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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독서정리

열 아홉 번째 책 : 숨결이 바람 될때

by 마파람94 2023. 6. 15.




어떤 말을 적을까 고민이 깊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냥 이책을 읽고 뭔가를 쓸 수가 없습니다. 그냥 눈 감고 숨을 쉬어 봅니다. 길게...
 
 



모되어버리는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해지는 순간이다.

학교로 돌아온 후, 나는 더 이상 원숭이들이 그립지 않았다. 삶은 풍요롭고 충만하게 느껴졌고, 그후 2년 동안 정 신적인 삶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런 충만함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유기체들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데 뇌가 하는 역할을 알기 위해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MRI) 연구소에서 일했다. 또한 소중한 친구들과 이런저런 엉뚱한 장난을 치며 인간 관계를 탄탄하게 다졌다. 우리는 몽골 사람처럼 옷을 입고 학교 구내식당에 들이닥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짜 동아리를 만든 뒤 기숙사에서 가입 권유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또 고릴라로 분장해서는 버킹엄 궁전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메모리얼 교회에 잠입하여 바닥에 드러누운 채 애프스'에 울려 퍼지는 우리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장난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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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다른 무언가가 서서히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두부외상 환자들을 끊임없이 접하다 보니, 생사의 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순간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태양을 직접 응시하며 천문학을 배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많은 고통을 목격했고, 더 나쁘게도 그런 고통에 익숙해졌다. 핏속에서 익사할 듯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런 생활에 적응하고, 그 와중에 떠다니는 법. 수영하는 법을 배우며, 심지어는 같은 파도에 휘말리고 같은 뗏목에 매달린 간호사들이나 의사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삶을 즐기기까지 한다.

동료 레지던트인 제프와 나는 외상 팀에서 함께 일했다. 다발성 두부외상 때문에 그가 나를 외상외과 집중치료실로 부를 때면, 우리는 늘 죽이 잘 맞았다. 제프는 환자의 복부 상태를 검토한 뒤 내게 환자의 인지 기능 예후를 물어보곤 했다. 한번은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음, 이 환자는 상원 의원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작은 주에서." 제프는 내 말을 듣고 웃었고, 이때부터 주의 인구수는 두부외상의 심각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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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호흡보조기, 복부에 낸 구멍으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장기간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과 불완전한 회복, 때로는 환자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순간 나는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닌 죽음의 전령사 역할을 했다. 가족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 (온전하고 생기가 넘치는 독립적인 사람)은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환자가 어떤 미래를 원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이 가진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했다.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젊은 시절 신앙심이 좀 더 깊었다면 나는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추구했던 건 목사의 역할이었으니까.

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환자가 수술을 의사에게 위임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사전 동의는 신약 광고에 덧붙이는 해설처럼 모든 위험을 최대한 빠르게 줄줄 읊어주는 법적 행동이 아니라 고통 받는 동포와 굳은 약속을 맺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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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녀는 힘겹지만 납득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녀는 수술을 선택했고,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이틀 뒤에 퇴원했으며 다시는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 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 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까?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때로는 그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뇌파가 일시 중단되며 고통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인성' 증후군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경험하기도 하는 졸도의 심각한 형태이다.

내 어머니도 이런 일을 겪었다. 1960년대 인도의 시골에서 여자가 대학 교육을 받기는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교육 받을 권리를 인정해주었고, 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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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20년에 들어서게 됐으니,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음, 제가 그 답을 드릴 순 없겠죠." 그녀가 말했다. "원한다면 수술실로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네요. 하지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게 뭔지 꼭 생각해 보세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건 당신도 잘 알 거예요"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에마가 자주하는 말을 인용하자면, 내 가치를 찾는 건 내게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선 그 말이 공허한 핑계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도 환자에게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환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사가 걸린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겠는가? 그때 문득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는 한 가족에게 아들의 생명 유지 장치를 떼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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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환자? 과학자? 교사? 생명윤리학자? 아니면 에마의 말대로 신경외과 의사 복귀? 집에 만 있는 아빠? 작가? 대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가? 의사 시절 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마주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고, 바로 이런 순간을 그들과 함께 깊이 파고들기를 원했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죽음을 실제로 겪는 것보다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얼마나 많은 영역을 탐구하고, 조사하고, 정리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일이란 두 개의 선로를 잘 연결해서 환자가 순조로운 기차 여행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버리고 싶다."(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영혼을 들여다보니, 연장은 너무 약하고 불은 너무 뭉근해서 인류의 양심은커녕 내 양심조차 버리지 못했다.

죽음의 단조로운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나는 수많은 과학 연구들, 세포 내 분자 통로, 생존 통계의 끝없는 곡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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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그 일요일 아침에 목사가 마지막으로 읽은 성경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씨 뿌리는 이가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수술실로 복귀한 지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CT 촬영기에서 내려왔다.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아버지가 되고, 내 미래가 현실이 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찍는 CT 촬영이었다.

"선생님, 한번 보시겠어요?" 촬영 기사가 말했다.

"지금 당장은 못 보겠네요." 내가 대답했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요."

벌써 오후 6시였다. 나는 환자들을 보고, 내일 수술 일정을 짜고, 필름들을 검토하고, 임상적으로 처리할 일들을 지시하고, 회복실에 들르는 등등의 일을 해야 했다. 8시 즈음 나는 신경외과 사무실에서 방사선 검사 결과를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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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와 증세는 별 차이가 없어요. 이번 일은 도로에서 장애물을 만난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어쨌든 당신은 현재 궤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요. 신경외과는 당신한테 중요하니까요."

다시 한 번 나는 의사에서 환자로, 주체에서 객체로, 주어에서 직접 목적어로 돌아왔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내 삶은 내 선택들이 쭉 이어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대부 분의 현대적 서사에서 한 인물의 운명은 그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리어 왕》의 글로스터는 인간의 운명이 "제멋대로인 아이들 손에 맡겨진 파리" 같다고 불평 하지만, 실제 그 희곡의 극적 구조를 만들어주는 건 리어 왕의 허영심이다. 계몽운동 이후 개인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인간의 행동이 초자연적인 힘 앞에 서 맥을 못 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 그리스 비극과 더 닮은, 오래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오이디푸스와 그의 부모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힘에 접근하려면 신성한 환상을 보는 예언자들을 통하거나 신탁을 받아야 한다. 내가 에마를 보러 온 이유는 치료 계획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받게 될 의학적인 조치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213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 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 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 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 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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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포부를 지지하고, 안전하고 어둑한 우리만의 침실에서 그를 끌어안은 채 그가 나직이 속삭이는 두려 움을 귀 기울이며 들어주었다. 그를 지켜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위로했다. 손을 잡은 채 수업을 듣곤 했던 의과 대학원 시절만큼이나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화학 요법을 받은 뒤 병원 밖에서 걸어다닐 때면 나는 그의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그의 손을 잡았다. 날씨가 따뜻해진 후에도 폴은 겨울 외투와 모자를 벗지 못하고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겪을 일도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남편이 숨을 거두기 몇 주 전, 함께 침대에 누워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내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숨 쉴 수 있어?"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이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폴과 내가 서로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폴의 가족에게서 큰 힘을 얻었다. 그들은 우리가 투병 생활을 견딜 때 기운을 북돋워주었고, 아이를 가지겠 다는 우리의 뜻을 지지해주었다. 시부모님은 아들이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상심하셨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우리를 위로하고 안심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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