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주역이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 기회가 된 듯합니다.-물론 주변 지식을 습득한 정도라하겠습니다. 이 책은 주역이라는 제목을 가리고 내용을 읽게하면 어디서 읽었던 내용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중간중간에 있는 내용이 가까이에 둔 바이블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낙천(樂天)은 '하늘을 낙으로 삼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륜이 쌓인 오십이 낙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늘이다. 오십 쯤 되면 슬슬 다른 모든 것이 시들해진다. 오십은 하늘을 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운에 끌려다니지 않으면 운명을 끌고 다닐 수 있다
"가고자 하는 바가 있다[有攸往(유유왕)]"는 역경이 볼 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중 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
군자가 자신의 천명을 인식하고 그 명에 부응하는 삶을 산다면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구체적 상황에서 무언가 실현하고자 하는 바가 생긴다. 천명이 구체적 상황에서 발현되는 것이 군자의 '가고자 하는 바다. 군자가 가슴에 품은 뜻, 꿈에 그리는 이상, 삶의 목적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역경은 이처럼 사람에게 가고자 하는 바가 있어야 여러 이로운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는 언뜻 앞서 살펴본 내용과 반대되는 언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왜냐하면 가고자 하는 바가 있는 군자는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보조를 맞추어 곁에서 나란히 행하다가도 명을 이루...
제1장
하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049
느낄 때 사람은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 1과 같이 움푹 패인 부분이 있어서 결점이 있고 열등감이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니 '남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② 방향의 경우는 나의 도드라진 장점인데, 이 역시 모난 부분으로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남들로부터 '너는 왜 유별나게 구느냐, 너는 왜 비싸게 구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남들의 비난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경우 ⓐ 지점 역시 문제가 된다. '왜 나는 남들처럼 적당히 넘어가지 못할까', '나는 비뚤어지고 못된 사람인가' 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자책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이 살아 있게 만든다
일찍이 카를 융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한 예수의 말씀에 크게 주목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 길을 걸어 올라갔다. 예수의 이 말씀은 예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제1장
하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067
놓인 자신에 주목해야 한다. [그림 2는 사실 이 우주가 전체적인 계획하에 창조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그림 5|에서 '나'는 하늘의 천지 창조리는 대업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고 그에 합당한 자리에 놓여 있다. 나는 하늘이 기다려 온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지금의 나 이외에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지구상의 80억 인구 중에 이 길을 나 대신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놓인 것이다. 태초 이래로 오로지 지금의 나를 위해 예비된 길인 것이다. 하늘은 빅뱅을 일으킨 이래 138억 년 동안 나를 예비하고 기다려 왔다. 지금의 이 길을 걸어 달라고. 그러므로 마음먹고 걸으면 나는 이 길을 아주 잘 걸을 수 있다. 하늘의 도움 역시 음으로 양으로 따를 것이다. '지금 이 길이 나의 운명이라면 내가 걷겠다. 내가 감당하겠다' 마음먹고 기꺼운 마음으로 걷는다면 하늘이 지켜보며 기뻐할 것이다.
이처럼 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천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팔자는 대체 불가능한 신성한 것이다. 이를 깨달을 때 나는 나를 다시 볼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일이 무엇일까? 내가 나를 몰라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알아줄 때라야 오십이 자신의 과거를 바로 세울 수 있다.
072 • 오십에 읽는 주역
궁구해서 성(性)을 다함으로써 명(命)에 이르는 것이다. 窮理盡性以至於命
<설괘전> 1장
여기서 "성을 다한다"는 앞서 [그림 3①] 하늘이 내게 부여한 성(性)에서 비롯하는 나의 성질(性質, 기질), 특성(特性), 가능 성(可能性) 등을 다 펼치는 것을 말한다. 역경은 이처럼 각자에게 부여된 성질·특성·가능성을 다 펼침으로써 명(命)에 이르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특성과 가능성을 다 펼치기 위해서는 이치를 궁구하는 궁리(窮理)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은 열심히 궁리를 해야 자신에게 부여된 가능성을 다 펼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때 궁리의 대상은 [그림의 인생 여행 과정에서 마주치는 연을 통해 나에게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이다. 달리 말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휘둘러대는 변덕스러운 우연들, 즉 흉운이다. 결국 역경은 우리가 삶을 통해 마주치는 흉운을 달리 볼 것을 촉구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인생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 사건들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이들은 마냥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궁리를 하게 된다.
