송과체란 최후 비밀의 한 매개 일 뿐이라고 나는 확신해.〉
마르탱은 컴퓨터 화면에 또 다른 자료를 제시하였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이 송과체가 대단히 크다네. 무게가 40 그램에 달하지. 그런데 열두 살 무렵이 되면 성장이 정지하고, 그 뒤로는 크기가 차츰차츰 작아진다네. 전문가들은 이 내분비샘이 사춘기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네.>
「아이가 어른보다 쾌감에 민감한 것도 어쩌면 바로 이 송과체 때문일 거야.」
핀처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1950년에 연구자들은 송과체에서 두 가지 물질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멜라토닌과 DMT, 즉 디메틸트립타민이 바로 그것일세. 멜라토닌은 우리가 합성할 수 있는 물질이야. 오늘날에는 이것을 이용해서 약을 만들기도 해. 그 약은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또 DMT 역시 합성되는 물질이야.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환각제를 만들기도 하는가 봐.>
503
「둘 다 텔레비전 뉴스에 여러 번 나온 자들이에요. 그 뒤로 감옥이든 정신 병원이든 어딘가로 보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가 바로 여기일 줄이야……………….」
「카뤼브디스와 스킬라로군요. 오뒤세우스가 맞닥뜨린 마지막 두 괴물이죠.」
이지도르는 의자 하나를 집어 들어 적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뤼크레스는 안쪽 문을 열려고 달려간다.
「꼼짝 말고 있어, 이 야수들아! 가까이 오지 마!」
이지도르가 의자를 휘두르며 그렇게 외치는 동안 뤼크레스는 다시 곁쇠질을 한다.
마침내 자물쇠청이 곁쇠에 밀려난다. 두 기자는 서둘러 들어간 다음 커다란 철문을 도로 닫고 빗장을 지른다. 문 건너편에서 두 사내가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걱정하지 말아요.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는 못할 거예요. 문이 굉장히 견고하게 생겼어요.」
그들은 새 방을 둘러본다. 이번 방은 사무실 같은 느낌을 준다.
뤼크레스는 서랍들을 열어 본다. 이지도르는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그린 거대한 벽화를 바라본다. 「호메로스 예찬」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이다.
화면 오른쪽에는 벌거벗은 여인과 히브리 글자가 새겨진 돌, 나팔, 혀, 열쇠, 바구니에 달라붙은 귀 등이 있다. 화면 중앙에는 채찍을 휘둘러 말 세 마리 를 물 밖으로 나오게 하는 남자가 보인다. 왼쪽에는 호메로스의 흉상이 그려져 있다. 이마의 갈라진 틈으로 개미들이 기어 나오고 있는 흉상이다.
512
최후 비밀에 다가가는 건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카로스 처럼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일이 아닐까? 핀처가 경고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 가공할 위력을 지닌 마약 때문에 나는 모든 의지를 상실해 버릴 것이다.
이지도르 역시 자기 나름대로 <아무>의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억력이 자꾸 감퇴된다고 걱정했는데, 이제 보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이성, 내 의지 전체가 허물어질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자 수수께끼를 내겠소. 잘 들으시오.>
장루이 마르탱은 모니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낸다.
<<드니의 귀>라 불리는 시칠리아 근처의 작은 섬에 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에 오뒤세우스가 갇혀 있소. 그는 퀴클롭스와 대면하고 있소.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퀴클롭스가 제안했소. <너는 끓는 물에 삶아질 수도 있고, 불에 구워질 수도 있다. 선택은 너에게 맡기겠다. 지금 무슨 말이든 한마디를 해라. 만일 그 말이 참이면 너를 끓는 물에 삶아 죽일 것이고, 그 말이 거짓이면 너를 불에 태워 죽일 것이다>라고 말이오.
