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독서정리

서른 아홉 번째 책 :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 김난도

by 마파람94 2022. 10. 24.

 


김난도 교수하면 두 가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과 트렌드 코리아가 떠오릅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워낙 각인되어 있다 보니, 이번 책도 그와 유사한 책을 또 쓴 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잠깐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이번 책에서 좋다고 느껴졌던 것은 저자 자신의 자기고백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쓰여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김없이 기억의 연장을 위해 밑줄로 가보겠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고 말했다. 나는 진짜 장례식을 몇 살에 치렀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의 장례식을 치르고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육체를 데리고 살아간다. 하지만 H씨는 반대였다. 육신의 병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정신의 깃대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자꾸만 무너지는 몸을 불굴의 인내로 달래고 또 다스리며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요. 영웅일 것이다.

H씨를 만난 이후 나는 글을 다시 쓸 수 있었다. 정녕 용기를 얻은 것은 H씨가 아니라 나였다.

이 책은 내가 웅크리고 있던 시간 동안 연기처럼 자꾸만 갈라지고 흩어지는 삶을 붙들어 내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 내려간 기록들이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화를, 우울을 절망을 달래고 다스리고 이겨내며 사는 것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원고를 마감할 즈음에는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 내 연일 이어지던 염천의 하늘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던 단비.

14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과학 잡지에서 답을 찾았다. 행성의 중력을 이용한 '스윙바이swing-by' 기술 덕분이라고 한다.

'스윙바이'란 우주탐사선의 항법 중 하나로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궤도를 조정하는 방법이다. '뉴호라이즌스'는 스스로 가속할 만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로켓이 우주선을 발사해주면 관성의 힘으로 이동하다가 주변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날아간다. 즉 우주선이 목성처럼 중력이 큰 행성의 궤도를 지날 때 행성의 중력에 끌려들어 가다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듯 속력을 얻는 것이다. 이처럼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비행 방향을 바꾸고 우주선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기술을 스윙바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다른 행성으로 가는 제일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자체의 추진력을 모두 상실한 상황에서도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힘, 스윙바이. 어느 시집을 읽다가 어쩌면 우주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이나 시 모두, 스윙바이를 이용해 비행하는 우주선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갈릴레오호가 금성과 지구의 중력을 이용하여 목적지인 목성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과 시 역시 그런 악전고투의 연속일 것이다.

 

조동법. 「스윙스윙 그리고 스윙」 중에서

1부 그럼에도 눈부신 날들 21

 


나도 내 추진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과 나와의 중력, 즉 관심, 사랑, 효심, 의무, 책임 이런 것들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완전히 동력을 잃은 듯한 순간에도 나를 비행하게 해주지 않았던가. '뉴호라이즌스'호가 저 멀리 명왕성까지 날아갔듯이 말이다.

이런 시기에는 견디는 것이 힘이다. 인생의 가장 무력한 순간에도 버텨야 한다. 『리어 왕』의 대사대로 "울면서 태어난 이상, 참아야" 하는 것이다. 고은 시인의 시구처럼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하루를 버티듯 우리는 그렇게 서 있어야 한다.

그랬다. 버티면 됐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됐었다. 그저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그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의 유머작가 윌 로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당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지만, 결국 아무데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22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날아보지도 못하고 참담한 망신을 당해야 했다.

반면 라이트 형제는 학자가 아니었다. 단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자전거 수리공일 뿐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끝없는 시행착오. 무수한 테스트와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자신들의 비행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천 번 이상의 실험을 이어가고, 200개 이상의 날개를 제작하고 또 실패한 끝에 11 플라이어 1호 비행을 성공시켰다."

대학자는 망신당하고 수리공이 영광을 차지한 이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가 더 실패에 당당히 마주 서고 이를 응내성의 원천으로 사용해 악력을 길렀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세계 최초의 비행기 발명가'라는 영원한 명예는 하나의 성공에 수천 번의 실험이 따르고, 실험이란 무수히 많은 실패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진화하는 과정임을 아는 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아크라 문서에서 이렇게 썼다. 패배자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다.

패배는 전쟁에서 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실패는 아예 싸우러 나가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싸우지 않으면 패배의 두려움도 없어...

