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컬쳐
이 책을 읽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볼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얼마전 선물로 받은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최근 즐겨 입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옷이 전부 마음에 들지만 한가지 옥에 티 같은 불만 사항이 가슴 부근에 있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 입니다. 그 기능을 아름다움과 대체 해야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기능/ 편리 보다는 아름다움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편리한 디지털 카메라 대신 50년 가까이 된 아날로그 카메라를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과물을 만드는 수고로움과 더불어 유일성을 즐긴다 할까요.
밑 줄 그은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엄청난 수고와 인내심. 그리고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는 이런 정원을 만들도록 부추긴 결정적 동기는 무엇일까? 정원은 그저 우연하게 생겨나는 곳이 아니다. 정원은 인간이 가꾼다. 인류 역사가 사바나라는 근원의 기억을 농경문화라는 정착 생활의 뿌리 깊은 경험과 하나로 묶어 표현한 것이 정원 사랑이다.
인류의 근원을 들려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어 에덴이라는 이름의 정원에서 살게 해주었다. 이 정원은 무성한 나무들로 우거졌으며, 먹음직한 과일이 넘쳐났다. 에덴에서 발원하는 물은 다양한 방향으로 흐르며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이 물이 흘러가는 지역은 황금과 보석과 향료가 풍부하게 나는 곳으로 불렸다. 인간은 신의 명령을 받아 정원을 가꾸고 지켰으며, 그곳에 사는 모든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홀로 외로워할 아담을 위해 하나님은 그 짝이 될 인간도 빚어주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빗대 하나를 빼 만들어진 여인은 하와라는 이름을 얻었다. 두 사람은 둘로 나뉜 '한 몸'인 만큼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신과의 관계 역시 화기애애했다. 신과 인간은 서로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었으며, 신은 인간에게 그 어떤 강제도 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는 맛난 과일들이 넘쳐났으며, 늠름한 나무들이 무 성했다. 신은 인간에게 딱 한 가지만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041
세 가지 중요한 차원들, 세 가지 비밀을 풀어볼 열쇠를 찾아낼 수 있다. 그 세 가지는 '결속'과 '의미'와 '아름다움'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 곧 '사회성'과 '종교'와 '창의성'과 맞아떨어진다.
인간 본질을 헤아려볼 깊은 통찰은 웃음이나 앞서 살펴본 문화사뿐만 아니라, 정원의 오랜 역사 안에 담긴 코드를 가려 읽을 때에도 주어진다. 에덴을 향한 우리의 갈망은 무의식적으로 아프리카의 사바나를 떠올리는 기억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정원을 보며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이 갈수록 잃어가는 것을 정원이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계절의 리듬이다.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당장 이룰 수는 없다는 점. 모든 것은 그에 맞춤한 때를 가진다는 점을 정원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꽃이 피고지며 녹음이 우거졌다가 울긋불긋한 낙엽의 가을을 차례로 겪으며 우리는 가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자세를 배운다.
정원에서는 별로 예쁘지 않은 동물과 식물도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정원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맞물려 생태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며 원하는 대로 만들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그럼에도 모든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배 운다.
정원은 그 목적으로만 환원되는게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정원은 내가 거기에 무얼 만든다든가 가꾼다든가 하는 목적만으로 설 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담아낸다.
051
정적인 관계를 꾸릴 각오와 기회에 달린 문제다. 57 인간이 꾸리는 관계와 결속은 건강한 감정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 50
에티 힐레숨의 일기를 읽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다. 그녀가 보여준 깊이 있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 인간을 향한 사랑, 그리고 빛나는 낙관주의는 유대인으로 제3제국에서 힐레숨이 감당해야만 했던 상황과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힐레숨의 긍정적인 태도는 '건강한 심리'를 넘어서는 차원의 것이다. 그녀가 찾아낸 승리하는 인생의 길은 인간과 자기 자신, 그리고 신과의 결속과 뗄려야 뗄 수 없이 맞물린다. 일차적으로 그녀는 율리우스 슈피어와의 감정적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정신적 삶을 꾸려갈 자산을 얻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아와 결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신을 진정으로 우러르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신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면서 그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신뢰하며 관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 이런 자세 덕분에 그녀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이웃에게 연대감을 보일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차원은 서로 뗄 수 없이 밀접하게 맞물린다.
