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책 : 빅 퀘스쳔 -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가 평소 어떤 생각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 살짝 엿볼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쓴 소설로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작가의 에세이를 접할 때 많은 부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책은 에세이 입니다. 몇 해전 읽었던 작가의 소설 빅 픽쳐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다음 페이지가 너무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놓을수 없을 지경이었다고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 읽은 빅 퀘스쳔은 더글라스 케네디가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입니다.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었는지 몇 가지로 간추려서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의 밑줄로 가보겠습니다.
한자
나는 그런 증상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 했다. 행복은 동화 속에나 있다. 행복이란 손에 넣은 사람이 극히 드문 꿈이며, 나의 감정이나 심리로는 도저히 취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내가 칸데르슈테크의 눈보라 속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무엇일까? 과연 눈에는 어떤 힘이 내재해 있기에 생이 주는 온갖 고뇌에 찌들어 있던 나를 한순간에 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
러시아문학에서 눈이 없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라. 순백의 순수한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결투 장면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아마도 체호프의 <세 자매>나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러시아문학에 눈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생각해 보라. 러시아 영화에서는 또 어떤가? 눈을 배경으로 로맨틱한 사랑이 펼쳐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많은가?
오손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에서 보면 찰스 포스터 케인이 눈보라가 심한 곳에서 썰매를 타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눈썰매와 소년, 19세기 말 미국의 목가적인 모습을 그림엽서처럼 완벽하게 재현해보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 목가적인 이미지는 찰스 포스터 케인을 부모로 부터 데려가 입양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한 신사가 등장하면서 산산조각난다. 케인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끝나고, 그는 분노와 함께 쓰디쓴 눈물을 흘린다.
눈은 계속 내린다. 케인의 썰매는 버려진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나는 지금껏 <시민 케인>을 스무 번도 넘게 보았다)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커다란 상실감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은 아무도 죽지 않는 마법의 왕국이다' 라는 아주 흔하게 인용되는...
26 빅퀘스천
오래된 습관이 한순간 결심으로 고쳐질 리 없다. 내가 스위스 칸데 르슈테크의 계곡에서 맞이한 아침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깨닫게 된 건 그 후 몇 년이 더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나의 삶에 대해 깊이 있고 폭 넓게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나는 10여 년 동안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창의력을 발휘해 왔고, 개인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충만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칸데르슈테크의 눈 속에서 맞이했던 그 순간은 내가 처음으로 복잡하고 어두운 나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때부터 내가 비로소 삶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삶에 대해 갖게 된 새로운 시각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질문에 대해 흑백의 대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회색지대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불확실하고 양면적이며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그 회색지대야 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로소 삶을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모두의 삶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 역시 정답이 없는 질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하기에 내 삶은 더욱 경이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진실은~(이)다' 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진실은 자연의 인과법칙을 제외한 다른 상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해석이 존재할 뿐이다.' 뒤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지나간 뒤에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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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양성이란 단순한 인정이나 타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이란 정답 없는 심오한 의문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일이다. 삶에 대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건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인생은 왜 끊임없이 불공평한가? 인생을 이루는 근원적이면서도 영원한 요소인 괴로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인류가 지구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인간과 함께해 왔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질문이 한 가지 더 있다.
'생명의 불이 꺼지고 내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달래기 위해 갖가지 조직과 구조를 만들어 왔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종교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죽음과 함께 인생의 경이가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물론 용기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침착하게 수용할 수는 있다. 삶에 지친 나머지 죽음의 안식을 원할 수도 있다. 전후 시인들 중 염세적인 작품의 시를 주로 쓴 영국시인 필립 라킨은 걸출한 시 <새벽의 노래>에서 죽음의 횡포에 대해 뛰어나게 표현했다.
