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이 글은 시종일관 씩씩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로 힘이 생겨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책 읽기가 필요하면 주저 없이 이 책을 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 광고 업계에서 일한 저자가 살아온 삶의 바탕이 글에 녹아 있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억에 남는 책 내용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인용문, 스트라크 존, 간장게장, 담쟁이,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1강 자존
당신 안의 별을 찾으셨나요? 13
2강 본질本質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41
3강 고전
Classic, 그 견고한 영혼의 성.69
4강 견
이 단어의 대단함에 관하여.99
5강 현재現在
개처럼 살자. 127
6강 권위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고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지 말자. 151
7강 소통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힘.177
8강 인생人生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211
그들은 완전한 면만 부각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완전한 면만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차이가 나 보이는 것뿐입니다. 누구나 단점은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남은 유기체들인데 어떻게 단점만 있겠습니까? 분명히 장점도 있죠. 그러니 내가 가진 장점을 보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죠.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못났다고 외로워하지도 마세요. 모든 인간은 다 못났고 완벽하게 불완전하니까. 존경하는 교수님, 부모님들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수두룩하고, 결심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자꾸 실수하고 조금 모자란 것 같아도 본인을 믿으세요. 실수했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돈오한 다음 점수하면 됩니다. 그러면 인생의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이 이야기를 입증해 줄 한 사람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학자 강판권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CBS 정혜윤 PD의 책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그가 만난 이들 중 한 사람인데요. 오늘 이야기할 '자존'과 꼭 들어맞는 분이라 책에서 발췌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선 강판권 씨는 「나무열전」이라는 책을 쓴 나무 박사님입니다. 이 책은 나무를 인문적으로 해석한 책인데 참 좋습니다. 정혜윤 씨의 책을 통해 나무열전」과 강판권 씨의 생애를 알게 됐는데요. 강판권 씨는 말씀드렸듯 성공한 학자입니다. 지금부터 성공하기까지 그의 삶을 따라가보겠습니다.
강판권 씨는 초등학교 때 추운 겨울이면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에는 학생들이 나무를 해다가 난로를 때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던 ...
자존 29
상상이 가십니까? 하지만 사회생활이 학창 시절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장소는 동숭동에 있는 학습지 회사였고, 낙엽이 지는 가을날이었고, 시간은 20분 정도 걸렸고, 선선한 가을 날씨임에도 셔츠가 흠뻑 젖었습니다. 그것이 제 생애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제 두 가지는 무섭지 않습니다. 강의와 프레젠테이션. 하지만 아마 노래를 하라고 하면 또 도망을 갈 거예요.
어쨌든 강의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모두 극복했어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광고계에서 먹고사는 이상 프레젠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하고 제 자신을 돌아봤더니 너무 잘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들한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하지만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열 명의 스태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본질은 내가 멋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전달하는 것에 있더라는 거죠. 그 이후로 덜 떨렸어요.
공부의 본질은 뭡니까? 서울대학교에 가는 걸까요? 공부는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사회에 나가서 경쟁력이 될 실력을 만드는 게 본질이에요. 스펙은 뭘까요? 그야말로 포장입니다. 알맹이는 본질이죠. 스스로를 스펙만으로 정의 내리는 사람은 덩어리만 큰 빈 수레와 같습니다. 물론 기업들이 스펙을 보니 스펙, 중요합니다. 기업들은 그걸 보는 게 제일 쉬우니까 보는 것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스펙이라...
