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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마흔 아홉번째 책 :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by 마파람94 2021. 12. 6.


바둑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약 5년 전 식사자리에서 인공지능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맞은편 선배의 얘기가 떠오릅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절대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말이 완전히 뜬금없는 이야기가 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조훈현 9단은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의 반열에 있던 한 시절을 풍미한 인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그 시절 바둑을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입니다.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밑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생각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그 답을 알려주는 도구다.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상의 작은 선택마저도 남들의 생각을 물으며 눈치를 보아야 한다.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도움을 구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민을 상담해주는 인생 멘토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혼자 힘으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는 그만큼 불안한 자아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사람들은 행복이 돈이나 명예, 성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온다고 믿는다. 자아는 자존감이다. 자아가 단단하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한다.

물론 이러한 자아는 거저 얻을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과 자기 성찰,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디 가서도 눈치 보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1단 | 바둑고수가 말하는 생각의 법칙 37



"나는 세상이 바둑처럼 경쟁만 있고 1등만 살아남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삶을 살던 자신만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토 확장이 꼭 성공과 출세. 승리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꿈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영토 확장일 것이다.

항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갈구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왕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남과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뛰어들어야 한다. '어차피 안돼', '괜히 다치지 말자'라는 식의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1등이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가능성의 최대치까지 올라가봐야 한 다. 아직도 정복해야 할 영토는 무한히 남아 있다.

3단 |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85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빈틈이 어디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이창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의 바둑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창호가 두터운 행마와 슈퍼컴퓨터 같은 계산력으로 나의 허점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딱 반집의 허점을 창호는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는 자가 강한자 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바둑에는 실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류'의 충돌이다. 나의 류와 이창호의 류는 너무나 달랐다. 아니, 이창호의 류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류였다. 바둑이라는 진리를 깨우치는 데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창호와 나는 전혀 다른 경로로 그 길을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은 물론 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나의 허점을 창호만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창호의 허점도 있다. 그걸 훗날 이세돌이 나타나 파고들었다. 바둑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진보한다. 나와 전혀 다른 '류'를 가진 이창호가 나를 이겼고, 또 이창호와 전혀 다른 '류'를 가진 이세돌이 이창호를 이겼다. 누군가 이세돌을 이기려면 또 다른 새로운 '류'를 가진 자가 등장해야 한다. 박정환과 김지석이 이세돌과의 격차를 서서히 좁혀가고 있는 것은 새로운 류의 등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조짐일 것이다.

새로운 '류'란 이기는 '류'다. 그것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허점을 파고들면서 탄생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류'라고도 말할 수 있다.

3단 |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95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나는 휠체어를 타면서까지 대국에 임한 조치훈도 그 대국을 받아들인 고바야시도 모두 멋지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대국 장면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쪽에 불리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팽팽히 싸웠고 그중 한 명이 이겼을 뿐이다.

스스로 강한 자는 절대로 변명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지더라도 당당하다. 내가 승부에 졌다면 그건 내가 덜 강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고 더욱 노력하면 된다.

나는 고수가 갖춰야 할 싸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체념하거나.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설렁설렁하는 건 승부사의 자세가 아니다. 설렁설렁 싸우는 건 얕잡아본다는 뜻이다. 상대방은 설사 이긴다 해도 기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나를 강력한 경쟁자로 인정한다면 최선을 다해 나를 격파해주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스포츠계 여러 분야에서 승부조작, 담합, 편파판정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축구 배구에 이어 배드민턴과 씨름까지 홍역을 앓았다. 나는 이 문제가 꼭 스포츠인들의 인성 문 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압력과 돈에 대한 유혹, 또 조직이 결정하면 선수는 따를 수밖에 없는 문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3단 |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101