제1장 하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093
한 단계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는 뜻이다. 항룡은 이렇게 해서 올라가지 말아야 할 높이까지 올라간 용을 가리킨다. 하늘에 오르기 전 땅 위를 기어 다닐 때는 하늘에 올라 비룡(飛 龍, 하늘을 나는 용)의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하늘에 오르고 나니 이제는 더 높은 곳까지 오르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는 것이다. 결국 그 욕심으로 인해 한 단계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 용, 극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용이 항룡이다. 역경은 항룡에게는 후회가 따를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오십 대를 위험에
빠트리는 단 한 가지
항룡은 쉽게 말해 과욕을 부린 용이다. 용의 잠재력은 앞서 5효 사의 비룡 단계에서 모두 발휘되었다. [그림 8]에서 ①은 자신의 잠재력이 실현된 비룡의 삶에 만족하고 자족하는 삶을 누리는 용의 궤적이다. 오십 대만이 아니라 이후로도 쭉 하늘을 나는 용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반면 ②는 비룡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가 추락하고 마는 항룡의 궤적이다.
110 오십에 읽는 주역
이러한 항룡의 과욕이 바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미워하는 '가득 참'에 해당한다. 높이 오르고자 하는 욕심 하나로 가득 찬 것이다. 귀신까지도 해하고자 하는 것이 가득 참이니, 우리가 속한 우주는 ②와 같은 항룡의 과욕을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응징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이 오십에 이르면 80 대 20의 법칙을 명심하면 좋다. 80 대 20의 법칙은 우주의 기본 법칙이다. 인생에 서는 무엇이건 80%를 가지면 좋은 것이며, 사람이 나이 오십에 이르러 원하는 것의 80%쯤을 가졌다면 만족스러운 것이다. 80%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머지 20%를 가득 채우려 드는 것이 [ 그림 1에서 ②의 궤적이다. 이는 하늘과 땅과 사람, 귀신까지도...
제2장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11
오로지 젊음을 찬양하는 것이 시대의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50대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책들이 꽤 나오는데, 이러한 책들의 논조를 보니 오십 대는 아직 ‘젊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는 시대가 젊음에 취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오십 대는 아직 젊어서 좋은 것이라고 하면, 10년이나 20년쯤 더 지나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되면 무의미한 삶이 되는 것일까? 오십 대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 오십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하러 여기 왔나?' 하는 질문을 '근본 질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다른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질문이 근본 질문인 것이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근본 지식'이라 불린다.
오십은 이러한 근본 지식을 정립해야 하는 시기다.
나는 무엇하러 여기 왔나?'
140
오십에 읽는 주역
이럴 때 사람은 스스로 당황한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그 랬을까?' 또는 '왜 나는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나?', '왜 나는 둥글둥글 넘어가지 못하나?', '왜 나는...?' 하고 자신의 모난 모습에 괴로워한다.
최근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례를 목격했다. 한국인으로서 수학 분야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해 유명해진 허준이 교수 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연사로 초대되어 남긴 축사에서 다음의 구절이 눈에 띄었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중략)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 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하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081
서리를 밟고 있으니 굳은 얼음이 어는 때도 이르리라. 履霜 堅冰至
<곤괘> 1효사
인생의 가을날에 접어든 오십 대는 지금 현재로는 이른 아침에 땅에 깔리는 서리를 밟고 있는 정도다. 아직은 육체에 힘이 남아 있고 아직은 '젊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서리를 밟고 있으니 앞으로 굳은 얼음이 어는 때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고 과잉의 단계로 가고만 결과가 항룡의 추락인 것이다. 이러한 항룡의 추락이 오십 대에 흔한 첫 번 째 실패 유형이라면, 두 번째 실패 유형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자족하는 태도라 착각할 수 있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만만하던가. 인생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같은 안이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빅토르 위고는 사람의 인생에서 오십 대가 '제2의 질풍노도기' 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요즘은 오십 세 전후 중 년기를 '사추기(思秋期)'라 부르는 일도 흔해졌다.
오십에는 크게 앓건 작게 앓건 중년의 위기가 없을 수 없는데 이는 오십에 치러 내야 하는 통과 의례와도 같다.
제2장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43
우리가 대략 3만 일을 건강하게 산다고 할 때,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3만의 아주 일부다. 이런 소중한 몇몇 날들에 대한 기억이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 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다.