본질·59
'동아상식백과'를 다 외워야 했어요. 도서관에 가면 전부 그 책을 펼 쳐놓고 공부하던 시절이었죠. 저는 그까짓 거 안 외운다고 팽개쳤어요. 그래놓고 왠지 불안해서 도서관에 가서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읽었다기보다 글씨를 보면서 책장을 넘겼다고 해야겠죠. 단순히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던 행위였어요. 친구들이 왜 상식공부 안 하냐고 하면, 「안나 카레니나가 상식이라고 우겼어요. 결과는 보기 좋게 떨어졌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찾고자 했던 것이 본질적인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본질은 지난 시간 강의했던 자존, 그리고 다음 시간에 이야기할 고전과 매우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시간의 세월을 잘 견뎌낸 것들은 본질적인 것들이에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 기행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소속 칼리지들의 주요 목표는 학식이나 지식을 두뇌에 채워 넣는 것만이 아니다. 이곳 졸업생은 의사나 변호사, 신학자, 물리학자, 운동선수 같은 전문가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신체적으로는 정신적으로든 어느 한 방면의 전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다. 그레이트 브리튼 최고의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와서 2,3년 머무르며 <조화>를 배운다. 육체, 정신, 심리가 고루 단련된 완벽한 인간이 유일한 목표이다. 이 기간이 지난 후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종합 대학이나 법학 대학원, 종합 기술 전문대학, 병원 등 어디서나 전문적인 공부를 계속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는 전공분야에 대한 증서를 받지 않는다. 그들이 받는 것은 <인간의 증서>이다.
62. 여덟 단어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든 광고는 5년만 지나도 부끄러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수많은 케이팝 (K-POP) 중 10년 후에도 우리가 좋아할 만한 곡이 얼마나 될까요? 20년 후, 30년 후, 50년 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곡이 있을까요? 그럼 팝 중에는 있을까요?
비틀즈를 한번 봅시다. 1960년대에 활동을 했으니 벌써 50년이 지났죠. 그리고 지금까지 비틀즈는 비틀즈입니다. 대단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틀즈는 아직 클래식이 아닙니다. 클래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죠. 비틀즈가 클래식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예측할 수 있지만, 장담 할 수는 없어요. 과연 비틀즈가 150년 후에 살아남을까요? 비틀즈가 150년 후에도 살아 있으려면 당대의 수많은 음악들과 싸우고, 그 싸우는 세월을 또 거쳐야 할 거예요. 그리고 또 1백 년의 세월을 살아남을까요?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책 중에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아직 1백 년이 안 된 책인데 제가 보기에 이 책은 1백 년은 넘길 것 같아요.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요? 살아남은 것들은 과연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전이 된 모든 것들을 우리는 무서워해야 해요. 하지만 되려 무시하기 일쑤죠. 우리들, 특히 젊은 청춘들에게 고전은 사실 지루해요.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것들에 적응하며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겠죠. 계속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인 만큼 고전을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뭐가 더 본질적인 걸까요? 오늘 나타났다가 일주일, 한 달 후면...
80. 여덟 단어
간장게장 좋아하세요? 밥도둑이잖아요. 알이 꽉 찬 간장게장, 얼마나 맛이 있습니까? 저도 무척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이제 제가 시 한 편을 읽어드릴 텐데, 시를 읽고 난 2분 뒤 여러분은 간장게장을 못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정말 더는 먹지 않습니다. 못 먹겠어요. 들어보세요.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입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간장게장을 담글 때 게를 죽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게에 간장을 부어 삭히는 거죠. 살이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 이 시를 아침에 읽었는데 힘이 다 빠졌어요. 우리 딸아이는 '울컥울컥 쏟아질 때' 부분에서 벌써 울기 시작했고요. 안도현 시인은 참 나쁜 사람이에요.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니 어쩌라는 겁니까. 꽃게에 대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죠?
이제 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반성을 하면서 4강 '견(見)'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그런데 왜 강의 시작 전에 이 시를 읽어드렸느냐. 이 시가 제가 오늘 이야기할 주제의 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시를 읽기 전에 꽃게를 몰랐습니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습니까? 저는 수없이 많이 먹어봤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시선으로 꽃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시인의 힘입니다. 똑같은 꽃게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 그 힘은 안도현 시인의 눈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102. 여덟 단어
결핍이 결핍된 세상에서 제대로 들여다보는 방법
아이디어는 깔려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어요. 없는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내 눈이에요.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들의 눈 속에 있는 법입니다. 눈을 감고 한탄만 하면 소용없습니다. 見의 중요성에 대해 긴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들여다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보기 위해서는 투자를 좀 해야 합니다. 시간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야 해요.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는 것도 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 긴 시간 관심을 가지고 보면 친구가 되는 거죠. 안도현은 간장게장의 친구입니다. 도종환은 담쟁이의 친구고요.
