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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독서정리

마흔 한 번째 책 :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by 마파람94 2022. 11. 3.

 

작가의 감수성 충만이 책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섬세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시선이 있었기에 이러한 글들로 남아 있는 것 아니었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도 되기도 하고 문화 차이도 느끼면서 한사람의 세계를 훔쳐본 느낌입니다. 

 

접을까 망설이면서 대략적으로 접혀있던 페이지를 옮겨와 봅니다.

 

 

 


그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로라다. "내 말 못 믿을 거야." 로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 한테 전화한 용건을 꺼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부터 로라는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상대다. 로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는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심리학 지식을 담은 문장들이 우리 사이에 오간다. "언제 저녁이나 같이 먹자." 내가 말한다. "너무 좋지." 로라가 말한다. "어디 보자." 로라 역시 자신의 수첩을 들여다본다. "아이고,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다음 주 초까지는 시간이 안 돼.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만." 대화를 나누면서 엄청 즐거워졌는지로라는 그 기쁨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여기 이 일정을 바꾸면 되겠다. 목요일 어때?"

친구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서 활기를 얻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해 물을 치운다.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정표에서 빈 곳이 있는지 찾는다.

나는 가끔은 로라 같고, 가끔은 레너드 같다. 어쩔 때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나는 기꺼이 로라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로라는 언제나 사람들의 연락에 곧 바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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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머리가 어깨 위로 바보같이 축 늘어진다. "아녜요." 그는 참을성 있는 태도로 내게 설명한다. "내가 말하게 해줬잖아요. 그거는 나한테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지."

레너드와 나는 레너드네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나는 높은 회색 벨벳 의자에, 레너드는 내 맞은편의 갈색 캔버스 천을 씌운 소파에 앉아 있다.

"얼마 전에." 레너드에게 말한다. "내가 너무 비판적이라는 말을 들었어. 웃긴다고 생각했지. 10년 전에 내가 어땠는지 봤어야 되는데 근데 있지." 내가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난 내가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사과하는데 신물이 났어. 좀 비판적이면 왜 안 되는데? 난 내가 비판적인 사람인게 좋아. 판단은 안도 감을 줘. 절대적인 거고, 확실한 거지. 내가 그걸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걸 다시 갖고 싶어. 다시 가지면 안 되는 거야?"

레너드가 웃더니 근사한 소파의 나무 팔걸이를 따라 손가락을 쉬지 않고 두드린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들 어른처럼 보였는데." 내가 말한다. "요즘은 더 이상 아무도 그렇게 안 보여. 우릴 봐. 40년 전이었다면 우린 우리 부모님처럼 됐을 거야. 근데 지금 우린 어떻지?"

자리에서 일어난 레너드가 방을 가로질러 가더니 잠긴 캐 비닛을 열고 뜯어진 담배 한 갑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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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든 실제로 우리 둘만 있을 때면, 아침나절 동안 오후 동안 심지어는 하루 나 이틀 동안도, 로더는 나와 함께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최고로 행복해 보였다. 우리의 멋진 대화는 꾸준히 흘러갔으며, 우리가 함께 있는 조용한 순간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늘 그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섯 명의 목적 없는 수다로 채워진 긴 하루의 끝에, 나는 로더의 수영 의식을 위해 그와 함께 해변으로 걸어 내려갔다. 로더는 돌들을 밟으며 조심스레 물가로 걸어갔고, 나는 곁에서 그를 쳐다보지 않고 걸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은 서늘하고 눈부셨으며 가슴이 아플 만큼 감미로웠다. 그러다 내가 로더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사라져 가는 빛 속에서 로더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거기, 물가에 수평선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는 자연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로더의 얼굴에는 강렬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그의식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강렬함이었다. 문득, 로더가 혼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더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외로움을 잊도록 자연이 로더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알 수 있었다. 로더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게 아니라 사실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혹은 다른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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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 좋아하는지, 나 혹은 다른 누군가와 무엇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지, 그런 것들은 로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정말이지 오래지 않아 로더는 다시 외로워지고 자신이 텅 비었다고 느낄 것이었다. 로더가 아는 그 누구도 그를 채워 줄 수는 없었다. 설령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삼킨대도 그는 여전히 허기를 느낄 것이었다. 로더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대체되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재능 있고 흥미롭고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우리 모두는 대체될 운명이었다. 로더를 위해 우리가 이뤄주어야 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뒤로 물러나는 걸 느끼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로더 역시 뒤로 물러난건지, 아니면 그 해변에서 내가 로더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그가 내게서 멀어지리라고 이미 결정해놓았던건 지나는 절대 알 수 없겠지만, 노동절 무렵이 되자 우리 우정의 허니문은 끝이 났다. 그 여름 이후로 나는 내가 로더의 특별하고 절친한 친구일 거라는 생각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주말 식탁의 잡다하게 뒤섞인 친구들에게 합류했다.

