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일곱 번째 책 1984입니다. 명불허전입니다. 1984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이미지가 남았습니다. 몇가지 글자 조합이 떠오릅니다.
채링턴 상점 2층, 101호, 줄리아와 교외 외곽의 들판, 화장을 한 줄리아, 빅브라더, 오브라이언, 텔레스크린, 당을 전복시키려는 시도, 임마뉴엘 골드스타인,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 전쟁은 평화, 무지는 힘, 1984년의 고찰,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현재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네개의 손가락, 오직 권력-순수한 권력.
마지막에 윈스턴은 죽음을 맞이하며 빅브라더를 사랑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딘가 가까운 곳에 조용히 흐르는 맑은 시내가 있 고, 그 냇가 버드나무 아래의 물속에 황어 떼가 즐겁게 헤엄을 치고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머리의 여자가 들판을 가로질러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번의 동작으로 옷을 벗어서는 거만하게 옆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녀의 몸은 희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아무런 욕망도 일지 않았다. 그는 사실 그녀의 알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가 옷을 훌렁 벗어서 던지는 동작에 감탄했을 뿐이었다. 우아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그 동작은 모든 문화와 사상 체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아울러 빅브라더와 사상경찰 마저 그 단 한 번의 멋있는 팔 동작에 의해 무시되어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동작 역시 옛날에나 있던 것이었다. 윈스턴은 잠을 깨면서 "셰익스피어"라고 중얼거렸다.
텔레스크린에서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호루라기 소리가 삼십 초 동안이나 계속 흘러나왔다. 7시 15분, 관리 들이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윈스턴은 몸을 비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벌거벗은 채였다. 외부당원에게는 일 년에 의복비로 겨우 삼천 쿠폰이 할당되는데, 잠옷 한 벌만해 육백 쿠폰이었다. 그는 의자에 걸쳐놓은 지저분한 내의와 바지를 주워 입었다. 삼 분만 있으면 체조가 시작될 것이다. 옷을 입은 순간 그는 몸을 구부리면서 발작적으로 심한 기침을 했다. 이런 기침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거의 매일 터져 나왔다. 지독한 기침 때문에 허파가 텅 빈 것 같았다.
48
어떤 분명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브라이언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전보다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오브 라이언을 위해서, 아니 오브라이언 앞으로 일기를 쓰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읽지 않을 테지만,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거를 부인하라고 강요했 다. 이것이 당의 가장 궁극적이고도 핵심적인 명령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답할 수 있기는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미묘 한 문제를 논쟁으로 몰고 감으로써 당의 지성인들이 자기를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치 앞에 거대한 힘이 버티고 있기라도 한 듯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가 믿고 있는 것이 옳다! 당은 틀리고, 그는 옳다 명백한 것, 순수한 것, 진실한 것은 보호받아야 한다. 자명한 것은 진실이므로 끝까지 사수하라! 이 세계는 굳건히 존재하며, 세계의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허공에 던져진 물체는 지구의 중심부를 향해 낙하한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는 투로, 그리고 중요하고 자명한 이치를 밝히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114
어떤 분명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브라이언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전보다 더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오브 라이언을 위해서, 아니 오브라이언 앞으로 일기를 쓰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읽지 않을 테지만,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편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당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거를 부인하라고 강요했 다. 이것이 당의 가장 궁극적이고도 핵심적인 명령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답할 수 있기는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미묘 한 문제를 논쟁으로 몰고 감으로써 당의 지성인들이 자기를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마치 앞에 거대한 힘이 버티고 있기라도 한 듯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가 믿고 있는 것이 옳다! 당은 틀리고, 그는 옳다. 명백한 것, 순수한 것, 진실한 것은 보호받아야 한다. 자명한 것은 진실이므로 끝까지 사수하라! 이 세계는 굳건 히 존재하며, 세계의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돌은 단 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허공에 던져진 물체는 지구의 중 심부를 향해 낙하한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는 투로, 그리고 중요하고 자명한 이치를 밝히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114
"여기선 안 돼요. 조금 전의 거기로 돌아가요. 그곳이 안전하니까요."
줄리아도 그렇게 속삭였다.