물론 우리도 요즘 많이 봅니다. 책도 많이 읽고, 사과도 배도 감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죠.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 많이 보려고 할 뿐,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헬렌켈러가 이렇게 말했죠. 내가 대학총장이라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겠다고. 'How to use your eyes (당신의 눈을 사용하는 법)' 이것은 결핍된 사람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못 보는 이유는 우리가 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핍이 결핍된 세상이니까요.
헬렌켈러는 진짜 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눈이 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녀는 산에서 온갖 것을 봤어요.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나뭇잎의 앞뒷면, 발에 밟히는 낙엽, 자신을 스치며 지저귀던 새, 그 옆의 흐르던 계곡물소리, 그런데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정작 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118. 여덟 단어
창출하겠습니까? 다만 내 주변에 널린 수많은 좋은 텍스트들을 찾아낸 눈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딱 거기까지였죠. 좋은 것은 이렇게 많은데 보는 눈이 없으니, 텍스트를 중심으로 見을 이야기한 것이 책은 도끼 다였다면 이번에는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기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촉수가 있어야 합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듣고 울죠. 그 사람이 덤덤한 사람의 삶보다 풍요롭다는 것에 저는 완전한 한 표를 던집니다. 네 명 이 술을 마실 때 그냥 마시는 사람과, “창 밖 좀 봐. 가을비가 내린다" 하는 사람의 삶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 순간을 온전히 살려면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세요. 그래서 다섯 개의 촉각을 가진 동물이 되는 걸 목표로 삼으세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見, 본다는 것은 사실 시간을 들여야 하고 낯설게 봐야 합니다. 지난 시간 고전에 대한 강의에서 말씀드렸던 첨성대 에피소드 기억나시나요? 천천히 낯설게 봐야 진짜 볼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니코스 카잔차키스로 가면 익숙함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고은 시인도 이야기하죠.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이 반복으로부터'라고요. 그리고 김훈처럼 수박을 보고 깜짝 놀라야 해요. 제 명함에 찍힌 말이 'Surprise me(나를 놀라게 해)!'입니다. 의미를 아시겠죠?
놀라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능력은 놀라는 거예요. 놀란다는 건 감정이입이 됐다는 거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그 현상을 뇌리에 박으면서 경험하는 거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입니다. 같은 걸 보고 127번째 셀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고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는 거죠.
124. 여덟 단어
그러면 두 가지 측면에서 127번째 셀에 집어넣은 사람이 좋아요. 첫째, 더 창의적이고, 둘째, 더 행복하죠. 見의 중요성을 딸한테 이야기했더니 제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해요.
딸아이에게는 새로운 게 없어서 그래요. 'Be yourself'도 20년 들었으면 됐다고 하고 말입니다. 딸아이의 반응에 앙드레 지드처럼 강하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이 태어나는 것처럼 일출을 보고 온 세 상이 무너지듯 일몰을 봐라!"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했다가 괜히 핀잔만 더 들을 것 같아서 말을 바꿨습니다.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라고요. 다행히 이 이야기에는 눈을 빛내고 궁금해했어요. 그래서 설명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 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야.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어떠세요, 고개를 끄덕이게 되나요? 생활이 여행처럼 된다면 정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안타까울 겁니다. <사랑을 부르는, 파리>라는 옴니 버스 영화가 있어요. 주인공이 많은 영화인데, 그 마지막 장면이 뭐냐 하면 주인공 중 한 명인 남자가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요. 병원에서 말하죠, 살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하고, 그 수술은 50퍼센트의 확률로 성공할 수 있다고. 자, 감정이입을 한번 해볼까요?
