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과 서울 밤 거리를 한바퀴 돌았다. 그냥 읽었다.
살다 보면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그럴 때는 힘들어도 잠깐 쉬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순리대로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하게 된다.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에 어느 녹음실에 막내로 들어갔을 때였다. 녹음실에서 같이 먹고 자던 엔지니어 정오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우리도 음악 한번 해볼래?”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삶이 시작됐다. 내가 지금 막 걸어온 길처럼, 인생에도 샛길은 별로 없다.
오래된 반짝임을 따라서 시간의 틈새를 걷다가 '돈의문구락부'도 발견했다.
구락부(俱樂部)는 '클럽'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요샛말로 하면 근대 사교의 장, 즉 서대문 클럽이다.
'새문안극장'도 복원되어 있다.
<맨발의 청춘>과 <고교 얄개>가 여전히 상영 중인지 극장 간판에는 옛날처럼 똑같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배우 이승현과 김정훈은 63년생인 우리 형 덕분에 알게 된 청춘의 상징들이다.
'조름이 오면 팟딱 깨어 불 먼저 끄고 자자
추억의 옛 표어도 어느 벽 귀퉁이에 정겹게 붙어 있다
어떤 공간이 통째로 개발되어버려도
한두 가지는 옛것 그대로 남아 몇 가닥의 기억을 간직해간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그런 기억의 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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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의 날마다 퇴근을 한다.
적재와 뮤직비디오에 대해 얘기하고, 작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권진아와 면담하고,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쓸데없이 참견 좀 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
아직도 불 밝혀진 3층에 세 들어 있는 (네, 저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안테나' 사무실을 나와 조금 걸으면 호남식당이 있다. 직원들이 자주 이용하는 소박한 백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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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 있다. 화려한 조명, 짜릿한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의 함성.
놀이공원 앞에 붙박인 발걸음을 돌리는 데는 솔직히 정말 엄청난 의지가 필요했다.
"이젠 나한테도 저기 마음껏 들어갈 수 있는 돈이 있어!" 괜스레 호주머니 속 지갑 언저리를 만지작대며 농을 하고 등을 돌렸지만,
등 뒤의 함성은 오래도록 발꿈치에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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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과 동대문 시장을 걸으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도 치열하게 살아내겠습니다.
지금 내 삶이 고단하게 느껴진다면 이곳을 걸어보기를 권한다.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내 삶에도 뜨거운 불을 붙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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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흔적들과는 별개로, 홍대 앞에 오니 옛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이십 대 중반일 때 '홍대 록카페'란 게 처음 생겼다. 그때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호프집인데 춤을 춘다는 것이다. 알탕이나 쏘야를 먹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춤을 춘다니. 처음에는 "그게 말이나 돼?" 했다.
록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곳이 바로 홍대 앞이다.
요즘으로 치면 '감성 주점'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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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음악도시>를 진행할 때 내 나이가 이십 대 중반이었다. 그때 '홍대 클럽 뮤지션'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크라잉넛'이었는지, '노브레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처음으로 홍대 클럽 뮤지션을 초대했다.
그런데 도무지 토크를 진행할 수가 없는 거다내가 뭐라고 질문만 하면 "Ye 로큰롤!" 하고 외쳐대는 통에. 이제 인디 뮤지션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이삼십 대를 훌쩍 지난 뒤 언젠가,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듣다가 갑자기 펑펑 운 적이 있다. 이 노래에는 딱 그 시절 홍대 앞의 낭만이 담겨 있는 것 같다얼마나 많은 청춘이 홍대 앞에서 그런 밤을 보냈을까………… 그 애타고 불안한 마음들이 전해지는데
그게 또 그렇게 사무치는 것이다.
내 청춘의 홍대 앞 거리는 사라졌다. 오늘의 거리는 오늘의 청춘을 위한 거리다. 그렇지만 못내, 지금처럼 화려해지기 이전, 가난한 꿈들이 웅크리고 있던 홍대 앞이 자꾸만 아쉬워진다.
지금 이곳에서
'이 밤에 취한 채 뜨겁게 방황하고 있는' 청춘들도 머잖아 나처럼 홍대 앞을 지나치며 "아, 옛날이 좋았지" 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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