둘은 발밑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의 공터 쪽으로 걸어갔다. 어린 나무들로 둘러싸인 평평 한 곳에 이르자 그녀가 돌아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숨결은 거칠고 급해졌다. 그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 올랐다. 잠시 그를 쳐다보던 끝에 그녀가 제복의 지퍼에 손을 댔다. 바로 그것이었다! 꿈속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가 상상했던 대로 그녀는 재빨리 옷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 쳤다. 그것은 모든 문명을 무화(無化)시키는 거대한 몸짓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태양 아래에서 하얗게 빛났다 그러나 한동안 그는 그녀의 육체를 바라보지 못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대담한 미소를 띤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 박 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전에도 이런 거 해봤어요?"
"그럼요. 수백 번, 아니 수십 번 해봤어요."
"당원들하고요?" "네, 늘 당원들하고였어요."
"내부 당원들하고 했어요?"
"그 돼지 같은 놈들하고는 안 했어요. 그놈들은 기회만 있으면 하려고 야단이죠. 겉보기처럼 점잖은 놈들이 아니예요."
그의 가슴이 뛰었다. 당원들과 수십 번이나 그 짓을 했다고?
제2부 177
배포하는 창작국의 한 부서인 포르노로 차출되기도 했다. (이것은 그녀의 평판이 매우 좋다는 증거이다.) 포르노과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부서를 '쓰레기장' 이라고 부른다고 그녀는 말했다. 포르노과에서 재직한 일 년 동안 그녀가 관여한 일은 '화끈한 이야기'나 '여학교에서의 하룻밤' 같은 제목의 소책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노동자 계급의 젊은이들이 불온서적이라도 사듯이 그런 책을 몰래 사간다는 것이었다.
"그 책들 어떤 내용이지?"
윈스턴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내용이에요. 지루하기만 하고 재미 하나 없어요. 줄거리는 전부 여섯 가지인데, 그걸 약간 씩 바꿔서 만들죠. 저는 물론 만화경만 담당했어요. 수정 반에서는 한 번도 일한 적이 없어요. 원래 문학적 소질도 없어서 수정반에는 맞지 않아요."
그는 포르노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 우두머리를 제외하고 모두 여자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성적 본능을 억제하는 힘이 강하므로 그들이 취급하는 음탕한 것들에 의해 타락할 위험성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거기서는 결혼한 여자도 좋아하지 않아요. 여자는 늘 순결해야 한다고 떠들어요. 순결하지 않은 여자 하나가 끼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예요."
그녀는 열여섯 살 때 첫 경험을 했는데, 상대는 후에 체포되지 않으려고 자살해 버린 예순 살 먹은 당원이라고 했다.
제2부 185
빨간 립스틱이 칠해져 있고, 볼에는 연지가 발라져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코에까지 분을 발랐는데, 눈을 돋보이 게 하기 위해 그 밑에 뭔가를 바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화장이 썩 잘된 것은 아니었지만, 윈스턴도 이 방면에 대한 눈은 높지 않았다. 그는 그때까지 얼굴에 화장한 여자 당원을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줄리아의 얼굴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가볍게 화장했을 뿐인데도 그녀는 눈에 띄게 예뻐졌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여성다워 보였다. 짧은 머리카락과 남자 같은 제복이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껴안았다. 오랑캐꽃 향기가 콧속으로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지하실 부엌과 굴속 같던 여자의 입을 떠올렸다. 줄리아에게서 나는 향기는 그 여자가 사용했던 향수 냄새와 똑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향수까지 뿌렸군."
그가 말했다.
“네, 향수도 뿌렸어요. 다음엔 제가 뭘 하려는지 아세요? 어디서든 진짜 여자 옷을 구해서 이 꼴사나운 옷 대신 그걸 입을 거예요. 실크 스타킹 하고 하이힐도 신고요! 이 방 안에서만이라도 당의 동무가 아니라 진짜 여자가 되겠어요."
그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커다란 마호가니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그녀 앞에서 완전한 알몸이 되 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
동생의 손에서 초콜릿을 낚아채 문밖으로 튀었다. "윈스턴! 윈스턴! 돌아와! 동생한테 초콜릿을 돌려줘!"