견· 125
강의가 끝나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갈 거예요. 절반의 확률로 나는 다시 이 거리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요. 어떤 기분일까요? 그저 살 수만 있으면 좋을 거예요. 무심히 길을 걷고, 퇴근하는 인파에 치여 버스를 타고, 별일 아닌 것으로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의 모든 순간이 다 부러울 겁니다. 그래요, 이런 마음으로 일상을 봐야 합니다. 3일 후면 떠날 여행지를 대하듯, 50퍼센트의 확률로 다시 볼 수 없는 거리를 거닐듯 그렇게 말입니다.
단,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겁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 욕심을 부려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미친개한테 쫓기듯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도망가느라, 뛰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죠.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쫓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삶, 나의 삶을 살면 되니까요.
호학심사(好學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이 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思)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 들을 소화노력했으면 합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 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게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126 여덟 단어
-나는 나의 모든 재산을 내 몸속에 지녔다.
-결코 미래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에 찍히는 사진과 같은 생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생에 각 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뀔 수 없다.
-때로는 오직 그 순간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사르트르의 이야기도 한마디 더 들어보죠.
인생은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인 기쁨인, 내일 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다.
-사르트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비평문 중에서
맞습니다. 우린 순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순간이 보배로운 순간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 순간을 우리가 보배롭게 보면 됩니다. '후회는 또 다른 잘못의 시작일 뿐이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원주에 가놓고 후회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또 다른 잘 못의 시작일 뿐입니다. 선택을 한 이상 그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 현재입니다.
살아있다는 그 단순한 놀라움과 존재한다는 그 황홀함에 취하여
제 책상 뒤에 크게 붙여놓은 글로 김화영의 글입니다. 살아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몰라요. 죽기 직전에야 압니다.
143. 현재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져라.
강자한테 당당하게 고개 들고 약자한테 푹 숙이세요, 예전 故노무현 대통령 사진 중에 신문사 사주들을 만났을 때 눈을 보면서 악수하고, 농민을 만나 인사할 때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삶의 태도가 제대로 사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기행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영국인들은 외부의 법규는 모름지기 개인 내부의 입법자에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바깥에 있는 권위는 내 안의 입법자로부터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비준을 받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서는 안되죠.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올랜드 블룸이 주인공 '빌리안'입니다. 그는 원래 대장장이였지만 전쟁에서 훌륭한 전사로 싸웠어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자신의 삶을 향해 돌아가죠. 그런데 국왕이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길에 그를 찾아와 '예루살렘을 지켰던 빌리안'을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전사 빌리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그 말에 빌리언은 자신은 대장장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왕은 다시 말합니다. "나는 영국의 왕이다." 빌리언이 뭐라고 답했을까요? 상대가 왕이니 무릎을 꿇었을까요? 아니요. 그는 곧은 시선으로 왕을 보고 대답합니다.
"전 대장장이입니다.
174. 여덟 단어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보왕삼매론>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불자들에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쓴 글이라고 합니다. 그걸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었는데 그걸 읽고 저의 뇌는 이른 아침부터 도끼에 찍힌 듯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줄에서 그냥 손을 들었어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바로 그 대목에서요.
우리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몸은 유기체인데, 바이러스가 들어오고 나가고 나이 먹으면서 노화가 오는데 어떻게 병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 병이 없는 상태를 자기의 기본값으로 잡아놔요. 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한 대로 설정해 놓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점잖은 어른들이 들으면 쓸데없이 젊은 사람들 패기 꺾는 이야기 한다고 노여워할지 모르겠지만 먼저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으로 ...
218 여덟 단어
꿈은 폭격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죠.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에 전쟁이라는 험한 날줄을 만나게 된 겁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우리 시대는 매우 순한 날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세대보다 여러분의 날줄이 더 험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 세대가 제일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팽창 일로의 사회 분위기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까요. 기회가 널려 있었죠. 우리 때는 정치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꿈을 펼치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대학 졸업은 공포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 슬펐습니다. 팽창하던 사회가 정체기를 맞으면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기엔 만만치 않은 날줄의 시대지요.
