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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독서정리

스물 세 번째 책 : 일류의 조건 - 사이토 다카시

by 마파람94 2024. 6. 16.

 

이견의 견과 나무 타기 달인,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 예시가 너무나 가슴속에 내려앉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몰입과 관련한 예시도 공감이 되었고요. 일류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훔치고, 추진하고, 요약해서 하루의 끝에 내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기라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기술을 훔치는 힘'은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 단순한 '모방'과 '훔쳐서 내 것으로 만 드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술을 훔치기 위한 전제

무언가를 '기술'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미 그 행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능숙하게 하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 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패션일 수도 있고, 단순한 버릇이나 전체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훔칠 수 있으려면' 몸소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기술을 훔치려면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범위를 좁혀 반드시 훔쳐야 할 핵심을 찾아내야 한다. 이 핵심 포인트를 걸러내는 과정이 곧 기술을 훔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핵심 포인트는 '기술'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줄 것이다.

제1장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 가지의 힘' 041


모든 사람을 문과 계열과 이과 계열 두 종류로 나누는 사고방식의 궁극적 목적은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위한 것처럼 보이기 쉽지만, 실제로는 숙달을 향한 의욕이 샘솟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과를 선택 한 사람은 본인이 문과 계열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하여 선택하는 일보다, 이과 과목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학과목에 자신이 없어 이과는 포기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문 과를 선택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한번 자신을 문과적 인간이라고 규정해버리면, 이과 과목을 잘하고 싶은 의지를 포기한 채 완전히 손을 떼어버린다. 성장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때 버려지는 것이 이과 계열 과목 몇 가지에 그 치지 않고, 학교 커리큘럼보다 훨씬 폭넓은 과학적 지식 전반에 대한 관심과 욕구라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반대로, 자신을 이과 계열이라고 규정 하는 사람 중에는 철학이나 사상, 문학으로 대변하는 소위 문과 계열의 지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며 마음을 놓는 사람이 많다. 서양에서는 물리학이나 수학과

제1장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 가지의 힘'

053


기초 능력은 공통분모다

모든 사람을 문과와 이과의 두 갈래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굳이 다른 영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나 학구열을 불태울 필요가 없다는 변명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된다. 이렇듯 편협한 사고를 유발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한 가지는 '훔치는 힘', '추진하는 힘', '요약하는 힘'의 세 가지 힘을 문과 대 이과라는 차이에 얽매임 없이 어느 영역에서나 꼭 필요한 보편적 기초 능력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책을 많이 읽고 요지를 추출하는 기 술이야말로 모든 구분을 뛰어넘는 필수 기술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몸에 배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우선 세 가지 힘이 문과 이과를 넘어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기초적 능력이라는 주장의 타당성에 관해 이야기

제1장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 가지의 힘'

057


중세 일본 숙달론의 거장이자 최고의 문학가이며 비평가다. 제아미가 주창한 '이견의 견(객관적 관점과 이웃한 주관적 관점)'이라는 개념은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조건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여기에는 '연기한다'라는 행위에 숙달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관객이 되어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이 '이견의 견'은 일본 숙달론의 백미인 동시에 현대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기도 하다. 제아미의 저서 《화경>에 나오는 말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무대에서는 눈을 앞에 두고 마음은 뒤에 두라. 즉, 객석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나는 이견이며, 나의 의식은 견이 라. 이견의 견을 깨우치면 비로소 관객과 나는 같은 마음이 되리니."

언뜻 들으면 선문답 같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에서 제아미가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높 은 수준의 아주 명백한 논리다. 연출가인 도모토 마사키 의 《연극인 제아미>에 담긴 해석을 빌리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 중 '목전심후'라는 것이 있다.

