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눈에 안 보여서 다양성이 증가되면 좋겠습니다.
또 책꽂이에 준비되어 있는 여러 가지 책 중에 하루키의 에세이를 들고 말았습니다. 뭐랄까요. '난 심각하게 뭔가 받아들이기 싫다'라는 지금 마음이 책을 잡게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하튼 다 읽었는데, 혼자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도 이런 글은 쓸 수 있겠다는 뜬금없는 자신감도 생기기도 하고, 뭐 ~ 그렇습니다.
책갈피 가져와 보겠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공통된 화제 따위 없다'고 마음먹으면 되레 쓰고 싶은 것을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시점에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건 차치하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을, 자유롭고 즐겁게 줄줄 써나가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하고. 아니,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런 배짱이 생겼습니다.
만약 나 같은 아저씨가 아저씨 대상 잡지에 연재 에세이를 쓴다면, 이내 그 '아저씨 동류성'을 의식하고 글을 쓸지도 모르니, 그건 정말 재미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앙앙>은 내게 아주 편안한 작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앙앙> 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소릴 하는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10-11
먹어갈수록 점점 뒤쪽으로 밀려나 지금은 드디어 제일 마지막줄이 돼버렸다. 그래서 출발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터라 그동안 찬바람을 맞고 있어야만 한다. 너무하지 않은가, 경로우대 정신 좀 가지라고하고 싶지만, 뭐 대회 운영상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마라톤이나 철인3종 경기 전날, 옷을 챙기고 출전 번호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신발 끈을 다시 묶는 등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설레고 즐겁다. 마치 소풍 전날의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다.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
언젠가부터 지하철 손잡이 광고에서 여성지 부록을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88
그래서 아내가 함께 갈 때면 투덜투덜 불평한다. "그렇게 레코드가 많으면서 왜 또 사는 거야?" 하고. 어쩔 수 없다. 병 같은 것이니. 그런데 아내도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처지는 못 되는 것이, 호숫가에서 주운 예쁜 돌을 한 아름 갖고 오기도 한다. 부피도 크고 꽤 무겁다. 나도 물론 투덜거린다. “그렇게 많은 돌을 들고 가서 어쩌자는 거야?" 하고 그렇지만 피차 비판은 할 수 없다.
요컨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은 예정에 없던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즐겁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당초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여행하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어찌 됐건, 여행지에서 매일같이 낡은 옷을 버리고 갈 때의 기분이란 상당히 상쾌하다. 셔츠 한 장, 양말 한 켤레, 대단한 무게도 아니지만 나라는 인간이 그때마다 가벼워지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괜찮다면 한번 시도해보시죠. 그런데 거꾸로 말하자면 여행지가 아니면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여행이 주는 효용이겠죠.
레레레 아저씨 얼렁뚱땅 반복이네>라는 만화에 나오는 청소부 아저씨는 어떤 쓰레받기를 사용했더라? 생각이 안 나네.
118
맞장구를 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이, 적당히 시간이 되면 얘기가 끝난다. 그러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변명하는건 아니지만, 세상 사람 대부분은 실용적인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맞장구를 원하는게 아닐까? 오래 살며 이런저런 경험을 쌓다 보니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결론이란 것은 대부분, 이쪽에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이미 결정한 다음 멋대로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러니 나로서는 되도록 예쁜 방석을 준비해두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그건 뭐 할 수 없다.
그러니 무라카미한테 충고를 구하러 오지 말아 주세요. 시간 낭비일 테니. 분명 결론 같은건 내리지 않을 것이며 내린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요.
신문에 보면 흔히 인생 상담 같은 것을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상담자는 되지 못할 것 같다.
126-127
"으음, 그거 큰일이군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네요.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은 소리밖에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미즈호 은행 미나미산도 지점 지점장입니다만, 꼭 알래스카에 가서 맨손으로 곰과 싸우고 싶습니다. 은행을 그만 두고 아내와 헤어져야 할까요?' 하는 상담을 받아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알래스카에 간 지점장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거기에 대한 책임까지는 지고 싶지 않다. 그런건 직접 결정하고 그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 책임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미즈호 은행 지점장까지 됐으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이 지점장인 은행에 예금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물으면 약간 판단이 힘들어지는군요. 자, 어떻게 해야 할지………….
미즈호 은행에는 미나미산도 지점이 없습니다. 지점장의 모델도 없습니다. 이것은 가공의 이야기입니다.
컵에 반
흔히 듣는 말이지만, 물이 반쯤 든 컵을 보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고, 비관적인 사람은 '이제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다양한 국면이 있어서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지만 그 두가지 관점의 어느 쪽을 취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양상은 아무래도 달라질 것 같다.
'이번 총리의 뇌는 반밖에 차지 않았네' 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 번 총리의 뇌는 반이나 차 있네' 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양상은...... 으음, 거의 달라지지 않을지도.
뭐 총리는 그렇다 치고(그렇다 치면 안 되겠지만 얘기가 길어지니), 컵의 물 얘기로 돌아가면 세상에는 확실히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백 퍼센트 한쪽으로 바늘이 휙 기우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하는 범위에서 사람은 대체로
낙관적이기도 하고 대체로 비관적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낙관적인 쪽일지도 모른다.
156-157
된다면 그건 당연한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될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젖은 바닥은 미끄러진다' 이외의 주의문을 보았을 때 오히려 낯설게 느낄지도 모른다.
흔히 '아름다운 일본어'니 '바른 일본어'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것. 바른 것은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말은 그 감각을 반영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물론 말은 소중히 해야 하지만, 말의 진짜 가치는 말 그 자체보다 말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내내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손은 깨끗이 씻었으니 괜찮습니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와인은 선택을 잘하더라도 온도가 엉터리일 때가 많더군요. 안타깝습니다.
206
성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걸 굳이 전국지에 써대지 않아도 좋을 텐데, 하고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선적이다'라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뇨,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벌떡 일어나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못 그런다. 내 속에는 물론 위선적인 부분이 있고(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걸 부정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위선적인 행위다.
일단 전업 소설가라는 간판을 내걸고 생활하고 있으니,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도 있다. 흙덩어리가 날아오기도 한다. 여간해서는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야. 더 비참한 지경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도촬과 데이트 폭력만은 하지 않아야지' 하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니, 그런 일은 원래 하지 않지만요.
지금까지 소매치기한 적도, 스토킹 한 적도, 곰을 괴롭힌 적도 없습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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