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밴드 멤버 전직 가수 이석원의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연구개발 분야에만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도 이러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한 얘기지만-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 책입니다. 가위바위보 이야기도 낯설면서 의미 전달을 잘 한 소재거리였고 이어지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문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아도, 신춘문예에 등단하지 않아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기쁨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ㅎㅎㅎ
희망
그것은 다름아닌 가위바위보였다. 삼만 명이 토너먼트 방식으 그것은 다름 아닌 로 가위바위보를 해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다시 말해 가장 많 은 횟수를 져야 일등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니미럴."
일생에 풀리는 일이라곤 없었고 가진 재능 또한 없었지만 하필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던 가위바위보라니. 중학교 때 창경궁으로 소 풍을 가서 반 대표로 가위바위보 대항전에 나갔던 게 그가 인생에 서 써본 유일한 감투였을 만큼, 일부러 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 턴, 인생 최고의, 유일의,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데없던 장기였는데 마정말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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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라도 쓸까,
철수는 마지막 남은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비를 흠뻑 맞아본 적 없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행운인지. 그것이 누군가의 평생 최고의 행운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철수는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아 뭐라도 써야 할 판이었다. "남은 시간은 오분, 오분입니다. 제출할 내용을 정리해 주십시오."
어떤 걸 적을까 고민만 하다 이십분이 흘렀다. 이제 와서 무슨 새로운 걸 찾아내 적을 수도 없는 노릇하지만 어떻게든 뭔가 써 야 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철수는 어쩐지 자꾸만 구남의 생각 이 났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는데 ・・・・・・ 철수는 말할 수 없이 초조 했지만 생각해보니 만약 진짜로 녀석이 자길 기다리고 있다면, 민 기가 죽은 이후로 거의 오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자길 기다려 주 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은 있으되 하루 한 통도 문자가 오 지 않는 철수였다. 약속은 두어 달에 하나 있을까 말까 했고, 그리 처지가 박복하다 보니 누군가 자길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느 낌에 목이라도 메었던 것일까. 마침내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기 십초 전, 철수는 다 버리고 마지막 남은 종이 한 장에 달랑 이렇게 쓰고 말았다.
오늘 이곳에 와서 구남이란 사람을 만난 것이 내 평생의 행운입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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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강한 충동이 복수심인데 그걸 능가하는 게 궁금증 이라고
그때, 저쪽에서 웬 낡은 리어카를 밀며 누군가 차를 향해 다가 서고 있었다. 천천히… 리어카는 끼릭끼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노골적으로 차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아직 미는 놈의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허리를 조금 구부리고 있었고 남자인 듯싶었다. 옳거니. 나는 필시 놈이 범인이라는 생각에 머리털이 죄다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나가서 치도곤을 낼까. 아니 놈이 범 행을 저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해. 흥분한 나는 내가 유령이라는 사 실조차 잊고 있었다.
리어카는 짜증이 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꼭 늙어 기운이 다 빠진 노인이 밀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 그러고 보니 진짜 노인이다. 그리고 저 할아버지, 내가 아는 사람이야. 동네에 서 애들 산책시킬 때 만나면 우리 애들에게 과자도 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잘생겼다고 덕담을 해주던 착한 분. 근데 그분이 저기서 뭘 하는 거지? 나는 할아버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오늘 도 새벽 일찍 동네를 돌며 남들이 버린 폐휴지들을 주운 모양이었 다. 그런데 마침내 이동을 멈춘 할아버지는 리어카를 내 차 바로 옆에 세우더니 글쎄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잡동사니들이 가득 든 무거운 양동이를 익숙하게 내 차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는 그 옆에 서 땀을 닦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그러니까 내 차는 누구 의 테러를 당한 것이 아니라 남의 차에 저런 걸 올려놓으면 안 된 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노인이 벌인 그저 해프닝이었단 말인가? 순간 나는 약한 전류에 온몸이 감전되는 느낌이었다. 피해의식이 란 참으로 지목해서, 아주 오랫동안 나는 누군가 내게 해를 끼치기 위해 벌인 짓이라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할아버지가 떠난 직후 차 로 달려가 트렁크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때의 그 기스가 맞았다.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한, 둥그런 형태로 뭔가 무거운 물 건을 놓았던 것 같은 흔적들. 나를 겨냥한 누군가의 악의적 메시지 가 분명하다고 믿었던 잊을 수 없던 표식들. 나는 어쩐지 할아버 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야 할 것만 같아 리어카와 함께 벌써 저만큼이나 멀어진 할아버지를 쫓으려는데 그만 천지를 진동하는 문자 소리에 놀라 잠이 깨고 말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글은 어떻게 되고 계신지 궁금해 연락드립 니다.
