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신간을 봤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공감이 충만한 글쓰기를 만나게 됩니다. 유 작가의 글이 그렇습니다. 아래 글이 그렇게 생각하게된 대표적 문단들 중 하나 입니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언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대중의 '최애과학'은 뇌과학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 목적으로 뇌과학 책을 읽는다. 첫째는 생존이다. 태교부 더 자녀 학습 지도와 외국어 능력 향상에 이르기까지, 생존 경쟁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뇌과학을 공부한다. 둘째는 자기 이해다.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뇌과학은 도움이 된다. 대학에서는 이과 문과로 갈라져 있지만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뇌과학을 토대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뇌 과학을 알면 생존과 자기 이해에 도움이 될까? 생존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기이해에는 확실히 유용하다. 과학자들이 뇌의 물리적 구조와 작동 방식에 대해 알아낸 사실 가운데 중요한 것을 간단히 추려 보았다.
사람 뇌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한다. 그래서 1.4킬로 그램 안팎으로 평균 체중의 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데도 혈액의 25퍼센트와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쓴다. 사람만큼 뇌가 발달한 동물은 없다. 뇌의 주름을 펴면 쥐는 우표 한 장, 원숭이는 엽서 한 장, 사람은 신문지 한 장 정도다. 주름진 뇌의 안쪽은 밝고 바깥쪽은 어두워서 각각 '백색 질'과 '회색질'(또는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회색질에는 신경세포(뉴런neuron)의 중심인 세포체가 밀집했고 백색질에는 축삭돌기가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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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인가
과학자였다면 공간과 시간을 규정하는 문장으로 『순수이성비판』의 본론을 시작했을리 없다. 뉴턴도 공간과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는데, 칸트가 그걸 어찌 알았겠는가. 그렇지만 그가 뉴턴과 다른 견해를 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외적·내적 감각기관이 현상을 수용하는 형식이지 사물 자체는 아니라는 말은, 표현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공간과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 과학자와 인문학자는 무엇보다 그런 면이 다르다. 나는 그게 인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으로 증명한 사실만 책에 담아야 한다면 국립중앙도서관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칸트의 글을 해석하려면 그가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칸트는 과학적으로 옳은 견 해를 말한 경우에도 사실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논리적 추론 과정을 생략한 경우도 많았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의 과학으로는 칸트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 가릴 수 없었다. 인간이 도덕법을 그냥 안다는 주장의 옳고 그름이 드러나는 데는 200년이 걸렸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선험적'(아 프리오리)인 것과 '경험적'(아 포스테리오리)인 것으로 나누었다. 인간이 경험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안다면 그럴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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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이 밝힌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견해만큼은 맹자가 전적으로 옳았다.
인간은 군집을 이루고 살면서 사회적·기술적 분업을 한다. 다른 생물 개체가 그렇듯 사람도 이기적 또는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본성을 지녔다. 그런데 인간은 이타 행동도 한다. 남을 위해 또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행위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이타 행동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친족이타주의'를 설명한 생물학 이론은 3장에서 살펴보겠다.
맹자가 말한 네 가지 마음은 모두 우리 뇌에 깃들어 있다. 인간의 뇌는 작은 신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대도시를 닮 았다. 설계도에 따라 창조한 기계가 아니라 맹목적인 진화의 결과 나타난 기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에는 영장류나 포유류같이 비교적 가까운 동물뿐만 아니라 파충류처럼 인연이 먼 동물의 뇌도 들어 있다. 도시로 치면 번화하고 질서정연한 정부청사 단지와 상업지구와 문화거리만 있는게 아니라 약육강식 원리가 지배하는 뒷골목,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홍등가, 마약이 돌아다니는 유흥가,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지대, 폐수와 생활하수가 흐르는 하수도가 공존한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과 낡고 추악한 것 가운데 어느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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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고 협력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것은 거울신경 '세포'라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뉴런이 협동해서 만든 거울신 경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보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한 본성'도' 지니고 있다. 거울신경세포 또는 거울신경시스템이라는 신경생리학의 증거가 있으니 그렇게 말해도 될 듯하다.