시간은 본질이 아닌 것들, 변덕스러운 우연, 사건, 사실들을 다 흩어 버리고 진선미 만을 남긴다. 진선미의 순간에 해당하는 소중한 몇몇 날들에 대한 기억이 나를 지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뒤늦게 깨닫는 사람들이 있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도록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그 정승이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서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사람은 죽음의 때에 이르러 공포에 질리게 된다.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지난 평생 동안의 일이 빠르게 눈앞에서 돌아간다. 이른바 '필름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평생에 걸쳐 헛것만을 바라보고 헛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람이 공포에 질리는 것이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평생을 헛살았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이를 바로잡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제2장 불변은 만 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49
이는 과오를 고치기 위한 후속적인 노력을 충실히 함으로써 그 과오가 사람들의 기억에 계속 불명예로 남게 되지는 않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므로 역경이 후반생을 사는 오십에게 "허물이 없도록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사실들을 바꾸어 내라는 의미가 된다.
앞 글에서 사람이 나이 오십에 자신의 장을 정립했다면 이후 과거(전반생)의 사실들을 장에 합당하도록 바꾸어 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장을 통해 전반생에 겪었던 모든 변덕스러운 우연을 관통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차분하게 성찰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통해 지나온 삶에서 어떤 과오가 발견된다면 이를 잘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그 과오가 허물로 계속 남지 않는 것이다.
단, 이러한 성찰과 치유의 과정 앞에 '자루를 틀어 묶으라'는 조언이 선행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성찰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좌우되는 성찰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는 성찰이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3단계에서 정립한 자신의 장을 성찰의 기초로 삼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될...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61
오십은 좋든 싫든 장(長)이 되는 나이다. 오십 대를 장년(長年)이라 하는 것은 '장이 되는 나이'라는 뜻이다. 장은 소우주의 중심축 노릇을 하는 사람이며, 주변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중심축이 흔들린다면 님의 우주에서 님의 장단에 맞추어 춤추던 사람들은 의지할 바를 잃고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사람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가장 힘든 상황이다.
오십이 얼마나 막중한 나이인가? 오십은 주변의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하는 나이이며, 주변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하는 것이다. 장(長)이라고 해서 꼭 거창하지만은 않다. 부모는 자식의 의지처가 되어 주어야 한다. 자기 우주의 장은 누구도 아닌 나인 것이다.
거꾸로 이런 막중한 책임감이 부담과 압박으로 느껴진다면 자루를 틀어 묶는 '팔낭'을 생각하시기 바란다. 사람은 자신의 할 일이 어디까지인지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경계를 둘러침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오십이라는 막중한 나이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역경의 조언이다.
제2장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69
더불어 말을 나눌 만한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되고, 더불어 말을 나눌 만하지 않은 사람인데 더불어 말을 섞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논어·위령공> 7장 1절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역경을 읽었던 공자의 가르침은 많은 대목에서 역경과 일맥상통한다.
위 가르침에서 더불어 말을 나눌 만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비인이다. 이런 비인과 더불어 말을 섞으면 결국 할 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오십쯤 되었으면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이 때문에 역경은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는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최선의 대응법이라 조언하는 것이다. 말을 섞어 봐야 결국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역경은 군자가 기가 막힌 상황에 놓이는 비패와 정반대 상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으니, 11번째 패인 태(泰)가 그것이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187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모임에 속해서 살아가기 마 련이니, 역경의 이와 같은 조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속한 모임 중에는 태의 공동체도 있고 비의 공동체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 젓기 경주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경주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승리의 비결은 '얼마나 열심히 노를 젓는가'가 아니라 '어떤 배를 선택해서 올라타느냐'에 있다. 무거운 배에 올라탄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게 가고 크게 오는 태의 공동체라는 배에 올라타야 한다. 태의 공동체에서는 작게 노력해도 큰 성과로 돌아온다. 그 때문에 “길하며 형통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반면 비의 공동체에서는 큰 노력을 기울여도 작게 돌아올 뿐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어그러져 간다.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 수 록 더 빨리 망가질 뿐이다.
결국 어떤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자기가 속할 공동체를 잘 선택하는 일이 먼저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일의 선후라는 것이다. 공자가 《대학》 경 1장 3절에서 "어떤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를 알면 도에 가깝 다[知所先後則近道矣!"라고 말한 취지가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189
내 운명은 이런 것인가 보다' 하고 체념과 절망에 빠진 채 무기력하게 살아갈 수 있다.
태의 공동체는 이와 반대다. 태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역시 오래되면 그 향기에 동화되어 향기를 맡지 못한다. 그의 몸에 향기가 배어드니 그의 몸에서도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나지만 그는 이를 느끼지 못하며 역시 무감각한 상태로 일상을 살아간다.
