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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독서정리

다섯 번째 책 : 철학의 은유들

by 마파람94 2025. 2. 3.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단어, 문장, 문단에 친숙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져들며 작가의 사상으로 빠져듭니다.

이번에 손에 든 책은 글들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생각들과 교차하는 철학적 은유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이번에 새로 알게 된 리좀이라는 단어가 반가웠습니다. 수평방향 사상전개를 떠올리게 합니다.

리좀은 위에서 하방으로 뻗어가는 전형적인 나무뿌리와는 다른 수평전개 이미지가 확실한 은유로 머릿속에 각인되었습니다.





메타포 : 철학의 은유들


메타포는 전이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메타포라'에서 유래했다. 형태적으로는 '너머'를 뜻하는 메타(meta)와 '운반하다'라는 의미의 페레인(pherein)이 결합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이삿짐이나 운송 트럭 또는 계좌이체와 같이 형태적 이동이 일어나는 것을 '메타포레(metaphores)'라고 한다. 언어 영역에서 메타포는 서로 다른 두 단어의 동일화, 다시 말해 '의미의 전이'를 뜻하며, 이는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서 동일하게 이해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동일화가 메타포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의미장(semantic field)'이다.


각각의 단어를 둘러싼 어휘의 집합인 의미장은 사전적인 의미로 서로 연관이 있는 유사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되는 표현들을 포함한다. 진정한 메타포적 의미의 전이는 한 단어가 본래 속해 있던 의미장에서 벗어나 연관되지 않은 전혀 다른 의미장으로 넘어갈 때 발생한다. 메타포는 메시지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함축적 의미 전달 과정에서 생략될 수 있는 문자적 표현은 메타포가 완전히 이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메타포는 변화의 요소를 포함한다.

철학에서 은유는 대부분 개념적 은유이다.

형태가 없어 보이지 않는 개념 또는 아이디어를 실재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과 결합하여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개념은 이미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은유를 통해 '개념의 형상화'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은유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색과 형태와 냄새와 생명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학의 은유들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지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가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들로 구성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질문하게 한다.


동굴

플라톤
<국가> 5148~517a

기원전 427-347

“사람들이 거대한 지하 동굴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화는 움직이는 은유다. 한 지점이나 한 단어에서 즉각적으로 완결되는 은유와 달리, 우화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은유를 지속해서 밀고 나간다. 이때 우화의 의미는 표현 그 자체가 가지는 것과 저자가 그 안에 숨긴 의미, 두 가지 힘 사이에서 드러난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이러한 우화의 전형으로, 수 세기 동안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주제로 이어져 왔다.

동굴 비유의 내용은 단순하다. 동굴 안에 사슬로 묶인 죄수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들의 등 뒤에 있는 모닥불이 만든 그림자만을 보 게 된다. 죄수들과 모닥불 사이에는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 이 있어, 이들은 다양한 도구와 사람, 동물, 사물 모양의 인형을 움직인다.

이러한 연극적인 상황 속에서 죄수들은 동굴 벽에 투영된 그림자 만을 유일한 현실로 여긴다. 여기서 누군가가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가야만 햇빛을 쬐며 바깥세상의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의 세계만이 진실이며,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일종의 환영이라고 보았다. 동굴 비유를 통해 이러한 두 세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려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굴 우화는 플라톤의 독점적 설명에서 벗어나, 애초의 철학적 체계를 넘어서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동굴 우화는 다양한 해석을 통해 우리 삶을 억압하는 여러 종류의 '사슬'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

그리스 철학사는 크게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안다"는 무지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통해 정치, 윤리, 정의 등의 개념을 탐구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스승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승의 사유 방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적 비전을 제시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거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로 이어지며 발전했다.

12



면도날

오컴

<논리학 대전) 1권 12장

약 1287-1347

“더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통해 얻는 일은 헛되다."

오컴의 면도날 은유는 논증의 경제성 원칙을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면도날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듯, 절약성의 원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설, 가정 또는 명제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방법론적 도구로서 면도날 은유는 오늘날에도 천체물리학에서 의학에 이르기까지 과학 전반에서 자주 인용된다.