마음은 밝은 빛에 갑자기 멍해진다. 이루지 못한 선행, 받지 못한 사랑, 쓰지 못한 채 흩어진 시간, 깊은 후회 때문도 아니고 잘못된 출발을 깨끗이 씻어내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는, 혹은 절대 씻어내지 못할
1.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 29
축하할 겸 맨해튼에서 한잔 하며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아버지가 막 70세가 되었을 때였다. 나는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즐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이스트60 스트리트에 있는 프랑스 식당에 가자고 했다. 식사비가 일인당 200달러나 되는 고급 식당이었다. 나조차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갈등을 했을 정도였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살펴본 나는 계산은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다가는 손모가지를 부러뜨릴 테니까 명심해." "알았어요. 그럼 아버지가 사세요."
우리는 마티니를 주문했다. 마티니 잔이 금붕어 두 마리가 헤엄쳐도 될 만큼 컸다. 맨해튼 스타일의 바텐더는 인생의 부당한 괴로움들을 잠시 달래줄 마티니를 제대로 만들 줄 알았다.
당연히 우리는 마티니를 한 잔씩 더 주문했다.
두 잔째 마티니를 마실 때 아버지는 70세가 되자 고속열차 차창으 로 알아볼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가는 풍경처럼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 나간다고 말했다.
"앞으로 살날이 기껏해야 15년 정도 남은 것 같다."
"그리 적은 시간은 아니죠. 15년이면 아주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마흔한 살 때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 아직 인생이 반이나 남았으니까.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졌으니 아직 반 이상 남아 있을지도 모르 겠구나."
"아버지, 15년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아요."
46 비 퀘스천
벤은 사진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안정된 삶을 바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변호사가 되었고, 거대 로펌의 신탁 담당 변호사가 된다. 벤은 코네티컷 교외의 주택가에 살고 있으며, 그의 아내 베스는 한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나 거듭되는 실패에 좌절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벤은 변호사가 되라고 충고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벤은 사진가의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변호사가 된 것을 깊이 후회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장점을 무시할 수도 없다. 집 앞에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안전한 울타리가 있는 교외 중산 층 주택지에서 자녀를 키우며 사는 생활을 버릴 수 없다는 게 벤의 진실이다. 결국 삶을 덫에 빠트리기로 결정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벤 자신이었다.
스스로 덫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욱 두려운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가두고 있는 불행한 삶 너머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불행한 삶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버텨내야 할까?
그런 질문들에는 골치 아픈 개념이 숨어 있다. 바로 '변화'라는 개념 이다. '변화'는 미국의 낙관주의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기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도 자주 주제로 차용되는 개념이다. 텔레비전 토크쇼에서는 무기력한 가정주부를 출연시켜 살을 빼고 배우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편과 헤어지면 어린 시절 꿈인 댄서가 될 수 ..
68 빅퀘스천
존 업다이크는 <커플스)를 통해 자유와 개척정신을 실험하지만 여전히 덫에 갇힌 개인의 우울을 드러낸다. 사회적인 통념에 도전할 수는 있지만 일부일처제의 체제를 넘어가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거의 모든 미국 소설이 그러하듯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도 청교도 정신이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혼이 보편화된 요즘도 성 역할의 규정만큼은 매우 굳건하다. 성 역할은 우리 스스로 놓은 삶의 덫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수많은 의무들에 갇혀 있다. 모기지론,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나가야 할 의무와 함께 자녀양육의 기나긴 의무가 있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부모라는 꼬리표를 무시할 수 없고,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미국사회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권태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다.
나는 교육을 잘 받고 가정환경이 유복한 사람은 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페라 관람, 디너파티, 미국 동서를 가로지르는 여섯 시간의 비행에 지친다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고단한 일에 지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이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72 빅퀘스천
단 헨리만은 아닐 것이다. 결혼처럼 쌍방이 오랜 시간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시작하는 인간관계는 당연히 위험이 따르게 된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최선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으면서도 참아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헨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곧장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평생을 시달리게 되리란 걸 몰랐을까?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성격이 배타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 버지에게 떠넘기려 했던 건 아닐까?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 허구한 날 다투게 되리란 징후를 수없이 보았을 텐데 왜 결혼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을까? 아버지는 불행한 결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그 길로 접어든 게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중년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일 년은 전과 다름없는 일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상에서 살다간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렸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해지고 나서야 자기 자신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서야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에 빠뜨리고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자면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에 자신을 설득해 내린 결정일 것이다.