격투기 선수들이 링 위에서 눈알을 부라리고 기합을 불어넣고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다. 테니스나 탁구 시합에서 선수들이 서브를 하면서 괴성을 지르는 것도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서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그만큼 나의 기운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매순간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태도로 행동해야 한다. 특히 결정적인 승부의 순간이라면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 더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단순히 표정과 자세만 바꾸어도 순식간에 얼마나 기운이 달라지는지 놀라울 정도다. 자신감은 든든한 배경, 탄탄한 실력, 멋진 외모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일종의 자기애, 최면이기도 하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못할 게 없다. 저 사람에 비해 내가 꿀릴 게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수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멋지게 외모를 꾸미는 것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어쩌다 자식들이 선물한 빳빳한 깃의 하얀 와이셔츠를 입거나 색이 고운 넥타이를 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지고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다. 자신감은 이렇게 백 화점에서 간단하게 사 올 수도 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을 기를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시험과 테스트에 도전하는 것. 수없이 면접을 보는 것,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 낯선 일에 도전하는 것. 더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는 것 등. 이런 경험을 반복해야만 더 노련해지고 영리 해진다. 처음에는 자꾸 실수를 저지르고 야단을 맞아서 스스로 초라해지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감이 추락하겠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야만 자신감을 쟁취할 기회, 즉 성취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수없이 져야 한다. 따라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자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상황, 어떤 상대 앞에서도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어깨를 당당히 펴자 "아합!" 하며 큰 소리로 기합을 불어넣자. 그리고 문을 열고 당당히 걸어 들어가자.

108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3단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 109



매도 좋은데 왜 나는 이런 못생긴 모습으로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말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은데 왜 나는 이 모양일까. 다른 사람들은 저 나이에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한 걸까……

하지만 저 멀리서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또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좋겠다. 직장도 괜찮은데 다니고 여자 친구도 있고 인상도 좋고, 여러모로 나보다 낫구나 참 부럽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불공평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다 똑같다. 누구나 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부러움이 단순한 질투를 넘어 야심과 성취로 이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만 한다. 하지만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 벽을 뛰어넘어 높이 올라간다. 더 이상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당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인물을 찾자면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파란만장 한 인생을 산 사람은 바로 차민수일 것이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차민수는 내가 일본에서 귀국해서 기원에서 만난 친구 다. 말이 서툴러 낮을 가리고 수줍어하던 나와 달리 차민수는 멋진 외모 만큼이나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걸고 잘 웃는 멋진 청년이었다. 당시 그는 아직 입단 전이었지만 이미 프로를 위협할 정도의 아마 강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영등포 기원에서 차민수에게 당해보지 않은 프로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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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과 자부심은 굳이 없어도 된다. 직업 자체가 평생의 꿈일 수도 있고 실현 방법도 있지만 직업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다름 아닌 생계다. 먹고살기 위해 누구나 가져야 것이 직업이다. 어떤 직업을 가졌건 그것만으로 충분히 신성.

많은 사람들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럼 하고 싶은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 당장 먹고살지 막막해서 못하겠다고 한다처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더 중요한 건 사는 것이다. 먼저 먹고사는 부터 뚫어야 한다. 50만 이든 100만 이든 먹고 살수 있는 일부터 만든 후 다음에 꿈을 꿔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도 그렇게 위해 초라하고 치사하게 살면서 우리를 키워내셨다.

1999년 어머니 생신날 나는 춘란배 결승을 치르러 중국 있었다. 결승 상대는 이창호. 서로 한판씩 승패를 주고받은 겨루는 마지막 대국 간절히 이기고 싶었다. 한 전 국수 도전자가 되어 몇 년만 이창호로부터 왕관을 되찾아왔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무려 15 우승 가족들가지고가 서 아직 아빠가 건재하다는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노환으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어머니의 생신날 가장 값진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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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업인들은 단순히 비즈니스만 알아서는 안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여 빠르게 대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초보들은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 초보들은 패싸움이나 대마싸움 같은 작은 부분에 집착하여 전체를 보지 못한다. 바둑을 둬본 사람들은 19로의 바둑판이 얼마나 넓은지 잘 안다. 정말이지 수많은 변수가 있고 분할된 여러 구역이 있다. 한쪽에서는 치열하게 공격을 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필사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고, 또 다른 한쪽은 돌을 포기하고 훗날을 도모할 것인지 끝까지 사수할 것인지를 결단해야 한다. 게다가 구역들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연결된다. 고수가 된다는 건 서서히 이 연결 고리를 깨우치는 것이며 스스로 그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둑 관 위에 있는 모든 돌이 다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를 리더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고수는 자신의 돌의 리더가 되어 바둑판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 초보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순식간에 통제력을 잃는다. 아직까지 이런 총체적 위기를 관리하기에는 판단력도 리더십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둑 초보들은 자신에게 이러 한 약점이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기보 분석과 이론 암기, 그리고 실전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면서 승단을 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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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선생은 그냥 선생이 아니고, 상사는 그냥 상사가 아니다. 그들은 나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지만, 상사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보고 있고 다른 부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고 있고 회사 전체가 돌아가는 것까지 살피고 있다. 그들이 절차를 중요시 여기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오만에 빠진 사람은 결코 고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계속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고수가 될 수 있다.