그들은 분명 친구들이었다. 다들 로더에게 이끌리고, 한동안 특별해진 기분을 느꼈다가 친밀한 관계 바깥으로 급속하게 떨어져 나온, 그럼에도 관계의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여전히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로더를 통해 만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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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저 머리 좋은 여자애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뀐 건 여자가 말했다. "로더와 대화를 하면서였어요. 로더와 함께 있으면서 제 몸 바깥으로 통찰의 선이 저절로 그어지기 시작했어요. 보폭이 넓어지고, 이해력도 확장되었죠."

로더의 학생 한 명이 일어섰다. "그분은 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듣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어요." 그가 말했다. "그분께 저는 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 제가 할 투쟁이 되리라는 걸 배웠습니다."

학생 또 한 명이 말했다. "로더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해주셨어요. 어느 밤 선생님이랑 <플래툰 Platoon>을 보러 갔었는데요. 다들 그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작품이 전쟁을 미화한 방식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죠. 그런데 로더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영화 좋았는데.' '뭐라고요!' 우린 모두 선생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어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활짝 웃으셨어요. '남자들의 비참한 순응을 이만큼 훌륭하게 묘사해낸 작품을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끼리는 그런 생각은 절대 못했을 거예요."

"로더한테는 하고 또 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었어요." 로더와 30년간 친구였다는 한 여자가 말했다. "로더는 우화라면 질리는 법이 없었죠.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떤 여자가 원양 정기선 갑판 밖으로 추락해요. 몇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여자가 없어진 걸 알게 되죠. 선원들은 배를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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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반면 기질이 다르면 언제나 누군가는 눈치를 보게 된다. 기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벌의 톱니바퀴가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발상은 복잡하지 않아도 톱니바퀴의 맞물림은 완벽해야 한다. 거의 정확한 정도로는 안 되고, 완벽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톱니바퀴는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기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보낸 몇 년 때문이다. 대학 도시에서는 내가 '대충 만들어낸 반응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고립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들은 동료나 이웃의 입에서 나오는, 사람의 세계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움츠러들게 만드는 구절과 뉘앙스와 문장을 반복해서 듣는 일에 매일같이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대학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일종의 삶 속 죽음이다.

한 번은 남부에서 어느 문예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뉴욕에서 온 내 또래 여성 작가와 함께 일하게 됐다. 거기에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을 쓰는 소설가와 철학적인 자연 에세이를 쓰는 작가뿐 아니라 블랙 마운틴' 시인도 한 명속해 있다는게 이 학과의 자랑거리였다. 내가 뉴욕을 떠나기 전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대단한 사람들하고 한 팀이 되었네요. 멋진 대화를

•기존 시의 닫힌 형식에서 벗어나 시의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즉흥적인 형식으로 된 시를 쓸 것을 제안한 20세기 미국의 포스트모던 시인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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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한 것이었지만, 사는 곳에서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이 남자들이 가진 수단이었다. 나는 곧 그들이 금요일 오후마다 모이는 이유가 버림받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국외로 추방된 사람들처럼 격렬한 분노를 토해내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그토록 난폭하게 열변을 토하며 경멸을 표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인간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헐뜯기 시작하자 경멸 어린 어휘들은 훨씬 더 풍부해졌다.