자아와 신과 타인, 이렇게 세 방향으로 든든한 결속을 이뤄내는 것은 에티 힐레숨뿐만 아니라, 의미가 충만한 인생을 살기 바 라는 모든 이들이 지켜야 하는 핵심 비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 정반대의 인생을 산다.
068
홀로 방치된 새끼는 아파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미국의 행동연구가 해리 할로Harry Harlow가 붉은털원숭이 새끼로 실행한 실험 동영상을 보며 내 몸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험은 엄마와 떼어놓은 원숭이 새끼들을 우리 안에 넣어 관찰한다. 우리 안의 새끼들은 두 대리모, 철사를 엮어 만든 일종의 인형 엄마 사이를 오가며 선택할 수 있었다. 한쪽은 우유를 주었으며, 다른 쪽은 부드럽고 따뜻한 천과 솜으로 만들어져 포근한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우유는 주지 않았다. 우리는 당연히 새끼가 우유를 주는 쪽을 선호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새끼는 배가 고플 때에만 우유 주는 쪽을 택했을 뿐, 평소에는 늘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를 찾아 몸을 비벼대며 만족스러워했다"
새끼는 엄마와 떼어놓으면 불안해한다. 엄마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새끼는 울기는 그치지만 핏속의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은 급격히 치솟는다.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손길이다. 달래주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먹을 것 외에도 새끼는 온기, 달콤한 맛의 젖, 엄마의 냄새, 어루만짐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돌봐줄 때 새끼는 지속적인 안정을 찾는다. 이런 결속 욕구는 유인원의 유전자에 식욕이나 성욕과 마찬가지로 이미 각인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특히 인간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080
대략 1천억 개의 두뇌 세포를 가진다. 다만 이 세포들은 아직 연결망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다. 두 살이 되면 세포들은 약 100조의 결합을 이룬다. 리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보다 더 많은 세포 결합을 가지지는 않는다.
인간의 두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체계를 자랑한다. 자연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지금껏 진화 연구의 선구자들이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뇌의 신경 세포 결합은 이런 협력의 대표적인 예다. 다시 말해서 생존경쟁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힘을 모으는 결합이다. 33 인간 두뇌처럼 태어날 때부터 사회의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추어진 자연 체계는 따로 없다.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 두뇌는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리나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엄마의 품이다. 엄마의 목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는 리나가 이미 엄마 배 속에서 부터 알던 것이다. 아기는 자신의 신호에 반응하는 섬세한 엄마, 배고파 울면 젖을 주고, 쓰다듬으며, 안고 토닥여주는 엄마 덕에 생후 첫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호작용을 나누며 관계 맺음의 소중함을 몸소 터득한다. 리나는 정확히 이 발달 단계를 겪는 아기다. 리나의 두뇌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리나의 두뇌는 모든 것을 엄마와의 관계에 맞춘다.
리나는 다른 어떤 무늬보다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소음이 심한 가운데서도 리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리나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엄마의 살 내음이다.
084 에덴 컬쳐
반면 성인인 L의 전략은 부모를 이상적인 부모로 떠받드는 것이다. 부모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그는 목청껏 소리 높여 참 훌륭 하신 분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고서야 비로소 그는 어려서 자신이 애정 결핍으로 힘들어했다는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저 형식적인 지원만 받았을 따름이다.
어린 시절의 감정을 말하거나,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고백하기 꺼려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이해가 간다. 누군들 자신을 의존적이며 애정 결핍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까? 나 역시 자율적이며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옛날의 씁쓸한 추억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은 참으로 멋지고 늠름하게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자신의 옛 상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얼음의 빅은 다른 사람을 향한 친밀함도 막아버릴 뿐이다. 200
096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성을 가진 존재다. 안정적인 결속을 보장하는 환경에서 인간의 사회성은 절로 발현한다. 부모의 사랑으로 내면이 안정된 아이는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변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이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며, 보다 의젓하고 확실하게 행동한다.
정원에서 모든 식물과 동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듯, 인간의 에덴 정원을 이루는 본질 또한 결속이다. 이제 어떻게 모든 것이 서 로 연결되는지 보여주겠다.