이에 대해 역경은 말한다. 태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작게 가고 크게 오니 길하며 형통하다고, 태의 공동체라면 작게 노력해도 큰 성과로 돌아오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의 삶은 향상된다. 하지만 무감각해진 그는 역시 그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결국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보다, 나날이 향상되며 즐거운 것인가 보다' 하고 의욕과 희망을 안고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머무르며 애쓸 곳이 아닌데 그리하면 이름이 필시 욕됨이 있고, 의지할 것이 아닌데 의지하면 몸이 필시 위태롭게 된다. 非所困而困焉 名必辱 非所據而據焉 身必危
192 오십에 읽는 주역
<계사하전> 5장
역경이 경계하는 바와 같이 만약 현재 내가 속한 곳이 비의 공동체라면 무슨 일을 이루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데 주력해서 소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상대가 비인일 경우라면 아예 말을 섞지 말아야 한다. 태의 공동체에서라면 가만 히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내주며 교류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자칫 흥분할 경우 이를 반대로 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비의 공동체에서 드잡이 싸움을 벌이느라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쓰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된 자원이라는 사실이다. 나이 오십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의 공동체에서 대부분을 써 버리면 태의 공동체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정작 태의 공동체가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인데 비의 공동체에서 싸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태의 공동체를 잃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역경이 "말을 섞지 말라"고 조언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비의 상황에 놓였다면 유념하고 또 유념할 일이다. 반대로 자신이 태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행운을 만났음을 잊지 말고, 태의 공동체를 이루어준 선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초와 난초의 향기에 익숙해져서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193
한국 정치판의 여당과 야당을 모두 넘나들며 비상대책위원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고 킹메이커 역할을 맡았다. 정당의 비대위원장이 어떤 자리인가? 당 대표를 능가하는 절대 권력이 주어지는 자리다. 그러한 자리를 김종인 씨는 여당과 야당을 모두 넘나들며 여러 차례 역임한 것이다.
이러한 김종인 씨의 성공 비결이 바로 몽괘의 조언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유력 대선 후보가 예를 갖춰 제 발로 찾아오기 전까지 먼저 가서 만난 일이 없고, 자신의 첫 번째 조언에 대해 성의 있는 응대를 보이지 않으면 그 이상의 조언은 하 는 법이 없었다. 그가 한국 정치사에서 보여 온 궤적은 서두에 제시한 몽의 조언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김종인 씨가 역경의 해당 구절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 다. 경륜가라면 평생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터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역경에는 몽의 괘사와 같이 단 한 줄로 인간 세상의 요체를 명쾌하게 제시하는 계시가 그득하다. 역경의 독서를 통해 그와 같은 통찰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209
살아갈 때 터득해야 하는 64가지 도(道) 가운데 하나를 이 문제에 할당했다는 것은 이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는 의미다.
오십쯤 된 사람이 내 말에 귀를 잘 안 기울여 준다고 해서 꼬치꼬치 따지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나의 말이 무시당하는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누군가가 자기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말하면서 이쪽에서 말할 때는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쉽게 말해 이쪽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시당하며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끌려다니는 객체로 사는 것이다.
역경에서 하경은 34가지 괘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로 구분하고 있다. 간의 도는 여기서 치국의 도로 분류된다. 즉 간 한 최소한의 방법이다. 이는 나이 오십에게는 그대로 내 인생의 왕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의 도는 왕의 말을 세우는 방법이며, 왕이 왕답게 살아가기 위
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우나 해주지 않는 것은 쉽다
한자 艮은 '버틴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간의 길은 사람들이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211
이것이 2단계다. 물론 두 번 연속으로 거절했으므로 상대는 크게 기분이 상할 것이다. 어쩌면 관계를 끊겠노라. 노발대발하거나,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고 협박조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 약한 사람은 두 번 연속으로 거절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역경은 걱정하지 말고 거절해도 된다고 조언한다.
* 역경이 계시한 인간 세상의 법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같은 행동을 세 번 연속으로 하면 싸움이 벌어질 수 있지만 두 번까지는 괜찮다는 것이다. 즉 연속해서 두 번 거절당한 상대가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며 위협적으로 나오더라도 그냥 말에 그칠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세 번째에 들어주면 된다. 간의 길 3단계에 양이 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세 번째에도 거절하면 그때는 실제로 싸움이 벌어지거나 관계가 아예 끊어질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까지는 거절해도 괜찮다.