제발 꿈 좀 꾸지 마라
그런데 말입니다. 태어나는 시점을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누구나 내 씨줄을 잘 받쳐줄 만한 날줄의 시대를 골라 태어나겠죠. 그러나 그럴 수 없으니 험하면 험한 대로 순하 면 순한 대로 날줄을 잡고 튼튼하게 직조해야 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를 직업정신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요리사입니다. 어느 저녁 만찬에 초대된 적이 있었습니다. 만찬의 요리사는 프랑스인이었고, 메뉴는 프랑스식 코스요리였어요. 전채 요리가 나 오고 메인 요리가 나왔는데, 리조또 위에 살짝 구운 제주 은갈치를 올 린 것이었습니다. 아주 맛있더군요. 식사를 하면서 들으니, 프랑스 요리사가 메뉴를 구상하기 전 한국의 식재료 중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 답니다.
220. 여덟 단어
고미숙 씨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 '훌륭한 요리사는 자기 눈앞에 있는 신선한 재료가 무엇인지 먼저 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와 같은 맥락인 것이죠.
그 요리사가 '나는 완벽한 프랑스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까 프랑스의 식재료를 공수해 요리하겠다'라고 했다면 냉동 푸아그라나 에스카르고를 맛봐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요리사는 이 땅에 있는 좋은 것을 먼저 찾았던 거죠. 눈앞에 있는 무기가 무엇이냐를 잘 고른 겁니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예로 든 김에 고미숙 씨를 통해 알게 된 것을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을 연구해서 인류학 논문을 썼는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원주민들에게 있어 가장 존경받는 사람을 관찰해 보니, 힘이 세거나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가장 존경받았답니다. 첫 강의, <자존> 에서 이야기한, 물살을 이용했던 이순신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날줄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절에는 이런 삶의 태도가 절실합니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그렇게 시작해보거라'라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살아야 합니다. 땅버들 씨앗도 자기가 닿으면 좋을 장소가 있었을 겁니다.
양지바르고, 촉촉한 땅 위에 닿고 싶었겠죠.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물살에 떠밀려 미처 다가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마구 엉켜 있는 바위틈에 툭 하고 닿아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땅버들 씨앗이 원하던 곳으로 다시 갈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땅버들 씨앗은 묵묵히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릴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 221
이들처럼 내가 가진 것을 들여다보고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하죠. 나만 가질 수 있는 무기 하나쯤 마련해 놓는 것, 거기서 인생의 승부가 갈리는 겁니다.
집 앞 화단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꽤 크게 자라기 때문에 평평한 땅에서 커야 좋아요. 그런데 그만 씨앗이 좁은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어쩔까요? 좁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대추나무가 자살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올라옵니다. 삐뚤어지고 꺾이겠지만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 겁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지레 포기하고 주저앉을 필요 없습니다. 씨 줄과 날줄이 함께 직조되는 게 인생이니까요. 꿈과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둘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광고인이 꿈이라고 말하면 일단 그 꿈을 접으라고 합니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면 너무 빨리 직업을 좁게 정했다고 말해줍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 고등학생이 광고인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고등학생 때부터 광고에 목숨 걸겠다고 다짐했다가 광고인이 안 될 경우 밀려오는 좌절감은 어쩔 겁니 까? 인생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는 것이니 스트라이크존을 넓혀놔야 합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저는 '신문 기자 괜찮고, 잡지 편집자 괜찮고, 책 만드는 사람 괜찮고, 내가 재능이 있다면 시나 소설을 써도 좋겠고, 르포라이터 괜찮고, 구성 작가 괜찮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거나 감독도 좋고, 게임 프로그램을 짜도 괜찮겠네?"였습니다. 그 안에 광고도 포함 돼 있었고요. 물론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있었고, 순위에 따라 차례차례 도전했죠, 배재고등학교 신문사 편집장을 한 것을 계기로 신방과에...
인생 225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여기에서 '해방'을 '행복'으로 바꿔보세요.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 이 자리를 행복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이게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믿고 씩씩하게 또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인생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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