그러자 꾀 많은 오뒤세우스는 절묘한 대답을 생각해 내서, 끓는 물에 삶아지지도 않았고 불에 구워지지도 않았소.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당신들에게 3 분 동안의 시간을 주겠소. 대답의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오. <기권이냐 갑절이냐라는 퀴즈 프로그램 본 적 있소? 자아, 친구들, 이 제 당신들 차례요.>
마르탱은 컴퓨터의 시계를 화면에 띄우더니, 3분이 지나면 시 계가 올리도록 조정해 놓는다.
539
사고는 전기적 현상이자 화학적 현상이다.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것처럼.
글루타민산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이 활동을 개시한다. 이 물 질이 이웃한 뉴런에 닿자, 이 뉴런의 활동 전압 역시 30밀리 볼트로 높아진다.
글루타민산염은 하나의 흥분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가바, 즉 감마 아미노부티르산이라는 또 다른 신경 전달 물질이 억제제로 작용함으로써 글루타민산염의 활동과 균형을 이룬다. 흥분시키거나 억제하는 화학 물질들 사이의 이 미묘한 균형에서 생각들이 생겨난다. 이지도르 카첸버그의 뇌에 들어 있는 1천억 개의 뉴런 들 중에서 3백50억 개가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에 동원된다. 이지도르의 생각이 오로지 수수께끼에 집중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의 뇌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탓에 손가락과 발가락의 끄트머리가 창백해지고 약간 저릿저릿해진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뇌리를 스친다.
「오뒤세우스는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지도르가 설명을 덧붙인다.
「그렇게 말하면 퀴클롭스는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집니다.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는 오뒤세우스의 말이 참이라면, 퀴클롭스는 그를 끓는 물에 삶아 죽여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불에 구워질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오뒤세우스는 거짓을 말한 셈 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는 오뒤세우스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불에 구워져야 합니다. 그러면 오뒤세우스의 말은 다시 참이 됩니다. 결국 퀴클롭스는 오뒤세우스를 삶아 죽일 수도 없고 구워 죽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판결을 내리지 못하지요. 그래서 오뒤세우스는 죽음을 모면합니다.」
543
차이가 있다면, 이 이지도르 카첸버그라는 친구는 전혀 의욕이 없다는 점이다. 병원의 모든 환자들이 이 수술을 꿈꾸었다. 나는 핀처의 뒤를 잇는 두 번째〈로켓〉을 발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모두가 원하던 그 상(賞)이 그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해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 오히려 그것이 뜻밖의 선물로 주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뤼크레스는 반창고로 입이 봉해진 채 회전의자에 묶여 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자는 사이일까? 어쨌거나 수술이 끝나고 나면, 어떤 여자도 최후 비밀을 자극하는 것만큼이나 강렬한 쾌감을 이 남자에게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신호를 보내기만 하면 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폭탄이 터질 것이다.
마르탱은 침대의 윗부분을 일으켜 세우게 해서 마치 앉아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수술 장면이 한결 잘 보인다.
이 여자는 참으로 예쁘다. 게다가 대단히 역동적이다. 어쩌면 제2의 핀처로는 남자가 아니라 이 여자를 선택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제우스가 어떤 신을 인간 세상에 보내 여자로 사는 게 더 좋은지 남자로 사는 게 더 좋은지를 알아보게 했다. 그 신은 여자와 남자의 몸속에 번갈아 들어가서 각각 하루씩 머물렀다. 그 신은 제우스에게 돌아와서 여자로 사는 게 낫다고 보고했다. 여자가 느끼는 쾌감 이 남자의 쾌감보다 아홉 배나 강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르탱은 다음의 <실험 대상자>로는 여자를 선택하리라고 마음먹는다.
545
<이 곡식을 먹는 사람들은 정신에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어요.