이런.…… 출판사의 내 담당 에디터가 보낸 안부를 가장한 원고 독촉 문자였다. 그나저나 꿈이었단 말인가.
나는 순간, 비록 아무리 내가 동의한 관계라 해도 이런 대접은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속 깊은 곳에서 어떤 분노 같은 것이 치반 쳐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전 화라도 해서 이 관계 무르자고 이렇게는 못 만나겠다고 어필이라 도 해야 하나?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나한텐 지금 그런 용기조차 없다. 난 지금 내 한심한 처지 탓에 상태가 너무 안 좋은 데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관계는 이 여자가 슈퍼 갑이고, 난을 중의 메가 슈 퍼 울트라 올이니까. 난 당장 내 문제만으로도 너무나 작아져 있고 아무 힘도 없으니까. 관계에 있어 어느 일방의 갑질이 아무리 부당하다 한들 그게 연애관계라면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이 그저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연애란 건 본래 그런 일이지 않은 가 아니, 그와 나는 지금 연애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욱이 이 런 사연은 어디다 얘기조차 할 수 없는 것일 테고, 나는 곧 이 모든 일은 내가 자초한 것이며 내가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빌빌거리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평소처럼 애써 내 탓으로 돌리면서(그게 사실 이기도 하고, 그래야 화도 덜 나니까 평소처럼 영혼 없는 몸단장을 하고는 약속 장소로 나갈 뿐이었다.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는 한 마리 충성스러운 리트리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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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그건 어렵고도 힘든 일. 자신을 이해 해달라고 그토록 간절히 호소하던 소피아도 결국 사랑하는 남편의 신 념을 끝내 이해할 수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엇갈림이야말로 사랑의 인간적이고도 순수한 모습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대문호의 죽음에 슬퍼하며 눈물 흘릴 때, 구석 한편에서 홀로 사십 년간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을 감당하는 소 피아의 모습을 보면서 보는 나도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을 찍어내고 말았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그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불완전성이야말로 사랑을 영원하게 해주는 요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찾게 된 명동 중앙극장에서 본 스웨 덴 영화 「렛미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지 않으면 생명 유지를 할 수 없는 흡혈귀가 그만 인 간인 백인 소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자 몇 날을 망설이다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날 이해할 수 있겠니?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느냐는 물음은 곧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 나, 겉모습과는 달리 나이도 무척 많고, 실은 사람들 피나 빨아먹고사는 뱀파이어인데, 그런 나를 너는 이해해줄 수 있냐고. 그 '래도 괜찮겠냐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고백에 그 자신도 왕따였던 소년 오스칼은 이렇게 대답한다.
너의 나이도 하는 일도 하다못해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상관없다고
그러자, 사랑하는 사람의 그 무조건적인 이해 앞에 마침내 이백 년이나 굳게 닫혀 있던 뱀파이어 이엘리의 마음은 사랑과 신뢰로 가득 차게 되고 두 사람은 그 길로 함께 먼 길을 떠난다. 그 어떤 커 플보다 단단히 결속한 채로.
보자. 사랑하니까 이해하게 되는 것인가, 이해를 주고받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단지 사랑에 있어서 이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나를 명동 중앙극장으로 이끌어 함께 「렛 미인을 보았던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당시 막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그때부터 헤어지던 날까 지 우리가 주고받았던 것은 결국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 하는 끝없는 과정들의 연속 외에 다른 게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열렬하였으나, 어리고(?) 서툴렀던 우리 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만을 구하다 결국엔 서로 또 다른, 더 새롭고 더 깊은 이해를 찾아 떠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는 연습이 조금만 더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 성숙했을 때 서로를 알았더라 면
사랑과 이해는 어째서 한 몸이 아니던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일은 왜 그렇게 많았 던가.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던 너를 이해하는 일만은 어째서 그
토록 어려웠던가.
가끔은 사랑보다 이해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223~225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성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236
너는 빵 먹는 걸 너무나 좋아하지만 만드는 건 귀찮아하므로 제빵사가 될 수는 없었다. 너는 영 화 보길 좋아하지만 영화 만드는 일에 재능이 있지는 않았으므로 그걸 할 수도 없었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 중에 직접 하길 원하거 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네겐 없었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 들의 오로지 향유자가 되길 원할 뿐, 과정의 수고로움을 감내할 만 큼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네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너를 좌절케 했다.