다시 맹자를 생각한다.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철학자보다는 과학자가 어울릴 사람이다.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회생물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는 관찰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유명한 '유자입정'孺子入丼21 이야기가 그 능력을 입증한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뛰어가 구한다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라는 본성의 발현이라고 했다. 아이 부모와 교분을 맺거나, 마을사람들한테 칭찬을 받거나, 돕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한테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남을 도우려 하는 생물학적 본성이 있다고 봤다. 그것을 측은지심이라 했고 거기에서 인소이라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 나온다고 판단했다. 오로지 관찰과 추론으로 구축한 이론이었다. 거울신경 '세포'면 어떻고 거울신경 '시스템'이면 또어 떤가. 우리 뇌에 이기적 행동뿐만 아니라 이타적 행위도...
21 『맹자』, 「공손추 상6,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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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비판했던 바로 그 독재자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찬양하는 일에 앞장섰다. 필명으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에세이를 써서 반미운동의 스타가 되었던 B는 몰래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뒤 북한 체제를 타도하고 북한 동포를 구출하는 운동에 투신했다. C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면서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로 간결하고 멋진 문장을 쓰는 소설가였는데 얼마 전부터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으로 독자의 마음을 올리고 있다. 지식인 노동운동의 '레전드'였던 D는 옛 동지들을 총살해 마땅한 김일성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고위 공직에 올랐다. 신념·철학·성격·태도가 크게 달라진 사람을 나는 숱하게 안다. 너도 그런 놈이라면서 누군가 내게 손가락질한다는 것도 물론 안다.
스무 살의 나는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 자』를 좋아했다. 4·19혁명이 난 해 겨울 온기 없는 방에 모여 입김을 내뿜으며 열띠게 토론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던 그 시의 청년들은 18년 후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만나 서로 처자식의 안부를 묻고 즐겁게 세상을 개탄했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적지 않은 술과 안주를 남긴채 헤어진 그들은 돌돌만 달력을 옆에 끼고 옛사랑이 피 흘렸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걸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시에서 나는 성찰의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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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가까이, 싫으면 멀리, 그렇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독자도 나를 그렇게 대해 주면 좋겠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언행이 훌륭하고 일관성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존경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달라지면 원래부터 권력과 돈을 탐하며 남을 짓밟고 반칙을 저지르던 사람 보다 더 미워했다. 훌륭하다가 나빠진 사람이 원래 나쁜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변화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나빴던 사람보다는 낫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가치관과 살아가는 방식을 크게 바꾸는 것 을 '전향'이라고 하자. 전향 그 자체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어디에서 어디로 노선을 바꾸었는지에 따라, 보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의 전향을 좋게 또는 나쁘게 평가할 뿐이다. 나는 전향 그 자체를 비난하는데는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 진리를 알지 못한다. 옳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을때가 있다. 게다가 '자유의지'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의심한다. 그런 것을 들어 누구에겐가 감정적 호오好惡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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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데이터를 취득하고 학습한 결과 노선을 변경한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SF영화에서처럼 인간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체코 극작가 차폐 Karel Čapek(1890~1938)는 100여 년 전 발표한 희곡에서 그런 미래를 이야기했다.24 차페크의 '유니버설 로봇'은 처음에 사람의 일을 대신했지만 스스로 학습해 감정을 느끼는 능력과 도덕적 판단력을 획득했으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인간을 말살한다.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다. 자연이 생존을 위해 조합한 천연지능은 스스로 학습해 도덕을 알고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뇌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천연지능은 인간 개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멸할 수밖에 없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복제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다. 하드웨어를 무한 증강하고 소프트웨어를 끝없이 개선하고 데이터를 무한 집적해 천연지능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어떤 면에서 기계에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오래되면 성능이 떨어진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