문예창작 프로그램의 한 남자 작가는 금요일 오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서 눈에 띄었는데, 고든 콜이라는 소설가였다. 보아하니 고든과 스탠리 멀린(금요일 오후에 항상 참석하는 작가였다)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지 몇 년은 된 듯했다. 고든 이 참석하는 곳에는 스탠리가 나타나지 않았고, 스탠리가 주된 역할을 하는 자리에는 고든이 반드시 불참했다.

두 남자 사이의 불화는 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강의를 배정할지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었다. 스탠리는 글쓰기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시와 소설, 논픽션 등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고, 고든은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 왜 결코 쓸 일이 없을 에세이 쓰는 법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몇 년이 지나 이 철학 차이를 두고 두 남자는 심하게 부딪쳤고, 너무도 굳건한 교착 상태에 도달한 나머지 이제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건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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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까지 말이다. 내 안에서는 당혹스러운 감정의 물질이 솟아오르곤 했다. 여기 그들이 있었다.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에 함께 던져져. 상대방이 해줄 수 있는 종류의 대화를 갈망하면서, 그러면서도 불과 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각 자의 모멸감과 마음의 상처 속에 갇힌 채로 그 순간 삶의 보잘것없음이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그 사실이 주는 충격은 거대하게, 그 결과는 불가피하게 느껴졌다.

내가 스털링을 떠나기 1주일 전, 서미언이라는 이름의 역사학 교수가 구속되었다. 월러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역사학 교수의 차 타이어를 칼로 긋다가 붙잡힌 것이었다. 그 사건은 지역 신문에 실렸다. 기사에서 기억에 남는 세부사항이 있다면 바서미언과 월러스타인이 15년 전에 어떤 가치관을 두고 다투었다는 것이었다. 두 남자는 몇 년 동안이나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몇 년 동안이나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그 문장을 바라본 일이 기억난다. 이렇게 생각한 일도 기억난다. 그 시간 동안 월러스타인은 지난 일을 곱씹는 바서미언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존재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거라고, 복도에서 서로를 마주치거나, 위원회 회의를 하려고 같은 방에 앉아 있거나. 교수회관에서 서로의 테이블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마다 곪아버린 상처의 원인으로 감각되면서

나는 뉴욕의 무시무시할 만큼 병적인 측면에는 익숙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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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건 달랐다. 이건 체호프Chekhov적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호의적으로 이해해주지 않는 분위기에 영혼이 훼손되었다고 느꼈고, 그 훼손이 그들 내면의 풍경을 채우게 되었다. 다시금 내 안에서 당혹감이 일어났다. 그렇게 지적이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 그런 괴상한 행동을 할 만큼 자신의 수준을 떨 어뜨리다니.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은 스털링에서 함께 강의를 하던 사람들로부터 나를 떨어뜨려놓았다. 나를 서술자로, 그들을 캐릭터로 바꿔놓았다. 작별인사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면 그 한쪽에 내가 다른 쪽에 그들이 있을 거라고 느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성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 안에 있는 것은 내 안에 결코 있을 수 없었다.

그 상황은 정말로 '체호프적'이었다. <제6병동>에 나오는 그 자신이 수감된 다음에야 마침내 감금이라는 상태를 이해하게 되는 의사처럼. 바로 다음번이 내 차례였다.

스틸링에서 사람들은 '데리다Derrida'를 보험설계사와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극서부 대학의 사람들은 데리다가 누군지뿐 아니라 그의 책 발행인 이름과 그가 최근에 받은 선인세 규모까지 알고 있었다. 스털링은 시간이 뒤틀린 곳이었다. 그곳에서 중요한 일들은 모두 일어난 지 수년이 지난 뒤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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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면 17세기 문학 교수는 놀라지 않을까.

