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번째 책 : 자전거 여행- 김훈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글을 읽다 보니 그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며 사진을 남기고, 글을 남기는 일을 해보고 싶어 집니다.
작가의 수원 화성 여행 중에 남긴 글 덕분에 화성성역의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긴 것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인물지 얘기중에 얼굴 표정 이야기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돕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 이 순간 저에게 남은 가장 큰 이미지는 자전거 핸들에 속옷을 매달고 신나게 떠나는 김훈 작가의 모습입니다.

물 위에 고기비늘 같은 잔주름이 잡히면 실바람이고, 작은 파도가 생기면 남실바람이다. 파도의 대가리들이 부서지고 흰 거품이 일어나면 산들바람이고, 파도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옆으로 연대를 이루면 건들바람이다. 파도가 더 길어지고 흰 거품이 위로 치솟으면 흔들바람이고, 흰 거품이 파도의 전면에서 일어나면 된바람이고, 흰 거 품이 대열을 이루어서 달려들면 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부서져서 물보라가 날리면 큰바람이다. 물보라가 심해져서 시야가 흐려지고 파도의 대가리가 휘어지면 큰 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덩어리를 이루어 물 전체가 뿌옇게 보이면 노대바람이고, 큰 파도가 작은 파도를 때려 부 수면서 달려들면 왕바람이고, 물거품과 물보라로 수면 전체가 뒤덮이 면 싹쓸바람이다.
등대의 풍향계와 풍속계는 화살표 한 개와 바람개 비한 개로 이 모든 바람의 힘과 빠르기를 감지해서 그 내용을 인간의 세상으로 전한다.
숨 쉬면서 움직이는 바다
선미도 등대에서 굴업도 쪽으로 2마일쯤 떨어진 해상에 기상부표가 떠 있다. 이 기상부표는 선미도 등대의 최전방 관측소다. 기상부표는 무인 시설이다. 기상부표에는 해양기상 관측장비Buoyㆍ부이가 가설되어 있다. 기상부표는 바닷물 위로 뻗은 인간의 촉수다. 기상부표의 해양기상 관측장비는 풍향, 풍속, 기압, 기온, 습도, 수온, 파고, 파주 기, 파향을 자동관측해서 그 정보를 등대의 풍향계로 보낸다.
| 자전거여행 37
일연 -然은 이 전설에 서기157년신라 아달라왕 4년, 정유이라는 절대 연도를 부여했다. 이것이 그해에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이다. 영일만 바닷가에서 그 전설은 절대 연도와 함께 사실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사실일 것이었다. 빛이 인간의 내면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랴, 2,000년 후의 이 바닷가에는 포항제철과 포항공대가 들어섰다. 포항공대의 방사광 가속기는 기존의 빛을 수백억 배까지 밝게 증폭시킨다. 이것은 꿈의 빛이다. 물질은 이 빛 속에서
새로운 구조와 의미를 드러낸다. 새벽 바다에 수많은 0.7톤들이 돌아온다. 연오와 세오들이 돌아오고 인간의 빛이 인간의 마을로 돌아온다. 새벽 영일만에서는 알겠다. 모든 빛은 인간의 내면의 빛이다. 일연은 그렇게 말한 셈이다. 방사광 가속기의 빛도 그러하다.
바닷가를 달리는 자전거 바큇살에 서기 157년의 영일만 아침 햇살은 부서진다.
어부들이 권하는 생선회
장기곶, 대보, 감포 마을 어부들과 술을 마시면서 무릇 생선회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웠다. 회를 먹을 때는 피해야 할 것이 두 가지이 다. 첫째는 양식된 생선이고 둘째는 냉동된 고기이다. 광어와 우럭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횟감이다. 값도 가장 비싸다. 지금 동해안 어 촌에도 자연산으로 냉동 안된 광어나 우럭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 자전거여행
044
낡은 브래지어들이었다. 오랫동안 살 속에 파묻혀서 등 뒤로 돌아 가는 끈과 컵 밑 선은 솔기가 터져서 실밥이 흩어졌고, 흙탕물이 배어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 낡은 브래지어는 나에게 성적 존재로서의 북한 여성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늘 한복을 입고 TV에 나와서 복받치는 혁명의 감격과 영웅주의적인 적개심으로 목울대를 떨면서 뉴스를 전하는 북한 여자 아나운서들이나 몇 년 전 부산 아시안게 임 때 만경봉호를 타고 와서 꾀꼬리 창법의 노래와 학습된 미소를 보여주던 북한 여자 응원단에게서 나는 아무런 인간의 개별성도 느낄 수 없었다.