사회는 관계들로 이뤄진 거대한 네트워크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네트워크를 근본적으로 신뢰하며 협력하려는 각오가 클수록 해당 사회는 보다 더 안정적이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생을 살기 위해 일정 정도의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밀접하게 맞물려 살아가는 공동생활에서 이 안정성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의 규칙을 지키며, 공통된 가치를 구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존중할 때 성립한다. 오늘날의 국가들이 그 건립의 바탕에 국민을 결속해주는 역사적 사건을 가진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그 좋은 예가 미국의 독립선언 또는 스위스의 뤼틀리 서 약 Rutlischwur" 이다. 국가라는 사회는 공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무감 위에 성립한다.
• 1291년 스위스 건국의 초석을 놓은 서약이다. 옮긴이
100
그러나 사회 규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자세와 공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무감은 청소년들에게서 심한 편차를 드러낸다. 이런 차이는 청소년들이 어떤 애착 관계를 형성했느냐에 따라 생겨난다. 203
나의 부모 세대는 전후 시대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나머지 반 권위주의적 교육에 열광했었다. 그 핵심 목표는 자아실현과 자유 의지에 따른 발달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행은 오래가지 않아 시들해졌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타인과의 관계 정립을 잘할 수 있어야만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잘 가꿀 수 있어야만 우리는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도 높은 확률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심지어 이 확률은 실제 측정되기도 한다.
최근에 이뤄진 전혀 새로운 두 편의 연구는 유아기의 애착 관계가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다루었다. 그 결과는 놀랍기만 하다. 엄마와의 결속이 불안정한 아기, 이를테면 엄마가 직장에 다니느라 충분히 돌보지 못한다거나, 이혼 탓에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기가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그 양육 지원을 위해 대략 1만 2천 유로를 쓴다. 안정적인 결속을 누리는 아기의 경우는 7,400 유로가 든다. 이 비용은 의료보험, 사회보장, 교육 지원, 급식 보조금, 보호관찰까지 아우른 금액이다. 아빠와 관련한 차이는 더욱 심각하다. 아빠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는 대략 1만 5천 유로라는 비용이 관계가 안정적인 아이는 1,450 유로라는 거의 10분의 1 수준의 비용이 각각 든다. 104
부모에게 섬세한 돌봄을 받은 아이는 국가의 지원을 덜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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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욕구를 지켜주기 위해 평생 지칠 줄 모르고 싸워온 앨리스 밀러였지만, 그녀 자신은 친아들과의 관계를 올바로 세울 수 없었다. 자신이 어려서 겪은 아픔을 숨겨두고 제대로 대면하지 않은 탓에 그녀는 아들을 감정적으로 보듬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과거에 겪은 아픔을 알게 되면서 마르틴 밀러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운명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신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1917년에 저 1945년 사이에 태어난 '전쟁 세대'는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트라우마를 앓았으며,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이 트라우마의 심리적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이 트라우마는 이들이 낳은 첫 번째 세대와 그다음 세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은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물음을 속에 품고 전전긍긍했다. 먹기 싫은데 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거야? 어째 서 하나도 버리면 안 된다는 거지? 왜 부모는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면 안 된다고 다 그칠까? "169
침묵을 깨다
자신의 감정 세계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으려면 어린 시절과의 대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아이의 영혼을 헤집으며 짙은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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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떤 연구는 밝혀냈다. 이처럼 젊은이들은 지난 100년 그 어느 때보다 더 오래 부모의 그늘에서 산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독립하면 오히려 부모의 상황을 이해할 눈이 떠질 수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부모의 잘잘못을 정확히 가려보고 용서하며 화해할 길이 열린다. 용서는 부모에게 받은 부당한 학대나 상처를 눈감아주고 없던 일로 돌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용서는 잘못된 것은 잘못으로 분명하게 적시하지만, 이를 두고 더는 원망이나 한을 품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결심이다. 원한은 자신의 영혼만 병들게 하는 독이다. 진정한 용서는 자신이 품은 아픔을 극복할 최선책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에서 탈피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치유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용서가 몸과 마음에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은 과학으로도 입증되었다.173 심지어 기독교에서는 용서를 신과의 관계를 재발견할 수 있는 열쇠라고 말한다. 어쨌거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더 풍부한 결속을 이루고자 갈망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 살피고 그 배경과 원인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일을 비 켜가서는 안 된다.