상대의 세 번째 요청을 들어준 후 네 번째 요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의 길 4단계가 음효라는 것은 또 거절해서 들어주지 말라는 뜻이다. 다섯 번째도 역시 거절이다. 3단계에 서 한 번 들어주었기 때문에 4, 5단계에서 연속으로 두 번 거절하는 것은 역시 괜찮다. 6단계에서 들어주기만 하면 역시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214
오십에 읽는 주역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미인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조금 달리 보면 남에게는 다소 무심하며 자기 위주로 사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말일 수도 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말하면서 이쪽에서 무언가를 말하면 귀담아들어 주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반면 섬세한 사람은 앞서 설명한 간괘의 조언조차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 않다. 두 번 연속으로 거절하려면 통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남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남이 나에게 무언가 해 달라는 것을 해주지 않고 버티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조차 못 하겠다고 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누군가 자기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말 하면서 이쪽에서 말할 때는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이는 이쪽을 무시하는 것이며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시당하며 살 수는 없다고 결심한다면, 역경은 그 사람에게 간의 길을 밟으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215
사실 역경의 조언은 섬세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된다. 역경이 변화의 법칙을 미리 밝히고 응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두 번 연속으로 거절해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 없을 테니 용기를 내서 거절하라'며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간의 길을 성공시키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다. 특히 2단계에서 두 번째로 거절할 때가 어렵기 때문에 이때 굳게 먹은 마음을 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역경은 2효사를 통해 “아직 합당한 따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마음을 풀지 말아야 하리라[不拯其隨 其心不快]"라고 특별히 조언하고 있다.
1단계에서 한 번 거절한 이후라서 마음이 약해지기 쉬운데, 그렇게 해서 마음을 풀어버리면 아직은 상대가 합당한 따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군자가 굳게 먹은 마음을 풀지 않고 계속 버티어 내면 절정의 단계인 5단계에 이르러 원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서두에 제시한 간괘의 5효사는 그 성과에 대해 "말에 순서가 잡힌다[言有序]"라고 표현하고 있다. “광대뼈에서 버틴다"는 표 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1단계에서 시작하여 5단계에 이르기까지 버티는 강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사람의 신체에 비유해서...
216 • 오십에 읽는 주역
사람은 말로 소통하는 존재 이기 때문에 사람이 모인 조직은 결국 말을 통해 유지된다. 그러므로 간의 길은 개인 차원의 공정한 관계 확립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군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굳게 버티며 흔들림 없이 간의 길을 걷는 것은 공동체에 말의 순서를 확립하기 위해서이며, 그 목표는 5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달성된다. 말의 순서가 잡혀 주변인들이 군자의 말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하면 공동체의 혼란이 바로잡히는 것이다.
오십의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때라야 비로소 오십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개선한 원동력은 군자가 두 차례에 걸쳐 버티어 낸 노력에 있다.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안 기울여 준다"는 고민에 대해 버티면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을 역경이 제공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남이 나에게 무언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지 않고 버티는 것은 마음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조차 못 하겠다면 불평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처신이 바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219
그런데 이처럼 밉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과 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정이 이성적 판단(의식, 생각)을 넘어선 것임을 보여 준다. 바로 이 점이 정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情의 어원을 보면, 心(마음 심)과 生(날 생)과 丹(붉을 단)이 합쳐진 글자다. 여기서 丹 자의 갑골문을 보면 #(우물 정) 자 안에 점이 찍혀 있다. 여기서 #자는 땅속으로 파 들어간 광산의 벽을 그린 것이고, 그 안에 찍힌 점은 광산 속 깊은 곳에 있는 보석을 상징한다. 또 자는 싹이 터 자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니, 이들의 합자인 情은 결국 저 아래 깊은 심연으로부터 싹터 올라오는 마음을 형상화한 글자다.