76 빅퀘스천ㅍ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자기 자신을 다독거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으리란 걸 뻔히 알고 있더라도 요행을 바랄 수도 있다. 기회가 되면 혹은 내년에 해결해야지' 하며 선택을 뒤로 미룰 수도 있다. 내 친구 제라르가 해마다 헤어지기로 결심하고도 결국 이듬해 크리스마스까지 넘기길 수없 이 반복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떠나는 꿈을 꾼다. 자유를 얻는 대신 외로움을 덤으로 얻게 될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가정이나 직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는 건 어른이 되어 내릴 수 있는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그런 까닭에 나는 떠 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키케로는 듣기 에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세상의 도처에서 너무 쉽게 일어난다'
석 달 전, 나는 파리에서 제라르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며 이메일을 보냈다. 제라르가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전에 없이 유쾌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식전주를 마시며 아이들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이상한 영화 제작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시간쯤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단 하나, 우리가 이전에 만날 때마다 입에 올린 제라르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애써 피했다.
첫 코스 음식이 나왔을 때 제라르가 말했다.
"일주일 전에 집을 나왔어."
나는 깜짝 놀라는 한편 폭탄선언에 가까운 말을 꺼내기 전까지...
2. 인생의 및은 모두 우리 스스로 놓은 것일까? 77
이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결심 덕분이었지. 비극적 인생 이야기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 아이가 죽고 나서 처음 10년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날 결심했어.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절망에 허덕이지 않는 길을 선택하겠어' 라고......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그 일이 당장 내 마음속에서 사라 지지는 않아.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어. 물론 한순간도 그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유쾌해지려고 애썼지.
벨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벨 할머니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이었는지 강조하며, 자식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평생을 활기차고 유쾌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 나 드물고 귀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말이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느 누가 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 비극을 상자에 깊숙이 집어넣고 밀봉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결코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아이 없이 사는 일에 적응할 수 있을 뿐이다.
벨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비극을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절망을 딛고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썼다.
벨 할머니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벨 할머니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는 언제나 딸을 잃은 아픔이 계속 되었을 테지만 평생 유쾌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벨 할머니는 이후 67년 동안 비극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사에 흥미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115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 공포를 내세워 자신을 피해자나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슬픔의 덫에 영원히 갇혀서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
벨 할머니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 사람이었고, 내가 부모와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괴로워할 때 내 고뇌를 깊이 이해해준 사 람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 이제 다시는 벨 할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 가득 슬픔이 밀려들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내가 울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벨 할머니가 비로소 오랜 고통을 끝내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극을 갈무리하고 지나갈 길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사의 수많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없다. 인생사의 비극 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그늘까 지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괴 로움을 끝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
116 빅퀘스천
40년 동안 전개된 변화의 실상을 목도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되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죽음의 본질이 아닐까? 죽음은 앞으로 전개되는 삶 의 이야기를 앗아간다.
나는 매일이다시피 죽음을 생각한다. 몽테뉴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리라 확신한다. 내가 죽으면 나와 연관되었던 사연, 실망, 성공, 좌절, 내 인생을 특징지었던 복잡한 일들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 2,3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과연 내 책을 읽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인 동시에 읽지 않는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내 책을 읽든지 읽지 않든지 무슨 상관인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 혈연이든 학연이든 나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을 빼고 나면 내 죽음도 그다지 특별하게 여길게 없지 않은가? 내 죽음을 슬퍼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하겠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갈 테고, 다른 수많은 망자들처 럼 내 존재 또한 망각의 묘지에 묻히게 될 것이다.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을 통해 모든 걸 백지상태로 돌려버리는 자연의 섭리가 생명체의 최후를 가혹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블랜드 교수의 자살이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이유는 그 충격적인 사건 탓에 만물의 유한성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랜드 교수의 죽음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가 보게 되는 타인의 겉모습은 종잇장보다 얇은 존재의 표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존재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어둠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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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랜드 교수의 겉모습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삶을 대할 때 '내가 저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다. 나는 블랜드 교수의 짧은 생애를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찾아냈다. 세상에 완벽한 삶은 없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실상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어두운 그림자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블랜드 교수의 죽음을 통해 얻은 교훈이 한 가지 더 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비극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다.