아군 관측소에 전시된 북한 여성의 낡은 브래지어는 살아서 가슴을 꾸미는 성적인 여자의 체취를 풍긴다. 이 여자는 지난번 홍수에서 살아남았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여자의 브래지어가 남쪽과 북쪽의 산하가 한꺼번에 내려다보이는 남방한계선 고지의 관측소에 개별적 여자의 존재로서 전시되어 있다. 여기는 철책선 밑이다. 내 자전거 핸들에 이 브래지어를 매달아 바람에 날리면서 경의선 도로를 달려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젊은 주인에게 가져다주고 싶다.
055
| 산하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
농성은 희망이 없었고, 기약이 없었고, 대책이 없었다. 농성은 전투도 아니고 투항도 아니었다. 농성은 다만 대책 없는 버티기였을 뿐이었다.
47일 전인 1636년 12월 14일 새벽에,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왕의 대열은 남문을 통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 왕과 함께 남문으로 들어온 대열은 한 줌에 불과했다. 왕의 앞에서 인도하는 자가 5~6명이었고, 뒤따르는 자들은 수십 명 정도였다. 나머지 중신과 백관 들은 동이 틀 무렵에야 성에 당도했다. 왕의 대열이 한양 도성을 빠져나와 수구문 밖을 지날 때 근위무사나 의장대열은 모두 흩어졌고 울부짖는 백성들이 몰려와 어가 대열에 뒤엉켰다. 왕의 대열 앞에서 백성들은 땅에 쓰러져 뒹굴면서 통곡했다. 왕의 말고삐를 잡은 자도 달아났다. 달아난 자를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왕은 친히 고삐를 잡고 말을 몰아서 쓰러져 울며 뒹구는 백성들 틈새를 밟고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다시 산성을 버리고 투항의 길로 나설 때, 왕의 대열은 입성할 때보다는 길었고 매달려 울부짖는 백성들도 없었다. 왕의 뒤를 길게 따르 는 문무백관과 시녀들이 통곡하면서 눈 쌓인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왕은 곤룡포를 벗고 청나라 군대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것이 청태종이 요구한 투항의 패션이었다. 비단으로 만든 푸른색 군복이 었다. 전날 밤 청군의 부장 용골대가 서문 앞에 나타나 성안으로 군복을 들여보냈다. 왕과 세자는 말에 올랐다. 청군이 보낸 말이었다.
|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145
. 용연은 이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담수시설이었을 것이다. 물길을 가지런히 내는 공사는 화성의 성 쌓기 공사 전체 중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공사였다. 화홍문은 성의 북쪽 수문이다. 돌다리 위에 누각을 지었고, 돌다리 밑으로 는 7개의 홍예 밑으로 물이 흐른다. 강고한 성벽 밑을 늘 물이 흘러서, 수원 성벽에서는 흐르는 것들이 강고한 것들의 밑바닥을 쓰다듬어준 다. 왕도는 존재와 생성의 두 축 위에서 현실의 들판 위에 성벽을 이 룬다.
수원 화성의 이념적 지향성을 지상의 구조물로 이룩해내는 그 실무적 꼼꼼함은 『화성성역의궤』 안에 모조리 적혀 있다. "화성성역의궤』 는 수원 화성의 기획과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항을 총망라한 다. 이 의궤는 조선 왕조가 편찬한 책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기록문서이다. 화성 축조를 기획하고 지시하는 임금은 실무적인 치밀함을 끝까지 유지한다. 화성 축조에 있어서 임금의 지휘 방침은 서두르지 말 것, 기초를 튼튼히 할 것, 사치스러운 치장을 하지 말 것, 일을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할 것, 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성을 쌓기 전, 수로를 정비하고 도로를 개설할 때 도로연변의 농가들을 수용했다. 의궤는 수용된 농가들의 주인 이름, 위치, 수용가격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북리北里에 살던 김용강의 집은 흙방 1칸으 로 수용가는 7전이며 5전을 추가로 지급했다. 남리에 살던 김금공가 화홍문 밑을 지나서 성안으로 흘러든다.
| 마음속의 왕도가 땅 위의 성곽으로
| 195
고열에도 오랜 세월 견디어내고, 천장의 불길 흐름을 부드럽게 해준다.
김 씨가 아버지에게 도공일을 배우던 시절에 관음리 옛 가마 주변에는 30여 기의 사기 가마들이 가동되고 있었다. 마을 공동 가마도 있었다. 공동 가마는 다 무너지고 지금은 빈터와 바닥 구조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릇을 받으러 오는 지게꾼들이 가마 앞에 줄을 서 있었다고 김 씨는 말했다. 스테인리스 그릇과 수입 도자기가 보급되자 사기그릇 생산은 급속도로 몰락했다.