제2장 스포츠로 두뇌를 단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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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눈으로는 앞을 보고 마음은 뒤에 두라는 뜻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무견풍채'의 마음가짐이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 모습은, 말하자면 자신에게 '이견'이다. 반면 자기의식은 '견'이다. 이것을 이견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견에서 말하는 '본다'의 개념은, 관객들이 무대 위의 배우를 보는 것처럼 배우 자신도 같은 관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모습을 보기 시작하면 서서히 전후좌우도 인식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방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뒷모습까지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류의 위험성이 가장 큰 뒷모습을 자각하지 못하면 자신의 결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견의 견'이라는 시선으로 관객과 배우를 일체화하면, 원래는 볼 수 없었던 부분까지 눈에 들어와 몸 전체적인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자세도 만들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뒤로 두라'는 참뜻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견의 견'을 진리로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눈은 눈 자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여 전후좌우를 제대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 책의 핵심 메시지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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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라 선수의 모교인 시즈오카 도카이 다이이치 중학교는 전국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강호다. 그런데 그 우승의 주역인 감독이 축구에 문외한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사쿠라이 감독은 비단 다카하라 선수뿐 아니라 팀 모든 선수에게 각자 꿈꾸어야 할 상대를 정해주고, 그들의 경기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따라 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것도 단순히 한 가지 기술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 전체를 완전하게 훔쳐 낼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제가 바스턴 선수에게 반한 것은 그가 어떤 포지션도 완벽하게 수행하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득점하기도 하고, 득점으로 연결하는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올리기도 하죠. 상대방의 허점을 뚫는 공격의 선두에도 항상 그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공격수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뜻이죠.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 결승전(네덜란드 대 소련)에서 그가 보여준 발리슛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왼쪽에서 크로스 한 공 이 오른쪽 골대를 향해 역회전으로 날아가서 꽂히는 기가막힌...

제3장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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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장 선생님의 전공은 영어였는데, 중학교 시절 갑자기 영어 선생님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새로 오신 영어 선생님의 전공은 국어였지만, 종전 직후 상황이라 영어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영어에는 완전 초보인데도 영어 교과 수업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그 선생은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나갔을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미군 부대를 찾아가 미군 관계 자 부인이면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수소 문 끝에 조건에 맞는 부인을 찾아낸 그 선생은 부인을 직 접 교실로 모시고 와 영어를 지도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영어밖에 모르는 사람이 영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수업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반 학생들이 영어에 보이는 관심과 향학열은 갈수록 높아져, 그 반에서만 영어 선생님이 돼겠다는 아이들이 꽤 여러 명이 나왔다고 할 정도다.


제3장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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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하는 소니와 판매 중심의 마쓰시타,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처럼 대조적인 국가 또는 사회 스타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타일 대 스타일의 경쟁과 마찰이 발생한다.

우리는 럭비나 스모를 관람하면서 단순히 즐긴다는 것 이상으로 스타일과 스타일의 충돌 과정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요소들까지 맛볼 수 있다. 이렇게 전체 플레이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일관한 특징이나 전술의 저 변에 깔린 철학과 신념에 감명받기도 한다.

전혀 다른 상대의 기술을 경험하면서 상대를 제압해 나가는 관계는 단순히 주고받는 관계 이상으로 창의적인 관계다. 이 관계 속에서는 서로의 스타일이 더욱 명확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진검승부까지 펼칠 수 있다면 더할 나 위 없을 것이다. 진검승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비욘 버그와 멕켄로가 윔블던에서 펼친 숙명의 결전이 떠오른다. 이 결승전은 단단한 스타일과 부드러운 스타일 사이의 처절 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제3장 '동경'을 동경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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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겐코다. 겐코는 법사지만, 종교를 초월한 현세적 인생의 교훈이 담긴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널리 공감을 얻었다. 《쓰레즈레구사》에서는 숙달의 보편적 원리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겐코는 이 책에서 어느 분야든 숙달의 경지에 이른 달인들이 가진 공통 '인식'에 주목했다. 책 속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인 '나무 타기 달인(109단)' 이야기를 살펴보자. 나무 타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한 사내에게 나 무 위로 올라가 가지를 꺾어오게 시켰다. 그 지시를 받고 나무를 타기 시작한 사내는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아슬아슬 위험한 상황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나무 타기 달인이, 그 사내가 지붕 높이 정도로 내려오자 그제야 "조심해야 한다. 발 헛디디지 말고."라며 주의를 주었다. - 예전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다쳤던 기억이 있다.