어머니가 소리쳤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애원하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이동생은 뭔가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 힘없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누이동생을 두 팔로 감싸고는 그 얼굴을 젖가슴에다 갖다 댔다. 윈스턴은 어머니의 그런 몸짓을 보고 누이동생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녹아서 끈 적거리는 초콜릿을 움켜쥐고 조용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재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 후 그는 어머니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그날 초콜릿을 몽땅 먹고 나자 약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래서 그는 거리를 몇 시간 동안 싸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서야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누이동생 외에 방 안에서 없어진 것이라 곤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외투까지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는 옷가지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지금 까지도 어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누이동생은 윈스턴의 경우처럼 내란 때문에 늘어난 고아들의 집단 수용소(교화원이라고 불렀다.)로 보내졌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를 따라 강제 노동 수용소로 가서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든가 죽었을 것이다.
제2부 231
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윈스턴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그는 잠들지 않고 언제나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텔레스크린을 생각했다. 그 들은 밤낮으로 사람들을 감시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한 그들을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영리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그들의 손아귀에 걸려들면 조금은 사정이 다르 겠지만, 애정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들은 고문, 마취제 신경 반응을 측정하는 정밀 기계, 수면 방해고 독끈질긴 심문 등으로 녹초가 되도록 괴롭힐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은 결국 사실을 털어놓게 될 것이다. 그들은 심문으로 비밀을 알아낼 수 있고, 고문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는 게 목적이라면, 궁극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들을 자신들과 똑같게 개조시킬 수 없듯 그들 또한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 설령 그들이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마음까지 공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속 마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36
내부 당원들은 앞날의 승리를 하나의 신조로 삼고 있다.
그들은 점차적인 영토 확장, 압도적인 세력 구축, 획기적인 새로운 무기 발명에 의해 승리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사변적인 정신이 출구를 찾아낼 수 있는 몇 가지 남아 있는 활동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오세아니아에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어에는 아예 '과학'이란 말조차 없다. 과학적 업적을 이루는 기반이었던 과거의 경험적 사고방식은 '영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정반대이다. 기술적인 진보도 거기에서 파생된 산물이 인간의 자유를 옥될 수 있는 특정 분야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유용한 기술이 정체되어 있거나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기계로 쓰여지는 반면 토지는 말이 끄는 쟁기로 경작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를테면 전쟁과 사찰 부문에 있어서는 경험적 방법이 장려되거나 적어도 허용되고 있다.
당의 양대 목표는 전 세계를 정복하는 것과 모든 독립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근절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 당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당의 의지에 반하는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떻게 몇 초 내에 수억만 명을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제2부 271
전보다 더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새로운 소유주가 단순히 각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이라는 점이 전과 다르다. 당원들은 사소한 소지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생산 물을 분배하기 때문에 오세아니아에 있는 모든 것은 당의 소유인 셈이다. 혁명 이후 몇 년 동안 당은 모든 정책을 공 영화했기 때문에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지배의 자리에 오 를 수 있었다. 자본계급이 재산을 몰수당하면 사회주의가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다. 물론 자본가들은 재산을 몰수당했다. 공장, 광산, 토지, 가옥수송선 등 모든 것들이 그들로부터 몰수 되었는데 그런 것들은 이제 사유재산이 아닌 공동재산이 되었다. 초기 사회주의 운동으로부터 성장하여 용어까지 그대로 이어받은 '영사'는 사회주의의 계획 가운데 중요한 조항을 실행했고 그 결과 이미 예측하고 준비해 온 대로 경제적 불평등을 영속화시켰다.
그러나 계층 사회를 영속화시키는 문제는 이보다 더 어렵다. 지배계급이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네 가지이다. 외부로부터 정복당한 경우, 비능률적으로 통치하여 군중이 봉기한 경우, 불만에 찬 중간계급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경우, 통치할 자신감과 의욕을 잃은 경우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어느 하나만 작용하지 않고 무슨 법칙처럼 네 가지가 거의 동시에 작용한다. 이 모든 요소들을 제압할 수 있는지 배계급만이 영원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결정인자는 지배계급 자신의 정신 자세이다.