피츠제럴드는 말했다.
나에게 영웅을 보여 주면 나는 비극을 쓰겠다'
미국 작가들 가운데 피츠제럴드는 의미심장한 경구를 수없이 많이 남긴 작가로 유명하다. 피츠제럴드보다 삶의 본질을 꿰뚫는 경구를 많이 남긴 작가는 드물다.
피츠제럴드가 남긴 다음 말들을 보라.
미국인의 삶에 2막은 없다.'
머릿속에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품고도 여전히 지성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면 그는 일류 지성인이다'
'정말이지 어둠에 갇힌 영혼에게는 매일 매순간이 새벽 3시다.'
4. 비극은 우리가 살아 있는 대가인가? 131
사고를 낸 차가 좀 더 빨리 혹은 좀 더 늦게 달려 사라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앞을 지나치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야. 사라의 어머니가 집으로 오는 길에 신호등에 걸려 조금 늦게 그 지점에 도착했더라면………..
사랑하는 딸을 잃고 큰 충격에 빠진 사라의 어머니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세상에서 자식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괴로움은 없으니까. 아무튼 여러 가지 우연한 상황이 결합돼 발생한 재앙이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인간 조건의 불확실성을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 눈에 고정되고 지속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이 언제나 똑같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을 좋아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우정, 늘 일에 만족을 주는 회사, 절대로 싫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을 꿈꾸지만 인생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깨어진 우정, 사양 산업이 되는 바람에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사라져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경력, 갑작스런 연인의 변심은 삶의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고정 되고 지속적인 관계를 바라지만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듯 비극을 부르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김없이 하루에 몇 킬로미터씩 달리고,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을 즐 겨 먹고, 담배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고, 술은 하루에 레드 와인 두 잔 을 넘기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건강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50세에 의사로부터 별안간 암에 걸렸다는...
136 빅퀘스천
마사는 두 달 뒤 죽었습니다."
하워드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예기치 못한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비극은 어떻게든 우리를 덮치죠. 그렇지 않나요?
"사실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 손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있긴 하죠."
하워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자기 파괴적인 일탈 행위로 비극을 자초한 게 얼마나 한심하고 비 참한 짓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어요. 내 자신이 자초한 비극이었죠.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비극을 피하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만 하죠.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아가죠.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비극입니다."
156 빅퀘스천
난 문화적 심리적 정체성은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뉴욕사람의 관점은 결코 확보하지 못했다.
유대교의 법칙에 따르자면 나 역시 유대교 신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어머니가 유대교를 믿으면 아들도 유대교도가 되어야 하니까. 몇 년 전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70대 노인이 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대교는 모계로는 분명하게 이어지지만 부계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유대인일 경우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친다. 아버지가 유대인인 경우에는 자식을 유대인으로 치지 않는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가 유대인인 만큼 내 몸 안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삐딱한 유머 감각, 타인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하는 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믿음, 삶은 너무 많은 문제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만 봐도 유대인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걱정과 죄책감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물려받았다. 실패했을 때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았다. 가령 나의 자기합리화는 이런 것이다.
'사는동안 힘든 일을 겪을 수는 있다. 그 힘든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버지에게도 죄책감이 많았다.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뒤로 무릇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었다. 아버지는 순응주의가 만연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며 가장으로 서의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아버지의 잠재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가톨릭 정신 탓인 듯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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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에는 바흐의 유명한 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도 들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곡을 들을 때면 빈센트 프라이스 감독의 공포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 굉장히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한다. 음반을 사들고 집으로 간 나는 스피커 하나짜리 플레이어에 걸고 네 번쯤 연속해서 들었다. 그때 아버지가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네가 듣고 있는 음악이 대단한 명곡이라는 건 인정한다만 네 번이 나 반복해서 듣다니 너도 정말 대단하구나."