24 원제가 『R.U.R.: Rossum's Universal Robots』인 이 작품은 한국어 판은 'R.U.R', '로봇',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등 여러 제목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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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내 자신을 무한정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드는 때가 올 것이다. 이미 그런 상황인데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갑자기 어떤 신경전달 물질이 과도하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뇌가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 관심을 접고 오로지 생존에만 집착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전에 세상을 떠나면 좋겠지만 그것도 원하는 대로 되진 않는다. 나는 욕심 많고 인색하고 어리석고 보수적인 노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더 젊은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언행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뇌의 하드웨어 퇴화로 인해 벌어진 신경생리학적 사건으로 여겨 주기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해 주기를 바란다. 내 자아가 오늘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로 그런 변화를 선택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언하지 못하겠다.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엔 흉하고 절멸하기에는 아깝다.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나는 알지 못하고 책임질 수도 없다. 단지 나 자신의 삶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쓸 따름이다.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 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 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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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이 둘을 알아낸 것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인간 지성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誤用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 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 다. 우파와 좌파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윈주의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파는 생존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우파는 진화론을 오남용했다. 영국 철학자 스펜서가 창 안한 '사회다윈주의'가 시작이었다. 스펜서의 이론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부자와 권력자는 사회의 환경에 잘 적 응한 사람이고 가난과 무지는 적응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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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에 입각해 우파와 좌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윈주의 좌파」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이음, 2011) 17쪽과 23~25쪽에서 가 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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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살아서는 유전자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굴레에 묶여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내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타인·사회·국가·종교·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채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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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 소개한 동물 개체군의 행동 패턴 분석 모델을 보 고 더 분명하게 알았다. 그렇게 단순한 이론으로 역사의 격변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충격이었다. 'ESS 모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ESS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을 줄인 말이다.
ESS는 어떤 군집의 대다수 개체가 일단 선택하면 다른 모든 전략을 능가하는 전략이다. 자연선택은 ESS를 벗 어나는 전략을 징벌한다. 때로는 둘 이상의 전략이 '집 단적으로 안정한 전략'CSS(collectively stable strategy)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항상 배신'이라는 안정점과 'TFT'"라는 안정점이 공존하는 쌍안정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우연 히 먼저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이 일단은 우위를 유지하 지만 또 다른 우연으로 우위가 바뀔 수도 있다.18
17 TFT(Tit For Tat)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또는 상대방을 믿고 협력하지만 배신행위는 응징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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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는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 유문화사, 2018) 158쪽과 403~405쪽을 참고해 서술하였다. 도킨스에 따르면 ESS 아이디어는 수학자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어 모르 겐슈테른의 게임이론과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유전학이론을 동물행동학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메이너드 스미스와 동료 연구 자들이 창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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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윌슨이 아무 근거 없이 인문학을 동물행동학의 특수 분야가 될 수 있다고 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동물행동학 모델로 역사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소련 공산당은 모든 권력을 완전히 독점했다. 레닌이 뇌 졸중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직후 권좌를 이 어받은 스탈린은 차르보다 더한 독재자가 되었고 차르보다 더한 숭배를 받았다. 공산당은 모든 기업을 국가 소유로만 들었고 농촌을 사회주의 집단농장으로 개조했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만인에게 일자리를 주었지만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었다. 소련 인민에게 체제는 '주어진 환경'이어서 누구나 어떻게든 적응해야 했다. 선택 가능한 적응 전략은 둘이었 다. '성실'과 '태만'이라고 하자.
'성실'은 사회주의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특별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전략이다. '태 만'은 직장에서는 표 나지 않게 게으름을 피우고 퇴근한 뒤에 텃밭 농사와 가사 노동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어느 쪽이 적응의 이익이 클까? 달리 표현하면, 어느 전략이 생존에 유리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태만'이었다. '성실'하면 건강...
