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책도 있나? 라는 생각으로 줄곧 읽고 작가에 대해 살펴봤더니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합니다. 헛~순간적으로 당황스러운 마음에 책을 한 번 더 살펴봅니다. 노벨상을 타려면 이런 책 정도는 쓸 수 있어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작가를 검색해 본 후 그 사람 입장이 되어 다시 한번 책을 들여다 봅니다.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솔직한 글쓰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 금기 될 것만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전혀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하는 데에 충격을 받았고, 출간 후 상대 이성이 마치 답가를 부르는 듯하게 유사한 글을 썼다는데 두 번째 쇼킹한 느낌을 전해 받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라고 하는 작가의 글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책에서 표현된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솔직함의 힘으로 공감하게 됩니다. 책 밑 줄이 얼마 없지만, 이 책을 기억하기 위한 책갈피를 남겨봅니다.
아니다 그사람도 나처럼 아침 부터 저녁까지 내 생각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 태도가 옳은 건지 그 사람이 옳은 건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운이 좋 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파리 시내를 걷다가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남자들이 운전하는 대형 승용차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A도 그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적 성공을 꿈꾸고, 이삼 년마다 한 번씩 정부를 바꿔가며 성욕을 해소하고 사랑을 즐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사람 역시 BMW나 르노 25를 타고 다니며 거들먹 거리는 중년 남자들처럼 언젠가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익명의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거리를 걷다가 상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원피스나 란제리를 보게 되면, 어느새 나는 그 사람과 만날 다음번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과 거리감을 느끼는 순간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 해 일시적으로 오는 것일 뿐, 나 스스로 애써 그런 것들을 찾아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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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이전에 즐기던 독서나 외출 따위의 모든 활동을 자제했다. 나는 완벽한 한가로움을 갈망했다. 나는 상사가 요구 하는 시간 외 근무를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히 거절했다. 내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상상의 이야기에 자유롭게 건 하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맞설 권리가 있다고 나 는 생각했다.
RER이나 지하철, 혹은 대합실,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나는 앉기만 하면 이내 A를 생각하며 몽상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행복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과 기억들이 넘쳐나서, 마치 머릿속으로도 몸의 다른 기관들처럼 육체적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꾸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 열여섯 살 때 일광욕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몸을 태우고, 스무 살 때는 피임도 하지 않은 채 겁없이 섹스를 즐겼던 것처럼 나중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 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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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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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의 사진과 해당 시기의 일기 또는 작품에서 발췌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일종의 사진 일기에 해당하는 이 대목을 펼치면 조부와 부모 세대의 사진부터 시작하여 아직 얼굴 윤곽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유아기적의 모습, 학창 시절과 반항심 많던 청소년기를 거쳐 결혼 시절의 행복한 모습, 그리고 첫아이를 낳은 산모의 모습에 이어 성공한 작가의 표정에서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칼을 완전히 잃어버린 중년의 얼굴과 마침내 손녀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까지, 한 인간의 인생행로가 일목요연하게 전개된다. 그 몇 장의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아무리 파란 만장한 삶이라도 결국 돌사진과 영정 사진 사이에 낀 몇 갈피의 추억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아니 에르노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의 글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서 무엇인가 를 구해내는 일에 매달렸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 글로 남긴 것을 토대로 그녀의 삶을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노르망디의 릴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무렵 이브토로 이주해 그곳에서 줄곧 유년기를 보낸다. 전쟁 중 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된 소도시의 풍경, 부둣가, 공장, 술집, 재 건축을 위해 곧 허물어질 처지에 있는 가옥들이 그녀가 사랑하는 풍경"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조부 세대를 뒤이은...
*2011년작 「세월」의 마지막 문장.
해설 73
극복할 수 없는 숙명이라 믿었던 작가는 1970년대 초에 접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통해 물질적 기준에 의해 구분된 빈부의 구분법은 언어, 생활 방식, 취향과 같은 비물질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2002년 <르몽드>에 기고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 추도문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소설에서 추구했던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그의 연구에 큰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수치심
열세 살에 학업을 멈춘 아버지는 물질적 자산뿐 아니라 상징 재산의 축적에서도 빈곤을 면치 못했음을 눈치챈 작가는 설령 빈곤에서 벗어나도 부모의 몸에 밴 습관이나 가치관, 즉 사회학 용어를 빌리자면 '아비투스'를 떨쳐버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 세대에 한정된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고통과 수치의 근원이 된다. 부엌에서 몸을 씻고 취객의 저속한 농담을 감수하며 마당 구석의 빈소를 사용하고 술집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야 했던 작가는 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샤워기와 수세식 변기를 만나고 음식, 옷차림에서 부터 음악, 연극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생활 세계로 진입한다. 이후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결혼을 통해..
해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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