내 힘든 상태는 강의 시간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진지했고, 금발머리에, 말이 없었다. 내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면서 과장이 심해지는 게 내 귀에도 들렸다. 공허함 속에서 독창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그 사실이 자명한 책들에 '심오하다' '독창적이다' '중요하다'라고 한 시간에 50번쯤 말했던 것 같다.

나는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현명하고 재능 있는 교사였다.

"학생들이 나를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해." 내가 말했다.

"나는 말하고, 학생들은 빤히 쳐다본다니까."

"친구야." 앤이 말했다. "학생들은 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방법을 모르는 거야. 그 애들한테는 그게 어려운 일이거든. 다 큰 성인들조차 그 방법을 몰라. 알잖아, 어떤 책이나 그 비슷한 다른 뭔가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너랑 나처럼 몇 초 만에 완전한 대답을 정리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그리고 학생들은 아직 애들이야. 그 애들한테는 그게 순전한 공포란 말이야. 그 애들도 대답을 해서 너를 기쁘게 하고 싶을 거야. 책도 읽었어. 감정도 있는 존재들이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그냥 거기 앉아 있는 거지. 학생들이 입을 열게 하는 질 문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애들을 남은 삶 동안 자유롭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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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거야. 그 애들 이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기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해방시켜주는 거고

“맙소사." 내가 신음했다. "난 그런 거 못 해" 앤은 수화기에 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몇 년 걸릴 거야."

앤이 말했다. "몇 년쯤."

나는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내 머릿속에 전등 하나가 켜졌다. 학생들한테 가봐야겠어. 나는 생각했다. 너희의 침묵 맞은편에는 고통받는 한 인간이 있다고 그 애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이해할 거고, 행동하겠지.

그런데 그때 17세기 문학을 가르치는 여자의 얼굴이 나와 내 영리한 생각 사이에 끼어들었고, 희망의 불꽃은 사그라져 버렸다. 그 여자가 몇 주째 나를 쳐다보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된다면, 학생들이 내게 입을 열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느 대학 리셉션에서 나는 한 손에 잔을 들고 과학자 한 명과 역사학자 한 명을 마주한 채 서 있었다. 과학자는 나이가 많았고 유럽계였다. 목소리에는 상류 사회에 편안하게 적응한 사람 특유의 낭랑함이 묻어 있었고, 교양 있는 스몰 토크의 대가였다. 역사학자는 시시한 일화들을 보태는 것으로 자기 몫을 하면서 적절한 순간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내게 몸을 돌렸고, 대화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거나 하고 싶은 걸 하 도록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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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렸다. 열기가 참을 수 없이 심해졌다.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 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그럴 때 우리는 결핍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건 어째선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결핍은 가장 나쁜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을 억누르고, 희망을 질식시킨다. 우리가 처음에 갖고 있던 활기를 억 누른다. 사기가 꺾이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일종의 침묵이 다. 침묵은 공허함이 된다. 사람은 공허함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 압박감은 끔찍하고, 사실 참기 힘들며, 견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압박감을 견디다 보면 사람은 폭발하거나 무뎌지고 만다. 무뎌진다는 것은 슬픔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 말로 고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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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것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을 감수하며 살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속해 있는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와 그 이스라엘 기자는 그렇다.

1937년, 작가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은 시인 루이스 보건 Louise Bogan에게 작업으로 돌아옴으로써 신경쇠약에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하는 편지를 썼다. "우리는 삶을 사회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윌슨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과 손으로, 니체가 말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거쳐 해낸 작업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냅니다." 그와는 반대로, 작업을 하지 않는 일, 심사숙고를 회피하는 일 역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유산될 때마다 나는 내가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표류시킨다. 소음이 세상에 만연하게 내버려 둔다.

편지 쓰기가 고귀한 일인 게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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