42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온 듯. 외부와 차단된 채 보호받고 어루만져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또 왜 격렬한 전신운동인 수영을 오래 하면 나른하게 피곤해져 불편이 해소되고, 새벽까지 괜한 고민을 더 얹어가며 뒤척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때에는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진다. 혼자서 잘 지내는 것은 어렵다. 고민과 상념의 나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영화나 TV를 보면서 뭔가 다른 일에 정신을 쏟으려 하는데, 나는 글을 썼다. 책이나 칼럼처럼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그냥 낙서처럼 두 서없는 글을 쭉쭉 적어 내려 간다. 영화 <채피>에서 로봇이 자기 영혼을 컴퓨터에 옮기듯, 내 문제의 근원과 스트레스, 감정, 생각 등을 전부 옮겨 적는다. 그러고 나면 머릿속의 문제들이 종이 위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복사'가 아니라 '잘라내기-붙여넣기'의 과정이다. 근심과 고통들을 종이에 적어나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그것들이 지워지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이게 순진한 희망사항만은 아니다. 어떤 실험에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많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그냥 시험을 치르고 다른 그룹은 시험 전에 자신의 걱정에 대해 간략히 글을 쓰게 했다. 시험을 치른 결과 사진에 글을 쓴 그룹...

48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우리가 뭔가를 이루거나 가져서 포만감이 밀려올 때, 그때 '잠깐' 느낄 수 있는 순간적인 감정이다. 항상 느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불시에 누군가가 '지금 행복한가?' 하고 물었을 때, '아, 행복하다'고 대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행복은 내내 땀범벅으로 등반하다가,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우리 뺨을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인생에서 행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진정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찰나이다.

행복의 감정은 왜 이렇게도 짧은가?

이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각도에서 설명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해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행복했던 기억만 오래 간직한 채 나른하게 지내기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을 유지하며 각성한 상태로 있는 것이 위험한 포식자들 틈에서 살아남는데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호르몬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행복감은 주로 도파민이 분비될 때 느낄 수 있는데 이 도파민은 '새로운' 쾌감에 반응하는 것이 어서 익숙해지면 행복감을 계속 느끼기 어렵다. 또 어떤 실험에 의하면 사람은 동일한 금액이라도 이익보다 손실을 약 2.5배 크게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행복보다 고통을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런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1부 그럼에도 눈부신 날들 57

 

"말 좀 안 듣는다고 자기 부하를 다 내보내면, 소대장이 왜 필요한가요? 제대하기 전까지 저 친구를 최고의 병사로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대를 최고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와 나머지 친구들이 저 녀석을 잘 다독여 데리고 갈 테니까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리더란 문제인물을 제거하는 자가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조화시켜 전체를 좀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지금은 그 소대장의 이름도 잊었지만, 아마도 지금쯤은 훌륭한 지휘관이 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다. 나는 나라는 부대의 소대장이다. 게으른 나, 이기적인 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잘 설득시켜서, 내 인생을 최선의 상태로 이끌어가는 리더 말이다. 사실 나 한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수십수백 명이 모여 있는 한 부대를 지도하는 것보다 쉽지 않다. 스스로의 행동과 판단에서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모든 걸출한 무용수들을 길러낸 세계 최고의 스승이 있다. 누구인지 아는가? 거울이다. 긴 삶의 과정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최선의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다양한 '나'를 지휘할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나를 지켜보는 나'다. 그러므로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거울에 비춰보듯 냉철하게 직시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관객인 연극이니까.

66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테이프도 CD도 필요 없는 훨씬 더 작고 가벼운 플레이어! 내게는 그야말로 '꿈의 기계'였다. 이후 셔플, 클래식 등 다양한 아이팟이 세대를 바꿔가며 계속 등장했는데, '와우!'의 연속이었다. 그중에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것은 '아이팟 터치'다. 이건 화면이 있는 아이팟인데 단지 음악만을 재생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어플'을 통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이름처럼 손가락의 '터치'만으로 모든 조작이 가능했다. 세상에 이런 기계는 없었다!