일본 유학 시절 나의 실전 스승이었던 후지사와 선생은 30대 중반에 일본 최고의 기사가 되었고 예순일곱의 나이에도 왕좌전에 올라 일본 바둑에서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운 분이다. 하지만 바둑을 얼마나 아 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100중에 6~7밖에 모른다"라고 대답하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기자가 똑같은 질문을 하자 선생은 대답을 바꾸었다.

“바둑이 100이라면 나는 그중에 하나만 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세상 사람들은 바둑 9단이면 입신의 경지라고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르는 건 똑같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바둑이라는 끝없는 길에서 100미터를 뛴 것과 1 킬로미터를 띈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전체로 보면 아득하긴 매 한 가지이다. 하지만 초보의 입장에서 본다면, 100미터와 1킬로미터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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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복기가 승자에게 쉬운 것도 아니다. 기쁨을 감추는 것도 힘들지만 상대와의 관계에서 오는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들다. 이창호가 나의 타이틀을 다 가져가던 시절, 우리의 복기 장면은 보는 사람들이 마음을 졸일 정도였다. 나를 이긴 미안함에 창호가 나의 질문에 대답도 못하고 진땀만 흘렸던 것이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 한다.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기를 잘해두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좋은 수를 더 깊이 연구하여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복기는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승부의 세계에서 복기는 기본이다.

자신이 실수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바라보는 건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승부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승리는 오직 실수를 인식하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복기의 의미는 성찰과 자기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

174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복기를 통해 꾸준히 자아성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많은 바둑고수들을 만나봤지만 그들 중 교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을 텐데도 오히려 더 겸손하다. 그 이유는 정상에 올라서기까지 수많은 천재들에게 짓밟혀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짓밟히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우주에 무수히 많은 점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내 몫을 다하자고 생각할 뿐, 내가 대단하다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질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복기를 한다. 누구나 하루가 끝나면 잠자리에 누워서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릴 것이다.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일, 칭찬을 받은 일, 회의 시간에 벌어졌던 일, 프로젝트의 진행과정 등을 떠올리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 창피한 일, 너무 후회되는 일은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를 빨리 극복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아예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극복하되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진단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 안에 그린 어설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6단 | 아플수록 복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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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본 기사들이 우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규모를 축소하고 결국은 중단해버린 후지쯔배나 도요타 배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 된다. 우리가 진다고 해서 문을 닫아버리 면 중국도 우리에게 문을 닫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바둑이 자멸하는 길이다.

지금 세계 기전의 3분의 2를 중국이 열고 있다. 또한 중국의 갑조을조 프로리그에는 한국 기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중국 프로리그는 한국보다 크고 대우도 좋기 때문에 기사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 마치 야구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길 꿈꾸는 것처럼 지금 한국기사들은 중국 리그 행을 꿈꾼다.

현재 정상권 선수들은 거의 모두 갑조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프로리그에 대한 중국 대중의 관심도 높아서 현지에서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등의 인기는 연예인 못지않다. 또한 프로리그 덕분에 수입도 껑충 뛰었다. 중국 바둑 덕분에 전 세계 프로기사들이 먹고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바둑이 문을 닫는다면 그것은 이 넓은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느 분야든 발전하기 위해서 경쟁과 교류가 필요하다. 부족한지는 더 배우기 위해서 강한자는 그 지위를 즐기고 그 힘을 나눠주고 또 미래의 경쟁자를 키워내기 위해서, 최대한 문을 열고 교류해야 한다.