바흐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그날의 충격과 감동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때 나는 음악을 통해 깊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고, 내 영혼을 위무해주는 초월적 존재를 만난 느낌이었다. '초월적 존재'는 '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과 '영혼의 중심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몇 십 년쯤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난 여자와 나눈 대화를 인용해 보겠다.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사교적이고 편안한 성격에 작가로도 성공한 사람인데, 여전히 깊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듯 보여요. 가령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가 정말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대꾸했다.
"당신 말대로지만 나는 음악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위안을 얻죠. 바흐의 <파스칼리아와 푸가 C단조>를 들었을 때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해요."
앞의 몇 페이지를 쓰기 전, 나는 메인 주에 있는 온실에 앉아 E. 파워 빅스의 음반을 들었다.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181
온실에서는 우리 집 정원이 내다보인다. 정원에는 오크나무가 서 있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는 메인 주 해안 마을을 감싸는 만이 있다. 더없이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 뉴잉 글랜드의 해안 풍경이다.
바흐의 음악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듣는 음악, 인생의 영원한 미스터리를 들려주는 음악, 그렇지만 내가 바흐의 음악을 듣는 진정한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짊어진 비탄과 의심, 고통 속에서 위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자면 예술 작품은 마치 종교처럼 우리의 영혼에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이 있다.
***
1983년 2월, 당시 나는 애인과 함께 잘츠부르크 뒷골목을 걸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일요일의 거리는 조용했다.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 부르크에는 장작 타는 냄새와 커피 콩 볶는 냄새가 진동했다. 눈 덮인 도시는 고요 속에 잠겨 있었고, 우리는 값싸고 흥겨운 이탈리아 술집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음식과 술을 많이 마셨던 우리는 삐걱거리는 더블베드가 비치돼 있는 별 하나짜리 호텔로 돌아가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해질 무렵 다시 거리로 나왔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마치 미로 같은 잘츠부르크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성당 앞에 다다랐다. 성당 안에서 합창곡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합창단이 모차르트의 미사곡을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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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뒤쪽 의자에 앉아 몸을 낮췄다. 라틴어의 매력과 음계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우리는 족히 30분 동안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차르트는 미사곡에 영원의 신비를 부여하고, 고귀하고 영적인 영역을 드러내며 일상의 고단한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훗날 내 아내가 된 여자가 내 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세상에 대한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머릿속을 온통 복잡하게 만들고 있던 온갖 시시한 일들에 대한 생각도 완벽하게 사라 졌다.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언급했던 순간 즉, 눈보라 치는 크로스컨 트리 스키 코스에서 순수한 행복을 느낀 그 순간처럼 나는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행복의 영역'으로 잠시나마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위대한 예술작품의 세계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한 단계 고양된 초월의 세계로 끌어올려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는 신을 흘깃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죽음은 늘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죽음과 함께 맞이할 종말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죽음은 우리의 존재를 사정없이 지워버린다.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183
니체가 말하길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 진실이 흥미로우리라는 보 장은 어디에도 없다.' 라고 했다.
자연의 경이를 대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순간도 있다. 별달리 생각을 품을 필요도 없이 고양된 기운을 느끼면 되는 순간이 있다. 브람스의 레퀴엠과 죽음 그리고 강렬한 햇볕에 감싸인 해변의 천국 같은 이미지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이다.
그때로부터 1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그 순간을 종종 머릿속에 떠올린다. 케언스 해변으로 나온 에뮤, 천국을 연상케 하는 빛, 그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신의 존재를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꼈다. -없는 문장- 그러다가 구름이 다햇빛은 옅어졌다. 에뮤는 수풀 속으로 달아났다.
"한잔 더 드릴까요?"
바텐더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기침을 한 뒤 오디오를 켰다. 헤비메탈 음악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바텐더가 맥주를 따랐다. 잔을 들어 올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내 평생 마셔본 맥주 중에서 맛이 최고로 좋은데요." 바텐더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양 빤히 쳐다보았다.
"그냥 맥주일 뿐인데요."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용서하고 내 안에 높이 쌓여 있는 비탄과 상처를 밖으로 내보낼 거야. 그때 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에 감싸여 있었을까? 용서와은혜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보며 내적 평화를 느꼈을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훨씬 현실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끝내 부모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 분노가 나를 갉아먹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 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라면 내 부모를 용서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혼자 전세 냈어요?"