단순성의 원리는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철학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용어는 1649년에 벨기에 과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리베르트 프로이드몬트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는 경제성 원리를 효과적으로 빈번하게 적용한 영국의 성직자이자 유명론자인 오컴의 윌리엄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면도날 은유는 오컴의 이름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은 날카로운 칼처럼 강력한 은유로 자리잡았다. 면도날 은유와 혁신적인 논리 체계를 통해 오컴은 말과 사물, 논리학과 신성을 중심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질서 사이에 명확한 구분선을 그었다. 즉, 철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를 분리하여 사유의 주체를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오컴은 1328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파문되었으나,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한 모든 것을 잘라내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사상과 과학의 전환을 위한 철학의 길을 열었다.

스콜라 학파

사색에 전념하는 시간을 지칭하는 고대 그리스어 “스콜레(자유시간)"에서 유래한 스콜라 학파는 중세 말기 마지막 500년 동안 등장한 다양한 학파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스콜라 철학의 핵심은 보편 논쟁으로, 이는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재론과 보편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는 유명론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오컴이 대표했던 유명론에서는 보편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므로 불필요한 전제는 잘라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결국 근대 철학의 도래 이전에 스콜라 철학의 쇠퇴를 불러왔다.

20

부엉이

헤겔
《법철학 강요) 머리말

1770-1831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부엉이는 오랜 세월 동안 철학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고대 여러 문화에서 신성시되었던 부엉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후에 로마에서는 미네르바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달빛 아래 우는 야행성 동물의 이미지를 지닌 부엉이는 하루가 끝나고 어둠이 질어질 때 비로소 날아오른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검은 숲의 전나무 위를 나는 부엉이의 모습에서 큰 철학적 영감을 얻었다.

황혼의 빛 속으로 날아가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언급한 헤겔의 유명한 경구는 부엉이가 상징하는 바와 그 은유적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헤겔은 부엉이의 야행성을 강조하며 철학이 어둠 속에서 비로소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을 시사했다.

오후의 소음이 잦아들고 밤의 고요가 찾아올 때 모습을 드러내는 부엉이처럼, 철학도 현실 세계가 형성되고 인식 과정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날개를 펼친다. 헤겔은 철학이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철학이 자신의 회색을 회색으로 덧칠할 때, 생의 모습은 이미 늙어버린 상태이며, 회색으로 덧칠한다고 해서 다시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식될 뿐이다."

거대한 촉수처럼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헤겔의 사상체계에서 철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주목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해가 지지 않는 땅은 없으며, 결국 모든 곳에 황혼의 시간이 다가온다. 부엉이가 목을 돌려 주변을 살피듯, 헤겔의 철학은 예리한 시각으로 현재를 폭넓고 깊게 통찰한다.

독일 관념론

이상주의는 실용적 편리함보다는 이상향이나 신념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철학에서 관념론은 현실을 생각(이데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사이 독일에서

나타난 독일 관념론은 정신이 현실을 구성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흐름의 대표적 인물로는 피히테(1762~1814), 셀링 (1775-1854), 헤겔 등이 있다.

30

리좀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서론: 리좀

1925-1995-1930-1992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항상 중간에 있다."

식물학에서 리좀은 수평으로 자라는 땅속줄기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자신들의 철학적 접근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리좀이라는 단어와 식물학적 이미지를 차용했다. 대부분의 지식 체계가 하나의 중심 주제에서 하위 개념 또는 하위 범주로 가지를 뻗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면, 리좀의 은유는 그와 반대되는 지식 체계를 시각화한다. 리좀(뿌리줄기)은 뿌리, 기둥, 가지가 있는 수직적이고 선형적인 나무 구조와 달리,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호 연결되어 다방향으로 작동하는 수평적 사고 모델을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식, 문화, 사회는 모든 지점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횡단적 네트워크로 간주된다. 단일한 기원이나 원인을 찾기보다는, 현실을 다양한 요인과 힘, 현상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이해한다. 이 '리좀식' 사고는 지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억압적이고 지배 적인 '수목식' 사회 위계 구조에 저항한다.

철학계에서 공동 저술은 흔치 않다. 더구나 공동저자들이 다중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식물학 이미지를 빌려 철학 이론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보다 더 이례적이다. 새로운 사고의 틀에는 새로운 은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설명하고자 했고, 그 방식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불변하는 단일한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 혁명적인 방식이길 바랐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즘을 "유목적 전쟁 기계"라 표현하며, 사방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인위적 권력 메커니즘을 해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구조주의는 20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에서 발생한 철학 조류이다. 구조주의자들은 인간과 문화 현상을 개별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근본 요소들의 상호 관계와 이를 구성하는 기저 구조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은 더 이상 고정되거나 결정된 관계와 구조를 해체하면서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는 역동적인 철학을 추구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현실의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구성하고 협상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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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버틀러
《주체 의식》 서문
1956-

“이 관계들은 주체 형성을 위한 매트릭스를 구성한다."