소비 트렌드를 전공하는 나는 여러 전자회사와 함께 '트렌드 향적인 신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그래서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나름 전문가의 의견으로 단언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팟 터치를 처음 본 순간 앞으로도 오랫동안 '애플'을 먹여 살릴 '역대급' 상품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 '전문가적 예감'은 빗나갔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아이팟 터치는 금세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이폰이 처음 발표됐을 때 그것이 아이팟 터치보다 훨씬 더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꿀 제품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발표된 '시점'에는 전혀 동의하기 어려웠다. 너무 일찍 등장한 아이폰 때문에 아이팟 터치가 완전히 죽어버릴 것 이 불 보듯 뻔했다. 이런 경우를 '시장의 자기잠식cannibalization'이라고 한다.

82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신제품이 자사의 기존 시장을 잠식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꺼린다. 다른 경영자였다면 당분간은 아이팟 터치를 주력상품으로 키우고 그것이 어느 정도 포화점에 이 를 때를 기다려 아이폰을 내놓았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회사의 이윤을 극대화시킨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왜 저렇게 서두를 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자기혁신'의 모범사례이지만 일면 '전략의 부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중에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애플이 아이폰 출시를 서둘렀던 이유를 알게 됐다. 장기적인 이윤의 극대화를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돈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 잠자리에 들면서 놀랄 만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다"라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죽음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예견했고, 자기에게 남은 시간을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도 아니고 죽음을 예견한다 해도 아이폰처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리는 없다. 그래도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적어도 관성에 젖은 평범한 일상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과업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꽤 오래 살 것임을 안다면 얘기는 많이 달라진다.

1부 그럼에도 눈부신 날들 83

 

 

하나의 척도일 뿐이다. 그런데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게 되면 이런 척도들이 삶의 의미를 대신한다. 그대는 무엇으로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평판? 지위? 통장 잔고인가? 꾸준히 성장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인가?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는 증상이 있다.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나는 자격이 없는데 주변 사람들을 속여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느끼는 불안심리를 말한다. 아역배우 시절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아 배우로도 승승장구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데다 6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등 뛰 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영화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2015년 하버드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기가치를 확신하지 못한다"며 자신의 가면증후군을 밝혀 화제가 됐다." 19

나는 포트먼의 연설을 보며, 바로 그 '가면증후군'이 그를 세계적인 배우이자 현명한 지성으로 키운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했 다. "나는 사자가죽을 둘러쓴 당나귀일 뿐"이라는 공포가 스스로를 채근하게 만들고 결국엔 그 당나귀가 진짜 사자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연설에서 포트먼은 "그런 공포가 오히려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으니.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걸 자산으로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이 말은 결국 '겸손한 자신감 humble confidence'으로 자기만의 계단을 오르며 꾸준히 성장해나가라는 성공의 황금률을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Better me tomorrow.

모니터 위로 도도히 흐르는 나의 좌우명을 보며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사실 꾸준히 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직 체중밖에 없다는 게 걱정이기는 하지만.

100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그 시간들이 아깝다. 더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쫓기듯이 사회에 내던져져 무수히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초심자의 기간이 아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과 깨달음. 역량과 인간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 시간을 두고 정리만을 말하기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것들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아무리 엉뚱한 그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지금 내 손안에 있다.

80에서, 혹은 당신의 기대수명에서 현재 당신의 나이를 빼라. 그 숫자를 당신 나이에서 다시 한번 빼라. 그 숫자가 당신의 '모래시계 나이'다. 그 모래시계 나이부터 지금의 당신 나이까지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 이 순간도 모래가 떨어지고 있다.

허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

부기

마흔이 넘지 않았거나, 인생의 절반에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래시계 나이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은데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2부 좋은 방황, 비로소 내가 되는 시간 105

 

'황금수갑' 이라는 말이 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정량분석에 탁월한 인재들은 금융, 회계, 컨설팅 업계에서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일을 시작하는데, 막상 매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 자체는 매우 따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소비 수준에 길들여진 탓에 그 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그만둘 수 없게 될 때, '황금수갑'을 찼다고 표현한단다. 물론 이러한 딜레마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래도 넉넉한 보수나 타인의 인정만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일의 영역이 있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일을 대하는 생각 차이는 하루를 채우는 활동의 내용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이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내가 진정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계속하는 것. 설령 그것이 아무리 고독하고 소모적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그뿐이다. 오늘도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백지를 메운다.

