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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독서정리

마흔 여덟번째 책 : 다만 잘 지는 법도... 전종환 에세이

by 마파람94 2021. 12. 5.

가볍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했습니다. 도서관에 잠깐의 서성임과 함께 눈에 띈 전종환의 에세이집을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읽게 되는 책이었고, 나도 이런 글 정도를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글 입니다. 밑줄이 많지 않지만 건져야할 최소한의 글은 오늘도 여기로 기억으로 가져옵니다. 밑줄.

 

 

 

단독은 힘이 세다

기자 세계에서 '단독'은 힘이 세다. 모든 기자가 단독 보도를 위해 열심히 뛰는 이유는 그것으로 능력을 평가받기 때문이다. 타사와의 경쟁에서도 단독 보도는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힘 있는 단독 보도를 하고 기자실에 앉아 있으면 으스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때때로 단독 보도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보도로 오만하기 짝이 없던 정부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힘있는 단독이었고, 역사에 남을 특징이었다. 태블릿 PC 보도 뿐만이 아니다. 집요함으로 일궈낸 단독들이 권력과 힘 있는 자들을 견제해온 건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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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창밖만 바라봤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보다 제가 오히려 취재 경험이 짧지 않습니 까. 이런 제가 무슨 능력으로 기자 일을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선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체 제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겁니까. 무섭습니다."

선배는 침묵했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쫓겨난 내 신세를 한탄 했다. 술의 힘을 빌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괜찮다, 괜찮다 했지만 계속되는 불안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선배는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곤 별말 없이 택시비를 쥐여줬다. 마땅히 해줄 말을 찾지 못한 선배의 마음이었을거다. 나도 선배도 그날 이후 택시 안에서의 대화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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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당 전보당한 선배들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그뒤 아나운서국에 와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미련이 남을까 봐 겁이 나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떠난 뒤 회사에 여러 사태가 벌어졌고, 예전에 제가 사랑했던 MBC 아나운서국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재건해보지는 몇몇 동료들의 청을 들었습니다.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아나운서국에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보도국을 떠난다는 소식에 함께 일했던 기자 동료들이 환송 자리를 만들어줬다. 한 선배가 물었다.

"떠나는 소감이 어때?"

보도국에 처음 온 날과 아나운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된 날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기자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아요. 죽을 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요. 왔다 가가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는 느낌 일장춘몽이 이런 건가 싶어요."

아나운서에서 기자가 됐고, 기자에서 아나운서로 돌아왔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있다" 라고 하신 신영복 선생의 글귀를 찾아 한번 더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다시, 아나운서로서의 내 일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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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수제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 쓴 이 책에는 한 켤레의 구두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온전히 담겨 있다. 아, 구두 가죽은 이렇게 무두질(동물의 원피에서 가죽이 되는 과정)되는 거구나. 구두 라스트(구 두골)는 이렇게 깎아내는구나 손바느질은 이런저런 부위에 들어가는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신는 구두들의 생애를 폭넓게 이해하게 되고, 예전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 사랑한다는 건 삶에 리듬감이 부여된다는 뜻이다. 리듬감 없이 그저 반복되는 삶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뻔한 반복의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이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구두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20대 때는 높고 먼 얘기들이 좋았다. 역사와 진보, 정의, 자유, 민주, 이런 개념들 말이다. 이제는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아무래도 덜하다. 부조리에 저항하고 나름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제법 알게 됐기 때문이다. 주워 들은 개념과 지식으로 부풀려진 생각과 말은 허망하기 쉽고, 그런 허깨비 같은 개념은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행동하는 사람들의 말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사는 데지 친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늙은 건가? 아무렴 무슨 상관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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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83, 84쪽)

나는 아내를 연민하는가. 그런 것도 같다. 아내의 얼굴에 잔주름 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어간다. 나와 함께 살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생겼을 노화 현상이겠으나, 나와 함께 사느라 더 그런 것만 같아 민망하고 미안하다.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인간들이 애달픔을 나누는 마음이 연민이라면, 함께 연민하며 나이 먹을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민의 힘으로 나는 아내와 함께 결혼이라는 생의 큰 과업을 무사히 마치고 싶다. 명랑과 연민이 합쳐지면 넉넉히 가능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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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훈, 자전거 여행』 1·2 (문학동네, 2014)

군 생활중이던 2002년, 나는 김훈의 산문집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생각의 나무, 2002)를 읽었다. 처음 읽은 김훈의 책이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또 단어와 단어 사이에 전압이란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김훈의 글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의 문장은 아름다웠고 볼 때마다 새로웠다. 지금까지도 김훈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사서 읽는다.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김훈의 책을 고른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의 장편소설 『현의 노래 (문학동 네, 2012)와 남한산성(학고재, 2017), 흑산(학고재, 2011)을 특히 좋아하고, 단편소설 「화장」(강산무진, 문학동네, 2006)도 여러 번 읽었다. 하지만 한 권만 고른다면 그 책은 모름지기 산문집 자전거 여행이다. 힘이 넘치는 김훈 문장의 진수를 만나볼 수 있다