두 번째 길: 자신에게 감정이입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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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내면 이 보내는 경고의 목소리는 이처럼 귀를 열어주어야 들린다. 실력, 건강, 시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려는 의지는 그 누구도 무제한으로 누리지 못한다.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알아보고 다른사람의 한계도 정확히 읽어내는 자세는 조화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행보다. 바로 이런 조화로움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결속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에덴동산이라는 낙원도 한계를 가진다. 에덴에도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신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정원의 모든 기적은 마음껏 누리되, 단 하나 선악과의 나무는 손대지 말라는 규칙을 정했다. 예외를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전지전능한 신이 뭘 그런 금지를 내리나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관계 논리에 비추어 이 규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은 사랑의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차단하고자 했다. 사랑의 관계는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 지켜야만 하는 선을 가진다. 이 경계는 사랑을 보호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이 경계를 무시하고 선을 넘을 때, 한계를 존중하지 않을 때, 결속은 깨진다. 사랑 대신 선을 넘는 폭력이 자행된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선을 넘으려는 폭력 탓에 늘 싸움이 빚어졌다. 상대방과 나를 가르는 경계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이 경계를 존중해주는 일은 생명을 지키는 첩경이다. 경계 존중은 모든 관계의 근간이다. 280
자기 자신과의 우정은 자신에게 너그럽게 베풀 줄 아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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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같은 활동을 열심히 할 때 우리는 확실히 더 높은 행복 감을 느끼는 것으로 2019년에 이뤄진 대규모 국제 연구가 밝혀 냈다. 198 그동안 심리학은 '영혼 건강spiritual health'은 물론이고, 지 능지수와 감성지수(Q에 빗대 '영성지능 spiritu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도 찾아내 쓰고 있다. 199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형태의 영성 활동이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이 종교의 영향력. 곧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종교 활동과 맞물 릴 때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가장 분명했다. 이를테면 사랑, 감사함, 경외심, 평온함이 느껴지는 정도에 따라 종교적 영성은 인생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200 그러나 이런 감정은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맛보는 감정이다. 사랑, 감사함, 경외심, 평온함은 다시 말해서 관계 감정이다. 동양의 종교나 유대교 또는 기독교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신과 자기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라는 밀접한 결속은 우리 인생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런 관계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영성 활동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신을 사랑하라는 것이 최고의 율법이기는 하지만, 진정 신을 사랑하는지 여부는 이웃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신약성경은 요한 1서에서 확인해준다(요한 1서 4장 20절). 결속이란 이처럼 세 가지가 묶여야만 존재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167
빅터 프랑클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나치스의 테러와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그는 수용소 포로들이 저마다 다른 내면의 갈등 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 저마다 다르게 엄혹한 운명에 맞서는 모습은 프랑클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대다수의 포로는 절망한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런 태도를 프랑클은 '포기하는 피로감 give-up-itis'이라고 했다. 이런 가엾은 수감자들은 더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더는 이겨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쓰라린 속을 담배로 달래려 들었다. 누군가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면 주변의 수감자들은 그가 48시간 안에 죽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226 수용소에서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잃고 말았다는 체념이 당사자를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 원인이라고 프랑클은 진단한다.
프랑클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아야 할 충분 한 근거를 가졌다. 하지만 그는 체념에 빠지는 대신 수용소에서 보내는 시간을 동료 수감자들의 심리를 지켜보며 연구하는데 썼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나간다면, 이 연구로 얻은 깨달음을 세상에 전해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런 관점의 변화야말로 프랑클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이끈 결정적 요인이다.
의미를 갈망하며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최우선의 동기라고 프랑클은 설명한다. 의미를 찾는데 성공 하는 사람은 인생도 성공적으로 살아낸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든 상관없이 불행해한다.
185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저 욕구나 채우며 장수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근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날 그는 멤피스의 '로레인 모델Lorraine Motel' 발코니 에서 괴한의 흉탄에 쓰러졌다.
에티 힐레숨은 자기 자신과의 솔직함, 일체의 꾸밈도 허용하지 않는 솔직함에서 의미를 찾았다. 눈앞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살육을 목도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꾸려가려 용기를 발휘했다.