'더 이상 단지 밥과 돈 때문에 일을 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 렸는데, 그럼 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결국 그녀를 만나던 내내 너는 고민의 해답을 찾지 못했고, 끝 내 네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지조차 말해주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제 혼란스러웠던 관계가 어 찌됐건 정리되고 밥을 위해 또다시 쓰기 싫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너는 정확히 그녀를 만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 태그 열망 때문에 다른 건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뿐인 가. 그와 동시에 너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너를 발견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돌아오지 않을 사람의 연락에 또다시 목매며 기다리게 된 자신을 너는 정신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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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기를 좋아한다.
정말로 솔직한 전기는 대상의 특별함과 위대함을 강조하기보다는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곤 했기 때문에, 대인 관계에 서툴고, 성공과 돈에 집착하고, 인물의 이기적이고 야비한 모습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런 전기들은 세상에 나만 바보 천치 거나 속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에릭 클랩튼처럼 위대한 뮤지션도 이렇게 약해 빠진 인간이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보통 사 람들이야 오죽하랴." 이런 식으로, 자신이 저지른 미숙함이나 실수 같은 것들에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질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관대함을 갖게 해 주었던 것이다.
자책하지 않게 되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책 한 권 읽음으로써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남는 장사 도 없을 것이다.
게 아니라 단지 원치 않는 글쓰기에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저 바 다 건너 프랑스의 노작가가 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수수한 단편 하나가 일깨워 준 것이다. 이토록 나른하고 짧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바로 내가 원하던 것으로
행복했다.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읽을 수 있게 된 다음엔 이 제야말로 뭔가를 써야 할 때. 과연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물음이 바로 '나도 할 수 있을까'라 는 것이다. 해 보면 알게 될 것을 왜 물어볼까. '필사를 하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나요?' 같은 질문에 내가 결코 대답을 해주 지 않는 이유도 조금이나마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묻지 않고 바로 시작을 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썼다. 쓸모가 있든 없든 똑같은 글이 되풀이되고, 한심한 글밖엔 나오지 않았어 도 종일 펜을 놀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그 무엇도 아닌 글이라 해도 그저 쓸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마 음으로
그러길 석 달쯤 하던 어느 날 새벽, 그날도 눈을 뜨자마자 컴퓨 터로 직행해 글을 쓰렸는데, 문득 섬광처럼, 잊고 있던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예전에 글이 한참 써지지 않을 때 친구에게 들려줬다가 면박당하고 말았던, 세상에서 가장 운 없는 사람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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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대회를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 물론 단지 썼다는 데에 의의를 뒀을 뿐 그게 글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황당하고 엉뚱해도 내가 쓰고 싶으면 쓰자는 생 각에서 나는 그것을 써 내려갔고, 막상 글을 본 친구의 재밌다는 한마디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쓴 글을 출판사에 보내 좋은 반응도 얻었다.
작은 것이 풀리면 큰 것도 풀리나니. 하나가 풀리면 두 개도 풀 리나니.
나는 이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일을 찾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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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45.
관련해서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사람은 이른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렇지 못할 때보다 정말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될까. 살면서 간절히 원하 던 어떤 것들을 갖거나 이루게 되었을 때, 그 행복감이란 건 늘 아 주 잠시뿐이었다. 결국, 매일 받는 잔칫상이 계속 좋을 리가 없기 에 살아 있는 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별 표정 없는 일상이고, 그렇 기 때문에 그토록 바라던 것을 찾았다고 해서 내 일상이 개벽을 하 듯 변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사실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힘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어 썼다고 남들이 무조건 봐주는 것도 아닐 테니까. 다만,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어떤 갈증 하나가 조금 희미해졌다고 할까. 단지 그걸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을 했냐고 묻는다면 세 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라고 답하겠다. 기타리스트가 악기를 고를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아주 미세한 소리의 차이로 가격과 레벨에 큰 격차가 생긴다. 단지 아주 조금 더 좋은 소리를 위해 몇 백, 몇 천만 원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옷도 그렇지 않나. 잘 만들어진 명품 짝퉁과 진품의 차이는 어째서 전문가들밖엔 감 별해내지 못할까. 그 차이가 미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큰돈을 지불하는 것이고.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별다를 것도 없는 평온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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