여기서 광산 속 보석은 우리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 자리한 보석을 상징한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밑바닥 말 없는 심연에는 보석이 빛을 발하고 있으니, 앞서 [그림 3-①]의 영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저 아래 깊은 심연에서 싹터 올라오는 마음이란 바로 이 영성으로부터 싹터 올라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깊은 심연에 자리한 영성으로부터 싹터 올라오는 마음이 있으니, 그 마음이 바로 정이다. 이 때문에 마음은 이성적 판단(의식, 생각)을 넘어서게 된다. 무의식인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운 정'이라는
믿음을 갖고 마음을 같이하면 길하리라
233
그를 통해 뉴욕 시민들에게 이 세상은 정이 살아 있는 세상임을 느끼게 해 주었고, 뉴욕 시민들로 하여금 나도 저분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부여된 천명이다. 정을 보여 주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정이 살아 있는, 정겨운 세상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주어진 천명인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긍정적이다
역경의 효사와 괘사가 정으로써 말한다는 위의 언명은 역경에 실린 내용이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한다. 인지상정을 포함한 만물의 정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정이 지닌 경향성으로 말하기 때문에 예측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정은 사람의 의식이나 생각보다 앞서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소인과 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 정으로써 말하는 역경 괘·효사의 서술대로 미래가 전개되어 가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전개될 미래가 정의 발현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제4장 믿음을 갖고 마음을 같이하면 길하리라
237
그 이미지가 좋지 않다. 자전에서 그 뜻을 맞아봐도 ‘거짓 위'로 나와서 역시 좋은 이미지를 갖기 어렵다. 나지만 爲는 人(사람 인)과 爲(할 위)가 합쳐진 글자로, 원래 뜻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애써 한다'는 것으로 꼭 부정적인 의미 글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위선의 반대말인 위악(僞 , 짐짓 악한 체함)에도 '위'가 쓰인다.
서두의 역경 구절에 쓰인 위는 이러한 위악의 의미로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정이 심연의 영성에서 자연스레 솟아나는 마음의 발로라면, 위는 군자가 짐짓 악한 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3장에서 설명 한 간(艮)의 도에서 군자가 일부러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굳게 버티는 행동이 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경이 담고 있는 군자의 행동에는 정의 발로만이 아니라 위의 발로인 행동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역경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오십 이후부터는 발걸음을 늦춰라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곤(坤)의 괘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믿음을 갖고 마음을 같이하면 길하리라
241
사람이 "마음을 유지한다[維心]"는 것은 자신이 처음에 비롯한 근본인 하늘과 맺어져 있는 한 가닥 줄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이 하늘로부터 왔고 하늘의 일을 하며 하늘로 돌아갈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마음의 벼리를 잊지 않는 것이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두 번째 조건이다.
역경이 벼리를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근본 지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하러 여기 왔나? 하늘의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왔고, 일이 끝나면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어떤 일을 '유지한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벼리[維]를 지탱한다[持]'는 말인데, 자신 이 처음에 비롯한 근본과 맺어져 있는 한 가닥 줄을 잊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역경은 거듭 구덩이에 빠지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믿음을 갖고 마음의 벼리를 지탱해 낼 수만 있다면 형통할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 이는 근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무엇하러 여기 왔나' 묻는 근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 다면 거듭 구덩이에 빠지는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믿음을 갖고 마음을 같이하면 길하리라.
251
세계인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가 보니 그 나라에는 사람의 정이 살아 있더라, '사람은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겠더라',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부여된 천명은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다. 한국인은 정이라는 말을 애용한다. 실제로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이며, 한국은 정이 살아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혹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돈, 돈, 돈'이다. 돈에 혈안이 되어 투기판을 쫓아다닌다. 오늘날 한국은 물신만을 숭배하는 삭막한 곳이 돼 가고 있다. 과거에 일본인들이 '경제 동물'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한국인이 경제 동물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늘날 한국인은 영원히 남는 것이 없다고 착각한 채 오직 썩어 없어질 것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한국인의 인지상정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한국의 정은 일대 위기에 처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역사 전개 자체가 일대 갈림길에 놓여 있다.
272 오십에 읽는 주역
오늘날 한류가 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도 정작 한국인 자신들이 어리둥절한 것이다.
이처럼 방심해서 놓쳐 버린 한국인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오십 대의 사명이다. 이는 무의식에 잠긴 채 남아 있는 한국인의 마음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서 형통할 것이다.
구체적 실천으로는 한국인의 정을 회복하는 것이고, 한국인은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는 것을 위해 산다는 사 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앞 글에서 오십의 사귐은 위엄 있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은 귀장을 함에 있는데, 믿음을 같이하는 도반이 뭉친다면 홀로일 때보다 더 큰 귀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예리함은 쇠라도 끊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의 군자들은 뜻을 같이하는 도반을 서로 사귀어야 한다.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소중한 뜻을 잊지 않으며, 서로에게 자극받아 힘을 낼 수 있다. 한국의 오십 대가 힘을 내 그 책임을 이룬다면 한국이 세계를 위한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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