나는 그제야 머릿속이 정리되며 지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1만 미터 상공이었지만.......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다시 거울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넌 쉰다섯 살이야. 55년을 살고 나서야 이제 인생의 중요한 진실 하나를 깨달았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진실!
***
모차르트 오페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피가로의 결혼> 종반 부에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한 가지 있다. 백작이 부인 로지나에게 외도를 들키고 용서를 비는 장면이다.
6. 왜 '용서' 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237
"플로렌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가고 있어. 당신에게 버림받았던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털끝 만큼의 유감도 남아 있지 않아. 당신이 잘 지내길 바라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지난날 처럼 돈독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러자 플로렌스의 말투는 금세 비난조로 바뀌었다.
"당신은 아직 나를 미워하지?"
그 말을 들은 케네스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인용 하고 싶었다. 피터 로르가 험프리 보가트에게 플로렌스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험프리 보가트가 대답했다.
'오래도록 당신 생각을 했다면 아직 당신을 미워할지도 모르지?
케네스는 그 말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떠난 건 최선의 선택이었어."
플로렌스와 헤어진 건 결과적으로 케네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 덕분에 사라를 만나 행복을 찾게 되었으니까. 플로렌스가 월스트리트의 골퍼와 살겠다며 케네스를 쫓아냈을 당시 그는 몹시 분하고 화가 났다. 월스트리트 골퍼는 연봉이 50만 달러가 넘었지만 케네스는 그 언저리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플로렌스에게 버림받은 건 케네스에게는 오히려 다행 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어. 나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내 선택이 실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케네스는 첫 번째 부인이었던 미리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242 빅퀘스천
역시 일맥이 상통한다. 타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소행은 자기 자신을 망치는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용서란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나쁜 기운을 밖으로 점차 내보내는 일이다. 내가 '점차 내보내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왜냐 하면 내 경험에(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에) 비추어 보자면 타인을 용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런던행 비행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비행기의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내 부모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용서하기로 마음먹는다 해도 모든게 일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오랫동안 마음에 쌓아둔 분노를 떨쳐버리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당장 마음이 홀 가분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질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 부모의 언행이 현 상황을 만든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 부모가 내게 계속 짐을 지우는 사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 견딜 만하다는 것 등, 산적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해보였다.
용서는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짊어지고 살아온 화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는 가끔씩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를 용서했다는 편지도 쓰지 않기로 했다. 용서하기로 한 상대에게 '용서한다'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은 용서의 원칙에 위배된다. 타인이 나에게 더없이 끔찍 한 짓을 저질렀지만 너그럽게 용서해주겠다고 하는 건 자기 과시에 다름 아니다. 과시는 용서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6. 왜 '용서' 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257
쉽게 넘어져요. 다시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명심해요."
처음 한 시간 강습이 끝날 때쯤 나도 비로소 무릎을 굽히고 몸의 균 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발을 번갈아 교차하며 비록 짧은 거리지만 얼음을 지칠 수도 있었다. 한 시간 강습이 끝나기를 몇 분 남겨두고 뤽이 나에게 링크를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다.
내 옆으로 휙휙 지나쳐가는 퀘벡 사람들을 보며 내 스케이트 실력이 무척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뤽의 말대로 넘어지지 않고 링 크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뤽이 말했다.
"이제 스케이트의 첫 걸음마를 떼게 됐어요. 내일 링크에서 봐요." 그날 밤, 나는 호텔 방에서 컴퓨터로 공영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문학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고, 스탠리 쿠니츠의 시가 낭송되었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시낭송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아래 네 행을 듣는 동안 큰 충격을 받았다.
아, 나는 내 불행의 부족을 만들어 왔네
그런데 내 부족은 갈 곳을 잃었네!
이 상실의 잔치를 마음은 어찌 감수할까?
시 낭송이 끝나자마자 나는 제목을 얼른 받아 적은 다음 컴퓨터에서 그 시를 검색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시를 네 번 넘게 읽었다.
이 상실의 잔치를 마음은 어찌 감수할까?
7. 중년에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은 '균형'의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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