19 ESS 모델의 토대가 된 게임이론을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게임이 론으로 진화생물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이타적 인간의 출현: 게임이 론으로 푸는 인간 본성 진화의 수수께끼』(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2009)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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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자연은 경쟁과 협력을 차별하지 않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는 전략이라는 면에서 둘을 평등하게 대한다. 그런데 어떤 생존기계는 단순히 협력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타 행동을 한다. 생물학 언어로는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고 다른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 인문학 언어로는 '자신이 가진 희소한 자원을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한다. 일단 생물학 언어로 이 야기하자. 호모 사피엔스만 이타 행동을 하는건 아니기 때 문이다. 거의 모든 동물이, 고등동물일수록 더 확실하게, 그런 의미의 이타 행동을 한다.
이타 행동이 진화한 이유를 밝히는 것은 생물학의 오래된 숙제다. 다윈을 비롯해 여러 생물학자들이 갖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아직 완전하게 해명하지는 못했다. 개체의 이타 행동은 자연선택 이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타 행동을 유발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는 자손을 남길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자연선택은 그런 형질을 제거한다. 그런데도 동물의 이타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등동물일수록 더 다양한 이타 행동을 한다. 『종의 기원』 출간 이후 100여 년 이 지나서야 그럴듯한 이론이 나왔다. 영국 생물학자 해밀 턴William Hamilton(1936~2000)의 '포괄적응도'包括適應度(inclusive fitness) 이론이다. 1960년대 생물학 전문 학술지에 발표한 해밀턴의 논문은 수학 공식이 난무하기 때문에 문과는 독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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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는 성격이 제각각이다.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아무 원자하고나 들러붙으려 하는 원자도 있다. 멀어져가는 다른 원자를 붙잡지 않고 다가오는 다른 원자를 밀어내지 않는 원자도 있다. 어떤 원자는 같은 원자들과 친하고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를 좋아한다. 호시탐탐 남의 전자를 넘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전자를 슬쩍 내버리거나 길 잃은 전자를 조용히 영입하는 원자도 있다. 왜 그러는 걸까?
화학자들은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소의 성격을 파악해 행동방식이 비슷한 원소를 그룹으로 묶었다. 그게 주기율표다. 오랜 세월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작성한 주기율표는 양자역학의 도움을 받아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주기율표를 외울 필요는 없다. 구조와 사용법 을 알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원소기호와 원자번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저절로 머리에 박힌다. 다음 페이지는 표준 주기 율표를 단순하게 바꾼 것이다.
표준 주기율표는 원소기호와 원자번호 말고도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원소들이 상온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고체 인지 글씨 형태로 구분하고, 성질이 비슷한 원소를 그룹으로 묶어 같은 색으로 표시하며, 표준 원자량과 전자 궤도의 형 태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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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는 꽉 찼으나 실제로는 텅 비어 있다' 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이 말을 수긍하게 된다. 석가모니 가 그런 뜻으로 말했다는 게 아니다. 그가 원자의 구조를 알았을 리 없다. 우연일 뿐이다. 그래도 흥미롭긴 하다.
가장 단순한 수소를 또 불러온다. 수소 원자는 텅 비었다고 할 수 있다. 가상적인 사고실험을 해 보자. 원자핵을 농구공 크기로 확대하고 전자도 같은 비율로 키운다. 그래도 전자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점이며 농구공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15 서울로 치면 세종문화 회관 자리에 농구공이 하나 있고 영등포역 근처에 깨알보다 작은 점 하나가 있는 그림이다. 농구공과 점 말고는 아무것 도 없다. 수소 원자는 이렇게 생겼다. 믿어지는가? 세종로에서 영등포까지, 반대 방향으로는 세종로에서 성북동까지, 농구공과 깨알 사이는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어떤 물질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꽉 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수소 원자만 그런 게 아니다. 수소 원자 2개와 전자를 공유해 물 분자를 만드는 산소 원자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농구공이 있고, 영등포나 성북 동쯤에 깨알이 2개 있으며, 더 멀리 관악산과 도봉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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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핵을 농구공 크기로 키우는 사고실험 이야기는 "김상욱의 양자 공부』(김상욱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7) 29쪽에서 가져왔다. 김상 욱 교수만큼 인간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물리학자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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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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