<하면, 백성들에게 알려서 그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해야겠구나.>
<하오나 그것 말고는 달리 먹을 게 없습니다. 만일 백성들에게 그 감염된 곡식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면, 백성들에게는 그 오염된 곡식을 주고, 우리는 곳간에 비축해 둔 성한 곡식을 먹으면 되겠구나.〉
<하오나 모든 백성이 미치광이가 되고 우리만 정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남게 되면, 백성들은 오히려 우리를 미치광이로 여길 것입니다.>
왕은 깊이 생각하다가 재상의 말을 받아들여 이렇게 결론을 내였어요.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로구나. 우리도 백성들처럼 그 오염된 곡식을 먹기로 하자. 하지만 우리가 미치더라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 이마에 어떤 표시를 하기로 하자.>」
이지도르는 자기 이야기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다. 하지만 뤼크레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한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이죠? 어디 설명 좀 해봐요.」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미치광이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당신이나 나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적어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믿고 있지만 말입니다.」
557
「주된 경쟁 회사에서 그 로고와 상표를 사들였대요. 그럼으로 써 그 회사는 잃었던 고객을 되찾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는 보통의 공장에서 보통의 노동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겁니다. 그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봉급이지요.」
「고객들은 결국 제품의 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 게 되겠군요.」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죠…………………」
「<크레이지 섹스> 포르노 영화는 어떻게 됐어요?」
「그것도 비슷해요. 다른 회사에서 상표를 사들였어요. 이제부터는 단지 출연료를 벌기 위해 활동하는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할 거예요.」
뤼크레스는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려 미래의 나무를 바라본다. 이지도르가 최후 비밀의 발견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미래의 일 들을 적어 놓았다가 지운 흔적이 보인다.
「자아 그럼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가 얻은 답을 한번 정리해 볼까요?
1. 고통을 멎게 하는 것.
2.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3.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4. 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5. 의무감.
6. 분노,
7. 성애.
8. 습관성 물질,
567
9. 개인적인 열정.
10. 종교.
11. 모험.
12. 최후 비밀에 대한 약속.」
이지도르가 그렇게 나열하고 있는데, 뤼크레스가 발언권을 얻으려는 사람처럼 한 손을 들어 올린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최후 비밀의 실제적인 경험을 빠뜨렸어요. 그게 다른 어느 동기보다 강력한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13번을 최후 비밀의 실제적인 경험으로 하지요.」
뤼크레스가 원통 모양의 받침대 위에 놓인 표본병을 턱으로 가 리킨다. 핀처의 뇌가 들어 있는 표본병이다.
「우리의 이 모든 조사가 결국은 저 뇌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군요…………」
이지도르가 사탕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대답한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진정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도 깨달은 바가 있어요.」
「뭘 깨달았다는 거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기계가 제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다 해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 무어라 이름 붙이기조차 어려운 어떤 작은 것이에요. 핀처는 그것을 동기라고 불렀지요. 내가 보기에 그것은 유머와 꿈과 광기 사이에 있는 어 떤 것이에요.」
그러고 나서 이지도르는 뤼크레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른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몸을 빼낸다.
568
148
지금으로부터 150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났다.
50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났다.
30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이 출현했다.
5억 년 전, 최초의 신경계가 나타났다.
3백만 년 전, 인류가 출현했다.
2백만 년 전, 인간의 뇌가 도구를 고안하여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켰다.
13만 년 전, 인간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상상한 사건을 벽에 그리기 시작했다.
50년 전, 인간의 뇌가 최초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5년 전, 컴퓨터가 저 혼자서 논리적 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기고만장한 컴퓨터들은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질 경우에 저희가 인간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생각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일주일 전, 뤼크레스 넴로드와 이지도르 카첸버그가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한 인간이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기술을 세상에 퍼뜨리려 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만약 그 기술이 세상에 퍼진 다면, 인류는 쾌락에 빠진 채 소멸해 갈지도 모른다.
5분 전, 한 남자가 그녀의 청을 마다함으로써 그녀를 욕구 불만 상태에 빠뜨렸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녀의 마음에 다시 그늘이 진다.