죽음이 두려워 떠는 사람은 결코 인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 죽음과 벗하며 인생을 살 때 우리는 인생을 확장하며 더욱 풍 요롭게 만든다. 229
힐레숨과 마틴 루서 킹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미를 실현하는 길은 물론 만만찮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리고 기꺼이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의미 문제와 대면하기를 꺼려한다. 사람들은 그저 어떻게 해야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데에 만 매달린다. 그러나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의 대부분은 돈으로 풀리지 않는다. 의미에 목말라 하는 갈증, "의미를 추구하며 살다 보면 언젠가 충족될 거라는 믿음은 인간의 심장에서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다. 230 방송이나 게임, 주의를 흩트리는 온갖 소비에도 의미를 향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 갈망을 동시에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의미를 찾고, 의미를 발 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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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짖으며 반어적 표현을 할 수 없다. 또는 다른 개가 이러더라 하며 인용하지도 못한다. 농담이든 반어든 인용이든 개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만 구사할 수 있다. 인간은 직접 적인 맥락이 없이도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객관적인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경우에 비로소 인간의 언어는 '의미'를 가진다. 언어는 이를 이루는 모든 부분들이 서로 맞물리는 대단히 복잡한 체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언어능력이 오랜 시기에 걸쳐 점차적으로 생성되었다고만 볼 수 없다. 언어능력은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측면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232
인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능력은 곧 언어를 쓸 줄 아는 능력이다.
"정신은 언어 덕분에 세계에 등장했다. 다시 말해서 정신은 언어의 산물이다."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내린 진단이다. 233 언어 덕분에 인간은 동물보다 훨씬 더 큰 사회를 조직해낼 수 있다. 동시에 언어는 개인의 자율성을 키워준다. 개인이 '나'라고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조할 수 있는 것 역시 언어 덕분이다. 문화가 생겨나고 전수될 수 있는 바탕도 언어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이다. 234 언어는 인간에게 동물이 따라올 수 없는 중요한 우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인간을 '신을 그대로 본뜬 형상"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인간이 신을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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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컬처
결정적인 방해 요인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다. 경제에서의 생산이 옛날에는 생필품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오늘날 경제에서의 생산은 욕구를 자극하고 조장한다. 자본주의는 소비 주체를 키워내 며, 심지어 만들어낸다고 이미 1904년에 막스 베버Max Weber는 분석한 바 있다. 250
'우리는 미국을 필요의 문화에서 욕구의 문화로 탈바꿈시켜야 만 한다. (・・・・・・) 사람들을 훈련시켜 옛 물건을 다 쓰기도 전에 새 것을 원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정신 자세를 훈련시켜야 한다. 인간의 욕구는 필수 수요를 능가해야만 한다."
마치 무슨 음모론에서나 볼 법한 이 괴이한 주장은 실제로 폴 마주르Paul Mazur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그는 국제 금융회사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일한 금융 전문가다. 251 이 은행은 2008년 파산하면서 2천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부채를 남겨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 위기 가운데 하나를 촉발시켰다. 이 위기는 인간의 욕구를 조작해서라도 소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발상이 품은 심각성을 고스란히 확인해준 사건이다. 하지만 소비문화는 갈수록 더 강력한 위세를 떨친다. 사람들은 '새 아이폰'을 사지 못해 안달이다. 단지 '새 아이 폰'이 출시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차피 조만간 옛 아이폰 은 더는 쓸 수 없게 되어버린다. 기술적인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계속 개발되는 바람에 옛 단말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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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중독' 역시 우울증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감 상실을 유발한다." 디지털 혁명의 어두운 그늘을 일깨우는 데 앞장선 독일의 신경과학자 만프레트 슈피처Manfred Spitzer는 이렇게 설명한다. 201