한국에서 사기가 몰락해가던 6·25 직후에 일본인 도예가 고바야시 도고小林東五 씨는 이 산간 벽촌까지 찾아와 6년을 머무르며 김 씨의 아버지에게서 도예를 배워갔다. 그때 한국에서는 사기 가마터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지금 일본 도예계의 대가가 되어 있다.
관음리 옛 가마촌은 지금 '조선요' 하나만 남고 다 무너져버렸다.
'조선요'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더 이상 불을 땔 수 없게 되었다. '조선요'에 때던 불은 새로 지은 '영남요'에서 그 후손에 의해 겨우 타오르게 되었다. 맥을 이어가는 일의 어려움이 이와 같다.
| 가마 속의 고요한 불
| 207
사태가 무슨 사태인지를 알게 되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을 향해 달려갈 때 무섭지 않았나?"
"너무나도 무서웠다.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에, 그 무서움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었다. 그때 온몸이 떨렸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지를 지금도 알 수 없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목발에 대해서 묻지 않는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왜 목발을 짚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옛날에 다쳤다고 대답했다."
"군인과 총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말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이 군대 전체와 국가 권력 전체를 증오하 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발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깨어진 구둣가게 꿈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목발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213
| 망월동의 봄
영혼의 언어
유소劉는 중국의 전국시대에 조조曹操의 막하였다. 그는 지휘형이라기보다는 관리형 참모였다. 그의 저서 『인물지』가 후세에 전한다. 영웅이 할거하고 인재가 명멸하던 난세에 인물을 골라내서 기용하던 그의 분별력이 이 인물지』에 보인다. 그는 인간의 감추어진 자질은 그 얼굴에 드러난다고 보았다.
.......낯빛이 겉으로 드러난 것을 신기가 발현되었다微神고 하는 데, 신기가 발현되어 외모로 드러나면 마음의 본모습이 눈빛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진 이의 눈빛은 삼가는 듯 단아하고, 용감한 사람의 눈빛은 타오르듯 강렬하다.
......용모의 움직임은 심기心氣에서 나오는데, 심기의 징험은 말소리의 변화에서 볼 수 있다. 기가 모여 소리를 이루고, 소리는 음률에 상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화락하고 평온한 소리, 맑고 화창한 소리, 여운이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있게 된다. 말소리와 심기가 맞아떨어지면, 속마음이 용모와 안색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자하다면 반드시 온유한 낯빛이 있게 되며, 진실로 용감하다면 반드시 용맹스럽고 과단성 있는 낯빛이 있게 되며, 진실로 지혜롭다면 명석하고 통찰력 있는 낯빛이 있게 마련이다.(유소, 『인물지』)
| 자전거여행
| 236
조동마을 자치조직 '대동회'
조동마음은 아직도 오래된 삶의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나 행정의 힘에 기대지 않고서도 마을은 마을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다. 40여 호의 가구들이 모두 대동회大同會에 가입되어 있다. 마을의 원로 주민들조차도 이 대동회의 전통이 언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대동회는 이 산간마을의 가장 자연스런 삶의 방식인 것처럼 보였다.
대동회는 마을 기금을 모아서 공동 안테나를 설치하고 논둑길을 보수하고 고장 난 것을 고친다. 대동회는 전 가구가 참가해서 경비를 결산하고 회계를 확인한다. 마을의 이장도 이 대동회에서 정한다. 투표를 하지 않고 뒤집어씌우는 식으로 추대하는데, 이 추대를 굳이 피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집집마다 1년에 쌀 1말, 보리 1말을 걷어서 이 장을 맡은 사람에게 준다. 이 집 저 집의 논일, 밭일은 대부분이 이웃 간의 품앗이로 이루어진다.
산간마을의 영농방식을 행정용어로는 '복합영농'이라고 부른다. 복합영농은 산골짜기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밭에 이것저것을 조금씩 다 심는 방식이다. 콩, 고추, 무, 배추, 참깨, 담배, 호두, 포도, 사과를 다 심는다. 산나물을 캐고, 버섯을 따고, 소·돼지·토끼·염소·개를 모두 다 기른다. 이러니 마을은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대동회는 원로 주민 5명으로 유사有司를 정한 다. 유사는 유가족과 협의해서 장례절차와 치산治山을 관리하고 장례
|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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