한없이 위험한 상황일 때는 별다른 조언도 없이 지켜만 보다. 풀쩍 뛰어내려도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높이까지 내려와서야 상대에게 주의를 주는 것을 이상하게 본 마을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달인이 답하기를 “눈 이 핑핑 돌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는 굳이 주의를 주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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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공에서도 "내 기술이 어떤가,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하며 장인의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는 세공은 아무래도 멋이 조금 덜하고, 보는 맛이 없다. 기술을 너무 강조 한 세공은 진정 좋은 세공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한껏 기교를 부렸다기보다 귓가에 스미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피아노 소나타 같은 곡들은 너무 간단해서 피아니스트들은 오히려 더 힘들다고 할 정도다. 듣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지만, 깊이 음미할 만한 매력이 있는 작품. 이러한 작품에는 보통 사람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작곡가가 가진 의식의 날카로움이 곡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곡 자체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다. 우리는 이러한 곡을 가리켜 명곡이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쉴 새 없이 용솟음치는 아이디어를 노골적이고 날카로운 형태로 세상에 내놓기보다. 조금 무딘 칼로 곡을 구성하였기에 편안한 작품이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기술만 자랑하는 듯 보이는 작품은 오히려 존재감이 희박하다. 완벽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의도적으로 다소 무딘 칼을 사용하여 작품에 존재감이나 리얼리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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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촉감을 전하는 기술

지극히 작은 단위까지 '해부하는 힘'과 '신체 감각을 통한 피드백 회로', 일류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이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부하는 힘은, 말하자면 그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세세하게 감지하는 능력이다. 해부의 단위가 세분화할수록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차이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체 감각이다.

이 신체 감각은 단순히 주관적이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감각을 통해 판단한 차이가 실제 차이점과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신체 감각이 기술로서의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체 감각과 현실 사이에 피드백 회로가 생성된 면, 그제야 신체 감각을 하나의 기술이라 부를 수 있다.

법륭사와 약사사를 재건한 인물로 유명한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저서인 《나무의 생명나무의 마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같은 회나무라도 산지가 어딘지에 따라 향도 색깔도 감촉도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백 년, 이백 년 된 나무와

제5장 신체 감각을 기술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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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단서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 속에 수집하여 주파수를 증폭시켜 나간다. 갖가지 징조를 단서로 주파수를 증폭해 나 가는 기술이야말로 '생명력' 그 자체다.

이런 경우, 신체 감각으로부터 뻗어 나온 무수한 선 들이 우리의 신체를 매개로 세상과 연결된다. 이때 신체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본능에 가까운 수준으로 깊이 교류하고, 세상의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흡수한다.

데루스는 호랑이 암바와도 대화한다.

"알았어, 알았어. 암바! 화내지 마, 화내지 마! 여기는 네 땅이야. 우리, 그거, 몰랐어. 우리, 지금, 다른 곳, 간다. 밀림에, 잘 곳, 많아. 화내지 마!"

폭넓은 주파수대를 감지하여 조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세상을 넓고 다채롭게 그리고 더 욱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로 작용한다. 수용할 수 있는 주파수대가 좁으면 좁을수록 경험할 수 있는 세상도 좁아지 며 만남의 질에도 한계가 있다.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대가 넓고 성능도 뛰어나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질도 높아질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뿐 아니라 그 접촉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관계를 형성...

제5장 신체 감각을 기술화하라

253

다음과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는 숙달과 스타일의 관계를 고민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힌트가 된다.

"20대에는 한눈팔 여유도 없이, 죽어라고 일만 하면서 삶을 버텨냈지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발 더 내디뎌야 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그래, 소설을 써 보는 거야.'라고 마음먹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서는, 일이 끝난 뒤 주방에서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끼적여 보았는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소 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 어요. 특히, 나의 문체를 만들기까지 수없이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고생스러웠지만, 막상 한 권의 책을 마치고 나자,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한 후 련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아포리즘 (Aphorism)'이라고 할지, 디태치먼트

1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히포크라테스의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처럼,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가리킨다. 작자가 분명하지 않은 속담과 달리, 아포리즘은 작자의 독자적인 창작이며 순수한 이 론적 가치를 중요시한다.