디지털 문화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정도를 지키는 일이다. 한 잔의 보르도 와인은 기적과도 같 은 효과를 발휘한다. 기분 전환을 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관련 연구는 확인한다. 그러나 매일 두 병의 레드와인을 마시는 것은 자살행위다. 산뜻하게 기분 전환을 하길 바라는 심정이야 정말 인간적이다. 하지만 너무 잦은 기분 전환은 해롭다. 디지털 문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 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만큼 집중력을 떨어뜨리며 기억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는 특히 아동에게서 분명히 확인되는 사실이다. 어떤 실험은 갓 취학한 아동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플레이스 테이션을 주고, 다른 쪽에는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넉 달이 채 안 된 시점에서 게임기를 가진 그룹의 학교생활과 학업 성취도는 다른 그룹보다 확연히 나빴다. 265
디지털 매체가 멀티태스킹 능력을 키워준다는 주장은 흔히 듣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의 산물 일 따름이다. 정신 능력을 다룬 모든 테스트에서 한 번에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멀티테스킹 선수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집중 하는 사람에 비해 한참 처지는 성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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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일 뿐이라고 보았다. 인간과 동물을 같은 반열에 놓는 다윈의 관점은 그동안 신을 닮은 존재로 인간을 이해했던 생각을 뿌리째 뒤흔드는 폭발력을 자랑했다. 독일 동물학자이자 다윈의 제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1834-1919 은 이 폭발력을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진화론은 우리에게 '최고의 난제'를 풀 열쇠를 쥐여주었다. '자연 안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상이 무엇이냐'는 정말 어려운 물음과 '인간은 어떻게 생겨난 생명체인가' 하는 물음을 풀 열쇠는 진화론이 제공한다. "280
스스로를 신을 닮은 존재라고 여기며 자유의지 또는 영생을 믿는 "허영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터무니없는 망상"이 진화론으로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이 헤켈의 진단이다. 281 이미 1819년 아 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자신의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무한한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반짝이는 구체들, 공처럼 생긴 구체들, 그리고 각 구체의 주위를 도는 훨씬 더 작은 반짝이는 구체들이 있다. 안쪽은 뜨겁고, 겉은 차갑게 굳은 껍질이 덮인 구체 가운데 하나의 껍질에는 곰팡이가 덮인 것처럼 생명체가 번식하며 사는데, 이 생명체는 스스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고 자랑한다더라. 이것이 경험이 말해주는 진리, 현실, 세계다. 282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알쏭달쏭하게만 여기다가 다윈의 진화론 이후 그 뜻을 새기며 놀라움을 금 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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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캡처
제니친은 자신이 굴라크에서 보낸 오랜 세월의 경험이 주는 본질적 교훈으로 유혹에 흔들리는 인간의 이런 취약함을 꼽았다. 다른 사람들만 악한 게 아니다. 공산주의가 나쁜 것도 아니다.
점차 나는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국가들 사이가 아니라, 계급들 사이가 아니라, 정당들 사이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심장 안을 가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 심지어 사악함에 사로잡힌 인간의 심장 안에도 선함의 교두보는 건재하다. 선하기 이를 데 없는 심장 안에서도 악함은 똬리를 틀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296
이렇게 해서 솔제니친은 외적 구조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이론과는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네가 동물이 될지, 아니면 인간으로 남을지 하는 것은 인간됨을 믿는 확고한 의식에 달린 문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알량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오로지 이런 믿음만이 인간이 지닌 선함이라는 은혜로운 천성을 보존해준다. 297 예를 들어 솔제니친이 굴라크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 타라슈케비치 Taraszkiewicz는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타라슈케비치는 자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비결을 솔제니친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나는 흰 것은 언제나 희다고 말해 296
진리의 포착
진리를 길라잡이로 삼으려는 태도는 인간의 타고난 근본이다.
260
에덴 컬쳐
콘크리트 건물만 양산한 것도 아니다. 위대한 걸작도 분명 찾아 볼 수 있다. 1973년에 준공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만 해도 그 과감한 아치형 지붕이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함부르크의 대형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 Eibphilharmonie는 사람 들이 오늘날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을 보며 경탄하듯 앞으로 감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옛날이라고 모든 것이 아름다우며, 오늘날이라고 전부 흉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아름다운 것은 시간을 뛰어넘는 생명력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콘크리트 건물이 갈수록 철거되는 반면, 생트샤펠은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호흡을 함께하리라.