지가 되게 잘났는지 아나 봐!
그러다가 그녀는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다.
너무 섬세하고 민감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서 그래…………………
그녀는 쾌락을 예찬하기 위한 갖가지 전시물 사이로 걸어간다.
사실 그는 내가 만난 모든 남자 가운데 손이 가장 아름다운 남자야.
578
뇌도 마침내 8 헤르츠의 파동에 스스로를 맞춘다. 이로써 뇌와 심장과 성기가 하나로 연결된다.
그들의 송과체가 활기를 띠면서 엔도르핀과 코르티손과 멜라 토닌을 방출하고, 이어서 천연의 DMT를 내보낸다. 그러자 이번 에는 핀처 박사와 마르탱이 최후 비밀이라고 이름 붙인 미세한 부위에 자극이 전해지고 쾌감이 한결 고조된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인들의 말대로 사랑에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첫째는 에로스, 곧 육체적 사랑이다. 이는 성기와 관계가 있다.
둘째는 아가페, 곧 감정적 사랑이다. 이는 심장과 관계가 있다.
셋째는 필리아, 곧 정신적 사랑이다. 이는 뇌와 관계가 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결합되면, 8 헤르츠의 파동으로 천천히 폭 발하는 일종의 니트로글리세린이 된다.
모든 전설에서 말하는 위대한 사랑, 숱한 예술가들이 설명을 시도했던 위대한 사랑은 바로 이 성기와 심장과 뇌가 하나로 결합된 사랑이다. 힌두교와 탄트라 불교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차크 라 2와 차크라 4와 차크라 6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인 것이다.
이 세 기관에서 발생된 8 헤르츠의 파동은 두 사람의 뇌를 빠져나가 주위로 퍼져 나간다. 이것은 물질을 통과하는 사랑의 파동이다. 그들은 이제 단지 한 몸이 된 남녀 한 쌍이 아니라 8 헤르츠의 우주적 에너지를 발하는 작은 발신기다.
그들의 뇌 속에서 의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지도르는 한순간 세계의 몇 가지 비밀을 언뜻 깨닫는다.
582
나는 누구일까? 이토록 엄청난 것을 경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뤼크레스 역시 세계의 다른 비밀들을 언뜻 깨닫는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그녀는 우주에 가늘고 긴 실들이 퍼져 있음을 감지한다.하프 같다.
도처에 실들이 퍼져 있다. 이 실들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 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직물을 이룬다.
우주의 현(弦)이다. 우주 공간에도 하프의 현처럼 진동하는 줄 이 있다. 별들에서 나오는 이 현은 8 헤르츠의 파동으로 떨린다.
현과 실과 매듭으로 짜여진 우주는 하나의 현, 하나의 거미줄이다. 또한 우주는 하나의 그림이고, 생각이 지어낸 이미지다.
누군가가 우주를 꿈꾸면,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시간 역시 이 꿈에 속한다. 시간은 한낱 환상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시간이 연속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존재와 사건을 더 이상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는 것으로 지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태아인 동시에 젊은 여자이고, 젊은 여자 인 동시에 노파이다. 더 넓게 보면, 나는 내 아버지의 음낭 속에 들어 있는 정자들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뤼크레스 넴로드〉의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주검이다.
한층 더 넓게 보면, 나는 내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욕망인 동시에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추억이다.
그녀는 자기 마음이 아주 평온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나>를 훨씬 넘어서 있는 존재다.
583
'2025독서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 번째 책 : 좋아서 웃었다 (1) | 2025.02.23 |
---|---|
여덟 번째 책 :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 (1) | 2025.02.15 |
여섯 번째 책 : 도파민 디톡스 (0) | 2025.02.09 |
다섯 번째 책 : 철학의 은유들 (0) | 2025.02.03 |
네 번째 책 : 뇌 - 베르나르 베르베르 (0) | 2025.02.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