제6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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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렇게 되고, 그다음에 이렇게 되고라는 식으로 일종의 논리에 따라 계획적으로 짜인 소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는, 자발적으로 어떤 일이 생긴 뒤, 다음이 오고 그다음 사건으로 다시 이 어지는 식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결말이 옵니다. 결말이 없으면 소설이 아닐 테니 결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전체 계획안이나 초안 같은 것을 구상해 두는 일이 아예 없고, 쓰는 행위 속으로 그저 빠져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고도 용케 결말로 이어지네요.'라고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결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끼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써 나가다 보니 책이 점점 길어진 것이다. 그 결과 하루키 팬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장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2》 까지 오게 되었다.

제6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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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독 하루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본 인의 스타일을 신체 문제와 결부하여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신체성이란 상당히 구체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지 <부르터스(BRUTU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현재 나의 문체는 달리기를 하면서 완성 한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양을 둘러싼 모험》의 집필이 거의 끝나갈 즈음부터 하루키는 본격적으로 달리 기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담배를 60개비씩 피워대던 해비스모커(Heavy Smoker)였지만, 금연을 결심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습관화하게 된 동기는 체력 저하였다. 이 점에 대해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1천 쪽이 넘는 소설을 일 년 동안 꼬박 쓰고 완성한 다음, 다시 일 년에 걸쳐 열 번씩, 열다섯 번씩 머릿속에서 엄청난 수정을 거듭합니다. 말이 열 번이지, 이렇게까지 여러 차례씩 고쳐 쓴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체 력이 필요해요. 중간쯤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버리는 것만 같아요.

제6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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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되었든 한쪽이 강해지면 반대 면도 함께 힘을 얻는 이치다. 예를 들어 《태엽 감는 새》는 무려 4년에 걸쳐서 완성한 작품이다. 하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어앉아서 썼던 것은 아니다.

"3개월 정도 집중해서 쓰고 나면 어느 순간 힘이 빠져요. 그러면 잠시 시간을 두고 빠져나와, 다른 일을 하기도 하면서 또다시 3개월 정도 틀어박히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집중해서 작품을 쓰는 3개월 동안도 정신을 차리는 기간은 고작 2주 정도예요. 핵심적인 내용이나 주요 사건 등은 이 2주 안에 대부분 결정 납니다. 결국 그 2주를 위해 나머 지 2개월 반을 할애하는 셈이죠. 이 작업은 장거리 마라톤과 비슷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구력입니다. 지구 력이 집중력을 뒷받침해 주어야 '코어(Core) 기간'이 찾아옵니다."

그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코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까. 그것은 지속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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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은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무슨 내용이든 닥치는 대로 써 나갑니다. 속도가 나지 않 아도, 힘들어 중단하고 싶을 때도 마음이 들떠 다른 생각이 날 때도 일단은 계속 써 나가야 해요. 새벽 4시에 일어 나서 정오를 지나 오후가 될 때까지 계속 씁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이요. 그러다 보면, 달리기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여기가 정점이다 싶은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면 바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런데 정작 이때가 와서 빠져 들고자 할 때 체력이 바닥나버리면 코어 기간을 버틸 수 없어요. 그동안의 2개월 반이라는 인내의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마는 것이죠."

2주에 불과한 코어 기간에 들어가려면, 2개월 반이라는 준비 시간이 그에 앞서 필요하고,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일에 몰입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까지의 꾸준한 시간이, 이른바 '골든 타임'과 같은 높은 집중 상태를 불러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하루 동안에 그런 리듬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하루키처럼 수개월 단위의 리듬으로 사이클이 생기는 일도 있다.