288
집 뒤로 넘어가 버려서 뜰에는 더 이상 햇볕이 없었다. 뜰에 깔린 자갈들은 막 물을 뿌린 것처럼 젖어 있었고, 굴뚝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물로 씻어낸 것처럼 맑고 깨끗했다. 아낙네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가 멈추고 또 부르며 기저귀를 널고 있었다. 그녀가 빨래를 해서 먹고사는 건지 아니면 이삼십 명의 손자를 거느린 할머니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줄리아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둘은 아래쪽에 있는 건장한 여인에게 매료된 듯 황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빨래줄로 뻗치는 굵은 팔뚝, 힘센 암말의 그것처럼 풍만한 엉덩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몸짓 등을 바라보면 서 윈스턴은 아낙네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임신 때문에 엄청나게 불어났던 몸집이 일로 인해 뻣뻣해지고 거칠 어져서 마침내 시든 홍당무처럼 쭈글쭈글해진 쉰 살쯤 된 아낙네가 아름답게 보이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아낙네는 아름다웠다. 그런 아낙네라고 해서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화강암 덩어리처 럼 딱딱하여 맵시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몸매와 거칠어진 붉은 피부를 지닌 그녀의 육체를 처녀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장미 열매와 장미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으리라. 하지만 왜 열매가 꽃보다 못하단 말인가?
"아름답군."
그가 중얼거렸다. "엉덩이 폭이 1미터도 넘겠어요." 줄리아가 말했다.
304
우리의 문명은 증오 위에 세워져 있네. 우리의 세계에서는 공포, 분노, 승리감, 자기 비하 등의 감정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네. 그 나머지는 우리가 몽땅 때려 부술 걸세. 우리는 이미 혁명 전부터 내려오던 사고의 습관을 부수고 있지. 우리는 부모와 자식, 인간과 인간, 남자와 여자 간의 유대를 끊어버렸네. 어느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마누라나 자식이나 친구를 믿으려 들지 않을 걸세. 그런데다 앞으로는 마누라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네. 암탉이 알을 낳으면 그것을 꺼내오듯 태어나자마자 아이들을 어머니 품에서 빼앗아오게 될 걸세. 성 본능도 없어질 테고, 출산은 배급 카드를 재발급해 주듯이 일 년에 한 번 하는 연례적인 공식 행사가 될 것이네. 우리는 섹스할 때의 오르가슴도 없앨 걸세. 신경학자들이 현재 없애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네. 충성심도 당에 대한 것 이외에는 모두 없애버릴 걸세. 사랑도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네. 웃음 도 적을 패배시키고 승리감에 취해 웃는 웃음만 있게 될 것이고 미술, 문학, 과학도 없어질 걸세. 뿐만 아니라 아 름다움과 추함의 구별도 없어지고 호기심이라든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 따위도 없어질 것이네. 한마디로 말해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은 파괴되어 버리는 거지. 그런데 이걸 잊지 말게, 윈스턴, 언제나 끊임없이 커가고 끊임없 이 미묘해지는 권력에 대한 도취감만 맛보게 되리라는 점을 말일세.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승리감이 주는 전율과 무력한 적을 짓밟는 쾌감을 얻게 될 것이네.
374
(敗走) 50만 명의 포로 완전한 사기 저하 - 아프리카 전역의 장악 눈앞에 다가온 전쟁의 종결 - 승리 -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승리 - 승리, 승리, 승리!"
테이블 밑에 있는 윈스턴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펄펄 뛰면서 바깥의 군중과 한패가 되어 귀가 멍멍하도록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금 빅 브라더의 초상화를 올려다보았다. 세계를 장악한 거인! 아시아 유목민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거석(巨石)! 그는 십분 전 그렇다. 겨우 십 분 전이었다! ㅡ에 전선에서 날아온 소식이 승리일까. 패배일까 하고 마음 졸였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패배한 것은 유라시아의 군대뿐만이 아닐 것이다. 애정부에서 날을 보낸 이후로 그는 많이 변했지만, 그 순간만큼 결정적이고 불가피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여전히 포로, 노획품, 사살자 등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바깥의 환호성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웨이터들도 다시 분주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웨이터가 진이 든 병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왔다. 윈스턴은 잔에 술이 채워지는 것도 모른채 행복한 몽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펄쩍펄쩍 뛰 지도 환성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의 영혼은 흰눈처럼 깨끗해졌다. 그는 애정부로 돌아가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피고석에 앉아 모든 죄를 고백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범자로 만들었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무장한 간수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刑)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제3부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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