212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바둑은 승부를 내는 동시에 음악이나 회화와 같이 개성을 표현하는 엄연한 예술이야. 예술이라면 우리들이 보고 감동하는 독특하고 창조적인 차원의 세계가 무르녹아 있어야 해. 오직 이기기 위한 승부에 앞서서 자기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생각해야 해. 자네는 넘버원이니까 이제 그러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면서 "나도 일본의 젊은 기사들이 자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엄하게 단련시킬 것이니 자네도 열심히 노력하라"라는 말로 끝을 맺었 이창호도 이 편지가 무척 감동적이었는지 자신의 자서전인 부득 탐승」에 전문을 공개했다. 슈코 선생님의 말씀대로 노력하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슈코 선생님에게 '괴물'이라는 칭호가 붙은 건 무엇보다도 불굴의 의지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유분방한 사고답게 자유분방한 삶을 사셨다. 평생을 알코올에 의존하며 살았고, 여자도 많았고, 경륜과 경마로 빚까지 져서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은 불굴의 정신으로 일어나셨다. 제2회 기성전을 치를 때에는 빛 때문에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다. 선생님은 목을 매달기 좋은 나무를 찾은 다음 대 국장으로 향하셨다. 그리고는 무려 2시간 57분의 장고 끝에 둔 수로 대마를 잡으며 2승을 올렸다. 그 후 내리 두 번을 더 이겨 그 해 기성전 방어에 성공하였고, 계속해서 기성전 6연패를 달성하여 남은 빚을 모조리 갚을 수 있었다.

8단 | 사람에게서 배워라 231




대국 스케줄, 이긴 바둑과 패한 바둑 등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험한 길을 헉헉거리며 계속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때가 찾아온다. 머릿속에서 바둑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승부에 대한 초조함도,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도, 모든 잡념도 사라진다. 마침내 조훈현이라는 내 자아까지도 사라진다. 그저 두 발로 산을 오르고 있는 몸뚱아리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완전히 나를 잊어버리고 오직 산을 오르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상하다 싶을 만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몸에서는 땀이 나고 숨이 가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가뿐하고 에너지가 샘솟는다.

내가 40~50대에도 한해 100국 이상의 대국을 치르고 간혹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날마다의 등산이 선물해준 체력과 지구력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체력이다. 바둑을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지능 스포츠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지막 한수를 둘 때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버텨내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 다음은 체력이고 체력 다음은 정신력인데, 정신력 조차도 결국은 체력에서 나온다.

등산을 통해 날마다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모든 잡념을 비우는 습관 이 바둑에도 일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해야 할 일들과 목표, 의무, 중압감 등에서 벗어나는 훈련은 정신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가 있다.

9단 심신의 균형을 찾아라 253



몇 시간을 나 혼자 있기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상처가 조금씩 추슬러져서 문을 열고 나와 세상과 다시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고독은 스스로 혼자이고자 선택하는 것이라고 고독도 고립도 혼자 있는 상태인 것은 똑같지만, 고독은 고립과 달리 내 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시간 만은 아니라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고독 속에 자신을 떨어뜨린다. 이들은 일부러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오랜 시간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모든 위대한 작품, 뛰어난 실력은 고독을 통해 탄생한다. 혼자서 고민하고 사색하고 연습하는 시간 없이 어떻게 실력이 쌓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성공의 화려함만 본다. 사람들에 둘러 싸여 능력을 발휘하고 박수를 받는 멋진 의사, 멋진 변호사, 멋진 CEO의 모습만 동경한다.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밤을 지독한 고독에 갇혀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바둑기사들은 고독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바둑을 공부하는 과정도 고독이고 승부를 펼치는 과정도 고독이며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도 고독이다. 하소연할 수도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다. 혼자 감당해야 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10단 생각할 시간 만들기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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