선조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지은 아름다운 건물은 수백 년이 지나도 매력을 발산한다. 피렌체, 앤트워프, 프라하, 빈, 스 톡홀름 또는 로텐부르크 등의 고색창연한 도시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베네치아, 포르투, 두브로브니크와 같은 도시의 시민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유서 깊은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뿐만 아니라, 이 도시들이 끌어들이는 관광객 덕에 적지 않은 경제적 혜택을 누린다. 아름다움은 지속적인 생명력과 함께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높은 경제적 가치를 자랑한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 아름다운 도시들 몇몇 곳을 찾아 여행을 다녔다. 내 딸 세대가 콘크리트 건축에 깊은 불만을 품은 것은 아마도 우리 부모 세대의 책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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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전제와 조건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시대마다 다른 아름다움의 이해는 각 시대마다 전혀 다른 세계관이 그 바탕에 있음을 말해준다.
고대 철학사를 살펴볼 때 그 바탕에 깔린 아름다움의 관점은 그 핵심에서 플라톤이 다져놓은 것이다. 대화편 <필레보스 pillebos)에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르코스는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토론을 벌인다. 나는 김나지움의 고대 그리스어 고급 과정에서 이 대화편을 번역하려 진땀을 흘렸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인내심을 가지고 풀어주던 선생님의 노력 덕에 우리는 철학 텍스트를 읽는 일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실감했다. 이때의 경험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의에 불을 질렀다. 프로타르코스는 욕구를 만족시켜주어 재미있고 즐거우면 행복한 인생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당시 열여덟 살인 나에게 이런 주장은 상당히 현대적으로 들렸다. 저 고대의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옆의 사람이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가려움에 시달리는 사람이야말로 매우 행복한 인간이냐고 반문한다. 긁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느끼는 통에 긁을 때마다 그 욕구는 충족되기 때문이다. 난처한 표정을 짓는 프로타르코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즐겁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며, 오로지 "존재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즐거움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나침이 없으며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태도야말로 아름다움과 덕성의 근본이다.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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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처럼 든든한 신뢰 관계가 다져진 분위기를 이용해 르네가 엘리아네에게 아주 흥미로운 투자 종목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 느냐며 껄껄 웃는다고 하자. 그는 얼마 전부터 부업으로 어떤 투자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르네는 유려한 언변으로 감정적 압력을 전혀 주지 않는 분위기를 꾸미면서도 엘리아네가 피할 수 없게 새로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 이 말을 듣고 엘리아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래도 지난 저녁의 좋았던 기분은 난처하면서도 슬그머니 부아가 치미는 당혹감으로 바뀌지 않을까? 아마도 엘리아네는 그 만찬이 자신을 고객으로 유도하려는 노림수였구나 하고 분통이 터지리라. 부부의 친절함은 진정한 게 아니었나?
엘리아네의 서글픈 배신감은 두 가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아름다움은 이해타산에 따른 목적을 가지지 않아야 그 생명 력을 자랑한다. 더 나아가 아름다움은 진정성이 있을 때에야 제대로 빛을 발한다. 진정성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삼류 통속 예술은 보여주지 못하는 차원이다. 겉모양만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몄을 뿐, 속았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막장 드라마가 그 좋은 예다. 진짜 난꽃보다 더 선명한 분홍빛을 내는 조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진짜 전통음악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저 관광객들을 유인하려고 멋대로 지어낸 민속음악이나, 최상급 형용사와 자극적 감정을 남발하는 탓에 신뢰감이라고는 주지 못하는 소설은 그저 돈벌이라는 목적에만 열중할 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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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판명할 수 있게 해준다. 완벽한 부모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감정적 결합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이치는 우리의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이며, 조부모, 증조부모, 아무튼 모든 세대의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저 에덴의 신화가 들려주는 인류의 신비로운 시작 이후 인간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 상처로부터 불신이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이 갈수록 심해지는 분열이 자라난다. 이런 이치 역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작용한다.
어떻게 해야 어린 시절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지 성경은 감동적이면서도 해석이 아리송한 그림을 보여준다. 창조주가 스스 로 아이가 되는 것이 이 그림이다. 과연 이 그림은 어떻게 해석해 야 좋을까? 나사렛 예수의 메시지는 우리 인간에게 두 번째 어린 시절을 선물하려는 게 아닐까? 예수의 메시지는 당시의 철학과 종교와 완전히 달랐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우주의 창조주는 가장 완벽한 부모보다도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는 아버지라고, 귀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권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인간은 우선 그 옛 길을 철저히 버려야만 한다. 탕아는 일단 백기 투항해야만 한다. 죽음을 각오할 때 부활의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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