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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독서정리

스물 여덟 번째 : 바보가 바보들에게 -김수환 추기경

by 마파람94 2022. 8. 15.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바보가 바보들에게 라는 책 제목이 그의 겸손의 마음을 전달해 줍니다. 남겨주고 싶었던 얘기를 순수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마음으로 전달됩니다. 

 

 

 

7. 715 (7)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 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요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8. 이웃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봐야 한다

 

9. 사랑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 년 걸렸다."

50

 

말 한마디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런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이 시는 제가 방문을 열고 나설 때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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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느 날, 가을 들녘이 보고 싶어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어느 수도원의 손님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여니,

가을 하늘 아래 뜰 가득히 피어난 코스모스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그 모습이 얼마나 청초하고 아름다운 지 잃어버린 옛 고향집을 다시 찾은 듯했습니다.

어릴 때, 그러한 아름다운 뜰이 있는 집에서 살아본 일이 없건만, 내 마음의 고향, 어머님의 모습이 그 꽃밭에서 미소 짓는 듯했습니다.

72

 

용서하기보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

우리가 남을 참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근본 이유는 먼저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성령의 은사(賜) 중에 '눈물의 은사'가 있는데. 곧 내가 죄인임을 깊이 뉘우칠 줄 아는 통회의 정(情)에서 우러나는 눈물이요.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죄의 용서를. 진홍같이 붉은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데서 오는 감사의 눈물.

하느님이 나같이 비천한 존재도 사랑한다는...

74

 

더 깊이 생각하면,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은혜입 니다.

우리는 결코 실의와 좌절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실의와 좌절은 결코 문제 해결이 아니고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뜻을 굳게 갖고 실의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많은 이에게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재기와 희생의 계기가 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에 부딪힌 시련을 이기는 길이요,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길입니다.

79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고 싶은 것은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맨 끝에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죽임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라는 기도의 내용이 이 시와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자신을 비울 수 있을까요?

'나를 비우는 것은 나의 뜻을 거슬러서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탐하는 일, 싫은 사람, 피곤한 시간을 맞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 더욱이 어두움 속에 내던져진 채 위로도 빛도 없는 가운데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와 같습니다. '나'가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비울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우고 내던질 수 있을 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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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의 향수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의 반쪽을 찾는 갈망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쩐지 끌리고 사랑을 짙게 느끼는 상대를 만나면, 바로 천생연분의 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다음에 몇 해를 살아도 자신 안에 여전히 짝을 찾고 있는 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 있는데 사랑하는 '님'이 또 있을 것 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습니다.
이른바 '실존적 고독'으로 결코 부정적 의미의 고독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데서 오는 고독입니다.

83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에게는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의 모습이 깊이 찍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마음속 깊이 영원에의 향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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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한 빈 그릇

인간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불안을 안고 삽니다. 고향에 살면서도 나그네 같은 심정을 한구석에 지니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망향에 젖기도 합니다.
밤하늘은 그런 심정을 더해 줍니다.
감상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모든 인간이 지닌 심층심리입니다.

인간은 빈 그릇과 같습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단지 물질적인 것, 의식주에 필요한 돈이나 생필품만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마음속 깊이 굶주림과 목마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윤리도덕적인 가치만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지식으로도 충족되지 않습니다. 향락 같은 것으로는 더욱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은 그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그 누구든 세상 모든 것을 다 차지한다 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빈 그릇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목마름은 '영원에의 동경,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빈 속은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복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만이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고 갈증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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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예수님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 교사의 물음에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반쯤 죽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누가 이 가엾은 사람을 도왔나요. 사제와 사제족에 속하는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나 제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을 겁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선민사상을 갖고 있는 유다인한테 멸시를 받던 이방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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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는 굉장히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는"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이 한마디 말씀에 요약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동운동에 대해 잘 아는 게 없는 나로서도 기업주와 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기계취급받는 노동자 편을 든 것은 그들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어떤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주와 경찰폭력 허위조작 쫓겨 울면서 성당을 찾아온 여공들을 내친다면 사제나 레위 사람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의 고통을 나누는 것은 노동문제 개입이 아니라 바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사랑입니다

-'기계취급 받는 노동자들의 인권유린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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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에 대하여

겸손은 결코 외적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 앞에 공손한 자세를 취하거나 자기를 무조건 비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참으로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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