3.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1·2 (미디어창비, 2019) 나는 이 책에서 똘레랑스의 개념을 처음 배웠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 지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이 왜 중요한지를 홍세화씨는 프랑스에 서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전파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우리 부모 세대와 좀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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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야근은 해야 하는데 그럴 거면 일거리를 남겨놓는게 차라리 낫다. 퇴근은 밤 10시가 되어야 가능하다(52시간 제도가 시행되기 전의 일이다). 원치 않는 회식도 잦다. 파김치가 돼 집에 가면 육아가 기다린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침대에 몸을 누이면 새벽 1시다. 네 시간 쪽잠을 자고는 다시 회사로 향한다. 몸은 망가지는데 그렇다고 삶이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고 대기업에 입사했건만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와 별다를 게 없는 삶이다. 90년 대생들은 이런 80년대 생들을 지켜보며 다른 삶을 설계하기에 이른다.

90년 대생들은 회사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기로 한다.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보상받으면 그만이고 나머지 시간엔 나를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조직에 모든 걸 걸지 않고도 삶을 견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선배들의 부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민주적인 척은 하나 사고방식은 전체주의에 가깝다.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다르다. 우리 때는 눈빛이 달랐다며 후배들의 패기 없음을 탓하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별 능력이 없다. 그러면서 배우라고, 따라오라고 강요한다. 90년 대생들은 생각한다. 깔끔히 일만 하자. 그리고 일한 만큼 보상받자. 불필요하게 끈끈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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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지 말 것!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날을 세우지 않아도 돼요. 노력하되, 애쓰지는 말아요. 인지하되, 의식하지 말아요. (・・・・・…) 당신 인생의 반사람으로 채우려 하지 마세요. 그게 누구든 말입니다. (같은 책, 231, (232쪽)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평가가 되고, 평가가 모여 평판이 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나에 대한 평판에는 신경을 꺼야 한다. 그건 내가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지 인지하려 애쓰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의식하면 안 된다. 그 역시 애쓴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과 애씀. 인지와 의식, 언뜻 비슷하게 들리는 이 단어들 사이 어딘가에 지혜와 아둔함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뒤섞임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러니 삶이 어디 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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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번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찾아와 말할 것이다. "힘내세요. 다 나을 수 있을 거예요." 한바탕 눈물을 쏟고는 병원 문을 나서겠지. 하지만 이런 종류의 눈물은 금세 마른다. 해야 할 일을 끝 마친 개운함과 이어질 나날의 걱정에 산 자들의 삶은 다시 속도를 내기 마련이다.

죽음은 철저히 혼자가 되는 고독한 절차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과거 이 세상에 태어났던 모든 이가 죽었다는 사실이고 또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이가 머지않아 모두 죽어가리라는 명징한 사실뿐이다.

1분마다 1백여 명이 죽습니다. 시간당 거의 6천500명이 죽습니 다. 하루에 15만 명이 죽습니다. 각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저 사망자들입니다.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 그의 죽음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의 역설입니다." (93쪽)

바쁘더라도 한 번씩은 죽음을 떠올리며 살려한다. 넘쳐나는 삶의 욕망에서 그나마 나를 지켜낼 수 있는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 뿐이라 믿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해 아이를 낳기까지가 생의 과정이라면 부모를 잘 보내드리고 뒤이어 내 남은 삶을 잘 정리해가는게 사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생의 과정을 모두 마무리한나는 이제 담담하게 사의 과정으로 걸어 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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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삶의 저편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세속적인 성공과 거기서 주어지는 작은 권력과 주식과 부동산으로 벌어들일 한 줌의 돈을 생각하며 사는 아들은 또다시 할 말이 없어졌다. 깊게 파인 어머니의 주름이 유독 더 선명해 보였다.

정확히 30년 전, 어머니는 형과 나를 데리고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사를 했다.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두 강남으로 몰리던 시대였다. 어머니는 강서구의 작은 빌라를 처분해서 강남에 15평짜리 작은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삶은 더 궁핍해졌으나 어머니는 더 행복해했다. 이사 온 날, 어머니는 아들들 손을 잡고 우리가 다닐 초등학교로 산책을 갔다. "여기가 너희들이 다닐 학교야. 이제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새로운 동네에서 아들들 공부시킬 생각에 어머니는 들떠 있었다. 그 좋다는 경기고등학교에 형을 입학시키는 게 어머니의 꿈이었다. 당시 어머니 나이가 마흔하나였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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