2부 좋은 방황, 비로소 내가 되는 시간 163

 

 

 

'나'를 주어로 삼느냐. '상대'를 주어로 삼느냐는 소통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너는 왜 이렇게 지저분하니? 방 정리 좀 해라!"

"자네는 매번 늦는군. 좀 일찍 일찍 다니면 안 되겠나?"

오늘 내가 아들에게 어느 학생에게 했던 잔소리이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너'. 그러니까 주어가 2인칭이다. 편의상 이를 '너화법'이라 부르자.

이 말들의 주어를 1인칭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마치 '나는 내려가고 싶다' 하고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듯이 말이다. 이를 '나화 법'이라 부르자.

"나는 네가 방을 좀 더 깨끗이 정리했으면 좋겠구나."

"나는 자네가 수업에 늦지 않았으면 좋겠네.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말이야."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라면 어느 쪽이 나을까? 당연히 후자. 즉

'나-화법'으로 된 말을 듣는 것이 덜 불쾌할 것이다. 이건 단순히 화술의 문제가 아니라, '비폭력 대화NVC.Nonviolent Communication'라 하여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소통방법으로서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대화법이다.

3부 간절한 것들은 다 일어선다 189

 

 

나 공부를 잘하는 둘째 아들을 칭찬한 적보다 야단친 적이 더 많다. 물론 방심하지 말고 다음에 더 잘하라는 취지였지만,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아들아.

하지만 이렇게 꾸중을 들었다고 해서 '다음에는 꼭 문제를 천천히 읽고, 다 풀고 다시 한번 검토해서 백점 맞아야지!' 하며 결의를 불태울 아이가 있을까? '한 개밖에 안 틀렸네' 하고 칭찬받았다고 해서 '하나 틀려도 칭찬받는구나. 다음부터는 두 개 틀려봐야지!' 하는 아이가 있을까? '다음에는 꼭 백점을 맞아서 더 큰 칭찬을 들어야지' 하는 아이가 더 많지 않을까?

그러므로 칭찬합시다. 칭찬을 받아본 지참 오래됐다. 어릴 때는 시험을 잘 보면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었고, 교내 합창대회에서 우승해 담임선생님께 크게 칭찬받았던 기억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누군가에 게 칭찬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칭찬을 해본지도 오래됐다. 앞서 고백한 것처럼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내 지도학생들에게도 칭찬에 인색해진다. 논문을 잘 썼을 때 "그래. 참 잘 썼다. 수고했다" 한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웬일인지 그 한마디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매출 100억을 달성했습니다!"라는 말보다 "여러분, 위기입니다. 격심 해지는 글로벌 경쟁...어쩌고...

3부 간절한 것들은 다 일어선다 199

 

 

내 아이에게 단 한 가지만 욕심낼 수 있다면

나의 청소년기를 돌이켜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좋은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어 비교적 많은 책을 읽으면서 꾸준히 책도 쓰고 있지만, 고백건대 아직도 지성의 부족을 느낀다.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청소년기의 독서 부족에서 시작한다. 아, 그때 좋은 책들을 좀 더 많이 읽었더라면!

그때 못 읽은 책들은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더라도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감성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예민한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중년이 되어 느끼는 재미는 사뭇 다르다. 어렸을 때 책을 좀더 읽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지혜롭고 풍요로울 것인가!

3부 간절한 것들은 다 일어선다 223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제일 높겠습니 까?

답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 산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만약 바다 한가운데 혼자 있었다면 높아봐야 한라산이나 후지산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의 거봉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습니다. 그 준령에서 한 뼘만 더 높으면 바로 세계 최고의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를, 우리 학교를 히말라야 산맥으로 함께 키워나 갑시다. 바다 위에서 혼자 높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 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야 할 사회적 약자들과 우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선하고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앉아 있기 위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채무자입니다. 선함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 공동체를 히말라야 산맥처럼 만들고 나서, 자신이 한 뼘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학생들이여.

240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