제6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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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질이나 신체적 특성은 근본적인 부분까지 바꾸기는 어렵지만, 멋지게 변형해 나갈 수는 있다. 음식의 기호도 신체적 특성과 연관된 사항이다. 사람이 성장하면 식성도 달라질 뿐 아니라 수용할 수 있는 음식의 범위도 넓어진다. 그러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서 감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감각이 예민해서 청어 조림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가장 값비싸고 질 좋은 청어를 맛보는 데서 시작하는 것도 신체성을 고려한 변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생리적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앞뒤 없이 거부해 버리는 태도는, 1960년대 카운터 컬처(Counter Culture)'부터 80년대, 90년대의 분노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생리적 혐오감'이 분노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리적 혐오감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의 형성은 수용의 폭을 협소하게 한다.

7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지배적 문화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반대하는 부차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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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핵심은, 리듬을 몸에 충분히 스미게 한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엄청난 몰입감에 몸을 맡기는 경 우가 있다. 일이 잘 풀리거나 중요한 요령을 터득했을 때의 감각을 되짚어 보면, 자기 몸의 리듬과 템포가 그 일에 최적인 리듬과 템포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라는 점을 깨 달을 수 있다. 신체의 리듬과 일의 리듬이 정확하게 부합하는 그곳에 숙달의 비결이 있다.

일의 성질에 따라 필요한 리듬이나 템포도 달라진다.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이라도, 앞으로 쓰려고 하는 소설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어떤 스타일의 소설인지에 따라 몸에 스며드는 음악에 어울리는 리듬도 변하기 마련이다. 장르를 초월한 숙달의 보편적 논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체 리듬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체 리듬과 일의 리듬을 일치시켜 나가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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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신체가 작가의 신체에 동조하기도 하고 호응하기도 하는 것이다. 신체와 신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리듬과 템포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세계를 공유해 나가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신체가 가진 리듬과 호흡법은 그 사람의 기본적인 스타일을 만든다. 우리는 자기 신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신체와 스타일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전혀 다른 성질의 활동이라도 자기 신체만큼은 공통이다. 신체의 기본적 특성과 호흡법은 이렇게 모든 활동에 서 나타난다.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호흡법'이라고 표현하는데서 알 수 있듯, 호흡을 하나의 기술로 다루는 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방법론적 관점이다.

신체적 특성을 공통 기반으로 하여, 자신이 하는 모든 활동을 상호 연계함으로써 숙달의 원리를 생활 전반에 연동시킨다. 이것이 기술로 자리 잡으면 모든 활동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나아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일의 특성이나 종류에 따라서는 도저히 연동시킬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흡을 축으로 한 신체 리듬과 템포를 일에 적용해 나가려는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다

제6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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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 지를 가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에너지의 완전한 연소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그 연소 방법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잉여에 너지를 완전히 연소하고, 몸과 마음을 골고루 지치게 만들 수 있다. 신체 에너지와 관련된 각종 사회 문제의 해결은, 과잉된 에너지를 철저하게 연소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담당하면서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보면, 노인들 대부분은 에너지 부족으로 고민하면서도 반면에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즉, 아무리 고령 자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진정 고민스러워하는 문제 역시 에너지를 어떻게 연소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훌륭한 에너지 연소법 가운데 하나다.

기분 좋게 피곤한 감각. 이 감각은 우리 인간이 살아 있다는 느낌과 함께 안정감을 준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언젠가 죽는 날이 왔을 때, 이 기분 좋은 피곤한 감각 속에서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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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감에 젖어 생을 마감하는 것도 절대 바람직하지는 않다. 자기 생에 주어진 에너지를 완벽하게 고갈시키고, 심신에 기분 좋은 피로감이 나른하게 퍼지는 상태라면, 죽음조차 편안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유난스러운 감이 있지만, 죽음을 잠으로 바꾸어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하루 동안에 소비해야 할 에너지를 완전히 연소하지 못한 채 잠드는 것은 고통스럽다. 확실하게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라면 피곤함에 젖어 자연스럽게 의식이 흐릿해지며 곯아떨어진다. 그러나 잠들면 이대로 두 번 다시 눈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채 잠자리에 들면 두려움에 잠들기가 어렵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은 심신에 나른하게 전해지는 피로감이다. 기분 좋은 피로감을 유발하는 생활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을 하나의 기술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인생의 기본기를 이미 획득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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