자궁을 의미하는 '매트릭스(matrix)'라는 라틴어 단어는 인간 세계에서는 어머니, 동물 세계에서는 암컷의 생명 창조 능력을 나타낸다. 이 어원에서 비롯해 은유적으로 확장된 매트릭스는 여성의 자궁이나 거푸집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든, 아이디어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것이든 무언가가 생성, 발전하는 장소나 환경을 지칭한다.

매트릭스는 또한 1999년 개봉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SF 영화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 매트릭스는 기계가 만들고 통제하는 가상 세계이자 기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실제라고 믿는 세 계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매트 릭스 은유는 주체적 정체성의 형성, 특히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개념을 규제하는 2진법적 체계인 '이성애 매트릭스'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매트릭스 은유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특정한 규범 체계 내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여기서 젠더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연관된 고정되고 고유한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 다. 젠더의 개념은 반복되는 언어적 행위와 수행적 행동을 통해 형성되며, 이 반복적 수행을 통해 형성된 젠더 인식은 사회적으로 정의된 젠더의 의미에 부합하여, 마치 자연스럽고 변함없는 개념인 듯 보인 다. 하지만 반복의 실패, 즉 기존의 규범 체계를 벗어나는 행동이 발생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매트릭스가 가시화된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강제된 젠더 규범에 도전하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저항의 기회를 맞이한다.

페미니즘 철학

페미니즘 철학은 다양한 접근 방식과 사조로 구성된 철학의 한 분과이다. 페미니즘 철학은 남성 중심의 전통적 철학 이론과 그 실천이 어떻게 여성과 기타 성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향한 차별을 강화해 왔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따라서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젠더 규범이 불평등의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거기에 여성과 그 외 소외된 집단의 경험과 관점이 반영되기를 원한다. 이들의 목표는 이론이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져 단순히 인식의

변화만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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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바우만

《리퀴드 라이프> 서문: 액체 현대에서의 삶

1925-2017

“삶의 유동성과 사회의 유동성은 상호작용하며 강화된다."

철학적 은유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실재하는 모든 것의 변화와 운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강과 강물의 흐름을 은유로 사용했다면, 이제 여정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사는 시대의 불안정성, 불확실성 그리고 끊임없는 가변성을 상징하는 '액체' 은유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때, 폴란드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제목에 '액체'라는 은유를 포함한 일련의 책을 발표했다. 《액체 현대》(2000), 《리퀴드 러브: 사랑하지 않을 권리》 (2003), 《리퀴드 라이프》(2005), 《유동하는 공포》(2006), 《리퀴드 타 임즈>(2007)가 그것이다. 과거 '고체 근대성'이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가졌다면, 바우만 이 정의한 '액체 근대성'의 삶은 끊임없이 형태와 경로를 바꾸며 이동한다. 사회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며, 사람들이 적응할 겨를도 없이 해체되고, 인간 간의 연대는 약해지며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부유하며 관계, 유행 그리고 무분별한 소비의 영향을 받으며 쉽게 변한다.

'액체 현대'라는 개념은 현시대의 빠른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 한 시각을 제공한다. 하지만 쓸수록 무뎌지는 칼처럼, 은유가 지나치게 남용되면 원래의 날카로운 통찰을 잃을 수도 있다. 은유를 과도하 게 일반화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해서 문제의 대안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면, 철학은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철학은 가만히 고정된 이론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계속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철학: 에필로그

21세기에 들어서며 철학은 여러 심각한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기후 변화, 지속 가능한 환경, 성평등, 탈식민주의 사상 그리고 인간과 기계, 동식물 간 관계의 재설정을 요구하는 탈인본주의적 관점 등은 철학에 새로운 주제를 던지며 다른 과학 및 지식 분야와 활발한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적 은유가 필요한 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과거의 은유를 넘어서며 인간 사고의 지평을 넓혀 줄 새로운 은유를 찾는 길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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